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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삶이 극락이어야 죽어서도 극락에 산다?

하루에도 수 십 번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게 ‘사람’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인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그대의 혼미한 마음으로 인해
윤회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들어간다.

그대의 마음이 붓다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그 마음이 니르바나를 흐리게 하는 장애물이다.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해탈과 윤회가 갈린다.

해탈과 윤회는 한 찰나에 갈린다.”  - 『티벳 사자의 서』 중에서-

 

 

‘티벳 사자의 서’. 읽었던 책 중 가장 충격적인 책이었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 는 인간이 사후 49일간 겪게 될 상황들을 생생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삶(生)과 죽음(死)을 끊임없이 오가는 윤회(輪廻)의 업(業)을 짊어진 모든 생명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 해탈의 길로 이끄는 경전입니다.

 

 

티벳 사람들은 ‘티벳 사자의 서’를 망자의 곁에서 49일간 계속 읽어준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죽어서 윤회를 벗고, 해탈의 길로 들어서길 바라는 망자와 후손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생과 사가 하나인 게지요.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 갔습니다. 덕해 스님과 선문답이 그리워서. 마침, 천도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천도제에는 제주도 절집인 보림사 지원스님, 청룡사 도광스님, 대원사 세진스님, 해운사 탄해 성률스님 등도 함께했더군요.

 

 

“천도제(遷度祭)는 우리들 조상님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인 등 죽은 사람들이 윤회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극락세계로 모시는 의식입니다.”

 

 

탄해 성률스님의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뿌리와 같은 조상님을 위한 기도는 바로 자신의 복을 비는 것과 같은 덕”인 게지요. 이 천도제에서 ‘티벳 사자의 서’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티벳 사람들이 망자들을 위해 쉼 없이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우리네 후손들도 구천을 떠도는 조상님들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전해 극락왕생을 이루도록 치성을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재산은 믿음이다.
덕행을 쌓게 되면 행복이 찾아온다.
진실이야말로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법구경>

 

 

덕을 쌓으면 행복이 찾아오며, 진실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최상이라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면서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던가요. 하루에도 변덕이 수 십 번 죽 끓듯 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그래서 끊임없이 수행에 임하는 게지요.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는 천천히 느리게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흔히, 중생들은 ‘잘되면 내덕이요, 안 되면 조상(타인) 탓’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에 맺힘이 없이 술술 풀리는 건 자기 능력 덕분이고, 하는 일마다 꼬이고 우환이 뒤따르는 건 조상을 잘못 둔 죄로 풀이 됩니다. 그렇다고 조상님 원망만 할 순 없지요.

 

 

각박한 세상을 이기는 힘은 발상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잘되면 조상(타인) 덕, 못되면 내 탓’으로 돌리는 마음이 필요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고, 주위에 감사하며, 모든 것에 감사할 때, 행복은 절로 찾아오는 법 아니겠어요! 서로를 배려하는 와중에 덕이 생길 테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 스님, 행복은 어찌 구해야 합니까?

 

“행복은 구해진다고 구해지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집착을 비워야 합니다.” - 지원스님 -

“마음을 비운다 함은 다 주는 겁니다. 무소의 뿔처럼 걸림이 없다는 겁니다.” - 세진스님 -

“행복은 무조건 만들어야 합니다. 짬을 내서 만들겠다고 미루어선 안됩니다.” - 도광스님 -

 

 

삶이 고단할 때, 언제나 던지는 화두. 그러나 중생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다시 삶의 한 가운데로 나왔습니다. 아둔함을 깨치는 죽비소리에 정신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당한다는 피해의식만 생각하지, 내가 남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덕해스님 주장입니다.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습니다. 덕해스님에 따르면, “이게 아(我)”입니다. “부처님은 이 아상(我想)을 없애라”고 하셨답니다. 왜냐?

 

 

“자신의 화를 누르지 못하면 ‘가슴→입→팔→다리’로 나와 결국에 죄를 짓게 된다. 결국 음식, 옷, 돈 등의 아귀에 빠져 자기의 본질을 잊게 된다. 부처님의 지혜로(감로수) 화를 제압하고, 부처님의 우주 진리로 자신을 이겨야 한다. 살아 있는 삶이 극락이어야 죽어서도 극락에 산다.”

 

 

그렇습니다. 돈, 옷, 음식 등은 체면을 살려주는 자존감의 포장일 뿐. 이 생이 극락이어야 죽어서도 극락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네 현실은 여전히 고단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합니다. 혼자 독야청청 살 수 있다면 왜 삶을 고민하겠습니까. 다만, 가치롭게 살려고 노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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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 세월호 도보순례단을 통해 본 ‘인연’

세월호 현장인 진도에 꼭 와보고 싶었습니다!
인연 속, 잘못된 만남 ‘악연’과 좋은 만남 ‘반연’이란?
삶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찾은 행복이 한 재미

 

 

 

 

 

 

이런 상황, 어떤 인연이라 해야 할까?

 

 

인연(因緣)!

참 묘합니다. 어떻게 맺어지느냐에 따라 삶의 희비(喜悲)가 갈립니다. 최근 진도 팽목항을 둘러보던 중, 스치듯 지나 간 짧은 인연을 대했습니다. 뭐랄까. 조금 과장하면 꼭 귀신에 홀린 듯합니다. 만날 운명이었는데, 그간 못 만나다, 한 방에 해치운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이다.”

 

 

인연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인연은 한 발 더 나아가 가족, 모임, 사회, 국가와 맺어진 연분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서로 부딪치며 사는 것 자체로도 인연의 깊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합니다.

 

 

인연을 불교에선 “결과를 이끌어 내는 직접 원인인 ‘인(因)’과 간접 원인인 ‘연(緣)’”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연은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인과’ 관계의 출발점으로 해석됩니다. 그리하여 인연은 해탈을 얻을 때까지 태어남과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해 돌고 도는 ‘윤회’에 이르는 게지요.

 

 

 

진도 팽목항입니다.

 

 

 

세월호 현장인 진도에 꼭 와보고 싶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을 둘러보고 나오던 중이었습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손을 들어 태워주길 간청했습니다. 차를 세웠습니다. 태웠습니다. 그들도 저희 부부처럼 세월호 도보순례단에 합류해 팽목항에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나오던 중이라 여겼기에.

 

 

- 어디까지 가세요?
“감사합니다. 차 주차한 곳까지만 가면 되는데…. 가다가 주차한 곳에서 가까운 데서 내릴게요.”

 

 

- 이렇게 인연이 닿았네요. 차는 어디에 주차하셨어요?
“진도는 초행이라 어디에 주차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핸드폰 내비를 켰으니  가다가 주차했던 근처에서 내릴게요.”

 

 

- 차 있는 곳까지 모셔 드릴게요. 어디서 세월호 도보순례에 오신 거예요?
“예. 수원에서 왔습니다. 저희 집에서 안산 분향소까지는 약 30분 거리인데도 한 번을 못 갔어요. 그런데 이번 도보순례는 어떻게든 오고 싶더라고요. 수원서 오늘 새벽 출발해 아침에 도보순례단과 합류했어요. 합류 지점에 차를 세웠고요. 가시는데 까지만 태워주시면 나머진 걸어서 갈게요.”

 

 

- 걷기에 거리가 장난 아닌데. 걱정 마세요. 주차한 곳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저희가 세월호 도보순례단 합류 차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걸어가다가 택시 만나면 타자하고 무작정 걷던 중이었습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은 다 같은 마음일 거라 믿으며,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 탈까 했어요. 세월호 현장인 진도에 꼭 와보고 싶었습니다. 다 같은 마음 아니겠어요.”

 

 

- 젊으신데, 두 분은 부부세요?
“아직 아닙니다. 30대 중반으로 올해 결혼 예정입니다.”

 

 

- 진도까지 같이 오신 걸로 봐선 결혼하시겠는데요?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갑자기 의기투합해서 새벽에 같이 오게 되었어요. 저녁에 일이 있어 급하게 올라가는 거구요. 차 저기 있습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 저 차에요? 아침에 우리가 주차했던 곳인데. 우리 뒤에 주차했던 차군요? 두 분 결혼 꼭 하세요!
“정말요. 아~, 저희 앞에 서 있던 그 차였어요? 인연이네요. 하하하~.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젊은 연인과의 만남은 약 10분이었습니다.

이런 걸 인연이라 해야 하나? 하여튼, 인연이지요. 이렇듯 우리가 흔히 쓰는 <인연>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연, 우연, 악연, 반연 등입니다.

 

이에 대한 덕해 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의 설명이 재밌습니다.

 

 

젊은 연인과의 스친 인연은 진도 염장리에서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쉬던 지점이었습니다.

근데, 그걸 몰랐지요...

 

 

 

인연 속, 잘못된 만남 ‘악연’과 좋은 만남 ‘반연’이란?

 

 

“‘필연(必然)’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관계처럼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우연(偶然)은 스치듯 이뤄지는 만남이지요. 앞으로 어떤 관계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필연이 어디 부모 자식 간에만 일어날 일이던가요. 스승과 제자 등 다양하겠지요. 덕해 스님은 인연 속에 담긴 의미는 우연과 필연 뿐 아니라 좋고 나쁨으로 또 갈린다더군요.

 

 

“‘악연(惡緣)’ 혹은 ‘저년(低緣)’은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이입니다. 이 경우 만나서는 안 되는 ‘잘못된 만남’이지요. 흔히 우리가 하는 말, 궁합이 맞지 않는 사이지요.”

 

 

간혹 부모님들께서 결혼을 반대할 때 “니들은 서로 맞지 않는다”“기어이 결혼한다면 어느 한쪽이 빨리 죽을 거다”며 ‘급살 운’ 등을 들먹이는 건 악연이 불러올 화를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믿을 건 아니지요.

 

 

“‘반연(扳緣)’은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며,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 주는 아주 ‘좋은 만남’입니다. 이를 곧 ‘천생연분’이라 하지요.”

 

 

악연과 반연의 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악연인 부부는 이혼을 부르고, 반연인 부부는 백년해로를 누리는 거 아니겠어요. 이로 보면, 인연은 행복과 불행이 함께 들어 있는 양날의 검인 셈입니다.

 

 

이를 알았을까. 설 안부를 나누며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덕해 스님께서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보내겠다고 하시더군요.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스님입니다.

 

 


삶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찾은 행복이 한 재미

 

 

하트 모양을 한 구름 사진입니다. ‘별 것도 아닌데, 이걸 왜 보내셨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자꾸 뭐라 하시는 거 있죠.

 

 

덕해스님 : “그 사진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보면 별 겁니다.”
나, 중생 : “에이~, 암 것도 없는데요. 그저 하트 구름 사진이구만.”

 

 

덕해스님 : “사진을 확대해서 왼쪽 부분을 한 번 더 자세히 보세요.”
나, 중생 : “자꾸 뭐가 있다 그러세요.”


덕해스님 : “사진 왼쪽을 보면 눈, 코, 입 등 사람 얼굴 형상이 화를 내고 있잖아요?”
나, 중생 : “어, 정말이네. 사람이 씩씩대네. 왜 화가 났을까? 스님은 그걸 또 어찌 발견했대요. 역시 스님은 다르셔!”

 

 

덕해스님 : “인연 속에 악마(악연)와 행복(반연)이란 두 얼굴이 있듯, 사랑도 제가 보낸 사진처럼 기쁨(행복)과 화냄(불행)이란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네 삶도 모순된 두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나, 중생 : “과연 스님이십니다!”

 

 

 

스님이 보낸 하트 모양 구름 사진입니다. 

정말이지, 화난 사람 얼굴 형상입니다.

 

 

스님께 졌습니다. 스님께선 한 장의 구름 사진에서 우리네 삶을 관조하며 꿰뚫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은 게 있습니다.

 

 

행복한 삶은 악연보다 반연인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출발하지요. 이는 사람 뿐 아닙니다. 우리가 속한 직장, 사회, 국가와의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장 상사, 어떤 모임 수장, 어떤 국가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다 합니다. 그래도 가정해 보고 싶습니다.

 

 

‘만약, 세월호 희생자들이 박근혜 정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악연(불행)을 반연(행복)으로 만드는 힘은 본인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삶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찾은 행복을 누리는 게 또 한 재미니까.

 

올 한 해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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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먹는 미꾸라지와 금붕어, 개구리의 합창

철학자 질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이 사는 법 ‘해학’

 

 

 

 

제주도 우도 금강사 경내의 관세음보살상 밑에 연못엔...

금강사 대웅전 옆 용왕님 전 밑 연못에는...

연이 꽃이 되었습니다!

금붕어가 꼬리를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존재가치였지요...

 

 

 

어떻게 살면 재미있게 잘 사는 걸까?

사는 날까지 이걸 알면...

 

해답은 각자의 몫...

 

 

 

“스님, 용왕님 발아래 연못에 금붕어를 풀었네요?”


“예. 용왕님 앞에서 헤엄도 쳐야….”

“고거, 재밌는 발상입니다.”

 

 

용왕님과 어울리려면 바다 속 물고기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뭍이니 만큼 금붕어로 대신해 상황을 연출한 셈입니다. ‘용왕님 외로워 마세요!’란 제주도 우도 금강사 주지 덕해 스님의 배려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금붕어가 연못 속 연잎 틈새로 잠깐 보였다 바로 사라집니다. 꼬리 혹은 머리만 보였다가도 금새 보이지 않습니다. 요 녀석들, 몸을 숨긴 채 좀처럼 제대로 보여주질 않습니다. 손님이 왔거늘….

 

 

“처사님, 미꾸라지도 풀었어요.”


“미꾸라지는 보이지 않네요. 미꾸라지는 뭣 땜에 풀었어요?”

“기다려 보세요. 먹이를 주면 금방 나타나지요.”

 

 

먹이로 구슬리는 지혜를 터득한 게지요. 하기야 먹이가 삶의 가장 기본이지요. 어느 철학자의 질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처럼. 덕해 스님, 먹이를 가지러 갑니다. 본래 강아지 사료인데, 금붕어와 미꾸라지 먹이로 주고 있답니다. 먹이는 하루에 한 번 준다나.

 

 

먹이는 먼저 금붕어가 먹습니다. 그리고 미꾸라지가 모이더군요. 연못 속에는 먹이를 적당히 먹고, 다른 개체에게 양보하는​ 자연 속 <상생의 도>가 스며 있었습니다. 이처럼 미물들도 함께 살고자 하건만, 하물며 인간의 욕심이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모기 유충 등이 생겨 모기가 많잖아요.

그걸 미꾸라지가 잡아먹어 모기가 별로 없대요.”

 

 

그저 운치인 줄 알았는데, 미꾸라지와 스님이 상생하는 이유더군요. 이날 처음 사료 먹는 미꾸라지를 보았답니다. 용왕님의 놀이터 연못 속에 사는 미꾸라지는 분명 살기 위해 먹는 부류였습니다.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이행하고 있으니까.

 

 

덕해 스님의 운치가 어디 이뿐일까. 금강사 절집 안팎으로 군데군데 해학이 넘칩니다. 고고한 사슴 한 마리. 고무신을 앞에 둔 아이상.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상. 게다가 금방이라고 입 벌려 노래 부를 것 같은 개구리 상까지. 많은 상상력을 부릅니다.

 

 

그는 속세에 있으되 신선처럼 사는 것 같습니다. 천상, 스님이라는….

 

 

꽃으로 피었습니다! 

연못을 노닐다가... 

 사료를 만났습니다.

어느 정도 먹은 다음 자리를 양보하는 금붕어들. 

금붕어가 비켜 준 자리, 미꾸라지가 슬슬 나옵니다. 

입질을 하고... 

 본격적으로 먹고 있습니다.

 미꾸라지 참 많더군요.

 사료가 불어야 잘 떼어진다네요.

 물에 분 사료를 떼어먹는 미꾸라지들.

이제야 잘 떼어진다는...   

 아 배부르다...

 미꾸라지 물러나자 다시 금붕어가 나타났습니다. 양보와 상생의 미덕입니다!

유유히 노닐고... 

 스님의 해학...

절집을 지키고... 

우도를 지켰다! 

 헉, 꽃사슴까지...

고무신을 앞에 둔 아이상.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상. 

물은 만물의 근원이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곧 깨달음... 

 덕해 스님 절집 마당을 쓸다 말고 허리를 펴셨다!

스님은 이렇게 연꽃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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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르 연꽃, 금강사의 속삭임으로 피어나다!

변재환 시 <꽃의 수모>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제주도 우도 금강사] 우리들 마음과 연꽃 이야기

 

 

 

 

사랑놀음은 태어난 특권...

바람 틈 사이로 본 제주도 우도 금강사 대웅전

그대, 고매한 향이여!

 

 

연꽃.

 

언제 들어도 가슴 시리더이다!
왜 시린지 모르겠더이다.
언제부턴가 그저 바라 만 봐도 시리더이다!
아마도 연꽃의 속삭임에 반했나 보더이다.
연꽃의 속마음에 푹 빠졌나 보더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

 

 

연꽃!

 

새벽아침에 피어나는 연꽃 좀 보아요.
뭐가 그리 좋으신지 보기를 재촉하더이다.
곁눈을 주었더니 수줍은 모습으로 다가오더이다!
어찌나 예쁘던지 사랑하고 말았더이다.
유혹은 더 이상 없으려니 했더니 아직 남았더이다.!
가슴에 와 푹 안길 그녀….

 

 

연꽃.

 

저녁에 시든 꽃잎이 보이더이다.
스님, 연꽃은 저녁에 문을 닫는다!
말에서,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보았더이다.
식구들 함께 앉아 밥 먹는 풍경을 떠올렸더이다.
아직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 심정,
금강사 연못 속 연꽃으로 피어났더이다!

 

 

 

 

끄적거리다 지인의 시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꽃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꽃의 수모

                        고(故) 변재환

 

  돈 냄새 보다
  꽃향기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백에 두셋은 있었다

 

  꽃 축제가 있던 날
  누군가가 허공에다 돈을 뿌렸다
  꽃향기를 맡고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가 바라 본 꽃과 내가 본 꽃은 서로 다른 이름이었나 봅니다.

 

맞습니다. 금강사 연꽃에는 속삭임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연못의 어울림...

 덕해스님의 새벽 예불 소리가 낭낭히 퍼지자 만물이 하나 둘 깨고...

예불소리에 기지개 켠 금붕어님! 노닐기 시작하는데...

 가족이란 이름의 연꽃...

연, 꽃으로 피어나다! 

우도 금강사 대웅전 옆에는 용왕님을 모셨더이다. 그 말 아래 연과 붕어가... 

우리도 좀 먹고 살자... 

그녀를 향한 구애... 

우도의  새벽... 관세음보살 발 아래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나더이다.

 초록은 동색?

 공존의 세월만큼 인연이... 

스님의 예불 소리에 만물이 깨어나고...

 가슴 시리게...

새악시 볼처럼 수줍어 하는 그녀. 

고고하게 핀 그녀! 

우리네 삶도 이렇듯 활짝 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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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불짜리 웃음을 지니신 어느 스님의 고뇌...

불전함 도둑에 대한 스님의 일갈에 웃었던 이유가
도선생 다녀간 후 어머니 말씀, ‘있는 집에서 털지!’
스님이 꺼내신 화제 ‘불전함’, 무슨 사연 숨었을까?
맑은 사람 눈에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

 

 

 

 

 

분별이 없어야 한다, 했거늘….

 

아무리 도가 높으신 분이어도 기분 나쁜 것과 기분 좋은 것의 구분은 있나 봅니다.

 

분별을 들고 나온 이유가 있겠죠?

 

 

 

새벽 예불을 준비하는 도량석 중인 덕해스님. 만물을 깨우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보통 절집과 달리 엄청난 보물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도선생 다녀간 후 어머니 말씀, “있는 집에서나 털지….”

 

 

“뭐 가져갈 게 있다고 이렇게 홀딱 뒤졌을까?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수년 전,

밤손님에게 집을 털린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 새벽 예배를 다녀왔더니, 도선생이 농과 서랍, 찬장 등 뭣이든 숨길만한 곳은 죄다 뒤집어 놓았다더군요.

 

거기에 통장과 도장은 잘 챙겼더군요. 하여, 어지러운 중에 몸만 홀라당 빠져 나가신 도선생님 전에 기도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관세음보살상과 뒤로 보이는 성산 일출봉이 멋진 풍경화입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 갔더랬습니다.

선암사, 낙산사, 봉정암 등을 거친 후, 지금은 금강사에서 홀로 절집을 지키시는 덕해 스님을 뵙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님과 매일 차를 마셨드랬습니다.

차가 좋아서였을까? 자연이 좋아서였을까? 벗이 좋아서였을까? 정신이 하루가 다르게 맑아졌더랬습니다.

 

 

“스님, 시주는 좀 들어옵니까?”

 

 

무심코 던진 말이었습니다.

근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님께선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스님 얼굴에 가벼운 일렁거림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비웠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전에 자리한 불전함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스님이 꺼내신 화제 ‘불전함’, 무슨 사연 숨었을까?

 

 

“한 달에 10만원도 안 들어옵니다.”

 

 

개구쟁이 동자승처럼 백만 불짜리 웃음을 가진 스님의 대답치곤 궁색했더랬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 우도라 돈 좀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닌 사정이었습니다. 하기야 절집을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고, 신도가 많지도 않은 형편이라 이해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달에 들어오는 시주가 10만원이 안 된다니, 시주 더러 좀 해주시길….

 

 

“스님, 금강사에 오신 후 기억나는 사건 있으면 하나 이야기해 주세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던 질문이 또 낭패였더랬습니다. 말이 새는 날이었습니다. 통 큰 스님이어 설까. 괘념치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뭐가 있을까?”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하나 있다며 꺼내신 화제가 <불전함>이었더랬습니다.

 

 

“밖에 나갔다 왔더니 뭔가 이상해.

여기저기 살펴보니 불전함이 털려 있는 거라.

한번이라 배고픈 사람이 가져갔겠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보시 한샘 쳤어.”

 

 

스님, 배움과 수양이 깊어 여기에서 이야기 진도가 끝나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뿔싸!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죽비로 뒤통수를 한 대 호되게 쥐어 터진 듯한 일갈이 터져 나왔더랬습니다.

 

 

백만불짜리 웃음을 지닌 덕해스님.

 

 

 

맑은 사람 눈에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

 

 

“너, 우리 절에 다시는 오지 마.

다음부터 내 눈에 띠는 날에 너는 죽는다.

그렇게 살지 마.”

 

 

깜짝 놀랐드랬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요. 아, 글쎄. 절에 오지 마라니…. 눈에 띠는 날에 죽는다니…. 그렇게 살지 마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심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건 공중에 던진 스님의 진심 어린 가르침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드랬습니다.

 

 

“놀라기는….

 

그런데 어느 날 또 불전함이 털린 거라.

간혹 절에 와서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일을 도와 준 척하던 한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정색하며 던졌던 말이야.”

 

 

난 또 뭐라고.

그렇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에 의해 암묵적 불전함 털이꾼으로 지목된 그는 자기 딴에는 스님에게 강하게(?) 반항했더랍니다.

 

 

“스님, 뭣 땜에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그런데 반발이 아주 어설펐답니다. 속 보였답니다.

스님이 그를 불전함 털이범으로 지목한 것은 순전히 육감이었답니다. 맑은 사람 눈에는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게지요.

 

 

 

바람의 길목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진한 여유로움입니다.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는지 궁금하대!

 

 

“불전함 처음 털렸을 때 낌새가 이상했는데, 그냥 넘긴 게 화근이었어.

다행이 우리 절에 CCTV가 없어 망정이지, CCTV가 있었다면 호되게 망신살 뻗쳤을 거야.

 

훗날 그는 제주도 어느 절에서 불전함을 털다 결국 경찰서에 잡혀갔대.”

 

 

인과응보(因果應報).

불가에선 업을 지우기 위한 보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스님께선 본의 아니게 도둑을 키운 꼴이 되었습니다.

 

잡히기 전에 더 따끔한 맛을 보였더라면 그는 교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머물렀을 때, 스님의 기상천외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스님, 구도자란 무엇입니까?

 

 

 

스님의 깊은 속, 알 길이 없었드랬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할 수 없이 물었지요. 그랬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불전함 털리기 전에는 그 속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어.

그런데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그게 궁금하대. 너무 궁금해 잠도 안 오더라니까.”

 

 

하하하하. 실없이 웃음이 터졌드랬습니다.

나 원 참! 스님은 없는 살림에 뭐 가져 갈 게 있다고, 그렇게 궁금하셨을꼬. 여기에서 원효스님을 해탈의 경지로 끌어 올린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설화를 떠올렸습니다.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앞서 끄집어냈던,

어머니께서 없는 집 털어 간 도선생님을 보고, 가엽게 여겨 하신 말씀입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 원효대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의 불전함 이야기는 뒤늦게 어머니를 새롭게 알게 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덕해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화입니다.

금강사 뒤로 보이는 우도봉이 송두리째 안개에 막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관세음보살상과 소나무가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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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승낙 조건 중 하나였던 ‘새벽 예불 구경’ 이유가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상을 일깨우는 도량석 중인 스님...

새벽 예불을 마친 제주도 우도 금강사.

 

 

 

 

18년 전, 아내는 나그네의 청혼을 받아주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로 ‘새벽 예불 구경’을 내걸었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기상천외한 제안이었습니다. 호기롭게 ‘까지 꺼 그거 못하겠냐?’ 싶어 “좋다”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경북 청도 운문사로 향했었습니다. 운문사의 새벽, 앳된 비구니들의 예불소리는 웅장함을 넘어 자비였습니다. 이후, 새벽 예불은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구도는 자신을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똑 똑 똑 똑 ~~~~~~ 또르르르~~~~~~’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께서 대웅전 앞에 섰습니다. 목탁소리가 새벽을 갈랐습니다. 청아했습니다. 목탁소리엔 일정한 음률(音律)과 시어(詩語)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선지, 나그네를 깨우는 신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그네는 공(空)이 되어갔습니다.

 

 

덕해 스님께서 목탁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동시에 염불이 나옵니다. 목탁과 어울린 염불소리는 절묘한 조화로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의 부드러우며 절제된 발걸음은 춤사위처럼 사뿐했습니다. 이에 반했는지, 한 처자가 문을 열고나왔습니다. 그녀는 합장한 채 스님을 뒤따랐습니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의 행복이었지요. 아내는 이런 행복을 어찌 알았을까?

 

 

“마하반야~ 바라~ 밀다심경~~~”

 

 

절집의 새벽 예불은 보통 새벽 3시30분 혹은 새벽 4시에 시작됩니다. 순서는 도량석, 종성, 종치며 염불,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작은 종(운집새), 법당 예불 순입니다. 절집 규모와 도량 크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삶의 재미지요.

 

 

 

목탁소리는 신심이었습니다.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세상이 좋은 것뿐이라면 이 무슨 재미.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좌절도 있는 법. 목탁소리는 잠이 부족한 젊은 학승들에게는 아주 ‘곤혹’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자신을 깨우러 온 엄마를 보며 “1분만 더, 1분만 더”를 간절히 외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떠올려도 무방합니다. 꿀잠의 맛이지요.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따로 잔다.

그래야 잠이 부족한 다른 학승들이 부산함에 깨지 않고

조금이나마 더 잘 수 있으니까. 이는 배려의 미학이다.

보통 도량석 담당은 1주 단위로 돌아간다.”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의 설명입니다.

 

 

 

연꽃처럼...

 

 

 

 

<도량석(道場釋)>은 새벽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 목탁과 염불로 잠든 스님들과 삼라만상을 깨우는 새벽 예불의 서막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3시에 일어나 절집 곳곳을 돌며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욉니다. 이 소리에 스님들이 깨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벽 예불을 준비합니다.

 

 

도량석은 스님들의 알람 자명종인 셈입니다.

 

 

도량석과 새벽 예불 사이는 30 내지 40분의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도량석 담당을 둘러싼 치열한 줄다리기가 전개됩니다. 마치 군대에서 한참 잘 시간에 불침번 서는 걸 꺼리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매 한 가지. 하긴 이게 세상살이 묘미지요.

 

 

“절집 마당만 돌다가 올해부턴 우도를 안았습니다.”

 

 

지난 밤,

덕해 스님과 차를 마시며 새벽예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입니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짊어지셨던 부처님을 따르기 위해 더 안아야 함을 아신 게지요. 어찌 우도뿐이겠습니까!

 

 

 

도량석을 위해 대웅전 앞에선 스님.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덩달아 하늘에선 달과 별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중입니다. 조금 있으면 밝음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릅니다. 스님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뒤를 합장한 채 묵묵히 걸었습니다. 새벽의 상큼함이 스리슬쩍 마중 나왔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찾은 우도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하기보다 과정을 넌지시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만했습니다. 올해는 달랐습니다. 다시 찾은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했습니다. 보는 것(智)과 하는 것(行)의 차이를 이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자연스레 선사한 ‘내공’ 덕분이었습니다.

 

 

“똑똑똑똑~, 마하반야~”

 

 

목탁소리에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새벽 목탁소리는 잠든 나무와 풀벌레 등 만물에게 놀라지 말고 일어날 준비를 하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 점점 커집니다.

 

반대로 저녁 목탁소리는 크게 시작해서 잦아듭니다. 조용히 휴식 취할 준비를 하란 거죠. 그러니까, 목탁소리는 삼라만상에 대한 부처님의 배려의 자비가 숨어 있습니다.

 

 

“시계가 귀하던 과거에는 어떤 스님이

도량석을 하느냐에 따라 예불 시간이 달랐다.

 

잠 없는 스님께서 도량석을 맡으시면

새벽 예불이 일찍 시작되는 관계로 예불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아침 공양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예불 후 바로 아침 공양을 했다.”

 

 

덕해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입니다. 빙그레 웃었습니다. 머리 깎고 출가한 구도자의 세계는 우리네 세상과는 한참 다를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구도자였으나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에 매여야 하고, 공양을 해야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극락’인 것을…. 가르침이었습니다.

 

결혼이 곧 구도자의 길이었으니….

 

 

 

구도의 길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속적인 나그네가 생각하는 새벽예불의 맛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깨달음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수행.

둘째, 만물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정진하는 수양.

셋째, 남들보다 일찍 얼어난 만큼 하루를 더 길고 알차며 값진 시간을 만드는 토양이지 싶습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과 곤히 자는 남들을 깨운다는 것이다.” 

 

 

새벽예불에 대한 덕해 스님의 답입니다. 새벽 예불을 보는 눈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깊이에 차이가 납니다. 그건 “남들을 깨운다!”는 사실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인간에게 사랑받는 건 우리에게 주는 그늘이 푸짐하기 때문이듯….

 

 

언제부터인가,

목탁소리에 스민 울림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목탁을 치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달랐습니다. 어떤 이의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었으나, 어떤 이의 소리는 편안함과 위안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목탁소리에 구도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새벽 예불을 올립니다.

독송마저 감미롭습니다. 땀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혼자 기거하는 절, 게으름을 피울 만하나 늘 한결같습니다. 삶 자체가 곧 구도였으니 당연한 게지요. 여기에서 아내가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새벽 예불 함께 보기를 내세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 언제나 늘 한결 같기를….’

 

 

 

나를 낮추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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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머니래? 우리는 이래 뵈도 ‘흰머리 소녀’

스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흰머리 소녀․소년이라 부르는 이유

 

 

 

 

차 속에는 자연의 이치가 스며 있습니다.

 

차를 즐기시는 스님은...

 

 

 

머리가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찾을 곳이 있으면 좋습니다. 혼자만의  비밀스런 아지트(공간)가 있다면 금상첨화. 찾는 사람이 적고, 조용하며, 공기와 물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다행이 제게도 힐링 처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금강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절집에 기거하는 즐거움은 대략 세 가지. 첫째, 스님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 둘째, 새벽 예불을 드리며 몸과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자신도 모르게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덕해 스님과 차 앞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 말문을 여시기만 하면 어느 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대화의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이유는 진정성과 해박함 및 부드러움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마애삼존불>처럼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시면 깜빡 죽습니다.

 

 

“흰머리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참 재밌어요.”

 

 

이야기 도중,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튀어 나왔습니다. 귀를 의심하면서도 쫑긋했습니다.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호기심이 잔뜩 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찾았지? 참 멋스럽다, 싶었지요. 대충 ‘할머니’로 해석하는 게 맞을 듯했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란 말이 흥미롭네요. 흰머리 소녀는 누굴 말하나요?”
“….”

 

덕해 스님의 웃음은 자애입니다.

 

 

 

스님은 웃으실 뿐 침묵하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안 가르쳐 줘. 궁금해 죽겠지? 알아 맞춰 봐.”

 

라시며 약도 올릴 만합니다. 이마저 없는 걸 보면 선문답을 하자는 건지…. 생각할 시간을 주시려는 건지…. 이미, 본인이 생각하는 흰머리 소녀의 근원으로 들어가신 건지…. 침묵을 깨고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흰머리 소녀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할머니를 말합니다. ‘흰머리’와 ‘소녀’를 합친 합성어지요. 제가 만들었는데 말을 쓰면 쓸수록 맛깔스러워 계속 쓰게 돼요. 중독성이 있지요. 흰머리 소녀란 말 괜찮죠?”

 

 

듣고 보니 ‘할머니’란 단어보다 ‘흰머리 소녀’가 더 운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사람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결국 사라지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긴 자연의 이치를 뉘라서 피할 소냐!

 

 

“흰머리 소녀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몇 년 전, 서울서 지하철을 탔어.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할머니들이 단체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대. 생김새와 옷차림을 보니 부잣집 사모님부터 소시민까지 다양한 계층임에도 거리낌 없이 어울려 수다를 떨더라고.

 

각자 성향과 경제력을 떠나 체면조차 벗어던지고 마냥 즐겁게 떠드는 걸 보니 꼭 초등학교 동창 같더라고. 중ㆍ고등학교 동창들은 체면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떠들지 못하거든. 할머니들이 격의 없이 수다 떠는 게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재잘거림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나이를 상징하는 흰머리에 해맑은 소녀를 갖다 붙인 거야.”

 

 

딱, 손뼉 쳤습니다. 세심한 관찰력도 관찰력이지만 할머니들의 수다에서 싱그러운 소녀들의 재잘거림을 발견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스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대단한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니까 덕해 스님이 '흰머리 소녀'란 단어를 찾아낸 건 구도자로써 인간에게 갖는 사랑이었던 셈입니다. 천상 스님인, 스님의 맑고 고운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비의 마음은 배움이었습니다.

 

 

덕해 스님이 또 다른 수행 삼아 하시는 서예...

 

 

 

뜨겁던 차가 식어갑니다. 달빛은 점점 깊어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는 스님께서 쓰신 붓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솜씨가 있는지, 필체에 힘이 서려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반가울 뿐이었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자비의 배.”

 

 

이 글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르침이었습니다. 만법은 본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경계를 초월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 열반으로 가는 자비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었지요. 인간 삶은 고통의 연속. 이를 이겨내고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수행이 있는 것…. 생각을 접고,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반응? 다 늙어빠진 할머니들에게 소녀라고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어? 좋아 하지. 할아버지들이 은근 시샘하는 거 있지. 그래 할아버지들은 덤으로 ‘흰머리 소년’이라고 불러.”

 

 

흰머리 소녀와 흰머리 소년. 참 듣기 좋습니다. 이렇게 부른지 3년여가 됐다나요. 하여튼 단어에 의미가 붙으니 더욱 빛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줄여 말하는 게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야간 자율학습을 ‘야자’로 부르는 것처럼 축약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하여, 흰머리 소녀를 ‘흰소’로 부르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걱정도 팔자라고요? 하긴, 깨달음의 상징인 ‘소’도 괜찮을 듯싶네요. 단지 말 속에 스며있는 의미를 알면 그만.

 

달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달님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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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도 금강사 제초작업에서 든 생각 한 자락
제초작업의 양면성과 웃음의 의미 및 우리의 보물은

 

 

 

부지런한 처사님이 아침 일찍부터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입니다.

덕해 스님께서 벤 풀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

 

 

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뒤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새벽 예불 후의 은은한 우도 금강사 풍경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그리고 보시하는 처사...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조사뿐다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저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로 풀을 완전 ‘조사뿌네요’. 그렇지요?”

 

 

스님께선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쉬움에 내뱉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사뿐다>는 단어가 왠지 처절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야생에만 존재했던 단어처럼 묘한 맛과 여운이 살아났습니다.

 

 

“저 처사님 얼굴이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스님 어찌 저런 덕행에서 한명회를 떠올린단 말입니까! 너무 의욉니다.”

 

 

반발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는 땀과 제초작업 중 튄 풀이 뒤엉켜 얼굴이 엉망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잘려나가 튄 풀의 파편과 땀을 피의 아우성으로 읽은 겁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조선 세조 때 처절했던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리게 한 거죠.

우리네 역사에 이 뿐이겠어요?

 

 

그렇더라도 스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초작업의 양면성을 같이 봤다는 겁니다.

 

칼날에 쓰러진 풀들의 아우성과 절집을 깨끗이 치우는 처사의 기쁨.

즉, 잡초들의 죽음에 가까운 고뇌(苦惱)와 부처님이 기거하는 절집에 행한 덕행(德行)이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둘째,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린 내공입니다.

 

근본은 아마 <세월호 참사>지 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눈 뻔히 뜨고서도 살리지 못한 중생들의 죄책감.

스님은 이를 ‘이 시대의 무능’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쨌거나 무능한 정부는 살생부를 움켜쥔 허황된 한명회가 된 꼴이지요.

 

 

혼자 계신 스님은 항상 '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절집 같지 않아 좋았습니다.  

대학살에도 살아남은 덕해스님의 씀바귀 밭입니다.

 

 

암튼, 알고 보니 스님께서 안절부절 하신 이유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 글쎄, 본인이 아끼는 야채 쌈 밭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야채 쌈은 부드럽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토끼가 좋아하며 잘 먹는 <씀바귀>였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씀바귀(Ixeris dentata)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입니다.

뿌리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잎의 상처에서 분비되는 흰 수액은 쓴맛이지만 기름 혹은 초간장에 무쳐 먹으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스님께선 쌈으로 드신다니 자연식에 놀라울 뿐입니다.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그러게요. 이게 다 부처님의 가피지요.”

 

 

한담을 나누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을까.

그가 잠시 손을 멈추고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우릴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가 잡초들에겐 한명회였을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씀바귀 밭은 왜 치지 않고 두셨어요?”
“스님이 즐기는 야채 쌈 밭인 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쳐요. 스님 맛있게 드시라고 그냥 뒀어요.”

 

 

씀바귀 밭을 남긴 건 그가 스님을 위해 베푼 최대한의 <자비>였습니다.

누가 스님이고, 누가 처사인지 경계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로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그는 목사와 신도의 경계를 넘어 신계에 존재했다지요?

유씨도 죽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시 한편 읊지요.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시 ‘쓴’ <웃음>입니다.

 

 

국화를 다듬는 덕해스님.

 

 

 

      웃 음
                고 변재환

 

  스님이 칼 갈고
  목사가 약을 판다

 

  목 좋은 자리에서
  매일 굿판 펴

 

  두 분 성인(聖人)
  긴급 회동하시니

 

  부처님 장발하고
  예수님 삭발하셨더라

 

 

웃음을 잃은 현시대에 입장 바꿔 생각하며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발상이 도드라집니다.

또한 일어날 수 없는 두 분 성인의 긴급 회동(여와 야)에도 민생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구도자답게 활동해야 성인의 뜻처럼 현실 속에서 천당과 극락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지 싶네요.

 

 

하여간, 스님께서 씀바귀 밭을 지켜 준 그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제가 금강사에 오기 전까지 절에 한 번도 온 적 없답니다. 우연히 옛 것을 좋아한 제가 밖에서 돼지 여물통을 차에 실어왔다가 절에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갔다가, 뒤에 돼지 여물통을 갔다 주러왔던 인연으로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우도 금강사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들의 2세, 아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온 저녁 공양에 고추와 함께 씀바귀 쌈이 올랐습니다.

속가에서 쌈밥을 즐겼던지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쌈부터 맛보았습니다.

 

씀바귀를 손에 펼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올린 다음 도르르 말아 입에 넣었습니다.

신선한 야채의 향은 쌉스름 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엄청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저녁 공양에 올린 씀바귀 쌈입니다. 맛요?

부처님 왼편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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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돌고도는 역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절 같네요
    쪽바리 제주도도 일본땅이라 할만하네요~
    그래서 땐놈들한테 시민권주면서 파는것인가요
    과거의 어느때로 다시 간 느낌?

    2014.08.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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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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