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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이에게 먹이는 우유는 뭘까요?”
“매일매일 학교라도 잘 다니면 그나마 다행!”

 

 

 

 

 

살~다~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 게 있습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지인의 제안. 별로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몹시 들려주고 싶은 표정이라 묵묵히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지인이 스스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먹이는 우유가 나이에 따라 다른 거 알아?”

 

 

나이에 따라 우유가 변한다?

요거 요거, 확 궁금증이 뻗쳤습니다.

 

듣고 보니, 좀 지난, 덜 따끈따끈한 이야기라는데 아는 사람만 알았지,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의 정보에 따라 아이 삶이 변한다더니 정말 그러나 봅니다.

별 희한한 정보가 다 필요한 세상이나 봅니다.

 

역시 오늘날은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대보다 떠도는 정보에 익숙한 시대이나 싶습니다.

 

다음은 지인이 전한, 부모가 아이에게 권하는 나이별 우유의 변화입니다.

 

 

문 : “갓 태어난 아이에게 먹이는 우유는 뭘까요?”
답 : “글쎄요~, 튼튼 우유?”

 

 

그럴 듯한데 정답은 NO.

이걸로는 기대치가 높은 부모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답니다.

왜냐? 내 아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천재 중의 천재를 바란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답은…

 

 

“아인슈타인.”

 

 

그럴 수 있겠다 싶더군요.

피식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아이만은 특별한 아이라는 부모의 욕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문 : “초등학생 아이에게 어떤 우유를 먹일까?”
답 : “덴마크?”

 

 

조기 유학 열풍인 현 상황에선 그럴 듯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아니라는 실망에 눈높이를 낮췄답니다.

 

 

“서울.”

 

 

이유는 잘 아시겠죠?

 

유학을 제외한 상태에서 그나마 우리나라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에 진학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랍니다. 어쭈구리~, 했습니다.

 

 

문 : “중학생을 둔 부모가 먹이는 우유는?”
답 : “건국?”

 

 

‘NO’였습니다.

참 말들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보다 한 단계 높은 우유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답은 아주 현실적이었습니다.

 

ㅋㅋ~,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연세.”

 

 

여기라도 만족하고 싶은 부모 마음이 잘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꿩 대신 닭이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누군들 부정하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기대치가 남은 탓입니다.

 

 

문 : “중 3들에게 권하는 우유는 뭘까?”
답 : “건국.”

 

 

빙고, 정답이었습니다.

이때는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낮아지는 시기랍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에게 최종 목표는 ‘IN 서울’란 거죠.

 

“맞아, 맞아!” 맞장구쳤습니다.

 

 

문 :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주는 우유는 뭐게?”
답 : “뭘까? 혹시 맛있는 우유?”

 

 

답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유 면역력이 떨어지는 세대라 우유 마시기를 꺼리니까.

 

그랬는데 부모 된 입장에서 계속 우유를 마시게 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자식들 키 크게 하려고.

 

 

 

 

답은 의외였습니다.

 

 

“매일.”

 

 

박수를 딱 쳤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들어보니 일반적 기대치에 거품이 쫙 빠져 저지방 기대치로 변했더군요.

 

이유를 들어보고 완전 수긍했습니다.

 

 

“천재는커녕 평범한 아이라도 좋다. 매일매일 학교라도 잘 다니면 그나마 다행이다.”

 

 

또 어떤 물음이 던져질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었습니다.

 

대학생은 성인이라 자기가 알아서 마신다더군요.

자식 낳은 죄(?)로 아이들 결혼시킨 후에도 손주, 손자 보느라 시달리는 부모에 대한 배려거니 여겼습니다.

 

 

부디 자식 잘 키우시길...

 

 

어쨌거나, 자식 키우다 보면 부모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보람, 긍지, 체념, 원망 등 다양합니다.

그렇더라도 부모 마음은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하지만 삶은 그게 아닌 듯합니다. 왜냐?

 

 

“내 청춘 돌려줘~”

 

 

자신의 삶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별도로 ‘자아 형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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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갑 아직도 갖고 다니는 거야?”
19년 된 지갑에서 보는 삶의 여유

 

 

 

고향에 온 불알친구를 만났다. 눈에 확 띠는 물건이 있었다.

“이 지갑 아직도 갖고 다니는 거야?”

“갖고 다니다 보니 그리 됐어.”

“대체 몇 년 됐어?”
“요거? 미국 유학가기 전 받은 선물이니까 19년 됐네.”

오랜 세월 함께하다 보니 분신 같다고 했다. 19년이란 세월만큼이나 낡고 빛바래 있었다.

하지만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돈과 신분증, 카드 등을 넣고 다니는 지갑. 삶과 함께한 물건이기도 했다.

“바꿀 생각 없어?”

“그런 생각 안 해봤네.”

“내가 선물 받은 지갑 하나 줄까?”
“있으면 줘.”

“지갑 주면 바꿀 거야?”
“그때 생각해보지 뭐.”

친구에게 지갑 줄 생각을 한 건, 바꾸라기보다 경우에 맞게 수시로 교체하며 갖고 다니라는 의미였다. 그래야 더욱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용물이 많아 뚱뚱했다.

 

친구 부부와 다시 만났다. 만나기 전, 선물 받았던 지갑 하나를 챙겼다.
지갑만 챙기기엔 뭔가 허전했다. 지갑 선물할 때 만원이나 천원 권 신권 지폐를 넣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면 돈이 많이 들어온다.”

이 말을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지폐를 찾았다. 신권이 없었다. 대신 기념으로 갖고 있던 1달러 지폐를 넣었다.

지갑 선물할 때 지폐 등을 넣어서 주는 이유에 하나의 바람을 더 얹었다.
사랑까지 켜켜이 쌓이길….

헤어지면서 지갑을 건넸다. 친구보다 그의 아내가 더 반겼다.

“남편 지갑 정말 오래됐는데….”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아쉬움 속에는 19년 된 지갑과 함께한 세월까지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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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잠시 귀국해.”
“연말이면 올 텐데 참지. 뭐 하러, 비싼 비행기 값 들여.”

“아이도 보고 싶고, 또 사정이 생겼어.”
“그래? 그럼 와서 보자.”

미국에 교환교수로 간 벗이 잠시 귀국했습니다.
고향에 온 친구와 정어리 조림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늦게 낳은 아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늦둥이가 그러잖아.”

“헌데, 무슨 사정으로 귀국한 거야?”
“내가 말 안했나? 막내 동생이 5월에 위암 4기라 잘라내는 수술을 했거든.”

 

헉, 주위에 암 투병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먹을거리에 해답이 있다던데, 먹을거리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 아픈 동생 먹이려고 미국서 산삼 캐 귀국했구나.”
“귀신이네. 미국서 1박 2일 동안 죽어라 산삼 캐 왔어.”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건너가 10여 년 간 유학했던 친구가 박사와 함께 산삼 캐는 심마니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그간 캔 산삼만 수백 뿌리에 달한답니다.
산삼이 자란 기간도 십 수 년에서 백여 년까지 다양했다더군요.

 

산삼은 주로 산의 북향 쪽 3부에서 7부 사이에 있다대요.
처음 산삼 캘 때, 산삼을 밟고 있으면서도 그게 산삼인 줄 몰랐다나요.
산삼은 눈이 터야 캘 수 있대요. 미국산 산삼 효능은 우리나라 것의 70% 정도라네요.

캐던 뿌리에 흠이 생긴 60여년 된 산삼을 아내가 먹었는데 꼬박 하루를 잠이 들었다대요. 그 후 잔병치레를 안한대요, 글쎄!

그러면서 핸드폰에 저장된 산삼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놀라운 건 처음 보는 산삼 꽃이었습니다.
줄기가 나누지는 정 중앙에 꽃을 피우는데 청초하니 예쁘더군요.
그래서 산삼은 대개 몇 뿌리씩 같이 자라나 보더군요. 심마니가 된 친구가 부럽대요.

이야기가 샜군요.
이런 경험이 있는 친구가 동생 낫게 할 산삼을 갖고 귀국한 것입니다.
집에서 쪄서 즙 형태로 만들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먹이는 중이랍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유학 간 친구가 산삼 캐는 심마니가 된 이유는 동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동생을 살리기 위한 운명(?) 같은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여하튼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보다 병을 이기려는 의지입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할 경우 병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생이 암을 훌륭히 이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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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끈 놓지 않으려는 가슴저린 절규
아내 향한 남편의 마지막 사랑 메시지

 

 

한 평생 부부로 살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없을 때 오는 허전함을 그 어디에 비할까?

“각시가 배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어.”

지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퇴원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지인의 아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지난 주 서울로 옮겨야 했다.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절친했던 터라 더 바짝 긴장했다.

사실, 지인 아내는 몇 해 전 이미 한 차례 삶의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
지인은 마지막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여행에 나서기도 했었다.

게다가 KAIST 대학원 졸업 후 유학 가겠다는 딸에게,

“어렵게 공부하기보다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이다”

며 유학을 만류했을 정도였다. 행복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지인 아내는 전문의 진찰 후 입원과 MRI를 찍은 후 CT를 예약한 상태였다.
이때 잠시 집에 내려 온 지인은 건강이 좋은 편이라 아무 일 없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길 청했다.


CT 검사 결과는 그제 나왔다. 연락이 없었다. 결과가 어떠한지 문자를 넣었다. 묵묵부답.
그러다 어제 아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삼성병원 결과 바람직하지 않아 서울대병원 진료 5월23일 오전 예약했음.”

 

최악의 상황을 뺀, 조심스런 문자 메시지였다. 지인과 통화했다.

“형수님은 좀 어떠세요?”
“지금 주사 맞고 있어. 여기선 수술이 어렵다네. 그래서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진찰 다시 한 번 받으려고. 우리 각시 꼭 살려야지. 아내에게 빚진 거 다 갚아야 하는데….”

전화 속, 지인 목소리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통화 후 지인에게서 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완주의 ○○한의원 자세히 조사해 주게. 항암치료와 병행했음 하네.”

 

기대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남편의 애절한 절규였다.
부부로 살며 아내에게 못 한 부분을 기어이 하고 말겠다는,
결의에 찬 한 남자의 마지막 사랑의 메시지로 읽혔다.

아이들에게 이런 사정 말했더니,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할게요.”라며 “아빠가 힘이 되어 주세요!”라고 한다.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 평소 부부 간 잘하고 사는 게 최선일 터~.

삶이 힘들지라도 희망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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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8:14

“내 아버지 문제는 자식을 이끌려고만 하는 것”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지인 아들과 나눈 ‘아버지’

부모 자식 간은 하늘이 내린 관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천륜도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은 어머니와 딸과는 달리 서먹서먹한 사이가 의외로 많더군요. 하여, 그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더군요. 마침, 한 부자지간을 만났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지인과 호주 유학 중 3년 만에 잠시 귀국한 스물여덟 살 지인 아들이었습니다. 이들 부자지간이 썩 매끄러운 관계가 아닌 터여서 떨어져 있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에게 부자상봉 소감을 물었더니 “도둑이 들어와도 아버지(아들)이 있어 든든하다.”란 말을 하더군요. 역시 부전자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인 아들과 자식이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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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부자.

“내가 원하는 아버지는 친구처럼 마음 여는 아버지”

- 외국 생활은 할만 했는가?
“호주에 갔던 초기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군대 마치고, 대학도 갓 졸업했으니 얼마나 혈기왕성했겠는가. 그런데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자랄 때 아버지와 사이는 어땠는가?
“뭔지 모를 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보수적이어서 많이 다퉜다. 이야기를 하면 ‘그래그래’하며 들어주는 척, 하는 척하며 나를 이끌려고만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를 하면 NO라는 말은 안하시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NO란 소리였다. 그게 하나의 벽이었다.”

- 어떤 아버지를 원했는가?
“대학 때 존경하는 교수님이 ‘세 살이든 육십이든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며 어떤 사람과도 친구가 되어라’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와 친구 되기란 쉽지 않았다. 아버지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걸 어떻게 바꾸겠나. 내가 원하는 아버지는 자식을 생각대로 이끄는 것보다 친구처럼 마음 먼저 여는 아버지였다.

-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힘들었는가?
“사랑은 컸지만 너무 보수적이셨다. 우리 집은 술과 담배는 물론 만화책, 오락 등까지 죄악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갖다 주는 딱딱한 책만 읽어야 했다. 또 아버지는 100점 아니면 칭찬을 안 하셨다. 한 문제를 틀려도 꾸중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칭찬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나? 싶다.”

-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꽤 있을 법한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는가?
“아버지에게 혼난 후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이 나왔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다.” 

“부모의 문제는 사랑과 관심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

-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소감은 어떤가?
“뒤에 버팀목이 있는 것 같아 든든하고 반갑다. 그동안 아버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60이 다 된 아버지가 더 늙은 것 같아 안쓰럽다.”

- 아버지가 변한 건 무엇인가?
“아버지 기대치가 높았다. 나는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아들이 아니었다. 3년 만에 보니 아버지가 자식의 징징대는 생각을 바랐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사람으로 당당히 크길 바랐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원하는 아버지 상에 갖혀 있어 그렇지 않았나 싶다.”

- 우리나라 부모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문제는 사랑과 관심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식 과외 시키고 진로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사랑으로 여기는 경향이다. 하지만 그건 어긋난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관심이어야 한다. 자기가 낳은 자식, 즉 내 새끼가 아니라 한 생명과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소린가?
“아버지를 이해한다기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후회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뭘 자꾸 해달라고 요구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란 생각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아버지를 변화시키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천성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 아버지와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입장이란 의미다.”

-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은데 그런가?
“호주로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도 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지금은 변했다. 아버지도 그동안 안 하시던 일을 열심히 하시는 게 존경스럽다. 새로운 인생을 찾은 것 같다. 나도 호주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 이게 서로를 대하는 변화의 물꼬이지 싶다.”

부러웠다. 지인은 “아들이 많이 컸다”“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뚜렷한 게 흐뭇하다”고 했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인 내가 원하는 바도 바로 이점이다.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함을 절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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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 집에 같이 가요.”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사는 정 아니겠어!”

“밤늦게 사람 데려 오면 어떡해!”

신혼 초, 이런 소리를 들었었다. 아내는 횟수가 거듭되자 앙칼진 볼멘소리 내길 포기했다. 대신 부드러워졌었다.

“여보, 술 취해 밤늦게 사람 데려 오려면 미리 전화 좀 해요.”

그러자 내 태도도 달라졌다. 횟수도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화까지 미리 넣었다. 아내는 이를 무척이나 반겼었다. 그 후 사람 데려 오는 횟수도 뜸해졌다.

아무래도 밤늦게 손님 데려오는 시기가 있나보다. 그러다 최근 소설가인 지인과 어울리다 집에 데려 온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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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 집에 같이 가요.”

“형님, 우리 집에 갑시다.”
“아냐. 집에 가야지.”

“형님은 누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 집에 같이 가요. 집에 아내도 없거든요.”
“그래? 그럼 가지 뭐.”

지인을 꼬드겨 자정이 넘어 집에 당도하니 아내는 무방비 상태였다. 잠옷인 채로 소파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잠에 빠져 있었다.

“어이, 빨리 일어나 방에 들어가 자.”

아내가 들어간 후 주섬주섬 술과 안주를 챙겼다. 말을 아끼며 쭈뼛쭈뼛하던 지인, “각시 없다고 했잖아.”라고 속삭였다. 짧게 술자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인이 보이질 않았다. 잠을 잔 흔적조차 없었다.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사는 정 아니겠어!”

지난 주 금요일, 대학교수인 지인과 부어라 마셔라 술을 퍼마셨다. 그러면서 그도 집에 사람 데려가는지를 물었다.

“신혼 초,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뻔질나게 사람 데리고 갔지.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해 죽겠어. 인과응보인가 봐. 아내가 천식이라 지금 열심히 병 수발 하잖아.”

헉, 사람 집에 들이는 게 인과응보라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사람 데려가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진 것 같아. 자신을 보여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사람 사는 정 아니겠어. 나는 유학 중이라 일본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이게 최고였지.”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다를까. 이날 3차까지 거친 터라 거나하게 취했었다. 잠결에 눈을 뜨니 지인 집이었다. 후다닥 새벽바람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건 먼저 번 지인이 내 집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이유이기도 했다. 아침에 지인 아내와 마주치는 껄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피하고 싶은 거였다.

‘남자는 나이 먹어도 아이’라더니 그런 걸까? 지인 말처럼 늙어 인과응보 당하지 않으려면 철 좀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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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있을 땐 눈빛만 봐도 뭘 바란지 알아
허전함과 불편함은 그저 생활에 익숙해진 탓


부모는 아이가 커가면서 독립시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없으니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자녀는 이런 존재인가 보다.

“저희도 방학이니 휴가 좀 주세요.”

나 원 참, 봄 방학에 마음껏 놀게 휴가를 달라던 초등학생 아이들. 아이들은 이모 집으로 5일간의 휴가를 떠났다. 그러던 차, 지인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입원했다는 전갈이다. 문병을 갔다.

“아이들 잘 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이들이 없으니 허전해요”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자 훈수가 이어졌다.

“아이들이 없다가 있으니 하나하나 말을 해야 하고 더 불편하다.”

아이들의 부재로 허전한 내 경우와 반대였다. 지인 딸은 외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돌아왔고, 아들은 아직 유학 중이다. 어찌됐건 아이가 있어 불편한 사정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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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밖에 없다던 지인은 해로하려면 건강해야 한단다.


전화 없는 아이에게 서운, 이게 부모 심정?

“부부끼리 있을 땐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데 딸은 설명을 해야 안다.”

문제는 소통이었다. 자녀가 없을 때 부부가 더욱 친밀해지고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자녀가 있으니 내심 불편하단 소리였다. 그들은 부부만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싶었다. 그러면서 부부를 강조했다.

“아이들이 크면 부모 품을 떠나는 게 세상 이치다. 죽으나 사나 부부밖에 없다.”

부부는 이런 관계나 보다. 지인의 말처럼 아이들이 없으니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묘하게 밖에 나가서도 혼자 외롭게 있을 걸 생각하니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그리고 되도록 같이 이야기를 섞는다.

아이들이 없으니 집이 조용하다. 강아지도 놀아줄 이가 없으니 잠만 씩씩 잔다. 그러면서 강아지는 아이들이 들어 올 문을 바라본다. 그런 강아지가 위로가 된다.

어쨌거나 휴가 중인 아이들은 전화 한통 없다. 그게 서운하다. 부모님 심정도 이랬을까. 이렇게 철이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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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 죽으나 사나 부부밖에 없어요 ^^
    이제서 인사드립니다.^^

    2010.03.02 14:09 신고
  2. Favicon of https://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으나 사나 ;;;; 솔로 ㅜㅜ

    2010.03.02 16:28 신고

딸기밭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부부
김경호 역,『언론과 진실-이상한 동거』

어제 오후, 소포를 받았습니다.

‘소포가 반가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내용물을 보기 전, 곰삭았던 추억을 먼저 끄집어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깨복쟁이 친구네 동네에는 토마토, 살구 등 먹을 게 지천이었습니다. 유실수가 많았던 탓이었습니다.

하교 후, 그 동네에 가면 벗들이 따 주던 과일을 먹으며 부럽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 동네 앞에는 저수지와 바닷가가 연접해 물장구치며 해산물을 마음껏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재개발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십 수 년 전, 깨복쟁이 친구는 조용히, 조심스레 말하였습니다.

“나 유학가려고….”
“다 결정했네? 잘했다.(어떻게 그런 결정을… 어디로 가려고…. 비용은…)”

누가 방향타를 외국으로 돌리게 했을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삼켰습니다. 녀석에겐 중대 결정이었습니다. 망망대해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그를 축복하였습니다.

미국 딸기밭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벗’

그는 유학 중 한 차례 귀국하였습니다. 결혼을 위한 귀국이었습니다. 결혼식과 함께 그는 또 훌쩍 떠났습니다. 유학과 결혼생활에 대해 벗의 아내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듣고 홀렸지요. 그 홀림 때문에 죽도록 고생해야 했지요. 부부가 새벽에 일어나 미국의 드넓은 농장에서 딸기 따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까요….”

고생이 충분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 십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많은 노력에도 허사였습니다. 대신 강아지 한 마리가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그 강아지 이름을 붙여 “두라 삼촌”이라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왜 ‘두라’라 불러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응 백두의 ‘두’와 한라의 ‘라’를 따 ‘두라’라 불러.”


임신과 또 다른 임신,『언론과 진실 - 이상한 동거』

지난 여름, 벗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말은 안부전화였습니다.

“… 아내가 임신했어. 고생고생 했는데 이제야 아이를 주시네.… 그런데 쌍둥이야!”

뒤늦게 아빠가 된다는 자랑스러움이 흠뻑 묻어 있었습니다. “임신하면… 잘해주어야 한다.”고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벗은 이 임신 말고 또 다른 임신을 하던 중 있었습니다. 소포는 벗이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임신이었던 것입니다.

추억 나들이를 접고, 그가 만든 임신의 내용물을 확인하였습니다. 녀석은 이런 동거(?)로 임신을 시켰나 봅니다.

김경호 옮김『언론과 진실 - 이상한 동거』

오늘부터 읽을 참입니다. 찬찬히 읽을 참입니다. 벗은 많은 번역물 중 왜 이것을 택해 역자로 나섰는지, 그의 또 다른 임신을 알아볼 참입니다. “고맙게 잘 받았다” 전화했더니 “야. 네가 소개 좀 해라!” 합니다.(소개해도 괜찮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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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역할이 ‘가치’여야 할 이유?
[아버지의 자화상 18] 해외연수 & 유학

“아버지? 존경하고 좋아했지. 우리 클 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했잖아.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그게 아니여. 가족끼리 어디 가자면 컸다고 ‘약속 있어요’ 하고 빠지기 일쑤지. 이럴 땐 그래라 해야지 어쩌겠어. 안 그래?”

자녀들이 크다보니 마음먹고 가족끼리 여행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입니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이랬는데….” 해도 소용없습니다. 시대 흐름이겠지요. 아무리 ‘구시대 아버지가 아니다’ 해봐야 시대가 변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들 해외연수와 유학을 고려 안할 수 없고…”

박상열. 3남매를 둔 그도 어렵게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도서관도 가고, 나들이와 여행 및 산행도 곧잘 합니다. 왜? 아버지로서 해야 하니까. 그의 하소연입니다.

“예전에는 애를 낳기만 하면 절로 큰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열심히 돈 벌어야지, 같이 놀아야지, 신경 써야지, 할 일이 너무 많다. 예전 같으면 형제끼리 저리 부대끼며 살았는데. 지금은 아이들 해외연수와 유학을 고려 안할 수도 없고, 힘들다.”

맞는 말입니다. 형제가 많다보니 문제 해결도 형제끼리 알아서 처리했는데 지금은 아이를 적게 낳는 형편이니 부모의 간섭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위에서 앞 다퉈 해외연수에 유학까지 보내니 이도 무심코 넘길 수만 없는 일이지요.

박상열 씨도 아이가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큰 딸을 한 달 가량 유럽 여행을 보낸 적이 있다 합니다. 그런 후, 넓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딸을 보고 흐뭇했다 합니다. 레이첼 카슨의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배움을 실천한 것이겠지요.

‘맹모삼천지교’에 대한 해석의 변화

이쯤 되면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맹자는 어려서 살던 묘지 근처에서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래 시장 근처로 이사 했더니 물건 파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래 글방(학교)이 있는 곳으로 옮겼더니 공부하는 시늉을 내더라.”

이 맹모삼천도 요즘에는 그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과외와 학군 열풍에 휩싸인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합니다.

“국내에서 학원과 과외로 아이 찐 빼지 말고 일찌감치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제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아버지와 자녀 관계가 그립네요.

또 다른 사람은 장의사ㆍ시장ㆍ학교로 이사를 다닌 이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합니다. 그 해석도 한 번 들어보시지요.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맹자에게 제일 먼저 인생의 죽음을 가르쳤다. 그 다음 시장에서 삶의 현장을 체험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삶과 죽음을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귀가 솔깃할 만치 재미있는 해석입니다. 아마, 무릇 교육은 아이의 그릇이 되는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하여, 저는 맹모삼천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삼사이행(三思而行)’ -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물론 저도 자녀 교육에 있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해외연수나 유학이 무분별하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자식의 그릇과 교육에 대한 부모의 생각’ 이런 의미라면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겠지요.

결국 부모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자녀 교육을 하느냐에 달린 거겠죠. 아버지의 역할이 바로 ‘가치’여야 할 이유,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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