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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건, 돈이 아닌 ‘철학’

사람을 철들게 한 ‘흥국사’ 여행, 그리고 깨우침
자연에서 얻은 지혜 ‘고집멸도(苦集滅道)’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설화와 삶의 성숙
생로병사 뿐 아니라,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

 

 

 

그늘을 만들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살아보니 이제야 ‘아픔’ ‘성숙’의 상관관계를 알 것 같습니다. 삶은 찰떡궁합처럼 따라다니는 두 단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성공과 실패 혹은 불행과 행복처럼. 아픔은 성숙을 밑바탕에 깔고 오는 거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움 자체입니다. 이로 보면 삶은 깨우침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나무에 상처가 남았습니다, 왜?

 

 

여수 흥국사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이란...

 

 

 

“인생이 이렇게 꼬이다니….”

 

 

요즘, 한 숨 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만큼 살기 팍팍하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한탄은 대부분 경제 및 정치적 상황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도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여,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학(哲學)’이 동원됩니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자는 게지요.

 

 

불교에서는 삶의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찾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苦), 번뇌의 집합체(集)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통과 번뇌를 딛고 일어설 해탈이 필요하며(滅), 깨닫기 위한 실천 수행이 요구된다(道)는 거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깨달음은...

 

 

흥국사 가람 배치가 한 눈에...

 

 

꽃과 어울린 흥국사 

 

연등에도 설화가 스며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를 찾기 위한 선문답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곳은 여수 ‘흥국사(興國寺)’였습니다. 흥국사는 1196년(고려 명종 26년)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창건하셨습니다. 흥국사는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흥국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의승수군’의 본거지입니다. 오래된 절집인 만큼 흥국사에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보물만 해도 대웅전(보물 제396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홍교(보물 제563호),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제1862호) 등 10여점에 달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또한 인상적입니다.

 

 

 

흥국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득도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흥국사 대웅전 안에도 보물이 수두룩. 깨달음...

 

 

 

 

 

이 자체가 보물입니다..

 

 

 

흥국사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연등(燃燈)이 걸렸습니다. 명선스님께선 연등에 대해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으로,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불을 밝히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다음은 연등에 관한 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연등에 깃든 설화는 공덕...

 

 

“부처님 생전에 가난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처님께 등불공양을 올리고 싶었으나 가진 게 없었다. 여인은 하루 종일 구걸하여 얻은 동전 두 냥으로 등과 기름을 사, 부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작은 등불을 밝히고 간절히 기원했다.

 

 

‘부처님, 저에게는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옵니다.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세찬 바람에 왕과 귀족 등 다른 사람들이 밝힌 등은 하나 둘씩 꺼졌다. 그러나 여인의 등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난은 깊은 밤 이 등불을 끄려했다. 하지만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인해 앞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가난한 한 여인의 마음을 훤히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지극 정성이면 못할 게 없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 어려움과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삶을 성숙으로 이끌 것입니다.

 

 

 

 

상처, 스스로 이겼습니다.

 

 

아픔이 이렇게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픔 중에도 꽃 피웠습니다.

 

 

 

“저, 나무 좀 봐요!”

 

 

나름, 나무 박사인 아내. 흥국사 입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콕 집어 가리킵니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만 중생의 눈에는 보통 나무와 별 차이 없습니다. 다름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 나무를 지목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내, 나무를 보며 말합니다.

 

 

“저기 나무줄기에 볼록 튀어 나온 부분 있잖아? 저건 나무가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거야. 상처는 저렇게 흔적으로 남아요.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자란 게 대단하지요. 그러나 생명은 무엇이든 무심코 라도 건들이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최선이지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습니다. 생명의 신비...

 

 

 

아내는 자연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보았습니다. 굳이 스님에게 설법 청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배움이자 깨우침이었습니다. 이게 선문답 여행의 묘미지요. 어쨌거나, 상처가 아픈 흔적으로 남았다니, 충격입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가 작길 바랄 뿐입니다.

 

 

“저기 봐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잖아. 아픈 만큼 성숙한 거죠. 싹이 나고 자라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뿐 아니라, 저렇게 끈질긴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지요.”

 

 

아내, 자연의 진리를 깨우친 걸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런 여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아내와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욕심이라면, 받은 상처 모두 다 용서하시길.

 

여행은 사람을 철들게 합니다.

 

 

 

생명이 함께 상생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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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추억의 7080 광주충장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거북선과 ‘약무호남 시무국가’ 외치는 수군 눈길
5ㆍ18 진원지 구 전남도청 역사 현장교육에 유용

 

 

 

  

 

 

 

 

 

“저것 좀 봐. 한때 놀던 언니 오빠들이네!”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퍼레이드를 보던 한 시민의 얼굴에는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지난 9일(화)부터 오는 14일(일)까지 광주 충장로, 금남로 등지에서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광주 충장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하였습니다.

 

여수 쌍봉동과 광주 동구 산수 1동 간 맺은 자매도시 인연으로 초청되어 여수 진남제가 자랑하는 좌수영길놀이 가장물인 거북선을 이끌고 가게 된 것입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인 셈입니다.

 

여수에서 9시에 출발해 광주 충장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습니다. 고속도로로 가면 1시간 30분여 거리를 장장 5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거북선의 규모가 커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가 어려워 국도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국도 주변은 참으로 여유로웠습니다.

 

평상시라면 쌩쌩거리며 달리는 차의 속도감으로 인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날은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농부의 정원인 논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또 부지런한 농부의 정원은 추수가 끝난 상태였고, 일부는 추수 중이었습니다.

 

시골 집 마당 등에는 감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을 재촉하는 주암호 풍경도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세월의 흐름 중에 놓쳤던 풍경들이었습니다. 이는 가을이 주는 여유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거북선과 ‘약무호남 시무국가’ 외치는 수군 눈길

 

오후 2시. 광주 충장로 퍼레이드 행사장에 도착했더니, ‘추억의 7080 축제’의 주제답게 참새와 허수아비 등의 가장물이 벌써 늘어 서 있었습니다. 도로 주변에는 노란 등이 충장축제를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축제 퍼레이드를 관람하기 위한 구경꾼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3시가 되자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관악대, 공군의장대, 조선대 ROTC, 연심이 놀이마당 등에 이어 여수시 거북선과 전라좌수영군도 거리 행진에 나섰습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자랑스러운 호남을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수군에게 박수가 터졌습니다.

 

이에 호응하듯 거북선 등 뒤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거북선 용머리에선 연막과 불꽃이 터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에 맞춰 거북선을 따르는 수군들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를 외치며 임진왜란의 함성을 재현했습니다.

 

세상은 폼 나는 모습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앞에서 폼이 나는 이치입니다. 여수 쌍봉동주민자치센터 직원들은 안간힘을 써가며 무동력 가장물 거북선을 뒤에서 밀었습니다. 땀 흘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5ㆍ18 진원지 구 전남도청 역사 현장교육 유용할 듯

 

퍼레이드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한 지역은 여수를 비롯해, 장흥, 대구광역시, 보성, 곡성, 진도 등 다양했고, 광주광역시의 각 동까지 나서 흥미를 돋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특색을 뽐내며 관광객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장흥군은 용산면 소등섬 풍물패를 동원해 얼씨구 절씨구를 표현했습니다. 광주시 북구 사회복지관에서는 한 때 놀았다는 언니 오빠들이 교복을 입고 나섰습니다. 학운동은 무등산 옛길 행차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구광역시는 날뫼북춤으로 한바탕 흥을 돋았습니다. 광주의 명동이라는 동명동은 다문화가정을 출연시켜 아시아의 꽃을 표현했습니다. 계림 2동은 닭 분장으로 눈을 현혹시켰습니다. 보성은 녹차 수도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곡성은 심청 캐릭터를 앞세웠습니다.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퍼레이드는 이렇게 신명나는 한 판 어울림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5ㆍ18의 진원지 구 전남도청에도 들러 과거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역사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도 역사의 소중함을 새기는 현장 교육으로 유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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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요즘은 전국이 축제분위기입니다..
    광주의 충장축제도 좋군요
    곧..김치축제도 열리던데.....
    건강하시지요?

    2012.10.17 07:55 신고

“가장행렬을 본다면 저 옷 내가 정리했는데…”
제46회 여수거북선축제 준비, 단비 같은 자원봉사

 

여수거북선축제의 하이라이트 통제영길놀이입니다.

 

삶을 보람 있고 윤택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봉사일 것입니다. 이색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면 지역 향토축제 준비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수의 사)진남제전보존회에서는 매년 5월3일부터 6일까지 진남제 행사를 엽니다. 그러던 것이 3려 통합 후 여수시의 진남제와 여천시의 거북선축제가 합쳐져 여수거북선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6회째니 역사가 깊습니다.

여수거북선축제는 호국문화선양, 향토의식 앙양, 향토예술 계발을 3대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매년 1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성황인 까닭에 축제 준비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약무호남 시무국가”로 지칭되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에 따라 우리나라를 지켰던 전라좌수영의 호국문화를 재현하고 자주정신을 함양하는 구국의 성지에서 열리는 축제라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축제 준비에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자원봉사에는 남녀 구분이 없지요.

 

그런데 아직 프로그램과 예산이 확정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축제를 매끄럽게 운영해야 하니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손 또한 부족합니다. 이런 마음을 알았던지 마침 청설다례문화원 정성자 원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일손 필요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지요. 옳거니, 냅다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수거북선축제의 주 행사인 통제영길놀이 때 쓸 수군복과 평민복 등 옷 정리를 부탁했습니다. 어제 오전 청설다례문화원 사람들이 찾아왔더군요.

처음에는 낯선 일이라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바지와 저고리에 행건, 쾌자 등을 하나로 묶어 가장행렬에 참여 할 이들에게 나눠 줄 옷을 정리하는 일이 손에 익자 손놀림이 빠르더군요. 역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여수거북선축제의 통제영길놀이

정리된 수군복 등은 박스에 보관되어 참여단체에 전달됩니다.

자원봉사자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납니다.

 

심귀자 씨는 일하는 도중 웃으며 “얼마나 열심히 봉사했는지 팔이 안 구부러지고, 허리도 아프다”며 너스레입니다.

강남희 씨는 “가장행렬을 본다면 저 옷 내가 정리 했는데 라고 할 것 같다”“허리띠가 없을 때, 어 저 옷은 왜 허리띠가 없지? 하고 관심이 갈 것 같다”고 합니다.

특히 김정숙 씨는 “옷 정리 봉사를 하다 보니 왠지 통제영길놀이가 더 궁금하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다”고 합니다.

또 초등학교 때 진남제 가장행렬에 한복을 입고 참여했다는 서희경 씨는 “옛 추억이 떠오른다”“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니까 좋고, 그동안 해보지 못한 문화 봉사라 더욱 기분 좋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정성자 원장은 “축제가 끝나면 입은 옷들을 잘 수거해 깨끗이 세탁 정리하여 옷 보관을 잘해야겠다”는 요청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지역 문화축제는 준비에서 마지막 정리까지 축제 관계자 소수만이 할 일이 아니라 온 지역민과 함께 소통함이 옳을 것입니다.

 

여수거북선축제의 통제영길놀이 중 소동줄놀이입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여수거북선축제의 하이라이트는 3일 저녁 6시30분부터 9시까지 가장행렬이 펼쳐질 통제영길놀이입니다.

통제영길놀이는 도로를 막은 가운데 영거, 병기창, 판옥선, 고자기, 진해루 군사회의, 수군 행렬, 현등 행렬, 거북선, 판옥선, 옥수레, 충무공의 효, 의승수군, 소동패놀이, 거문도뱃노래, 용줄 행렬 등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제46회 여수거북선축제에 많은 참여와 관람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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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도의 그윽한 아름다움
여행길에서 대하는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승당 내의 충무사 가는 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작가 이제하의 소설입니다. 이 제목이 좋더군요. 홀로 떠난 여행자의 외로움을 아름답게 표현한 느낌이 들어서지요. 또 묘한 영상미까지 전해지는 듯해서요.

이렇게 홀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마산, 거제를 거쳐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갔지요.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등 가고 싶은 섬들이 늘어섰더군요.

경남 통영 한산도.

한산도까지는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철부선으로 20여분 걸립니다.

철부선에서 본 통영.

한산도 가던 길에 만난 거북 등대.

한산도 제승당 가는 길.


제승당 입구.

어딜 가야 할까? 시인 이용한 씨가 책 <물고기 여인숙>에서 권했던 곳은 ‘사량도’가 끌렸습니다. 김천령 님에게 전화했습니다. 받지 않더군요.

시간 상 배를 타고 한산도로 향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놈을 쳐부수며 “한산도 달 밝은 밤에~”를 읊조렸던 기억 때문입니다. 객선에 올라 한산도로 가던 중, 김천령 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예쁘기로는 꽃이 핀 ‘화도’다더군요. 에고, 에고~.

 한산도 선착장.


 제승당 주위에는 멋진 소나무가 즐비했습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도의 그윽한 아름다움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철부선으로 20분 만에 도착한 한산도. 섬이 커 걸어서 전체를 둘러보기엔 무리라더군요.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남짓 걸리더군요.

참고로, 한산도는 저탄소 녹색성장 탐방 프로그램이 마련돼 자전거 일주가 가능한 곳입니다. 또 망산 탐방로는 3시간여가 걸립니다.

해안에는 통영 특산물로 유명한 ‘굴’ 양식장이 즐비하더군요. 해안선도 예쁘더군요. 다도해 명성에 걸맞게 점점이 섬과 풍경은 그윽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역시, 한려해상국립공원다웠습니다.

한산도 굴 양식장.

 제승당.


제승당 가는 길.

여행길에서 대하는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

통영 한산도 인근 바다는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무찔렀던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한산대첩은 1592년 7월8일과 10일에 충무공이 이끌던 조선 수군과 왜장 와키자카 수군을 크게 무찔렀던 자리지요.

충무공은 학익진을 펴 거북선과 총통으로 왜선 47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북진하던 왜군의 보급로가 거의 차단되어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충청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지요.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사당 충무사.

 충무공 영정.

제승당에서 본 해안 풍경.

제승당으로 향했습니다. 제승당은 총 1,491일 분량의 난중일기 중 1,029일의 일기가 여기에서 쓰여 졌고,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던 충무공의 얼이 남아있는 곳이지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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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이순신과 민초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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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의 대승이 빛나는 울돌목 일대를 가로지른 진도대교.

진도하면 떠오르는 진도대교. 이곳은 임진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녹아 있다. 바로 명량대첩이 그것.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후 13척의 배로 일본군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해전사에 기리 빛나는 곳이다.

전라우수영의 본거지 해남 문내면 학동과 진도군 녹진 사이의 명량해협(울돌목)은 지리여건상 매우 바른 급류가 흘러 평균 11.5노트(시속 약 24km)의 물살이 흐르고 있다. 울돌목은 급류가 흐르면서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울돌목 일대의 명량대첩지에 세워진 쌍둥이 다리 진도대교의 풍경을 보며 이순신 장군과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던 민초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의 한 의미일 터. 다음은 진도대교 일대 풍경이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지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라우수영이었던 해남에서 본 진도대교.

이순신 장군과 민초들의 구국의 일념이 살아 있는 진도대교.

물이 거세 울돌목이라고 한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괴뇌어린 시선으로 명량해협을 바라보는 이순신 장군 동상.
 
거북선을 타고 본 진도대교.

배 만드는 광경이 조각되어 있다.

 진도대교 풍경.

 명량해협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공연장이 준비 중이다.
이는 10월 8일~10일까지 있을 명량대첩축제의 주 무대 중 하나이다.

 전남도에서 만든 거북선 유람선.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서린 진도대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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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젊은이에게 전하는 충무공 교훈
불평불만 보다는 매사에 감사하고 살 일

진도대교와 명량대첩의 울돌목.


취업을 위해 씨름 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죽어라고 공부해도 직업을 찾지 못해 자책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방황하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좌절하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번쩍이는 교훈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도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옆 ‘이순신 십경도’에는 생각하게 하는 뭔가가 있더군요. 이순신 장군의 십경도에 씌인 글귀를 보며 잠시 자신을 다잡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하였다.

3.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4.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5.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죽음을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위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6. “윗사람의 지시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7.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였다.

8. “위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빼앗긴 채 옥살이를 하였다.

9.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尙有十二 微臣不死(상유십이 미신불사)”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곧바로 나라가 없어졌을 것이다. 아직 배가 12척이나 있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10. “죽음을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불평불만 보다는 매사에 감사하고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할 듯합니다.

울돌목의 이순신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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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junke1008.tistory.com BlogIcon mami5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이네요..
    요즘 사람들에게 해주고싶은 아주 좋은 교훈입니다..

    모든 악조건은 다 갖고 있어도 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버티기로..^^*

    현철님 충무공 교훈을 보고 매사에 불평은 말아야겠어요..^^
    잘 보고갑니다..^^*

    2009.11.18 19:23 신고
  2.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옥 같은 말씀이네요~
    충무공은 진정한 성웅이십니다.

    2009.11.18 19:53 신고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같이 모두 가슴에 콕콕 와닿는 말들입니다. 그렇게 ---가 나쁘다거나 안 좋다고 불평할 시간에 자신을 계발하고 스스로 발전하도록 더욱 공을 들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평온한 밤 되세요.

    2009.11.18 21: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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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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