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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세상나기 법, 스트레스 확 날릴 창구 갖기
미국 어학연수 중인 ‘고휘원’ 양에게 안부 전하며
마음 나누는 생일 모임, 코끝에서 녹아난 홍어삼합

 

 

 

지난 해 후배 딸이 찍어준 삼겹살 모임입니다...

당시 찍새, 고휘원 양은 지금 어학연수 중. 잘 있지? 휘원아!!!

 

 

 

다들 모임 많지요?


세상살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엮이고 섞여 사는 게 세상 이치.

그러다보니 마음에 들든 들지 않던 자연스레 모임에 속해야 할 처지.

얼굴 도장 찍어야 할 곳을 제외하고도 직장, 친인척, 친구, 동창회, 동호회 등 넘쳐납니다.

 

 

모임, 이왕이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게 최선일 터.

여기에 즐겁고 행복이 더해지면 최고지요.

모임 스트레스에서 ‘해방’을 외치며 만든 모임이 하나 있습니다.

 

 

“모임에서의 자유를 꿈꾸는 자…”

 

 

 

<마음 나누는 생일 모임>입니다.

아무런 제약이 없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모임입니다.

 

여기만큼 부담 없고, 속 편한 모임은 없습니다.

그저 염화미소, 이심전심으로 통하지요.

 

 

보면 마음 통하는 그런 만남, 스트레스 풀기에 제격이지요...

 

 

 

 

마음 나누는 모임.

 

지난해 1월 시작했으니 이번 달로 14개월째입니다.

 

구성원은 조촐하게 단 4명.

정기모임은 생일 전후, 년 4회입니다.

 

겨울 생일자가 3명. 여름 생일자가 1명.

모임 날짜와 시간은 사정에 따라 문자로 고지되며 수시로 바뀝니다.

 

 

“얼굴, 보고 싶은데….”

 

 

비용은 1차 생일자 부담.

2차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서운하면 간단히 호프 한잔 정도.

옆으로 샐 경우는 없습니다.

 

 

장소는 입에 당기는 맛집.

메뉴는 삼겹살, 오리, 새조개 삼합 등이었네요.

여수 소호동 ‘도투마리’와 문수동 ‘수복갈비‘를 왔다 갔다 했네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홍어 삼합이 먹고 싶다는 요청으로

홍어 전문점 ‘초가집’에서 모였답니다.

 

지난 2월에 모이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이제야 모였다는.

여기서 나온 말이,

 

“홍어 먹기 엄청 힘드네. 이 집에 ‘삼고초려’한 셈이네.”

 

 

삼 세 번 만에 이곳에서 모임이 성사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지요.

 

 

이번 유사는 저였지요. 메뉴는 여수막걸리와 홍어삼합...

 

 

 

모임시간은 거의 칼.

보자마자 얼굴에 환한 웃음.

 

악수보다 얼싸 앉는 친근하고 정겨운 인사.

첫 잔은 무조건 원 삿.

다음 잔부턴 알아서 마시기.

 

 

“우리 모이면서 같이 사진 찍은 거 있나?”

 

 

좋게 사진찍자 하면 될 것을….

 

참, 지난 해 여름 모임에서 동참했던 후배 딸이 찍은 사진이 있긴 합니다만, 써 먹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 삼겹살 구워줬던 고희원 양은 지금 미국 어학연수 중.(간혹 자녀들 찬조출연도 가능) 어학연수는 1년 예정이었는데 2년으로 늘어난 상황. 

 

 

“인터넷으로 보고 있지? 희원아.

고맙다 휘원아. 작년에 네가 구워 준 삼겹살 진자 맛있었는데….

건강히 어학연수 잘 마치길. 아빠가 휘원이 자랑 엄청한다.

휘원인 좋겠다. 자랑스런 딸이라서….”

 

 

이렇게 인터넷으로 소통할 줄이야!

이런 세상이 올지 몰랐다는.

 

그러고 보면 세상 좋아졌다니까.

어쨌든 스트레스 확 날릴 창구 하나쯤 갖는 것도 현명한 세상나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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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4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는 용화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갔다. 요 근래 자주 집을 비운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용화는 기분이 좋은지 스승님께 말을 걸어왔다.

 

 

  “스승님, 내년에는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연히 가야지.”

 

 

 비상도는 아이를 더 큰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킬까를 생각하고 있었고 며칠 전 성 여사와도 그 문제에 대해 의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용화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용화는 그제야 안심을 하는 모양이었다.
 멀리 산골짜기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묻어오고 있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느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스승님, 얼마 전에 오신 사장님께서 스승님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느냐?”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네가 그 분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스승님께서 어떻게?”
  “짐작이었느니라.”

 

 

 마음을 들킨 용화가 눈덩이를 걷어찼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올랐다.

 용화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결혼은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 하는 것이 좋습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오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스승님을 뵈면 자유로운 것 같아 보이고 또 한편으론 슬퍼 보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넌 자유를 원하느냐?”
  “네.”


  “그러면 결혼을 해야지.”
  “스승님처럼 결혼을 안 해야 자유롭지 않습니까?”


  “어떤 자유를 말하는고?”
  “이를테면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또 집을 비워도 되고…….”


  “이놈아, 너는 자유를 집에서 찾으려하느냐? 밖에서 찾으려 하느냐?”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치킨 집이었다. 옛날 남재 형이 군대 가기 전 스승님께서 사 오신 치킨 맛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에 남은 까닭이었다.

 

 

  “용화야, 나는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용화가 본 스승님의 모습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스승님은 자꾸만 치킨을 용화 쪽으로 밀어 놓았다.  (계속…)

 

 

 

 

 

 위는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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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결혼한 아내를 무서워하다니….
남자들은 늙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결혼’, 참 아이러니입니다.
사랑해 결혼한 아내를 무서워하다니….

지지난 주, 1박 2일에서 강호동 씨와 이수근 씨가 조기 퇴근 후,
집에 가지 못하고 식당서 잠으로 죽 때리다 뒤늦게 촬영 팀에 합류했지요. ㅋㅋ~^^

이때, 집에 연락한다는 말에 정색하며 연락 말라대요.
이는 아내를 피해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유부남의 도피 심리로 해석됩니다.

이런 예는 주위에도 흔합니다. 그걸 보며 든 생각입니다.

왜 결혼한 남자들이 아내를 무서워(?) 하는 걸까?

이 사랑 놀음에는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날고 긴다는, 세상에서 알아주는 남자도 집에서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예가 많으니까.

정년퇴직을 앞둔 남자들의 항변은 유부남을 슬프게 하대요.

“힘없고 갈 데 없는 처지에, 눈치 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어떤 기관장은 정년퇴임 인사말 말미에 이런 말까지 하대요.

“여보, 퇴임 후에도 구박 안하고 밥 잘 차려 줄 거지?”

이 소릴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답니다.
공개석상에서 각시에게 하소연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지요.

이렇듯 고개 숙인 남자들이 늘어가는 원인은 노년 생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들은 늙으면 쓸모가 없다.”

 

여자들은 손자라도 보는데, 남자들은 이것마저도 안 돼 쓸 데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인들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보다 남편이 먼저 죽어야 좋다.”

이건 개인의 바람일 뿐, 그렇다고 세상살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남.

 

조계산 등반 때 찍은 지인 부부의 다정한 모습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결혼한 남자들이 아내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건데, 그건 남자들의 ‘철없음’ 때문이지 싶습니다. 예를 볼까요.

 

아내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저기 투자 했다 탕진하는 남자.
각시 몰래 바람피우다 들키는 바람둥이 남자.
가정생활은 뒷전이고 인생을 혼자 즐기는 남자.


세상의 온갖 고민은 다 하면서 실속은 없는 남자.
기어코 술 담배를 줄이거나 끊지 않는 남자.
가정은 나 몰라라 외면하고 일에만 쳐 박히는 남자.

아내의 잔소리를 부르는 이런 사례는 천지에 널렸습니다.(물론 잘하는 남편도 많지요~^^)
어쩜, 그리 하지 말란 것만 골라 하는지…. 속이 있는 게지요.
결국 지은 죄(?)가 많다는 겁니다.

여자들이 무게 잡고 큰소리만 뻥뻥 치는, 허우대만 멀쩡한 남편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이런 소리도 더러 하대요.

 

“어이구~ 저 화상, 누가 안 잡아 가나?”

 

이런 아내를 뉘라서 이기겠습니까. 그러니 무섭지 않겠어요?
문제는 아내들이 남편 상투를 쥐고 있는 게 남자들의 ‘자업자득’이란 거죠.
뿌린 씨앗대로 열매를 거두는 자연의 이치입죠.

남자들이 노년에 구박받지 않으려면 젊어서 잘 해란 소리 명심해야겠습니다.
악처인들 잘하는 남편 구박 하겠어요? ~^^~.

아무리 그렇더라도 요즘 남자들 기 많이 죽었습니다.
돈 벌랴, 가정 챙기랴, 일하느라 파김치가 됩니다.

오늘 하루, 가족을 위해 힘쓰는 남자들 기 좀 살려 주자고요~^^

삶이란 행복을 찾기 위한 과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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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아빠를 사지에서 구해 준 딸
구세주 딸, “암말 말고 그냥 가세요.”

 

 

“여보, 5월에 부부 여행 가요.”

이렇게 3월부터 잡힌 여행이었지요.
하필, 당일 지인 아들의 결혼식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 요구가 먼저였습니다.
거절했다간…. 어쨌든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었지요.

여행 당일이 되었습니다.
간단한 짐을 챙기고, 먹을거리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아내가 그러대요.

“모자 안 써도 돼요.”
“왜? 여기저기 둘러보려면 얼굴 타잖아.”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여행 떠날 때의 즐거움이 얼굴에 가득했으니까.

그런데 천청벽력 같은 말이 이어졌습니다.

“부부 여행은 여행인데 놀러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요.”
“뭐? 아무 소리 없더니 공부하러 간다고? (씩씩-) 나 안 가~, 혼자 가~.”

부부 여행에서 공부한다니 버럭 화가 났지요.
화를 참지 못하고 순간 토라져 뒤돌아섰습니다.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아뿔사~, 내가 어쩌자고 못된 꼬라지를 ‘팩~’ 부렸을까?)

(개그콘서트 한 유행 코너 버전으로) ‘그 순간~, 제명이 됐어요!’

들 떠 있던 아내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습니다. 
또한 엄마 아빠 배웅의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들,
부모 없는 집에서 자유를 준비했던 아이들까지 혼수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유행어처럼 식구들에게 ‘제명’을 각오해야 할 처지였지요.

그 때,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딸의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아빠, 암말 말고 그냥 가세요.”

딸의 말은 하늘에서 내려 온 동아줄이었습니다.
튼튼한 동아줄이 아닌 썩은 동아줄이라도 기꺼이 잡을 만큼 구세주였지요.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지요.

여하튼, 여기서 버티면 죽도 밥도 안 될 처지였습니다.
얍삽하게, 그리고 재빨리 꼬리를 내렸습니다.

“딸, 그냥 갈까? 그게 좋겠지?”
“아빠, 잘 생각 하셨어요.”

순간 아내의 웃음소리가 빵 터졌습니다.
덩달아 아이들까지 씩~ 안도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부부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래 추천해 주실 거죠?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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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리비아 카다피 독재정권 몰락은 필연
독재자여, 민주주의와 자유 앞에 항복하라!

북아프리카에서 피어올랐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중동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태세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체제 붕괴를 이끌어 낸 민주화 물결은 리비아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리비아 정부군의 학살과 유혈 사태를 보면 독재 정권의 말로를 떠오르게 한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 초기, 전문가들은 용병을 보유한 정부군과 시위대의 내전을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에선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하는 상황이다.

독재자여, 민주주의와 자유 앞에 항복하라!

우리도 민주주의와 자유는 피로 획득한 대가임을 경험했다. 독재자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한 5ㆍ18의 경험은 역사의 필연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이를 감지했을까?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대가 트리폴리로 진격하고 있다. 또한 리비아 해외주재 대사들도 “조국 리비아 구해주세요. 카다피여 국민들 내버려두라”라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실정이다.

각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나섰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 제재 결의와 미국의 카다피 퇴진 요구까지 잇따르고 있다. 국제적 압박까지 더해진 것이다.

어쨌거나 리비아 독재정권의 붕괴는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이로 보면 역사가 가르쳐 준 독재정권의 말로는 처참했다. 또한 영원한 권력은 없음을 보여줬다.

그래서다. 카다피 등 어서 두 손 들고 민주주의와 자유 앞에 항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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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여행 온 아내 친구가 내게 준 교훈
아내들도 때론 바람처럼 훌쩍 떠나고 싶다!

 

구속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自由). 자유에 대한 꿈은 어느 곳, 어떤 위치에서나 갖나 봅니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크나 봅니다.

“여보, 제 친구가 집에 온대요. 벌써 와서 구경 다니고 있대요.”

지난 3일, 아내 친구가 갑작스레 왔더군요. 그녀의 여행은 결혼 15년 만의 자유였다 합니다. 마음으로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 남편과 같이 오지 않고 평일에 혼자 온 이유에 대해 물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무엇인가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바닥까지 찼어요. 이걸 어떤 방법으로든 풀어야 지 안 풀면 돌겠대요. 그래서 왔어요.”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그녀에게도 가슴 속의 답답한 무엇인가를 풀어야 할 계기가 필요했나 봅니다. 그동안 그녀는 화려한(?) 외출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매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내 마음을 잘 모르고, 이해 못해요”

그녀는 그간 놀러 오겠다고 하고선 통 오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밟힌 탓이었습니다. 그랬는데 15년 만에 과감히 여행을 감행한 것입니다.

“뭐가 그리 답답했어요?”
“있잖아요. 가정을 꾸리고 살아도 한순간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녀의 말투에서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나, 결혼 후에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여자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치여(?)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답답함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은 아내 마음을 잘 몰라요.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해요. 그러니 혼자서 답답함을 풀어야지 어쩌겠어요. 여기서 돌아다니니 좀 풀리네요.”


순간 머리가 띵했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내 아내도 이런 생각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은 참 묘합니다.

답답함에 여행 온 아내 친구가 내게 준 교훈

그녀 말을 들으면서 과거 아내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결혼 전, 아내는 내게 요구했던 게 있었습니다.

“매년 한 번은 나 혼자만의 휴가를 줄 것. 휴가동안 내가 어딜 갈 건지, 뭘 할 것인지 묻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해 줄 것.”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족 여행, 혹은 부부 여행으로 대신하긴 했지만. 한 집안의 짐을 아내에게 떠맡긴 채 달콤한 휴식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 친구 덕분에, 아내가 왜 “혼자만의 휴가”를 요구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인 아내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찌됐건, 그녀는 결혼 15년 만에 단행했던 화려한 외출을 하루 만에 끝내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당당함을 엿보았습니다. 그녀에겐 단지 가슴을 풀어낼 자유가 필요했던겁니다.

그녀의 화려한 외출은 일탈(?)이 아닌, 그저 음식에 필요한 간 맞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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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자연을 함께 그리는 나바호 인디언
인류 공동 번영은 자연의 소중함에서 시작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그려라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만 크게 그린다.”

주위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부터 어긋난(?) ‘개인화’가 출발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면, 조셉 B. 코넬에 의하면 나바호 인디언들은 자신을 아주 다르게 그리기 때문입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자기들 몸은 훨씬 작게 그리고, 그 옆에 산, 계곡, 물이 말라 버린 황량한 개울 등을 그려 넣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마치 팔다리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신이 주변 환경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으로 해석됩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평을 시작하는 건 이 영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줄거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영국 귀족 ‘새라’는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아 호주로 건너온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남편의 죽음과 그가 남긴 농장 및 1천 5백여 마리의 소떼 뿐. 난생 처음 마주한 소떼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는 거칠고 투박한 소몰이꾼 ‘드로버’에게 도움을 구한다.

호주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새라는 뜻밖의 사건을 통해 부모 잃은 원주민 소년 ‘눌라’와 교감을 나누며 우정을 쌓게 된다. 새라는 아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새라는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농장을 뺏으려는 사람들의 음모로부터 농장을 지키기 위해 소떼를 이끌고 북부 호주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새라는 이 여정 속에 호주의 아름다움과 힘에 매료되던 중 드로버를 사랑하게 되고, 원주민 아이 눌라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의 폭격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던 중 새라와 드로버, 눌라는 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

<오스트레일리아>는 광활한 호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모험. 전쟁의 포화 속 운명을 건 사랑 등이 스며있는, 소몰이 장면이 압권인 ‘로맨틱 서사시’입니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이 드러난 역사 인식의 통쾌(?)함도 들어 있습니다.

어찌됐건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연 속의 ‘아이’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백인들이 원주민 동화와 사회복지 명목으로 실시한 ‘원주민 자녀 강제 분리정책’의 피해자였던 눌라를 대하는 새라의 모성애를 통해서였습니다.

대자연에서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더라도 생명에 대한 사랑까지 가능케 하는 힘이 있음을 전한 게지요. 이 과정에서 새라는 왜소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임을 알게 되었던 거죠.

여기에서 나바호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원주민을 떠올린 것입니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일 것입니다.

‘인류 공동의 번영은 자연의 소중함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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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시끄럽지요? 미안합니다.”
“조용합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자식이 많으면 바람 잘날 없다’더니, 사람 많이 사는 아파트 또한 바람 잘날 없습니다. 툭 하면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위집에서 조금만 신경 쓰고 아이들 뛰는 것 중의 시키면 되는데….” 하는 ‘배려’ 이야기입니다.

그 소릴 듣다보면 “왜 아파트를 이렇게 지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아우성으로 인해 법적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그 전에 지은 아파트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집도 한동안 마음 편히 살았었습니다. 왜냐고요? 아래 집이 몇 달간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뛰어도 주의시키지 않아도 됨으로 인해 오는 편안함(?)은 대단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랫집과 사이가 나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처음 이사 와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랫집과 인사를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아래층을 누르면 ‘혹 아랫집 아닐까?’ 미안한 마음에 괜스레 움츠러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인 소개로 아래층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아랫집 아이들이 무얼 가져왔었습니다. 감자를 딸려보냈습니다.

가슴 아픈 소리, “친구들도 데려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희 집이 좀 시끄럽지요? 미안합니다. 뛰지 마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조용합니다. 위에 사람이 살까 하는 정도로 조용하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시끄러웠을망정 이렇게 말해 주니 고맙더군요. 알고 보니 아랫집 큰 아이가 저희 둘째와 같은 반이더군요. 그리고 간혹 먹거리를 서로 주고받고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남자들끼리 술도 한잔하게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요즘 좀 시끄럽지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조용합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저는 아랫집 때문에 화가 납니다. 같은 회사 다니는데 조금만 시끄러워도 ‘조용해라’ 전화를 합니다. 저희 아이들이야 발뒤꿈치를 들고 다녀 조용합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놀러오면 쿵쿵거리나 봅니다. 그걸 못 참고 전화를 합니다. 그래 친구들도 데려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간혹 뛸 때마다 “아랫집 시끄럽겠다.” 주의 주지만 어디 아이들이 마음대로 되나요. 금방 잊고 맙니다. 아랫집 이사 간 뒤로도 아직까지 가끔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메일도 주고받고 있습니다.

튀밥도 가져왔더군요. 정이지요.


“얘들아”…“아차, 아랫집 이사 왔지!”

그렇담, 윗집과의 사이는 어땠냐고요? 5년 동안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습니다. 조용하냐고요? 시끄럽습니다. 자식 키우는 집에서 말한다고 고쳐질 게 아니니 이해하고 삽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한 마디씩 합니다.

“들어봐라. 윗집 소리 들리지. 아랫집은 어떨 것 같아?”
“시끄럽겠어요!”

그런데 며칠 전, 아랫집에 사람이 들었습니다. 이사 온 줄도 몰랐는데 불이 켜져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 누리던 자유(?)도 끝났습니다. 한동안 자유를 누렸던 아이들도 깜박깜박 잊고 뛰기도 합니다. 그러면,

“얘들아”
“아차, 아랫집 이사 왔지!”

조만간 서로 인사 나눠야 하는데 망설여집니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전의 아랫집 사람들처럼 마음 넓은 사람 만나면 좋을 텐데’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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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줄 알아. 한국은 어쩐지 알아?”
“제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거든요!”


“한국 아이들은 너무 불쌍해!”

헐, 누가 그걸 모르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 키우지 않는 부모의 훈수입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잠시 다니러 왔습니다. 귀국하니 수능과 겹쳤다며 던진 소리였습니다.

외국에서 편하게(?) 아이들 교육시키는 그가 부럽기도 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 있어 이렇게 ‘제 3자’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수능일, 온 나라가 들썩이니….


아이들 외국에서 학교 보내고 싶다?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여건만 되면 나도 아이들 외국에서 학교 보내고 싶다.”

주위에서 자주 듣던 소립니다. 한숨 섞인 이 하소연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또는 한번쯤 생각하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요. 사는 데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언제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안 그럴 것 같죠? 왜 그러냐 싶죠? 그러나 당해 봐요. 그게 되나. 다들 죽어라 하는데 안할 수가 없어요. 안하면 우리 아이만 쳐지는 것 같은데? 사회 분위기가 무서운 거죠. 닥치면 자연히 알아요. 아이들 어릴 때 신나게 놀게 해요.”

학부모 심정일 것입니다. 이젠 수능도 끝났으니 한 시름 놓았겠죠? 학생들도 부모들도. 고생하셨네요.

수능일, 모정! (사진 리장)


“너는 행복한 줄이나 알아. 한국은 어쩐지 알아?”

잠시 샜네요. 그도 입시를 경험했던 터라 우리의 교육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공부하는 고 2 아들에게 때때로 이런 말을 던진다고 합니다.

“야! 너는 행복한 줄이나 알아. 한국은 어쩐지 알아? 네가 얼마나 편하게 공부하는지만 알아둬!”

그도 자신이 이런 소리 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답니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 합니다. 편하게 공부하는 아이들, 잔소리 덜 하는 부모가 될 수 있어 행복하다 합니다.


하고 싶었던 일의 계획에 대한 조언 잊지 않길…

간혹 던지는 잔소리에 아이도 한 마다씩 대꾸 한다는군요.

“그런 소리 안 해도 되거든요. 제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거든요. 한국 얘들은 자기 일을 자기가 다 알아서 스스로 안하나 보죠, 뭐.”

헉. 우리의 현실에 대한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알아서 할 여건이 돼야 알아서나 하지. 공부 따라가려면 과외 받을 형편이 돼야 하고, 또 영어라도 한 마디씩 씨부렁거리려면 어학연수다 뭐다 하는 판국이니 뭘 알아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지긋지긋한 수능도 끝났으니, 학생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의 경험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등의 계획을 스스로 짤 수 있도록 조언도 아끼기 말아야 하겠지요? 

너무 일렀나요? 당분간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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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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