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매화차로 승화한 매화는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수컷 개미 살아 봤자 밥만 축낸다, 그게 ‘운명’
[선문답 여행 5] 죽음, 부처님 진신사리와 개미 ‘남해사’

 

 

 

 

차 향 가득합니다.

 

 

 

 

‘삶’과 ‘죽음’.

 

둘이면서 하나라지요? 누구나 태어나 죽는 줄 압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은 드뭅니다. 사는 데 정신 팔려 죽음 느낄 시간이 부족하기에. 때론, ‘개미’처럼 일해도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박한 절집, 여수 남해사입니다.

 

 

임시로 가정집에 불상을 놓았습니다.

 

 

상식을 깬 이런 절집, 정겹습니다.]

 

 

 

금방 쓱 지나가는 봄(春).

 

차 한 잔 떠올렸습니다. 매화차. 겨울과 봄의 향기를 흠뻑 머금은 싱그러운 차(茶)지요. 여수시 상암동 자내리 ‘남해사’로 향했습니다.

 

 

절집, 다녀보면 휘황찬란합니다. 남해사는 예외지요.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흙집을 조금 수리해 불상을 모신 절집으로, 풋풋한 사람 냄새 가득합니다. 입구에는 사립문 대신 할미꽃이 반깁니다. 그래, 정이 더 가는 절집이지요. 훗날 예정된 불사(佛舍) 전, 머무는 중이랍니다. 여기 눌러 앉길 바랄 뿐!

 

 

“스님. 오늘 어째 차향이 더 좋습니다!”
“저번에 차 탓을 해서 차 우려내는데 더욱 신경 썼습니다. 온도까지 맞추고.”

 

 

아차, 싶었습니다. 혜신스님, 초장부터 까칠합니다. 하기야 구매하는 다른 차와 달리, 직접 매화 꽃망울을 따, 말려 정성껏 우려 낸, 매화차 맛을 타박했으니, 심기 편할 리 없지요. 스님의 뒤끝이 귀엽습니다. 장난기 발동, 농(弄)을 걸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입니다.

 

 흰색은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 붉은색은 혈관이 사리가 된 '적사리'입니다.

 

 

 

“매화차로 승화한 매화는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스님, 말없이 일어나 머리 뒤에 있던 죽비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앉아 죽비를 만지시며 설법처럼 한 마디 하시대요.

 

 

“죽비는 중간에 이렇게 뭣을 끼워 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므라드는 대나무 성질로 인해 ‘탁’나는 경쾌한 소리가 별로지요. 죽비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뜨끔했습니다. 바로 항복했습니다. 지인, 알쏭달쏭한 표정입니다. 그가 화두를 꺼내들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다 내려놓으라고, 죽음은 옷만 갈아입는 건데, 뭐 그리 걱정 하냐?’십니다. 그러나 중생 입장에서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스님께선 대답 없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들고 오셨습니다. 뚜껑을 열어 만지시며 하시는 말씀.

 

 

“이게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빨간색은 혈관이 사리가 된 ‘피사리’고, 하얀색은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고진멸도’를 가르치신 후 89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스님께서 대뜸 부처님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죽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아직 죽어보지 못해 모르겠다는 건지…. 스님께서 부처님 사리를 모시게 된 경위를 밝혔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차 맛이 일품입니다!

 

 

 

“도광스님께서 태국 아유타 사원에서 8년을 수행하시다, 귀국 길에 32과를 받아 오셨습니다. 그 중 제가 2과를 시주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나 툭툭 건네질 부처님 진신사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금오문중의 고승, 도광스님께 사리 2과를 받았다니, 놀라웠습니다. 이는 인연 등이 맞아야 합니다. 자리 매무새를 고쳐 앉았습니다. 당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 가짜 사리가 많다고 합니다. 진짜와 가짜 구분은 어떻게 합니까?


“사리를 화장지에 얹어 물 위에 놓고 가라앉으면 진짜. 그대로 있으면 가짜입니다. 또 망치로 두드려 깨지면 가짜. 안 깨지면 진짜입니다.”

 

 

- 지금 실험해 볼 수 있습니까?


“허허~. 어찌 부처님 사리를 망치로 두드리겠습니까. <대승밀엄경>에 ‘믿음을 내고 의심을 품지 말라. 믿음이 곧 부처님이므로 꼭 해탈을 얻게 하리라!’ 했습니다. 믿음이지요. 부처님 사리는 몸보다 두 배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게 각 나라에 분배된 겁니다.”

 

 

어리석은 중생이었습니다.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아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다!(아함경)”고 하니, 그걸로 위안 받을 밖에.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천지를 돌다 여수 남해사에 앉으신 혜신스님과 선문답에 돌입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스님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죽기 3일 전에 감(感)으로 안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바라는 죽음은 ‘승도천화(僧道遷化)’입니다. 승도천화란? 죽음을 느낌으로 알아, 행장(수의)을 걸쳐 입고, 인적이 없는 산으로 들어가, 나무 잎 등으로 잠자리를 만들어, 거기에 누워 세상을 조용히 떠나는 겁니다. 이렇게 승도천화하신 분이 ‘서산대사’입니다.”

 

 

- 죽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잘 살아야 잘 죽는 법입니다. 안개, 바람, 비가 잠시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때가 되면 사라지는(죽음) 거 아니겠습니까.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 잘 살아야 잘 죽는다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보다, 아름답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서 저녁에 노을이 지는 것과 같습니다. 화창한 날, 해는 아름답게 떠서 아름답게 노을 집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뜬 것도 지는 것도 모르게 집니다. 아름답게 살면 멋있는 노을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 오래 살면 좋겠다는 사람은 빨리 죽고, 빨리 죽었으면 하는 사람은 늦게 죽는 경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쁜 사람은 대개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저승에 빨리 데리고 가 봐야 쓸데없다는 거 아닐까. 살면서 지은 업(業)을 씻을 기회를 주는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공덕 쌓지 못하고 업을 짓고 마는 어리석음이 안타깝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겁니까?


“삶은 윤회(輪回)고진멸도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 이 시기에는 ‘나’를 찾아 최선을 다해 사는 게 지혜로운 길입니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야, 타인을 지극히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연잎차를 덖고 있습니다.

 

 

수개미, 날깨 한쪽이 떨어졌습니다. 운명이란?

 

 개미 천지입니다.

 

 

 

차(茶).

 

어느 새 ‘작설’에서 ‘매화’꽃을 넘어 ‘연잎’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개미가 방바닥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러고 보니 절집 남해사 입구 벽에도 개미 천지였습니다. 헉, 개미 등에 날개가 달렸습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날개 달린 개미입니다. 호기심을 보이자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개미 등에 날개 달린 거 처음 봐? 날개 달린 건 다 ‘수컷’이야. 수개미는 이맘 때 여왕개미와 교미한 후 다 죽어. 교미하는 수컷은 단 한 마리. 번식을 위한 여왕개미 쟁탈전이 치열하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튼튼한 날개 짓은 필수. 나머지 수컷은 교미 한 번 못하고 죽어. 삶의 임무를 마친 수컷은 살아 있어봤자 밥만 축낸다는 거지. 그게 운명이야.”

 

 

수개미의 삶이 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습니다. 다행입니다. 인간은 이런 운명 아니라서.

 

 

삶.

 

참 어렵습니다.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희비가 갈립니다. 삶의 가치를 물질(돈)에 둘 때와 정신(사상)에 둘 때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타고 났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재능’을 타고 났습니다. 그러니 서로 다를 수밖에. 이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죽음.

 

더 어렵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분명합니다. ‘극락’과 ‘지옥’. 욕심만 부린 사람과 덕을 베푼 사람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하지만 잘 죽는다는 건 자신이 바라던 삶을 산 사람에게도 부담입니다. 오직 ‘덕(德)’ 있는 자만이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차 향 가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과 봄 향 가득한 매화차를 마시며...

 

 

 

 

 

차 한 잔의 여유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지요...

 

영취산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진달래 군락지는 진달래꽃이 마구 피는 중이었지요.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산수유, 동백 등….

 

봄 꽃 천지입니다. 덕분에 봄 향이 그윽합니다. 이런 때 봄바람에 실려 온 봄 향기를 흠뻑 맡아 주는 게 자연에 대한 예의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던 진달래꽃이 그리웠습니다.

 

 

지난 주말, 진달래꽃 보러 여수 영취산 자락으로 행했습니다. 이번 주, 진달래 축제가 예정되었기에 미리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요. 영취산 진달래를 향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수의 유혹, 시 한 구절로 대신하렵니다.

 

 

    여수 가는 길
                                           신 병 은

 

 

    자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가 있지
    세상에 덜렁 혼자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이게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개를 흔들 때
    마음의 짐일랑 그대로 팽개치고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
    먼 길 달려온 자네에게
    늘 넉넉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닮은 섬들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중심은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넌지시 귀뜸해 줄 걸세
    때로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거냐며
    생미역 한 줄기 풀어
    엉기고 맺힌 생을 해장시켜 줄 걸세
    자네, 외로움이 얼마나 심했냐고
    겨울 이기고 돌아온 동백꽃 웃음이
    옷깃을 풀고 와락 안겨들 걸세

 

 

 

올해는 진달래꽃보다 토굴같은 절집과 인연이 닿았나 봅니다.

 

 

지난해 올랐던 영취산 진달래 축제장

 

남해사의 소박한 법당입니다. 요기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었지요...

 

 

 

 

진달래꽃 보러 가던 중, 눌러 앉은 남해사와 차 한 잔

 

 

진달래꽃 가득한 영취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랐던 지라, ‘에라 모르겠다’하고 눌러 앉은 게 영취산 자내리 ‘남해사’였습니다. 죽공예 하는 지인이 몇 번이나 스님과 차 한 잔을 권했는데, 이제야 그와 찾게 된 겁니다. 올해 ‘인연’은 진달래꽃보다 남해사에 닿은 게지요.

 

 

“스님, 절에 계십니까?”
“중이, 어디 가겠습니까!”

 

“스님, 차 한 잔 주세요.”
“언제든지….”

 

 

남해사, 보통 절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마당도, 탑도 없었습니다. 초라한 흙집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게 무슨 절이야~’란 말은 온당치 않았습니다. 흙집을 차지한 부처님 도량은 마음 가득 자리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마음을 여니, 모든 게 새로웠지요.

 

 

“이게, 부처님 진신 사리야.”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절집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요. 다들 부처님 사리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는 동요처럼 숨바꼭질 하듯, 꼭꼭 숨겨 두었기에, 중생이 접하기 어려웠지요. 진달래꽃을 대신한 발걸음이 횡재수가 될 줄이야!

 

 

 

진달래꽃의 향기가...

 

 

여기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담겨 있습니다.

 

 

진달래곷의 유혹을 물리치고 갔던 남해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요게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두 종류지요.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무슨 차를 드릴까. 가만, 먼저 발효차부터 마실까.”

 

 

‘~까’, 다음에는 보통 물음표(?)가 오지요. 그런데 남해사 스님 어법은 특이했습니다. 인산당 혜신스님 말씀은 ‘~까’ 다음이 마침표(.) 비스므리 했습니다. 어법의 독특함에 앉았던 모양새를 다잡았습니다.

 

 

“여수 사람들은 작설보다는 발효차를 많이 마시드라고. 발효로 시작할까.”

 

 

서로 통하면 됐지, 차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된장이 제 맛을 내기 위해 발효 되듯, 첫 만남을 ‘발효’로 준비하신 스님의 운치가 멋있거니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 만남을, 발효차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데우자는 의미였으니까. 슬며시, 혹은 잠시, 무릎 꿇어 ‘불(佛) · 법(法) · 승(僧)’의 예를 차렸습니다.

 

 

“차 맛이 기 막힙니다. 스님께서 차를 정말 잘 우리시네요.”
“물이 좋아서지요. 차는 요기 앉으신 장형익 씨가 우려내는 설차가 최고지요.”


“어디 물입니까?”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떠왔습니다.”


“어쩐지, 차에서 지리산 향이 나더라니….”
“….”

 

 

스님께서 ‘미소’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신구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그가 사바세계 대중에게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외치던 광고 장면과 함께. 이처럼 스님의 그윽한 미소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차 맛을 알아?’, ‘네놈이 지리산 향을 알아?’를 넘어 ‘어쭈 요놈 봐라!’라는 놀라움이랄까.

 

 

 

 

 

지난해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라 찍었던 사진입니다.

 

 

매화는 사군자지요, 왜?

 

매화차의 향이... 

 

 

 

 

아홉 번 덖은 작설차, 다시 또 불에 데워 마시는 이유

 

 

“스님, 이쯤에서 작설로 넘어가심이….”

 

 

스님께서 라이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작은 초에 불 붙였습니다. 불 위에서 작설이 덖어졌습니다.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작년 기운으로 만들어진 작설 향의 여운이 복잡했습니다. 지난 해 가슴 아팠던 우리네 기운이 담긴 것 같습니다.

 

 

“차는 한 번 열면 눅눅해져. 제대로 마시려면 불에 살짝 덖어주는 게 좋아.”

 

 

이게 어디 ‘차’ 뿐이던가요. 노동 시장에서 단 물 빼먹고 나면 버려지는 인생사. 그나마 다시 써 주는 것이 행운이지요. 이 걸 아는 까닭에 아홉 번 덖어 낸 작설까지 다시 또 불에 데워 맛을 음미하는 게지요. 다시 덖는 건, 소위 말하는 리모델링 혹은 업그레이드 과정이지요. 그렇게 다시 태어난 작설은 엄청 겸손한 맛입니다.

 

 

“스님, 다시 덖은 작설, 다른 잔에 주시면….”
“….”

 

 

작설이 우러날 때쯤, 찻잔을 바꿔주시더군요. 그런데 제 잔만 바꿔주시는 거 있죠. 이유를 알 거 같았습니다. 두 분은 이미 예전부터 마시던 차라 맛의 진면목을 알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새 잔으로 마시면서 작설 고유의 맛을 탐닉해라’는 암묵적 강요였달까. 작설 향이 고스란히 입속에 안겼습니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매화꽃...

 

 

매화 꽃봉우리를 따 말리면 매화차가 되지요...

 

봄향기에 취해...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봄 향을 맛볼까.”

 

 

감지덕지. 봄 향을 간직한 차는 어떤 걸까? 스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세워 병 하나 집으셨습니다. 그리곤 뚜껑을 열어 “봄 향 맡아 봐!”라며 코에 대 주셨습니다. 아~, 향이….

 

 

 

매화차를 담은 용기에 향이 가득하고...

 

 

요런 걸 따서 말려야 매화차가 되지요...

 

스님께서 작은 매화꽃봉오리를 따 보여주시더군요.

 

 

“무슨 찬지 알겠지. 특별히 내는 매화차야.”

 

 

매화차와의 첫 만남은 오로지 ‘감사’였습니다. 매화차는 스님께서 직접 만드셨답니다. “150도가 넘는 쩔쩔 끓는 방에서, 창호지 위에 놓고, 이틀 간 말려 차로 냈다”더군요. 그래선지, 목 넘김이 부드러웠습니다. 매화 향은 작설 향과 어우러진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선하고 감미로웠달까.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타인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신다면 본인의 운명도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이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물이 들고, 기쁜 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쁜 물이 들게 되며, 행복한 이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이란 물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매화차. 아직도 입안에 달달한 봄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매화차, 잊혀 지지 않는 맛으로 남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이란 시련을 이겨 낸 끝에, 꽃망울을 피워 낸, 인내의 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의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여수 섬달천에서 본 매화, 다도해...

 

차는 여유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2,326
  • 23 69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