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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57

 

 

“너는 살기 위해 먹었느냐? 먹기 위해 살았느냐?”
구별,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라고 한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누…구…신…지?”

 

 

 그는 심하게 말까지 더듬었다.

 

 

  “내 이름을 알고 싶은가? 비상도라는 사람이야.”

 

 

 모두들 깜짝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점에 있어서는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몰라 뵈었습니다.”

 

 

 그 녀석은 무릎을 꿇었고 나머지들도 머리를 조아렸다.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인가? 하면 강한 자에겐 고개를 숙이고 약한 사람은 괴롭혀도 된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죄송합니다.”
  “너희들 모두 냉탕으로 들어와 앉아.”

 

 

 비상도의 한마디에 그들 일행은 다투어 냉탕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너는 살기 위해 먹었느냐? 먹기 위해 살았느냐?”
  “예? 그건…….”

 

 

 조금 전에 탕에서 자신을 쫒아내던 녀석이었다.

 

 

  “너는 살아놓고도 모르겠느냐?”
  “글쎄요. 확실히는……, 아마 먹기 위해 산 것도 같고…….”
  “그럼 이 시간 이후로는 살기 위해 먹은 너를 죽여라.”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비상도는 냉탕에 앉아 있는 다른 녀석들을 향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해라.”

 

 

 탕 안에 있던 사람들도 숨을 죽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후목불가조(朽木不可彫)!”

 

 

 그들이 따라하는 소리가 탕 안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뜻이야. 돌아가서 삼일 동안 곰곰이 되씹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가 있을 것이야.”

 

 

 나가려던 비상도가 다시 몸을 돌렸다.

 

 

  “문신은 힘이 모자라는 놈들이 그것으로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아. 마치 벌레가 자신을 잡아먹는 새들에게 과장되게 보이기 위해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야. 또 하나 공중목욕탕에도 지켜야 할 예가 있으니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민망한 부위를 손으로라도 가려야 하는 것이야.”

 

 

 곧바로 숙소로 돌아온 비상도는 김백일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의원님을 좀 만나 뵙고 싶습니다.”
  “누구신지…….”


  “만나 뵙고 말씀드리리다.”
  “지금은 안 계신데, 오시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상도는 전화를 끊고 머리맡에 놓인 책을 펼쳐 들었다. ⌜장자⌟였다. 수백 번을 읽고 또 읽었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을 뻥 뚫리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책이었다.

 

 

 일찌기 청대(靑大)의 문학비평가인 김성탄(金聖嘆)은 중국 고대의 문학작품 가운데 십부(十部)를 선정하여 십재자서(十才子書)라 하였고 그 중에서 장자(莊子)를 첫째로 꼽았을 정도였다.

 

 

  ‘언젠가 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신이 장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일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라고 한다.’

 

 

 그는 「장주몽(莊周夢 나비의 꿈) 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책을 덮었다. 갑자기 산중의 집이 그리워진 것이다.

 

 

  “나비라, 나비라…….”

 

 

 불쑥불쑥 찾아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었다. 마치 오른발과 왼발을 각각 양쪽에 담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이 일을 끝낸 후에도 늦지 않으리.”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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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그래도 그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은 추억의 길이었다.

 

 

 

아침 산책이 주는 맛은 정적이라는 겁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루를 살아가야 할 준비, 뭐 그런 거지요.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조심스레 다급하게) “이거 보셨어요?”
(웬 호들갑 하며~) “뭘요?”


(아쉬운 목소리로) “제 얼굴에 앉은 잠자리요. 에이~, 날아갔네.”
(부럽다는 듯) “잠자리가 얼굴에 앉다니 자연이네요.”

 

 

주남저수지 인근에서 창원 단감을 팔고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랬다. 주남저수지 인근의 창원 단감의 달달한 향에 미친 잠자리였을까?

아님, 창원 단감 맛에 빠져 정신없던 잠자리였을까?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날개를 터득이던 잠자리였다.

잠자리가 내 뺨에 앉다니…. 무척 황홀했다.

 

주남저수지를 같이 걸었던 지인이 잠자리와 친구 된 모습을 보았다면 날 어설픈 도인쯤으로 여겼을까? ㅋㅋ~^^

 

 

‘잠자리가 왜 내 뺨에 앉았을까?’

 

 

개의치 않았다.

주남저수지에 그저 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만족이었다.

잠자리가 찾아든 이유가 있었다.

 

잠시 접고 추억 속으로 빠져 보자.

대학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 나비와 친구 된 적이 있었다.

이때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시관도 보이고... 

주남저수지 흙길이 인상적이었다. 

주남저수지는 세계로 통화는 통로였다.

 

 

해가 뉘엿뉘엿 산자락을 넘을 무렵, 방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갈 길 잃은 나비임이 분명했다. 왜 그랬을까.

 

나비를 보자, 장자의 나비의 꿈(호접지몽 胡蝶之夢)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당찮게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세상을 즐겼지만 난 현실에서 나비가 되어 놀아 보자’란 생각을 했다.

 

 

나비는 방 안 창문틀 주변을 날면서 쉴 곳을 찾고 있었다.

호흡을 골랐다. 잡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나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우주와 하나, 물아일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길을 잃었니? 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몇 번이나 텔레파시를 보낸 후에야 나비가 움직였다.

나비의 날개 짓이 유유자적 허공을 가르는 온화한 천사의 비행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나비는 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비가 멈춘 곳은 내 머리 위에 있던 옷걸이였다.

나비는 ‘저 인간에게 가도 안전할까?’ 탐색 중이었다.

큰 숨을 내 쉰 후,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비가 내 어깨에 와 앉았다.

 

 

손바닥을 폈다. 나비가 사뿐히 손 위에 앉았다.

 

감동이었다. 묵언. 나비에게 작별을 고하며 갈 길을 일러 주었다.

나비가 방안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까지 걸린 현실 속에서의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정신세계에선 찰나요, 영겁의 시간이었겠지만….

 

 

이 사건 후, 자연과 하나 될 틈이 없었다.

다만 하나 되려는 노력은 간간히 했었다.

그러나 진정성은 찾기 어려웠고, 마음뿐이었다.

 

세상에 물든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비와 나눈 무언의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생명, 그 신비함은... 

추억이 새록새록 솟게하는 코스모스 피어난 둑길. 

사진은 그대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랬는데, 잠자리가 날아든 것이다.

주남저수지에서.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었다.

다만, 주남저수지 초입에서 본 볼품(?)없는 홍시에 넋이 빠져 있었을 뿐.

 

그러니까 잠자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 든 것이다.

그것도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으며 새 무리에 날개 짓에 눈길을 주던 참에.

이렇듯 생명들은 앉을 곳을 쉼 없이 찾아 나선다.

 

 

지난 2일, 주남저수지에는 연꽃, 갈대, 억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둑길엔 가을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해가 생산한 영양분을 마음껏 먹으며 철새와 텃새, 잠자리, 메뚜기 등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가 새들의 날개 짓을 이정표 삼아 묵묵히 폐달을 밞고 있었다.

 

 

어디 쯤 일까?

주남저수지 둑길에 TV가 버려져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품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했다.

 

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땅에 앉았다.

고추잠자리의 빨간 색이 자연의 평화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그림으로 만들었다.

 

 

 

철새와 사람 등 뭇 생명이 주남저수지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모두 하나 되기 위함이다.

생명의 터전을 빼앗긴 영혼들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처절한 몸짓.

 

그렇지만 인간은 점점 생명의 터전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 어리석음은 후세가 고스란히 넘겨받을 터.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의 아둔함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잠자리가 내 뺨에 앉은 건, 자본주의에 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잠자리 땅 위에 앉았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새들의 날개짓이 살아 있는 주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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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2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소요유, 구속 없는 절대자유 경지에서 노니는 것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식사를 마친 후 성 여사는 별채에 있는 법당으로 올라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용화가 궁금했던지 몇 차례 살피고 왔어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성 여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비상도의 방에 마주 앉았다.

 

 

  “스님,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허무한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한참을 뜸을 들인 그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다녀가신 그 다음 해 겨울에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정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비상도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고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연쇄충돌사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고 오는 것이 창졸간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용화가 차를 끓여 내어왔다. 초순에 잎을 따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던 솔잎차였다.

 

 

  “향기가 너무 좋은데요?”
  “저도 마음이 울적할 땐 이 차를 마시곤 합니다.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비상도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남재 형의 일과 스승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에도 법당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는 가면서도 용화 손을 잡고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도가 그녀를 마을 아래까지 배웅하고 돌아올 때는 서서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상을 물린 남재 형이 스승님께 말을 걸었다.

 

 

  “스승님, 성탄절 날 눈이 오네요.”
  “창을 열고 구경을 하고 싶으냐? 눈을 밟으며 걷고 싶은 것이냐?”
  “눈을 밟으며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형의 대답에 스승님은 잠시 추억에 잠기시는 모양이었다.

 

 

  “창을 열고 데운 술로 긴 밤을 새우고 싶구나.”

 

 

 비상도는 자신의 마음이 꼭 그날의 스승님 마음을 닮은 것 같아 산을 오르면서도 눈이 옷에 수북이 쌓이는 것도 잊었다.

 

 

 비상도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새롭게 꾸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것이었고 이미 ⌜소요정(逍遙亭)⌟이란 당호도 지어놓은 상태였다.

 

 

 소요정이란 말은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제 1장에 나오는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온 말이었다.

 

 구속이 없는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세속적인 이해나 득실, 시비나 생사 등의 고정관념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스승님께서 소망하신 바람이기도 했다.

 

 

 날으는 새가 걸림 없이 창공을 누비듯 그렇게 살고 싶었다. 조작하지도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자연 속에서 자신 또한 누구에게 간섭 받지 않으며 산 중의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리라 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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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5

 

 

“스님, 무예를 배우고 싶습니다.”
비밀리에 전해져온 비상권법의 대가, 김대한

 

 


 스님에 대한 억척이 난무했다.

 무림의 고수였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 심지어는 교도소를 탈옥한 사람일 거라는 소문도 들렸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고 그런 사람이 마을의 뒷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를 든든하게 여겼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남재와 동해는 스님을 졸랐다.

 

 

  “스님, 무예를 배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그들에게「맹자」라는 책을 던져주었다.

 

 

  “천하의 넓은 집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바른 도를 행하며…. 대장부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왔느니라.”

 

 

 동해도 점차 공부에 흥미가 붙었다.

 알아가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특히 남재는 학문에 뛰어나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칠 정도였다. 스님께서도 그를 생이지자(生而知者:나면서부터 아는 사람)라 할 정도였다.

 

 그는 벌써「도덕경」을 끝내고「장자」를 읽고 있었으며 동해가 감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스님께 던지곤 했다.

 

 

  “스님의 도는 공맹과 노장 중 어느 것입니까?”
  “나는 공맹으로 걸으며 노장으로 숨을 쉬느니라.”

 

  “노장으로 걷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뒤로 걷는 것과 같으니라.”

 

 

 공맹과 노장의 도가 서로 상반되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지만 동해는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형이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를 하였다.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니라.”

 

 

 큰절을 하는 형에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전방에서 근무하던 중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당분간 오지 말라는 병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동해는 몇 번이나 병원문 밖에서 서성거렸다.

 

 

  “혼자 있고 싶다!”

 

 

 어쩌다 얼굴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형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고개를 돌린 채 똑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형이 좋아하는 참외를 사들고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행방을 감춘 뒤였고 스님과 동해가 백방으로 그를 찾아 나섰지만 허사였다.

 

 

 그가 모두에게서 잊혀져갈 쯤이었다. 김천 어디를 다녀오시던 스님께서 시장바닥에서 피리를 불고 있던 그를 보았고 다가가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일어나 큰절을 올리고는 시야에서 멀어졌다.

 

 

 억지로 데려가 봐야 다시 떠나갈 것을 안 스님께서 그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그가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동해는 형의 그런 모습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용화가 읍내에서 남재 형을 본 모양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형을 끌어안고 싶었지만 다시 멀리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그는 밖으로 나와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지만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겨 집에서 조금 떨어진 폭포수로 향했다.

 

 

 형이 그렇게 사라진 뒤로 매일같이 스님께 무예를 배우던 곳이었다. 그는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갔다. 가을 날씨라고는 하지만 산중의 기온은 이미 초겨울로 들어서 있었다.

 언젠가 형이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스님께서는 중국 궁중으로만 비밀리에 전해져오던 비상권법의 대가로 그의 본명은 김대한이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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