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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 인근 도시로 원정길에 나선 이유가…
딸 바보 아빠, 궁금증 참으며 딸에게 점수 따다!

 

 

 

 

 

 

 

“아빠, 저 버스 터미널에 좀 데려다 줄래요?”

 

 

중학교 3학년 딸이 어딜 가려고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 달라고 할까?

도대체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궁금증이 폭발 직전이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소리 많은 구식 아빠 되니까.

 

 

“그래? 알았어.”
“와~, 우리 아빠 쿨하다.”

 

 

아내 왈, 저더러 “딸 바보 아빠”랍니다.

이 소리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듣기 좋습니다.

 

아빠가 자식 사랑하는 거야 당연한 거니까.

어쨌든 딸에게 쿨한 아빠로 점수 엄청 땄습니다.

 

 

사실, 딸에게 용돈이 두북합니다.

외할아버지 제사 때 친척들에게 용돈 많이 받았거든요.

일부는 엄마에게 저축했지만 일부는 비자금으로 비축한 상태.

 

참, 아내는 아이들이 맡긴 용돈의 두 배를 꼬박꼬박 통장에 저축합니다.

그래야 훗날 목돈 들어갈 때 덜 고생한다고. 완전 공감!

 

 

“아빠~, 가다가 친구 둘이 태워야 돼.”

 

 

헉, 딸이 한술 더 뜹니다.

자기 데려다 준 것도 어딘데 친구까지 태워가라니….

 

아빠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여기서 툴툴댔다간 지금껏 딴 점수가 홀라당 날아갑니다. 또 참을 밖에….

 

 

“알았어. 대신 택시비 줘야 한다. ㅋㅋ~^^”

 

 

웃음으로 대답합니다.

버스 터미널까지 직선 대신 돌아가야 했습니다.

딸의 한 친구는 밖에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뭐해, 우리 아빠랑 기다리고 있구만. 빨리 나와.”

 

 

딸도 미안하나 봅니다.

전화로 재축하는 딸을 보며 웃음 지었습니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딸의 친구가 보입니다.

 

장난 끼가 발동합니다.

딸 친구가 다가오자 차를 살짝 앞으로 몰았습니다.

 

 

“아빠, 왜 그래? 친구 아직 안탔잖아.”

 

 

아빠를 탓하던 딸, 아빠 얼굴을 보더니, 그제야 장난이랄 걸 알았나 봅니다.

녀석도 웃음기를 덕지덕지 머금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앞으로 움직인 끝에 딸 친구가 차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그나저나 너 택시비 내야 한다?”
“아직 한 친구가 안탔으니, 그 친구에게 톡톡히 받으세요.”

 

 

딸 친구의 여유 넘치는 대꾸에, ‘이런~’이란 소리가 나올 뻔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귀엽기만 합니다.

 

예비 숙녀들의 재잘거림 속에 또 한 친구를 태우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번에도 장난을 쳤지요. 딸 친구가 맞장구를 칩니다.

 

 

“저 아직 안탔어요!”

 

 

타기도 전에 차가 움직이자, 딸 친구가 당황합니다.

이번에는 한 번으로 만족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너 차 타려고 몇 발짝 움직인 만큼 살 빠졌지? 살 빠진 만큼 다이어트 비용을 아저씨에게 줘야 한다?”
“한 번만 봐주세요.”

 

 

녀석들 재잘거리는 소리 때문에 차 안이 시끄럽습니다.

한창 좋은 나이의 녀석들을 보니, 흐뭇합니다. 부디 잘 커야 할 텐데….

 

 

“아빠, 잘 갔다 올게.”
“아저씨, 고마워요.”

 

 

또 하루가 이렇게 갑니다.

이런 게 작은 행복 아닐까, 싶네요.

 

딸과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지요?

 

 

“사랑하는 딸, 그리고 친구들아. 꿈을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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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여자들은 왜 꺼리지?”
“무슨 놈의 제사가 그렇게나 많은지?”

 

 

 

 

 

 

다음 주면 추석입니다.

추석에 얽힌 스트레스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원인은 뭘까?

 

 

제사.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스트레스 많이 받더군요.

제사 이야기만 나오면 온순하다가도 평상심을 잃고, 입에 개 거품 무는 이들까지 있더군요.

 

그런데 제사에 대해 긍정 마인드를 가진 한 중년 여인을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왜, 제사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여기에서 남녀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남자들 입장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여자들은 왜 꺼리지?”

 

 

남자들은 대개 이런 생각입니다.

 

제사를 잘 지내야 집안이 화목하다는 거죠.

안 그랬다간 집안 어른들로부터 꾸중과 호통이 날아옵니다.

게다가 제사를 잘 지내야 본인 죽어서도 제삿밥 얻어먹을 수 있다는 보상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사 차리기가 보통 아닙니다.

아내들 눈치 봐야 합니다.

마음 편하자고 지내는 제사가 눈치거리로 바뀐 겁니다. 실제 예입니다.

 

 

남자 A : “교회에 내는 십일조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제사 음식 차리는 비용은 엄청 아까워한다. 제사 지내라고 유산까지 받았는데.”

 

남자 B : “제사는 정성이 반인데 정성이 없다. 제사라면 짜증부터 낸다. 처갓집 제사는 잘도 챙기면서….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

 

 

 

 

 

다음은 제사에 대한 일반적인 여자들의 생각입니다.

 

 

“무슨 놈의 제사가 그렇게나 많은지?”

 

 

제사를 잘 지내야 한다는 건 아는데, 끝이 없다는 겁니다.

죽은 사람 제사보다 산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거죠.

또 제사 음식 가지고 말들은 또 뭐 그리 많냐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남편은 성에 차지 않은 눈치고 보면 제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실례를 들어보죠.

 

 

여자 A : “제사 비용 같이 내면 좋은데 나 몰라라. 맨손으로 와선 음식은 다 싸간다. 내가 시댁에 머슴 살러 왔나?”

 

여자 B : “제사만 지내면 좋은데 모였다 하면 싸움질이니 그게 더 싫다. 이렇게 제사 지내면 뭐 하나?”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 이해됩니다.

당사자가 아닌 바에야 뭐라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지요.

 

오십이 넘으면 자기만이 보는 세상눈이 있는 법.

스스로 현명한 지혜를 찾는 게 최선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기분 좋았던 중년 여인의 말입니다. 가슴에 와 닿았지요.

 

 

“십여 년 전부터 제사 때 기도만 드리다가 이번에 다시 제사상 차리니 마음이 좋더라. 제대로 대접해드리는 거 같아.”

 

 

무척이나 뿌듯해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사 음식과 제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습니다.

 

 

“오랜만에 시아버지 좋아하시는 음식도 가득 했지. 처음으로 밥, 탕, 나물, 전, 생선, 고기, 과일, 떡, 술, 포, 물, 사탕 등 참 많이 했어. 다음부턴 살아 계실 때 생일상 차리듯 해드릴 거야.”

 

 

그녀가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이유가 있더군요.

바로 ‘세월’과 ‘나이’에서 배운 ‘깨우침’이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 죽음을 준비하게 된다. 마음에 걸린 것들을 정리하며, 저 세상에 가기 전, 덕을 쌓는 거지. 제사도 이런 마음으로 지내.”

 

 

그러니까 제사 스트레스는 마음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마음먹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지요?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죽은 후에 잘하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잘하는 게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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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집에서 제사 지내세요?”

 

  

올해, 빠른 추석 부담이다.
가파르게 오른 체감 물가 여파가 크다.
과일, 생선 등 제수용품 부담이 만만찮아서다.

그래, 지인에게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추석에 집에서 제사 지내세요?”

우리에게 당연한 제사.
다만 집에서 지낼 것인가? 친척 집에서 치룰 것인가만 다르기에.

그런데 지인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사? 다른데 맡겼어.”

평소 그는 제사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자식 된 도리라는 것이다.
대신, 제사 음식은 모양새를 다 갖출 필요까지 없다는 주의였다.
마음이 우선이라는 이유였다.
또한 명절과 제사 날 등에 맞춰 음식 준비하는 아내가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제사를 꼬박꼬박 집에서 지내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제사를 맡기다니 놀라웠다. 이유를 물었다.

“암 투병 중인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가까운 절에 맡겼다.”

아내 건강을 챙기는 게 최우선이라는 거였다.
이럴 정도로 제사와 명절이면 여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클까? 싶었다.
왜냐면 우리 집에는 제사가 없어 그 스트레스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닌 부모님 영향이었다. 이런 내게, 그가 제사 스트레스를 설명했다.

 

“여자에게 제사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음식 맛은 고사하고, 음식을 얼마나 장만해야 하며, 상에 무엇을 올릴지도 걱정이다. 특히 음식도 나물, 생선, 고기, 과일, 전, 국 등이 총동원된다. 또 물가는 왜 그리 올랐는지….”

 

이런 짐을 덜기 위해 남편이 직접 장을 보고, 음식까지 만드는 집이 늘었다.
더불어 제사음식 전문점까지 등장해 성황이기도 하다.

그가 전한 명절과 제사 스트레스는 이뿐 아니었다.

 

“제사 스트레스의 가장 큰 주범은 제사 후다. 음식을 많이 했네, 적게 했네, 맛이 어쩌네 하는 뒷소리가 장난 아니다. 또 고스톱에 쌓인 설거지까지 하는 당사자는 죽을 맛이다. 이런 제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제사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거다.”

그럴 수 있겠다. 명절과 제사 때 친척들 얼굴 한 번씩 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모였다 하는 벌이는 고스톱과 다툼 등은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하여, 명절 제사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더불어 일감을 나누려는 옆 사람들 자세.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기며 하는 적극적 자세.

그래야 아내들이 여자들이 명절 혹은 제사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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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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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 새벽에 저랑 시장에 갈래요?”

며칠 전, “기분 나빠 죽겠어요.”라며 투덜대던 아내였다. 그러면서 “속마음은 안 그러는데, ‘각자 집에서 그냥 설 쇠요’하고, 속과 다른 말을 해버렸지 뭐에요.” 했다.

이유인 즉, “설음식 어떻게 할 거냐?”는 누님 전화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선 누구 편을 드느냐가 중요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아내 편을 들었다.


시장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

“큰 누나는 왜 그런 전화를 했대. 엄마 안 계실 때 한 번쯤 자기 집에서 음식 만들어 아들과 사위, 며느리와 먹으면 좋을 텐데….”

이게 내 속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명절 음식은 연로한 어머니 몫이었다.

누나는 명절이면 아들에 딸, 두 사위까지 어머니 집으로 불렀다. 어머니는 “가족이 많이 모이면 즐겁지 않냐?”고 하셨지만, 이게 불만이었다. 일거리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래, “시장 가자”는 아내 말을 거절했다. 아내의 고생이 보여서다.

제사가 없으니 굳이 음식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만 집에 모시고 간단하게 떡국만 끓일 참이다. 그리고 입원 중인 어머니께 떡국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엄청 행복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반응이 벌써 있어야 할 누나의 반응이 없어서다. 나의 속 좁은 소견이 미안하기도 하다. 이게 가족일까?

반대로 설음식 만들겠다는 아내의 말이 엄청 반갑다. 또한 아내가 미스 코리아 저만 가라할 정도로 엄청 예쁘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 나는 아내와 함께 새벽시장에서 장을 봤다. 남자의 이율배반은 이런 것?
여하튼, 명절 때면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 행복하다. 명절은 여자만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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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든든한 버팀목”
설 명절,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는 게 효도


“부모님이 그립다!”

설을 맞아 어제 만난 지인은 회포를 풀던 중 부모님과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설인데 고향에 가면 되잖아요. 왜 안 가시게요?”
“아직 몰랐어? 두 분 다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시고 안 계셔.”

헉. 그렇잖아도 그를 만나기 전, 통화한 다른 지인도 그랬었다.

“지난 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번 설에는 고향에 안가. 대신 어머니 생신이 설 일주일 뒤라서 그때 형제들이 다 만나기로 했어.”

젊었을 땐 거의 부모님이 살아 계셨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졌다. 세월은 이렇게 가족 여건을 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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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라도 꼭 가서 얼굴 내미는 자체로 효도”

“부모님이 안계시면 형제라도 모여 제사를 지내야죠?”
“내가 말 안했나. 우리 가족은 2남 2녀인데 형님이 돌아가셔 부모님 제사는 내가 지내. 부모님이 계셔야 가족이 모이지, 안 계시면 만나기도 어려워.”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군대 있을 때 돌아가셨어. 막내아들 효도도 못 받아보고 돌아가셨지.”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러면서 하는 말,

“부모님 계실 때 잘해. 부모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야. 효도가 따로 없어. 명절에 늦더라도 꼭 가서 얼굴 내미는 자체가 효도야. 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집에 온대요?”
“당연히 와야지. 우리 집은 늦더라도 꼭 와야 돼. 아버지가 용돈 줄 때는 명절에 꼭 오라는 조건부야, 조건부. 안 그래?”

옮은 소리다. 하지만 매번 바쁘다는 핑계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 속을 알면서도 잊는다. 명절,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는 게 효도라니 늦기 전에 효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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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추석 풍경’
[아버지의 자화상 32]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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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런 방앗간이 있더군요.

얘들아!

아빠, 오랫만에 편지 쓰지?
이번에는 아빠의 '추석에 대한 추억'이란다.
아빠가 자랄 때, 추석만큼은 늘 풍성했단다.
사과ㆍ배ㆍ감 등 과일이 익어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들판에선 곡식 추수하느라 정신없고,
귀뚜라미 노래 소리도 가득했지.

옛 추석 때, 아이들은 운동화며, 옷을 새로 얻어 입고 꽃단장을 했지. 동요 가사처럼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했었단다.

그 맛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 지금이야 넉넉해져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 옷과 신발 사기가 힘들었지. (니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난 줄이나 알아? ㅎㅎ) 또,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송편’이지. 너희도 할아버지 댁에 가서 고모랑, 언니랑 빚어봤으니 빚는 방법은 알겠지?

그럼 지금부터 아빠가 찾은 방앗간 이야기와 이에 얽힌 옛 이야기 해 줄게? (으으~, 우리 아빠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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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쌀을 방앗간에서 찧으면서 만들기가 시작돼. 지금이야, 시장에서 송편을 사, 제사상에 올리지만, 예전에는 조상에게 바칠 제사 음식을 사서 올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그래 올망졸망 앉아 손으로 직접 빚었단다. 물론 여자들 차지였지. ㅋㅋ.

어제(10일) 오후, 방아 찧는 추석 풍경 잡으려고 여수시 소라면 덕양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를 찾았단다.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댄 모습까지. 어쩜 그리 아빠 기억 속의 방앗간이 여태껏 남았는지 신기하고 반가웠지. 이곳은 올해 초, 발견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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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지붕.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댔습니다.

양철판을 덧댄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덩그러니….

그런데, 방아 찧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구나.(‘정미소’인데, 그냥 '방앗간'이라 할게) ‘참새와 방앗간’이라고, 옛날에는 방앗간 주위에 낱알 한 톨이라도 먹어볼까, 틈새를 엿보던 참새가 많았단다. 그래 '참새와 방앗간'이라 하지.

지금, 방앗간은 있는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더구나. 조금 실망했지. 사진 찍을 앵글을 미리 생각했었거든. 대신 고양이가 참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 뭐야?

주위에 묻고서 40여년 된 방앗간 주인장 심정섭(75)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1968년에 인수해 3년 만에 새 건물을 올렸던 게 지금의 방앗간이라 더구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어.

“왠 고양이가 저렇게 많아요?”
“참새가 사라지니 쥐가 들끓어. 쌀 좀 먹어보겠다고 정미소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가만 놔둘 수가 있어야지. 천적인 고양이를 이용할 밖에….”

고양이가 족히 20여 마리는 넘겠더구나. 너희들이 고양이들을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그렇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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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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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늘어져 있습니다.

쌀밥은 어른들 차지…아버지가 남기신 하얀 쌀밥

“옛날이야 방앗간에 줄을 나래비로 섰지. 서로 먼저 쌀을 찧으려는 마음 굴뚝같은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어? 행여 세치기라도 할까, 눈을 부라리고 지켰지.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지금은 파리만 날려.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무서운 거여!”

그냥 쉽게 떡집에서 사면 그만인 것을, 줄까지 길게 서서 쌀을 빻는 것 상상이 가니? 너희들도 세치기 하는 사람 보면 괜히 뿔나잖아. 세치기하는 사람 정말 밉지? 아빠도 방앗간에 몇 차례 줄 섰던 기억이 나.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내내 보리밥만 먹었단다. 밥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쫓아 가마솥 뚜껑을 열면, 보리밥 한쪽에 허연 쌀밥이 얹어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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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리밥. 이젠 건강식이 되었지요.

그래, 가마솥에 들어 있는 뜨거운 쌀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몰래 손으로 집어 입에서 호호 불고 먹기도 했어. 한쪽에 있던 쌀밥은 언제나 아버지와 할머니 몫이었지. 어머니가 어른들 쌀밥을 먼저 뜨고, 나머지는 쌀과 보리를 섞어 우리들에게 줬지. 이것도 감지덕지하고 먹었어.(그런데 니들은…. 케케먹은 아빠?)

다른 때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건데, 밥상에서는 아주 천천히 먹었지. 혹시 아버지와 할머니가 쌀밥 남기면 먹으려고. 이걸 눈치 채신 아버지는 밥을 드시다가 수저를 슬며시 놓으셨지. 이게 아버지의 진한 마음 아닐까? 그러면 쌀밥을 서로 먹으려고 울고불고 난리 났지.(뭐라고? 언제 적 이야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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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머리에 내린 서리는 쌀밥 먹는 신호탄!

어쨌든 추석 때는 추수한 쌀을 찧어 새 쌀을 조상님께 받쳤지. 방앗간에서 쌀 찧을 때, 처음에는 그 집 가장이 쌀 들어가는 걸 지켜봤지. 그러면 아버지 얼굴이며,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것처럼 쌀 가루가 내려앉았지.

그게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어. 그런 후, 허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이게 아빠가 느끼는 ‘가을의 풍요로움’이야.

쌀 찧는 비용은 얼마였냐고? 심정섭 할아버지 말을 그대로 옮길게.

“정미소가 한참 잘나가던 7ㆍ80년대에는 추수 후 나락을 84㎏ 쌀로 찧어준 대가로 작은되 고붕으로 3되를 받았어. 1되는 지금 돈으로 40㎏ 쌀 한 가마니 정도 가치야. 그게 6~7가마나 됐지. 그걸 팔아 7남매 입히고 가르치고도 남았지. 지금은 고작해야 쌀 5대를 받는데 찧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어. 사먹으니 쌀 찧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

옛날에는 40㎏가 한 가마니였는데, 요즘은 무겁다고 양을 줄여 보통 20㎏를 한가마니로 친단다. 쌀 한가마니에 대충 4~5만원 하니까, 쌀 다섯 되면 얼만지 계산해봐.

그만큼 쌀값이 똥값 된 거지. 고생은 죽어라고 하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짓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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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시작 부분.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6ㆍ70년대 호황기 때에는 외국에서 구호 쌀이 들어오면 밤새도록 서너 달 동안 쌀을 찧어야 했어. 그때 방앗간은 주로 동네 유지들이 하는 업이었지. 빽 있는 권력층도 많이 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그래도 밤새도록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 날 때가 좋았는데…”

“왜, 어떻게 권력층이 그럴 수 있냐고?” 욕심 때문이겠지! 자세한 건 10월 10일 이후, 가을 추수 완전히 끝나면 도정한다니까, 그때 같이 방앗간에 가서 할아버지께 직접 들어보자.

얘들아!

좀 딱딱하지. 그래도 신기한 구석이 있지? 그런 세상도 있었다니 하고 말이야. 알게 많은 세상이라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단다.

우리 이번 추석에 달구경하며 토끼랑 놀자? 아빠 이야기는 여기서 끄~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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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껍질과 쌀로 나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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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olocook (비바리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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