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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종 스님의 해맑음 토끼가 알아봐 ‘이심전심’
돌종 소리 ‘종석대’와 우번 스님의 전설 ‘우번대’
스님, 외로움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수행’
[해탈로 가기] 지리산 종석대 밑 ‘우번암’





지리산 우번암입니다.








희망사항이 있었습니다. 가당찮게 “깨우침을 얻은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종석대 돌종(石鐘) 소리” 듣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이 욕심이 지리산 종석대 밑 ‘우번암’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는 ‘역시나’였습니다. 게으른 중생이 무슨 ‘해탈’을 얻겠다고 감히 나섰을꼬. 그럼에도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노고단과 종석대가 훤히 보이는 바위에 섰습니다. 자두를 꺼냈습니다. 자두는 목마름과 허기를 동시에 물리칠 비책이었지요. 노고단을 휘감은 구름이 한입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땅에 씨를 뿌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훗날 이 길에서 주렁주렁 달린 자두와 만나는 상상을 했습니다. 우번암 별채, 해우소를 거쳐 우번암에 이르렀습니다.





토굴입니다. 여기서 혼자 40여년을 사셨다니...




우번암 별채입니다.




40여년 홀로 수행하신 스님, 마음의 문을 열다!



우번암(牛翻庵)은 양철집입니다. 양철지붕이 비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줄로 단단히 동여 맺습니다. 더덕이 줄을 타고 오릅니다. 더덕 향이 우번암을 감쌉니다. 향초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리를 통해 절집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을 봅니다. 절집 옆으로 텃밭과 우물, 산신각이 자리합니다. 지인이 샘에서 물을 떠 산신각에 올립니다. 물 한 모금 마십니다. 시원합니다.



소담한 장독들 반질반질 합니다. 이걸 보니 부지런한 스님 같습니다.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민머리를 한, 사람이 나옵니다. 오전 예불을 마친 법종 스님일 거란 짐작뿐. 그가 사람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샘터에서 그릇을 씻습니다. 부처님께 제를 올렸던 그릇들입니다. 스치는 나그네가 익숙한 듯합니다. 우물가의 스님 옆으로 다가 가 말을 건넵니다.



“스님, 암자에 사람들이 자주 오나요?”
“예전에는 일 년에 두 세 사람 봤는데, 요즘은 지나는 사람이 조금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과 글을 인터넷에 올려 많이 알려졌습니다.”



지인이 서먹한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법종 스님, 안녕하십니까?”
“어~, 난 또 누구시라고. 어서 오세요.”



목소리가 확 달라졌습니다. 스님, 경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친근함과 반가움이 앞섭니다. 아는 사람에게 특히 잘한다는 우리네 모습 그대롭니다. 스님, 촌로 같다더니 영락없이 촌로입니다. 40여년을 우번암에서 홀로 수행하셨다는 법종 스님,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물가에 나와 제기를 씻는 스님.

산 중에 있으니...

우번암이 있던 자리




법종 스님의 해맑음을 토끼가 알아 봐 ‘이심전심’



법당으로 향합니다. 오래된 토굴이라 문 열기도 힘듭니다. 삐걱대는 문, 겨우 열었습니다. 목탁, 죽비, 법요집 등이 놓인 탁자. 걸린 승복. 켜진 촛불. 연등. 문수도량인 지리산,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셨습니다. 벽 한쪽엔 달마도가 걸렸습니다. 삼배를 올립니다.



“스님, 식사하세요. 스님 것까지 김밥 세 개 사왔습니다.”



피식 웃음이 납니다. 오지 절집에서 점심 공양이 김밥이라니. 스님도 머쓱했을까. 옥수수 세 개를 내오십니다. 그러면서 “간을 안 한 자연 그대로의 옥수수 맛이라 입맛에 맞으려나?”하십니다. 오지 산중에 눈으로 먹는 옥수수 맛은 일품입니다. 셋이 우번대(텃밭) 앞 평상에 앉아 김밥으로 황제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옥수수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자연의 맛 그대롭니다. 음식을 남겼습니다. 산짐승들 몫입니다.






법종스님...



황제의 밥상입니다.


길...




“암자에 재밌는 일이 생겼습니다. 산토끼가 어제 오늘 이틀 연속 오더니, 내가 가까이 가도 풀만 먹고 도망을 안가요. 좋은 일 있으려나 했습니다.”
“저희가 올 줄 토끼가 벌써 알았나 봅니다. 산속에 같이 사는 식군 줄 토끼가 안 게죠.”


“내가 고기나 먹고, 나쁜 짓하며 살았어 봐. 산토끼가 진작에 도망갔지.”
“그러게요. 토끼들도 사람 보는 눈이 있겠지요.”



스님의 해맑음을 토끼가 안 게지요. 이심전심. 자연 속에 있으니 스스로 자연이 된 게지요. 스님의 천진하고 선한 눈은 순간순간 번쩍였습니다. 우번암은 “50년 전쯤 스님의 스승인 백운 스님이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지금의 법종 스님이 백운 스님을 대신해 수행 중입니다. 우번암은 경허 스님(1849~1912)의 3대 제자인 삼월(三月) 중 맏상좌인 수월 스님 등이 머문 곳입니다.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돌종 소리 ‘종석대’와 우번 스님의 전설 ‘우번대’




“처음에는 나 혼자 있으면서 보따리 많아 쌌어. 나가도 며칠 있으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 있더라고. 또 지리산 노고단을 지키는 삼신 할매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많이 나타났어. 할매랑 같이 싸워 이긴 후에는 다시는 안 나타나대. 할매가 어디 그냥 할맨가. 부처님이지. 저놈이 여기서 얼마나 버티나 보자 시험한 거지. 그렇게 사십 년이 훌쩍 넘었어.”



홀로 수행한 역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종석대 돌종이 다른 방식으로 울렸다는 소리였습니다. 스님, 경허 스님 일화와 우번대의 전설을 만지작거리더니 일순간 꺼내십니다.



“경허 스님이 수행하던 중, 불공드리러 온 여자와 한 방에 살게 됐대. 근데 스님과 여자가 한 방에 같이 살아도 아무 일이 없는 거라. 그 여자가 불공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난 여자 아니냐?’고 서운해 했대. 경허 스님은 남녀 구분을 이미 넘은 거지.”



“신라 때 젊은 스님 우번이 상선암을 찾아 10년 좌선 수도를 결심하고 수행했다. 9년째 되는 어느 날, 소복 입은 한 여인이 나타났다. 유혹에 넘어간 우번은 여인을 따라 종석대에 올랐다. 어느 순간 여인은 사라지고 관세음보살이 서 있었다. 우번은 관세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하기 위해 여자로 변신한 것임을 깨닫고 어리석음과 허튼 마음을 참회했다. 우번이 다시 눈을 뜨니 관세음보살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수행 부족을 깨닫고 상선암 대신, 관세음보살이 서 있던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수도했다. 우번은 마침내 성불하여 신라의 큰 스님이 되었다. 우번 스님이 도통하는 순간, 신비롭고 아름다운 돌종 소리가 울렸다 하여, ‘종석대’라 부른다. 종석대는 우번 조사가 수도정진한 곳이라 ‘우번대’, 관세음보살이 현신했던 자리라 ‘관음대’라고도 불린다.”






해탈로 가는 우번암...




종석대... 돌종 울리는 소리...



삼배...






스님, 외로움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수행’




“스님, 외로움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혼자 40여년 수행 중인 법종 스님을 만나면 던질 화두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을 만난 후 질문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는 부처님 전에 매일 하루 세 차례씩 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고행(苦行) 속 수행이 모든 것을 이기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여, 외로움 대신 삶에 대해 물었습니다.



“삶은 인간이 가야 하는 길입니다. 나쁜 짓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인연법이지요. 당한 사람은발 뻗고 자지만 가해자는 발 뻗고 못자는 이치입니다. 이것도 내가 당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저도 사진을 20여년 했어요. 어느 날 필름, 사진, 카메라를 다 도둑맞았어요. 사진에 미쳐 다니니까 부처님이 정신 차리라고 그랬나 보다 했지요. 참선은 자기가 찍으려는 사진 앵글이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이게 삶이지요.”



스님 연세가 76세랍니다.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병원에 가야”하는 서글픔을 전했습니다. 누군들 육신의 나이를 이기겠습니까. 그러면서 스님은 병원비 걱정을 했습니다. 혼자 수도 정진하느라 무소유 삶을 살았기에 충분히 이해됩니다. 병원비, 제가 후원하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부처님께서 후원자를 물색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스님, 길 떠날 채비합니다. 경북 구미에서 오는 손님 맞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우번암에서 쓰는 양초를 도맡아 대준다니 감사할 일이지요. 이런 공덕이 모여 큰 덕을 입을 겁니다. 인연법. 하룻밤 묵을 날을 기약하며 스님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더덕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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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번암, ‘집 떠남’은 설레임이 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기’ 속에 정화(淨化) 가득하고
[해탈로 가기] 지리산 종석대 아래 ‘우번암’ 가는 길





지리산 산의 깊음은...





왜 그랬을까. 번번이 어긋났습니다. 지인과 종종 절집 순례를 합니다. 근데, 이 절집은 가는 날이 요상하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대가 맞을 법 한데도. 때가 아니었나 봅니다. 마음 너그럽게 먹었습니다. 그래 설까, 아님 바람이 컸을까. 드디어 소원 풀었습니다. 지리산 종석대 아래 토굴 ‘우번암’. 인연은 소소한 말에서 시작되었지요.




“지리산 토굴에 한 번 가세. 우번암 스님은 스님이라기보다 촌사람 같은데 자네랑 어울릴 거네.”



인연. 맺기 쉽지 않았습니다. 지인은 “우연히 절에 따라 갔다 인연이 됐다”며 “하룻밤 묵으려면 여름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무렴. 지리산 정기 받으려면 하룻밤 자야지요. 그랬는데 2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찾게 된 겁니다. 그 어렵던 일정이 풀리려니 쉽게 풀리더군요. 심심풀이 땅콩삼아, 무심코 넣은 문자가 대박난 겁니다.



“성님, 낼 아침 지리산 절집에 가요?”
“낼 아침 8시에 만나세. 몸만 오면 김밥은 내가 가져갈게.”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가는 길입니다.




콧노래가 나옵니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데도, ‘집 떠남’은 역시 설레이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 맛에 떠나는, 또 길 위에 서는 게지요. 떠남은 동행이 ‘누구냐?’가 한 몫 합니다. 대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구별은 간단합니다. 1차는 ‘내게 잘 해주는가, 아닌가?’로 판명 납니다. 2차는 인간성. 3차는 깊은 정으로 구분되지요.



동행한 지인과 나이 차가 15년여 나는데도, 절집을 함께 다니는 이유가 있습지요.



첫째, 어슷한 사람 ‘끼리끼리’지요.

둘째, 종교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에.

셋째, ~을 통해 삶을 ‘함께 배움’이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첫째, 말수가 적다는 거.

둘째, 겸손하다는 거.

셋째, 삶의 향기가 있어 끌리기 때문입니다.



‘훌쩍 떠남’에 이런 사람과 동행하면 흥이 절로 나지요.



노고단 가는 길과 노고단...



- 형수님과 왜 같이 안 다니세요?
“집 사람 취미는 따로 있어. 자꾸 권하면 강요가 돼. 자기가 즐기는 걸 해야지.”



- 승진이 안 되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살펴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답은 자기 안에 있지.”



- 능력 있는데도 사람들이 꺼리는 이유가 뭘까요?
“말 많고 시건방져서 그래. 자기만 최고인줄 아는 부류니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해.”




동행한 지인입니다.

지리산은 역시...




“삼한시대.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 왕이 전쟁을 피해 지리산으로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피난생활 했다.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이 ‘달궁’이다. 마한 왕이 달궁을 지키기 위해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해 지키게 했는데 이를 ‘팔랑재’, 서쪽 능선은 정 장군이 지키게 해 ‘정령재’, 동쪽은 황 장군이 지켜 ‘황령재’, 남쪽은 중요한 요지여서 성이 다른 장군 3명을 배치 해 ‘성삼재’라 부른다.”



성삼재 유래에 얽힌 전설입니다. 해발 1,090m.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 길을 걷습니다. 지리산. 역시 다릅니다. 공기도, 산의 깊이도. 피부에 스치는 공기가 상큼하고 상쾌합니다. 첩첩산중입니다. 지리산, 깨우침을 얻기 위한 큰 도량입니다. 노고단(1507m)으로 향합니다. 과거 물이 부족해, 노고단 부근 계곡물 일부를 구례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 하여 ‘물을 넘긴다’는 뜻을 지닌 ‘무넹기’에서 종석대(1356m) 방향으로 틉니다.



종석대입니다.

오솔길에는...




한적한 오솔길이 반갑습니다. 토굴에 혼자 계시는 스님이 다니시는 길. 정성이 느껴집니다. ‘천천히 느리게 걷기’ 속에는 정화(淨化)가 가득합니다. 입에선 더러운 말 대신, 감탄이 흘러나옵니다. 코는 지리산의 은은한 산 내음 덕에 비로소 숨다운 숨을 쉽니다. 귀는 청아한 새 소리와 계곡 물 흐르는 소리에 깨끗함을 되찾습니다. 눈은 야생화와 자연의 푸르름에 다시금 맑아집니다. 살랑살랑 스치는 바람은 피부를 일어나게 합니다.



걷다보니 잊었던 나를 되찾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성삼재에서 종석대까지 1시간 여 걸었을까. 그 여파로 땀이 흐릅니다. 닦고 닦아도 또 나옵니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땀이 나오는지. 땀, 열심히 살아 움직였다는 노력의 증거지요. 땀은 나눔을 실천하게 합니다.



“칡즙 드세요.”




우번암입니다.




‘삶’. 누구에게나 한 짐입니다. 그래선지, 삶의 정의도 각자 위치와 역할에 따라 다르지요. 삶에 대한 깊음은 현실을 벗어난 구도자보다 일반 중생이 더 깊지 않나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구도자들은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요. 이에 반해 중생은 세상과 부대끼며 습득된 경험들이 삶의 지혜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생철학이랄까. 자연 속에선 누구나 도인이 됩니다.



- 삶이란?


“살아보니 이끌려 가는 거 같고. 번개보다 더 순간적인 것 같다. 돌아보면 아등바등 살았다. 지금도 아등바등 사는 건 마찬가지지만. 삶 속에는 전쟁, 평화, 사랑, 미움 등 수많은 모습이 들어 있다. 어찌 한 마디로 표현되겠는가. 그러니 필부다.”



- 존재란?


“내가 없으면 삶도 없다. 내가 있는 다음에 모든 게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 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거 아닐까.”





걷다보니, 토굴 ‘우번암’입니다. 초행길이라 어디쯤인지 가늠 못하는 사이 당도했습니다. 헌데, 도착해 보니 모르고 걷는 게 더 속 편하다는 생각입니다. 때론 아무것도 모른 체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우번암 지붕으로 오르는 ‘더덕’이 향으로 피어납니다. 스님, 우물가에서 제기(祭器)를 씻습니다.



더덕 잎입니다.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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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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