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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그리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7.10 지도는 왜 그리게 하셨을까?

지도는 왜 쓰고, 그리게 하셨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거울?
[아버지의 자화상 1] 벼루, 먹, 우리나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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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거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삼십여 년 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여름철이면 정어리를, 겨울에는 돔을 주로 잡았던 듯합니다.

지금은 물고기 씨(?)가 말라, 어민들이 삶의 터전인 황폐화된 어장을 떠나는 실정이지만, 이때만 해도 고기가 넘쳐 났지요. 특히 기억되는 건 잡아온 정어리를 털 때, 그물 뒤에 서서 땅에 떨어지는 정어리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광경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뭐라 한 마디 하실 법도한데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제가 재미삼아 주어온 정어리로 만든 찌개는 아버지께서 가져오신 것 보다 ‘더 맛있었다’는 순전히 혼자만의 별난 기억도 있습니다. 굳이 정어리를 주어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사람들 속에서 주웠던 것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입니다.

초등시절, 붓글씨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던 ‘아버지’

제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각인(刻印)되었던 무렵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습니다. 이때 당신은 붓으로'一'자(字)와'l'자(字)를 쓰게 하시고, 우리나라 지도를 사실대로 그리게 하셨던 기억입니다.

당시, 벼루와 먹을 가져오라시며 화선지 대신 신문을 펼쳐놓고, 벼루에 물을 부어 먹 가는 법을 일러주셨죠. 그리고 ‘이렇게 해 봐라’ 했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대한 저는 당시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내내 먹만 갈았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붓에 먹을 묻혀 신문 위에 ‘ㅡ’자만 쓰게 하셨지요. 그 후에는 ‘l’자만 썼었지요. 그 때, 왜 아버지는 똑 같은 글자만 쓰시게 하실까? 의아했지요. 덕분에 그렇잖아도 튀어 나온 입이 더욱 튀어나왔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붓글씨를 배운 후 아버지는 위도와 경도를 그리는 방법을 일러 주시며, 도화지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위도와 경도 그리는 데는 자와 콤파스, 지우개 등이 필요했지요. 자로 간격을 재고, 그 간격에 맞게 도화지에 그리는 작업은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었지요.

위도와 경도가 그려지면 우리나라 지도의 외곽선을 옮겨야 했구요.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는 꼭 압록강에서 시작해 압록강에서 끝이 났지요. 제일 쉬웠던 부분은 두만강과 남해안이었던 거 같습니다. 제일 어려웠던 곳은 영일만 부근의 호랑이 꼬리와 서해안이었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고기 잡으러 가실 때는 의례히 '一','l'쓰기와 지도 그리기는 숙제로 남았고, 오시면 검사를 맡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칭찬과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유년(幼年)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입니다. 이 과제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로 아버지의 숙제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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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 것이겠죠?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시던 ‘아버지’

당시에 저는, 아버지가 내려주신 과업(課業)을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숙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 먹을 갈던 때의 부드러운 감촉, 우리나라 지도를 그린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 등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후 3년여 동안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때로 다른 과목을 대신 채우곤 했는데,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면 ‘선생님 지도 참 잘 그리네요!’ 하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그만큼 지도 그리는 데에는 뿌듯한 자신감이 묻어 있지요. 이것이 제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一'자와'l'자만 왜 쓰게 하셨을까? ‘人’(사람인)과 ‘ㆍ’(점, 마침표) 와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도(道)ㆍ불(弗) 등 폼 나는 다른 글자들도 많은데…….

또한 아버지는 우리나라 지도를 왜 그리게 하셨을까? 민족의 비극이었던 6ㆍ25를 겪었던 아버지는 왜 남쪽만 그리게 하지 않고, 남과 북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그리게 하였을까? 등이 많이 궁금했지요.

지금은, 아마 ‘말을 아끼면서 한 길로, 자신을 세워가라’, ‘우주의 중심인 우리나라만 제대로 알아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는 뜻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입니다.

아버지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여쭤보질 않았습니다. 아니, 굳이 여쭤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꼭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뭐라 말씀 하실까? 궁금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저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 걱정입니다. 지인들은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라”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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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박한 배, 그리고 그 위를 다니는 새?

지금 제가 주제넘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감히 생각하는 건, 대책 없이 결행했던 결혼과 부모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아내는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삶 속에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부여한 과제(課題)는 혹여 ‘당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하며, 오늘도 내일의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적에도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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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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