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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 상 도 1-2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것이냐? 길이 사람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냐?”

 

 

 동해는 영문을 몰라 밖에서 한참 동안이나 서성거렸고 간간히 터져 나오는 스님의 울음 섞인 말소리가 문틈을 새어나왔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동해를 불렀다.

 

 

  “급히 나와 갈 곳이 있으니 채비 하거라.”

 

 

 스님의 표정으로 보아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으나 물을 수도 없는 분위기라 대충 짐을 챙겨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스님의 걸음이 여느 때보다 서두르시는 것 같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무거운 정적을 깨고 스님께서 물었다.

 

 

  “네가 방금 걸어온 길이 좁더냐? 넓더냐?”

 

 

 감히 무어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동해가 입을 닫았고 스님은 자신의 물음에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답을 놓았다.

 

 

  “혼자 걷기는 적당하지만 두 사람이 걷기에는 비좁을 것이야. 마음속에 든 사람을 잊어야 하느니, 그것이 운명이라면 잊어야 하느니.”

 

 

 들녘은 추수를 앞 둔 시점이라 농부들의 바쁜 손길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계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

 

 무겁던 마음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말문을 닫고 있던 산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을 보니 비록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동해는 괜히 신이 나 평소에는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했다.

 

 

  “스님께서는 왜 출가를 하셨습니까?”


  “나는 스님이 아니니라.”

 

  “예?”


  “다만 스님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니라.”

 

 

 동해가 남재 형에게 어렴풋이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해가 스님을 따라 들어간 곳은 국군수도통합병원이었다. 그때까지도 스님께서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 함구하셨고 그는 병원의 간판을 보고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해는 계속해서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남재가… 남재가 중상을 입었다는구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며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얀 종잇장처럼 텅 비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께서 병실의 문을 열 때에야 겨우 벽을 짚고 일어서기는 했으나 차마 형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애써 고개를 돌리며 두서너 걸음을 옮겼을 때 독백 하는듯한 스님의 말씀이 낮게 깔렸다.

 

 

  “남재가 지뢰를 밟았다니…….”

 

 

 모든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 몸속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한 줄기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님 등 뒤에 숨어 겨우 감은 눈을 떴을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형의 모습이 무섭게 다가왔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것도 모자라 팔과 다리가 결박당한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누워 있는 형의 몸에서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말은커녕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스님께서도 하염없이 벽만 바라보고 서 계셨다.

 

 여간해서 시장음식을 사 오시지 않던 스님께서 남재 형이 군대를 가기 며칠 전 양념통닭 한 마리를 사 오셨다.

 

 그때 형이 넉살을 부렸다.

 

 

  “스님, 제가 제대하고 나올 때까지 이곳에 계셔야 합니다.”

 

 

 모처럼 스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대꾸를 했다.

 

 

  “그럼 나더러 여기에 꼼짝 않고 있으란 말이냐?”


  “그게 아니라……”


  “좋은 숲을 만들면 길조가 날아들기 마련이니라.”

 

 

 그 날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모양새로 돌아오다니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동해는 형의 몸에 손을 얹었다.

 

 

  “형……형!”

 

 

 차가운 감촉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님의 미발표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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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

 


비 상 도 1-1

                                                                       

 

 어느 듯 산중턱에도 간디의 초상을 닮은 마른 나뭇잎이 등허리가 굽은 채 떨어져 내렸다.

 

 평소 같으면 떨어지는 나뭇잎을 그대로 두었을 것을 비상도는 괜스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손님이라도 오시려나?”

 

 

 아침부터 까치가 요란하게 울어댄 까닭이었다.

 마침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용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스승님, 돌아오는 길에 어떤 소경이 피리를 불고 있었습니다.”
  “어디서였느냐?”

 

  “읍내 시장 한 모퉁이였습니다.”
  “어떤 모습이었느냐?”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마저 감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손으로 피리를 부는데도 소리가 절묘했습니다.”

  “그 소리가 아름다웠느냐? 아니면 한 손으로 부는 것이 신기하였느냐?”

 

  “소리도 좋았지만 한 손으로 부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비상도는 멀리 하늘에 시선을 모은 채 바람에 떠내려가는 구름 한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전거를 한 발로 타는 것과 같다. 아마 그분이 두 팔을 가졌더라면 한 손으로 피리를 불지는 않았을 것이야.”
  “그건 왜입니까?”

 

  “두 발을 가진 사람이 한쪽 다리로 자전거를 젓는 것을 너는 본 적이 있느냐?”
  “….”

 

  “그 소리가 틀림없이 슬펐을 것이니라. 그 마음의 소리를 들여다보아야 하느니.”

 

 

 비상도는 그 말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어릴 적에 남재 형이 즐겨 불렀던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피리를 불고 있을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래 전의 일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제트기가 지나간 하늘에 하얀 구름길이 열린 어느 청명한 가을날 오후였다.

 

 동해는 한 시간 가까이 바위에 걸터앉아 비행기가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불어온 한 자락 바람이 툭 하고 굴밤나무를 건드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설모 한 마리가 떨어진 굴밤을 입에 물고는 그것을 나무 덤불 속에 숨기고 때로는 돌 틈 사이에 밀어 넣었다. 바로 그때 아래에서 스님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무얼 보고 있었느냐?”
  “청설모가 굴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너는 그놈이 자신이 숨긴 것을 다 찾아낼 거라 생각하느냐?”
  “그건….”

 

  “열 개를 숨기면 겨우 절반을 찾아 낼 뿐이니라.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니라. 때로는 망각이 만물을 키우느니….”

 

 

 동해는 여지껏 스님께서 먼저 자신에게 말씀을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스님, 잡념이 저를 괴롭힙니다.”

 

 

 동해가 먼저 물으면,

 

 

  “마음이 있기 때문이란다. 너는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손가락 끝에 있단다. 가시로 손가락 끝을 찔러 보아라. 그날은 잡념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야.”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남재 형이 물었을 때에도,

 

 

  “사람 마음속에 고약한 혹 주머니가 두 개 있으니 하나가 탐욕이고 다른 하나는 시샘이니라.”

 

 

 어느 날 산 아래 마을을 지나다가 밭에서 일을 하시는 농부들을 본 형이 스님께 말을 걸었다.

 

 

  “대체 사람은 얼마만큼 가져야 적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도 스님께서는 멀리 들판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답을 놓았다.

 

 

  “남을 위해 쓸려고 하는 사람은 담는 그릇이 커야 하고 자신을 위해 쓸려고 하는 자는 그 그릇이 작야야 하는 게지.”

 

 

 형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 그릇은 얼마만한 것입니까?”
  “이놈아, 네가 언제 보여주기라도 했더냐?”

 

 

 가르침과 배움은 주로 이런 문답식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신 스님께서는 묻지를 아니했는데도 동해에게 먼저 말씀을 걸어오셨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신 후 흐느끼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다음에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변재환 씨의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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