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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마 기꺼이 독수리 밥이 되고 싶었던 모양
둥지 속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전 멈춤의 의미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인해 힘든 자연 표현”
김태완 화가 네 번째 개인전, ‘새! 하늘을 날다…’
 

 

 

 

 

혹부리 오리(41×3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전시 관람객을 맞아 이야기하는 김태완 화가.

 

개똥지빠귀(34×24, 아르쉬지 수채, 2013)

 

 

 

‘새! 하늘을 날다…’

 

 

김태완 화가가 <새>전(展)을 열고 있습니다.

김 화가의 4번째 개인전인 이번 새 전시회는 오는 20일까지 여수시 화장동에 자리한 전라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의 ‘린 갤러리’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주제로 한 김 화가의 옴니버스 전시는 ‘새’전에 이어,

‘물고기’전, ‘들꽃’전 등까지 계획되어 있어 관심이 쏠리는 중입니다.

 

 

 

 

전시관 입구의 김태완 화가.

 

물총새(32×24, 아르쉬지 수채, 2013)

 

 

 

그는 <자연 시리즈>전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인해 자연이 힘들어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자연들이 이제는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자연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거추장스런 옷들을 몸에 걸치지 않고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 온 태초의 인간으로의 회귀 본능이지 싶습니다.

 

문명은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숨긴 채 편리성과 풍요를 주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연 훼손으로 인해 다른 생명들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니까 김태완 화가의 <자연 전>은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문명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새, 물고기, 들꽃 등 모든 자연을 품고자 하는 한 인간의 애타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마우지(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방울새(34×24, 아르쉬지 수채, 2013)

 

 

 

김태완 화가의 전시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전시실 벽면에서 날고 있는 새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김 화가가 빠져 있던 그림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날개를 활짝 펴고, 발톱까지 확 세운 ‘독수리’였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림 속 독수리 밥이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설까, 그의 갈기(머리카락)는 문명으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자연마냥 검은 갈기 사이사이에 흰 갈기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김 화가의 갈기는 고통스런 다른 생명을 바라보는 사랑스런 고뇌의 눈,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독수리(41×3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새의 골격이나, 물고기 잡을 때의 자세, 새의 특징 등 객관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했다.”

 

 

김태완 화가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입니다.

 

그는 남해안의 철새와 붙박이 새를 그리면서 새의 특징에 주목했습니다.

황조롱이 특색은 날다가 공중에 멈추고 먹잇감을 살피는 몸짓이고, 솔개는 꼬리가 'M'자 형태라는 것입니다. 세밀한 관찰이 동반된 특징들입니다.

 

 

 

 

공중에 멈춘 채 먹이감을 살피는 황조롱이(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꼬리가 'M'자 모양인 솔개(29.8×42, 아르쉬지 수채, 2013)


 

전시실에서의 김태완 화가

 

 

 

 

“그림은 손 뿐 아니라 발로도 그리고 온 몸으로 그리는 과정이다.”

 

 

김태완 화가가 새들을 관찰하며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낀 소감입니다.

그냥 획득되는 게 없는 삶에 대한 깨달음일 것입니다.

 

 

<새! 하늘을 날다>전을 보러 온 신재은 씨는 감상평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사라져 가는 위기의 새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고, 우리 2세들을 향한 교육적 측면이 강하게 느껴져 좋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키워가길 바란다.”

 

 

이런 바람을 알았을까.

김태완 화가는 자연 그림들은 조류도감이나 식물도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의미 있는 작업인 셈입니다.

 

 

 

 

고방오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매(29.8×42, 아르쉬지 수채, 2013)


 

말똥가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멸종 위기의 ‘남해 삼광조’ 그림은 둥지 속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전 멈춤의 시간에서 자식을 향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물까치’ 발아래에 핀 꽃에서 상생을 보았습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인 것을….

 

 

 

 

긴 꼬리가 특색인 남해삼광조(31×4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물까치(32×24, 아르쉬지 수채, 2005)

 

참새(32×24, 아르쉬지 수채, 2013)

 

 

 

 

“제 남편요? 치열하고 열정적이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제게 행운이지요.”

 

 

김태완 화백의 부인인 박진희 씨의 남편에 대한 평입니다.

화가 부부인 이들은 서로가 조언하고 격려하는 중에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부부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도 서로 보살피며 살아야 힘을 얻는 공생 관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나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있으며 들풀처럼 우리 주변에서 항상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대상에 있다.”

 

 

김태완, 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세상을 밝히는 작은 초석되길….

 

 

 

 

청둥오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왜가리(31x4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흰뺨검둥오리(42x29.8, 아르쉬지 수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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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비바리가 좋아하는 새를 주제로한 그림이로군요.
    멋집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는 두번째 요리책 작업을 마쳤습니다..
    가을에 출간예정이에요

    2013.08.16 10:24 신고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추석 풍경’
[아버지의 자화상 32]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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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런 방앗간이 있더군요.

얘들아!

아빠, 오랫만에 편지 쓰지?
이번에는 아빠의 '추석에 대한 추억'이란다.
아빠가 자랄 때, 추석만큼은 늘 풍성했단다.
사과ㆍ배ㆍ감 등 과일이 익어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들판에선 곡식 추수하느라 정신없고,
귀뚜라미 노래 소리도 가득했지.

옛 추석 때, 아이들은 운동화며, 옷을 새로 얻어 입고 꽃단장을 했지. 동요 가사처럼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했었단다.

그 맛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 지금이야 넉넉해져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 옷과 신발 사기가 힘들었지. (니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난 줄이나 알아? ㅎㅎ) 또,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송편’이지. 너희도 할아버지 댁에 가서 고모랑, 언니랑 빚어봤으니 빚는 방법은 알겠지?

그럼 지금부터 아빠가 찾은 방앗간 이야기와 이에 얽힌 옛 이야기 해 줄게? (으으~, 우리 아빠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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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쌀을 방앗간에서 찧으면서 만들기가 시작돼. 지금이야, 시장에서 송편을 사, 제사상에 올리지만, 예전에는 조상에게 바칠 제사 음식을 사서 올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그래 올망졸망 앉아 손으로 직접 빚었단다. 물론 여자들 차지였지. ㅋㅋ.

어제(10일) 오후, 방아 찧는 추석 풍경 잡으려고 여수시 소라면 덕양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를 찾았단다.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댄 모습까지. 어쩜 그리 아빠 기억 속의 방앗간이 여태껏 남았는지 신기하고 반가웠지. 이곳은 올해 초, 발견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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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지붕.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댔습니다.

양철판을 덧댄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덩그러니….

그런데, 방아 찧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구나.(‘정미소’인데, 그냥 '방앗간'이라 할게) ‘참새와 방앗간’이라고, 옛날에는 방앗간 주위에 낱알 한 톨이라도 먹어볼까, 틈새를 엿보던 참새가 많았단다. 그래 '참새와 방앗간'이라 하지.

지금, 방앗간은 있는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더구나. 조금 실망했지. 사진 찍을 앵글을 미리 생각했었거든. 대신 고양이가 참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 뭐야?

주위에 묻고서 40여년 된 방앗간 주인장 심정섭(75)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1968년에 인수해 3년 만에 새 건물을 올렸던 게 지금의 방앗간이라 더구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어.

“왠 고양이가 저렇게 많아요?”
“참새가 사라지니 쥐가 들끓어. 쌀 좀 먹어보겠다고 정미소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가만 놔둘 수가 있어야지. 천적인 고양이를 이용할 밖에….”

고양이가 족히 20여 마리는 넘겠더구나. 너희들이 고양이들을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그렇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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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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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늘어져 있습니다.

쌀밥은 어른들 차지…아버지가 남기신 하얀 쌀밥

“옛날이야 방앗간에 줄을 나래비로 섰지. 서로 먼저 쌀을 찧으려는 마음 굴뚝같은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어? 행여 세치기라도 할까, 눈을 부라리고 지켰지.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지금은 파리만 날려.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무서운 거여!”

그냥 쉽게 떡집에서 사면 그만인 것을, 줄까지 길게 서서 쌀을 빻는 것 상상이 가니? 너희들도 세치기 하는 사람 보면 괜히 뿔나잖아. 세치기하는 사람 정말 밉지? 아빠도 방앗간에 몇 차례 줄 섰던 기억이 나.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내내 보리밥만 먹었단다. 밥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쫓아 가마솥 뚜껑을 열면, 보리밥 한쪽에 허연 쌀밥이 얹어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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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리밥. 이젠 건강식이 되었지요.

그래, 가마솥에 들어 있는 뜨거운 쌀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몰래 손으로 집어 입에서 호호 불고 먹기도 했어. 한쪽에 있던 쌀밥은 언제나 아버지와 할머니 몫이었지. 어머니가 어른들 쌀밥을 먼저 뜨고, 나머지는 쌀과 보리를 섞어 우리들에게 줬지. 이것도 감지덕지하고 먹었어.(그런데 니들은…. 케케먹은 아빠?)

다른 때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건데, 밥상에서는 아주 천천히 먹었지. 혹시 아버지와 할머니가 쌀밥 남기면 먹으려고. 이걸 눈치 채신 아버지는 밥을 드시다가 수저를 슬며시 놓으셨지. 이게 아버지의 진한 마음 아닐까? 그러면 쌀밥을 서로 먹으려고 울고불고 난리 났지.(뭐라고? 언제 적 이야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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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머리에 내린 서리는 쌀밥 먹는 신호탄!

어쨌든 추석 때는 추수한 쌀을 찧어 새 쌀을 조상님께 받쳤지. 방앗간에서 쌀 찧을 때, 처음에는 그 집 가장이 쌀 들어가는 걸 지켜봤지. 그러면 아버지 얼굴이며,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것처럼 쌀 가루가 내려앉았지.

그게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어. 그런 후, 허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이게 아빠가 느끼는 ‘가을의 풍요로움’이야.

쌀 찧는 비용은 얼마였냐고? 심정섭 할아버지 말을 그대로 옮길게.

“정미소가 한참 잘나가던 7ㆍ80년대에는 추수 후 나락을 84㎏ 쌀로 찧어준 대가로 작은되 고붕으로 3되를 받았어. 1되는 지금 돈으로 40㎏ 쌀 한 가마니 정도 가치야. 그게 6~7가마나 됐지. 그걸 팔아 7남매 입히고 가르치고도 남았지. 지금은 고작해야 쌀 5대를 받는데 찧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어. 사먹으니 쌀 찧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

옛날에는 40㎏가 한 가마니였는데, 요즘은 무겁다고 양을 줄여 보통 20㎏를 한가마니로 친단다. 쌀 한가마니에 대충 4~5만원 하니까, 쌀 다섯 되면 얼만지 계산해봐.

그만큼 쌀값이 똥값 된 거지. 고생은 죽어라고 하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짓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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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시작 부분.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6ㆍ70년대 호황기 때에는 외국에서 구호 쌀이 들어오면 밤새도록 서너 달 동안 쌀을 찧어야 했어. 그때 방앗간은 주로 동네 유지들이 하는 업이었지. 빽 있는 권력층도 많이 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그래도 밤새도록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 날 때가 좋았는데…”

“왜, 어떻게 권력층이 그럴 수 있냐고?” 욕심 때문이겠지! 자세한 건 10월 10일 이후, 가을 추수 완전히 끝나면 도정한다니까, 그때 같이 방앗간에 가서 할아버지께 직접 들어보자.

얘들아!

좀 딱딱하지. 그래도 신기한 구석이 있지? 그런 세상도 있었다니 하고 말이야. 알게 많은 세상이라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단다.

우리 이번 추석에 달구경하며 토끼랑 놀자? 아빠 이야기는 여기서 끄~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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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껍질과 쌀로 나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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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olocook (비바리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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