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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창원 성불사 신도들과가을 단풍 산행에서 배운 것

 

 

 

 

 

 

 

 

 

 

“차가 왜 이리 막히지?”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더이다.

‘단풍’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더이다.

도로가 짜증 날 정도이더이다.

 

짜증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이 아니더이다.

단풍 구경. 이는 잠시 자연을 잊고 지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더이다.

 

 

“단풍 보러 갈까?”

 

 

단풍 구경은 정해진 시간 속에 잠시의 움직임.

이 시간 요긴하게 쓰는 게 최선이더이다.

 

산 중에서 익어가는 감이 여유를 주더이다.

이렇게  낙남정맥 중 경남 창원과 함안을 아우른 여항산 단풍 나들이를 갔더이다.

 

 

여항산에 퍼질러 앉으려는 단풍이 나그네에게 세 가지 마음 준비를 요구하더이다.

창원 성불사 신도들 착착 마음 준비를 하더이다.

 

산행 길 입구에서의 단체사진이 그것이더이다.

사진 찍을 때의 우왕좌왕과 긴장, 그리고 올바른 몸가짐은 단풍에 요구에 부응하는 몸짓이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는?

 

 

첫째, 자연에 귀의할 마음가짐이더이다.

마음이 열려야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더이다.

 

둘째, 자연을 보는 눈이더이다.

자기 방식대로 감상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보는 무위자연을 요구하더이다.

 

셋째, 자신을 되돌아보라 하더이다.

지나 온 과거를 잊지 말고, 과거에서  배움을 구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영위하라 하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 방법에 따라 산을 올랐더이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되더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름에 있어 ‘헉헉’거림은 고단한 육신이 내뱉는 뱃고동 소리로 들리더이다.

항구에 도착을 알리는 굵은 저음의 뱃고동 소리는 마음이 열렸음을 의미하더이다.

 

 

 

 

 

 

 

 

마음이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스님 : “‘불이(不二)’는 뭔고?”
나그네 : “제 아호(雅號)입니다.”

 

스님 :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무이(無二)도 있는데 왜 부리(不二)로 했을꼬?”
나그네 : “무리(無二)보다 부리(不二)가 좀 더 깊음이 있는 것 같아서요.”

 

스님 : “둘이 아니지만 하나란 의미도 아니야.”
나그네 : “그래도 하나지요.”

 

스님 : “…?”
나그네 : “…!”

 

 

 

 

 

 

 

 

산에 오르자 운해가 피었더이다.

경치가 감탄을 자아내더이다.

 

마음이 열리니 자연을 보는 눈이 정말 다르더이다.

지하세계와 인간계, 천상계 구분이 생기더이다.

세상을 이 삼계로 나누자 구름이 걸린 산봉우리가 산 중의 섬처럼 보이더이다.

 

 

바다 위의 섬이나 운해 위의 섬이나 무에 다를까마는.

섬과 산봉우리는 본디 하나였더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귀다툼에 몰두하는 바람에 이를 잊고 있었더이다.

천상계와 인간계, 지하세계가 하나일진대 그걸 지나치고 있었더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피안은 나그네에게 삶의 지혜를 안겨 주더이다.

 

그제야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가져 온 음식들을 공터에서 펼쳤더이다.

저 마다 솜씨를 발휘한 음식을 공양했더이다.

배려와 나눔의 장터이더이다.

 

맛있는 공양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나눠 주신 진리의 법문으로 씹히더이다.

그 씹힘이 어찌나 달달하던지 놀랍더이다.

 

 

 

“보증 때문에 재산 차압당하고 쫄딱 망해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술집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어떤 사람은 이런 일 할 것 같지 않은데 왜 이 일 하냐고 묻기도 했고요.

그 고충을 어찌 말로 다할까. 아이 셋 대학 보내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살만해요. 힘들 때 스님이 중심을 많이 잡아주셨어요.”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의 얼굴에 점차 웃음꽃이 피더이다.

웃음꽃은 홍조로 변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그 모습이 자연 단풍보다 더 예쁘더이다. 이 어이 보살이 아니리오!

 

 

 

 

 

 

 

“사진 찍는 표정이 왜 그래요. 내 남편 보듬는다 생각 말고, 마음에 그리던 정든 님 보듬는다 생각하세요.”

 

 

그제야 여인네들 입과 얼굴에서 “호호호~”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부부,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꼬.

 

그렇지만 현실은 정든 님 어디가고, 웬수만 남았을까.

이래서 산에 오르는 길은 수행 길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스님, 뭐하세요.”
“니는 보믄 모르나?”

 

 

봐도 보이지 않는 게 중생의 길. 그래서 스님을 따르는 것.

단풍 구경 온 중생들이 버린 마음 속 쓰레기를 줍고 계시더이다.

 

쯔쯔쯔쯔~, 가련한 중생의 길은 언제나 끝날꼬.

 

 

 

 

 

 

 

스님, 내려오던 길에 자작 시조 한 수 읊더이다.

웃음이 배시시 묻은 얼굴에서 승무의 춤사위처럼 나오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단풍을 뚝뚝 물들이는 청음의 워낭소리로 들리더이다.

 

 

 

       단 풍


                                  청강스님

 

가을 산 단풍 빛이 몹시도 아름다워
오르는 사람마다 탄성이 잦다마는
아소서, 저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해학이 덕지덕지 묻어나더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

스님에겐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생에겐 가당찮은 깨달음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어디 죽비 없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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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그래도 그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은 추억의 길이었다.

 

 

 

아침 산책이 주는 맛은 정적이라는 겁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루를 살아가야 할 준비, 뭐 그런 거지요.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조심스레 다급하게) “이거 보셨어요?”
(웬 호들갑 하며~) “뭘요?”


(아쉬운 목소리로) “제 얼굴에 앉은 잠자리요. 에이~, 날아갔네.”
(부럽다는 듯) “잠자리가 얼굴에 앉다니 자연이네요.”

 

 

주남저수지 인근에서 창원 단감을 팔고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랬다. 주남저수지 인근의 창원 단감의 달달한 향에 미친 잠자리였을까?

아님, 창원 단감 맛에 빠져 정신없던 잠자리였을까?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날개를 터득이던 잠자리였다.

잠자리가 내 뺨에 앉다니…. 무척 황홀했다.

 

주남저수지를 같이 걸었던 지인이 잠자리와 친구 된 모습을 보았다면 날 어설픈 도인쯤으로 여겼을까? ㅋㅋ~^^

 

 

‘잠자리가 왜 내 뺨에 앉았을까?’

 

 

개의치 않았다.

주남저수지에 그저 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만족이었다.

잠자리가 찾아든 이유가 있었다.

 

잠시 접고 추억 속으로 빠져 보자.

대학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 나비와 친구 된 적이 있었다.

이때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시관도 보이고... 

주남저수지 흙길이 인상적이었다. 

주남저수지는 세계로 통화는 통로였다.

 

 

해가 뉘엿뉘엿 산자락을 넘을 무렵, 방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갈 길 잃은 나비임이 분명했다. 왜 그랬을까.

 

나비를 보자, 장자의 나비의 꿈(호접지몽 胡蝶之夢)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당찮게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세상을 즐겼지만 난 현실에서 나비가 되어 놀아 보자’란 생각을 했다.

 

 

나비는 방 안 창문틀 주변을 날면서 쉴 곳을 찾고 있었다.

호흡을 골랐다. 잡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나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우주와 하나, 물아일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길을 잃었니? 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몇 번이나 텔레파시를 보낸 후에야 나비가 움직였다.

나비의 날개 짓이 유유자적 허공을 가르는 온화한 천사의 비행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나비는 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비가 멈춘 곳은 내 머리 위에 있던 옷걸이였다.

나비는 ‘저 인간에게 가도 안전할까?’ 탐색 중이었다.

큰 숨을 내 쉰 후,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비가 내 어깨에 와 앉았다.

 

 

손바닥을 폈다. 나비가 사뿐히 손 위에 앉았다.

 

감동이었다. 묵언. 나비에게 작별을 고하며 갈 길을 일러 주었다.

나비가 방안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까지 걸린 현실 속에서의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정신세계에선 찰나요, 영겁의 시간이었겠지만….

 

 

이 사건 후, 자연과 하나 될 틈이 없었다.

다만 하나 되려는 노력은 간간히 했었다.

그러나 진정성은 찾기 어려웠고, 마음뿐이었다.

 

세상에 물든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비와 나눈 무언의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생명, 그 신비함은... 

추억이 새록새록 솟게하는 코스모스 피어난 둑길. 

사진은 그대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랬는데, 잠자리가 날아든 것이다.

주남저수지에서.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었다.

다만, 주남저수지 초입에서 본 볼품(?)없는 홍시에 넋이 빠져 있었을 뿐.

 

그러니까 잠자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 든 것이다.

그것도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으며 새 무리에 날개 짓에 눈길을 주던 참에.

이렇듯 생명들은 앉을 곳을 쉼 없이 찾아 나선다.

 

 

지난 2일, 주남저수지에는 연꽃, 갈대, 억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둑길엔 가을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해가 생산한 영양분을 마음껏 먹으며 철새와 텃새, 잠자리, 메뚜기 등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가 새들의 날개 짓을 이정표 삼아 묵묵히 폐달을 밞고 있었다.

 

 

어디 쯤 일까?

주남저수지 둑길에 TV가 버려져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품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했다.

 

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땅에 앉았다.

고추잠자리의 빨간 색이 자연의 평화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그림으로 만들었다.

 

 

 

철새와 사람 등 뭇 생명이 주남저수지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모두 하나 되기 위함이다.

생명의 터전을 빼앗긴 영혼들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처절한 몸짓.

 

그렇지만 인간은 점점 생명의 터전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 어리석음은 후세가 고스란히 넘겨받을 터.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의 아둔함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잠자리가 내 뺨에 앉은 건, 자본주의에 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잠자리 땅 위에 앉았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새들의 날개짓이 살아 있는 주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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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대박 기원, 단감 드시고 ‘감’ 잡으세요!

[창원 단감] 이항복의 기개는 ‘감’에서 나왔다?

 

 

 

 

창원은 단감의 주요 생산지입니다.

창원 여항산에서 본 가을 단풍.

 

 

 

 

가을은 언제나 풍요와 함께 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정신이 살찌우는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가을 탄다’는 말처럼 타는 계절입니다.

'탄다'는 마음 속 ‘~휑함’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답게 주렁주렁 달려 인간을 유혹하는 제철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감’입니다.

 

 

길을 걷다 담장 너머로 비집고 나온 감을 보면 행복입니다.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감을 따기 위해 담을 넘어 앞집 옥상에 올라서 감을 따야 했으니까.

그래, 담장 너머의 발견하는 순간, 그 자체가 고문입니다.

 

 

“저 감 따 먹어, 말아?”

 

 

요즘은 거의 따지 않더군요.

뻔히 보이는데도 그냥 지나칩니다.

풍요로움이 가져온 변화겠지만 정이 없는 것 같이 왠지 서운함이 일더군요.

 

‘감’과 어울린 재밌는 해학이 묻어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정승을 지내셨던 오성 이항복 선생과 얽힌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못생긴 감이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담장 밖으로 나온 감은 누구의 감일까?

물 머금은 감은 수능에서 물오른 감을 안겨줄...

 

 

 

오성의 집에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는 이웃집이었던 권율 장군의 집 담장으로 넘어들어 갔다.

권율 장군 댁 하인들은 먹음직스러운 감을 따먹었다.

두 집 하인들은 이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담을 넘어 온 감은 우리 감이다.”
“감이 담장을 넘어 갔어도 감나무의 주인인 우리 감이다.”

 

 

 

하인들의 다툼을 본 오성은 권율 장군을 찾아 가 방문 창호지 속으로 팔을 쑥 넣었다. 그리고 권율 장군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성 : “대감님,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
권율 : “그것은 너의 팔이지 누구 팔이냐?”

 

오성 : “이 팔이 대감 방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어찌해서 제 팔입니까?
권율 : “내 방에 들어와 있더라도 네 몸에 붙어 있으니 너의 팔이지 않느냐?”

 

오성 : “저의 집 담을 넘어 대감댁으로 뻗어온 감나무 가지는 누구네 것이옵니까?”
권율 : “가지는 비록 우리 집으로 넘어왔지만 뿌리와 줄기는 너희 집에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의 집 감나무 가지가 틀림 없다.”

 

 

이는 감나무 가지는 권율 대감 집으로 뻗어있었지만 감나무 뿌리와 줄기는 이항복의 것이니 오성의 것이란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대감과 맞서 항복(?)을 받아낸 오성 이항복의 담력과 기개는 감을 많이 먹고 자랐기 때문 아닐까.

 

 

창원 단감입니다. 

씨는 급하게 먹을 때의 체하는 걸 방지하는 자연의 지혜입니다.

고놈 참 색 곱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항복 선생처럼 되고자 한다면 창원 단감 드시고, 수능 <감> 잡으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감에 얽힌 일화가 많습니다.

그 만큼 가을에 익은 감은 유혹입니다.

아삭거리고 달콤한 감의 유혹을 어느 뉘가 이기리오!

 

 

지난 1일 창원 동읍에 갔습니다.

감의 유명 집산지 중 하나로 창원이 꼽히기 때문입니다.

 

창원 동읍 농협 김순재 조합장에 따르면 창원 단감이 유명한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창원 북면과 동읍에서 생산되는 ‘창원 단감’은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당도가 높아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엿’, ‘찹쌀 떡’ 등을 선물합니다.

수능에서 대박 나라는 거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수능 선물로 우리 농산물 하나 더 추가합니다. 단감입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수능생 여러분! ‘감’ 드시고, 시험 <감> 잡으시기 바랍니다.

 

 

수험생 여러분, 단감 드시고 감 잡으세용~^^

 숫감입니다. 속이 검은 색입니다.

창원 여항산의 단풍

이 자체가 단풍이지요.

 

 

 

각설하고, 창원 단감 농가를 돌면서 가장 눈에 띠었던 건, 물론 감이었습니다.

그 중, 창원이니만큼 창원의 자연 단풍과 비교할 만한 창원 감 단풍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자연 단풍 뿐만 아니라 감 단풍도 무척 곱더군요.

 

 

하지만 올해 단풍처럼 감 단풍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비해 일교차가 크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더라도 또 다름이 있지 않겠어요.

 

 

창원 여항산 오르는 길에 만난 단풍.

아련한 추억 속으로... 

 단풍과 운해가 어우러지니, 천상계로구나!!!

감 잡았어~^^ 

산에서 만난 감과 감나무는 대박입니다.

 

 

 

단풍, 자연 VS 단감 어느 게 멋있을까?

물론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요.

제 눈으로는 둘 다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 3일 성불사 신도들과 함께 창원시 여항산에서 본 단풍은 이제 막 남자를 알아가는 새색시 볼에 살짝 핀 홍조처럼 수줍고 겸연쩍은 뭔가 숨기고 싶은 ‘내숭’ 단풍이었습니다.

 

감 농가에서 본 감 단풍은 농익은 완성미를 자랑하는 중년 여인네 단풍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어찌 따라가겠습니까!!!

 

 

 

 사랑과 행복. 그래서 다정다감

창원 여항산 성불사 신도들입니다. 

자연 단풍의 완숙미는 이것?

창원 단감 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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