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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추억의 7080 광주충장축제 퍼레이드 참가기
거북선과 ‘약무호남 시무국가’ 외치는 수군 눈길
5ㆍ18 진원지 구 전남도청 역사 현장교육에 유용

 

 

 

  

 

 

 

 

 

“저것 좀 봐. 한때 놀던 언니 오빠들이네!”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퍼레이드를 보던 한 시민의 얼굴에는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지난 9일(화)부터 오는 14일(일)까지 광주 충장로, 금남로 등지에서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광주 충장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하였습니다.

 

여수 쌍봉동과 광주 동구 산수 1동 간 맺은 자매도시 인연으로 초청되어 여수 진남제가 자랑하는 좌수영길놀이 가장물인 거북선을 이끌고 가게 된 것입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인 셈입니다.

 

여수에서 9시에 출발해 광주 충장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습니다. 고속도로로 가면 1시간 30분여 거리를 장장 5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거북선의 규모가 커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가 어려워 국도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국도 주변은 참으로 여유로웠습니다.

 

평상시라면 쌩쌩거리며 달리는 차의 속도감으로 인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날은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농부의 정원인 논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또 부지런한 농부의 정원은 추수가 끝난 상태였고, 일부는 추수 중이었습니다.

 

시골 집 마당 등에는 감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을 재촉하는 주암호 풍경도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세월의 흐름 중에 놓쳤던 풍경들이었습니다. 이는 가을이 주는 여유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거북선과 ‘약무호남 시무국가’ 외치는 수군 눈길

 

오후 2시. 광주 충장로 퍼레이드 행사장에 도착했더니, ‘추억의 7080 축제’의 주제답게 참새와 허수아비 등의 가장물이 벌써 늘어 서 있었습니다. 도로 주변에는 노란 등이 충장축제를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축제 퍼레이드를 관람하기 위한 구경꾼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3시가 되자 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관악대, 공군의장대, 조선대 ROTC, 연심이 놀이마당 등에 이어 여수시 거북선과 전라좌수영군도 거리 행진에 나섰습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자랑스러운 호남을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수군에게 박수가 터졌습니다.

 

이에 호응하듯 거북선 등 뒤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거북선 용머리에선 연막과 불꽃이 터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에 맞춰 거북선을 따르는 수군들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를 외치며 임진왜란의 함성을 재현했습니다.

 

세상은 폼 나는 모습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앞에서 폼이 나는 이치입니다. 여수 쌍봉동주민자치센터 직원들은 안간힘을 써가며 무동력 가장물 거북선을 뒤에서 밀었습니다. 땀 흘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5ㆍ18 진원지 구 전남도청 역사 현장교육 유용할 듯

 

퍼레이드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한 지역은 여수를 비롯해, 장흥, 대구광역시, 보성, 곡성, 진도 등 다양했고, 광주광역시의 각 동까지 나서 흥미를 돋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특색을 뽐내며 관광객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장흥군은 용산면 소등섬 풍물패를 동원해 얼씨구 절씨구를 표현했습니다. 광주시 북구 사회복지관에서는 한 때 놀았다는 언니 오빠들이 교복을 입고 나섰습니다. 학운동은 무등산 옛길 행차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구광역시는 날뫼북춤으로 한바탕 흥을 돋았습니다. 광주의 명동이라는 동명동은 다문화가정을 출연시켜 아시아의 꽃을 표현했습니다. 계림 2동은 닭 분장으로 눈을 현혹시켰습니다. 보성은 녹차 수도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곡성은 심청 캐릭터를 앞세웠습니다.

 

‘제9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 퍼레이드는 이렇게 신명나는 한 판 어울림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5ㆍ18의 진원지 구 전남도청에도 들러 과거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역사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도 역사의 소중함을 새기는 현장 교육으로 유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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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요즘은 전국이 축제분위기입니다..
    광주의 충장축제도 좋군요
    곧..김치축제도 열리던데.....
    건강하시지요?

    2012.10.17 07:55 신고

며느리들의 반란, “사위들도 고생 좀 혀”

“인자 나도, 우리 사우들 좀 부려먹어야 쓰겄네.”
추석날, 고추밭에 주렁주렁 달린 고추를 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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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관산면 상발 마을에도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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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허리 수술 후 옴짝달쌀 하기가 힘듭니다.

“밭에 고추를 따야 헐 것인디…”

추석날 오후, 서둘러 도착한 처갓집. 몸이 불편하신 장모님은 누워서도 고추 딸 걱정입니다. 농사꾼은 농사꾼입니다.

장인 장모는 서울에서 지난 여름 며칠 상관으로 복부와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런 양반들이 누워서도 추수 걱정이라니 기가 찹니다. 추수는 손이 없으니, 자연 식구들 몫인 게지요.

장인어른은 지금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 계십니다. 큰 딸인 아내, 깨를 갈아 미음을 만듭니다. 장인어른 그제서야 겨우 몇 숟갈 받아 드십니다.

“아이, 네 아부지가 어제까진 좀 괜찮으시더니 어제 송편 세 개 드시고, 오늘 추석 아침부텀 저리 꼼짝을 못하신다야. 물 한 모금 안하더니 그래도 큰 딸이 준께 잡순다야. 큰 딸이 좋긴 좋은 갑따야.”

누워 계신 장모님은 안심인지 반기며 한 마디 거듭니다. 1970년대부터 담석 등으로 10여 차례 넘게 수술대에 오르신 장모님은 환자인 상태에서도 장인어른 수발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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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 건너 고추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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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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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농사일 한 번도 안 해 본 사위들을 얻었을까~ 잉.”

아이들을 데리고 고추밭으로 향합니다. 들판에서는 벼가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저 알곡 추수할 일도 걱정입니다. 지난해부터 장모님과 했던 농이 생각납니다.

“남들은 사우들이 타작도 해주드만, 인자 나도 우리 사우들 좀 부려먹어야 쓰겄네.”
“워매~. 장모가 사위 못 부려먹어 안달이네. 긍께 시집을 잘 보내야지, 왜 농사일 한 번도 안 해 본 사위들을 얻었을까~ 잉. 다른 집, 사위들이 그리 부럽습디요?”

“그래. 부러워 죽겠대. 장인장모 힘들다고 사위들이 주말에 처갓집에 와 모내기도 해주고, 농약도 해주고, 고추도 심어주니 얼마나 부러웠겄어?”
“워매워매. 우리 장모, 사위 맞은 게 아니라 머슴 맹글라 그랬네. 근디 워쩐다요? 이 집 사위들은 일 했다간 ‘아이고 허리야’ 드러누워 약값이 더 들겄구만. 그래도 좋소?”

“그래도 좋은 께, 한 번 혀봐.”
“글다가 이집 딸들만 손핼 것인디….”
“그라긴 햐. 글다가 우리 딸들만 고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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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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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

길가에 핀 며느리 꽃들, 사위들에게 선전포고 하다?

간혹 고추도 따 주고 했더니만 그런 건 다 잊었나 봅니다. 올해는 더 이상 뺀질거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가을 추수는 거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장모님 동네방네 “우리 사우들이 추수해 줬어.”하고 자랑하고 다니실까?

아이들을 앞세우고 저수지를 지나, 도랑 넘습니다. 산길 양쪽으로 며느리배꼽,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 밥풀꽃이 피어 있습니다. 철이 지났는데 피었습니다. 추석 명절, 고생하는 며느리 위안용 꽃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길에 핀 며느리 꽃 종류들은 딴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행여 이런 의미는 아닌지….

‘이제 며느리들 고생은 그만하고, 사위들도 고생 좀 실컷 해라’

그러고 보니, 며느리들의 반란인 것 같습니다. 마치 ‘사위들도 이제 고생 좀 혀’하고 선전포고 하는 역설적인 꽃 같습니다. 에이, 어쩔 수 없네요.

고추밭에 도착합니다. 지난해에는 옆에 있던 밭에서 고추를 땄는데 올해에는 옮겨 심었네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저 놈의 고추가 고생 실컷 시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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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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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밑씻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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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해야 명절 맛 나는데…

“명절에 부모 찾지 않은 자식은 자식도 아니여!”
효도-“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차 몰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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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가족이 모여 송편 만들기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추석만큼은 늘 풍성했지요.
가을 추수와 맞물려 과일도, 곡식도, 고향 찾는 사람들도 넘쳐났지요.
그 중 고향 찾는 사람들로 인한 마음의 풍요로움이 가장 컸지 싶습니다.

하여,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한 번씩 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명절의 풍성한 기억을 가진 분들은 “요즘 추석은 왠지 쓸쓸하고 허전하다.”며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입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각박해진 탓도 있겠지만, 한 번씩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쉽게 얼굴을 대면하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끌벅적해야 명절 맛 나는데…또 얼마나 허전해 하실까?

“서울에서 누나와 형이 못 오겠다는구나. 이번에는 과일 사 오지마라. 집에 과일 조금 있으니까 그걸로 먹으면 되겠다. 정 허전하면 포도나 한 상자 사고, 다른 건 사지마라. 네가 또 과일 사 올까봐 미리 전화했다.”

어머니 전화에 마음이 허전해 집니다. 올 추석에는 작은 누이와 형의 “새벽에 출발해 몇 시간이 걸렸네.”하는 소리는 듣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치 무용담처럼 내뱉었던 그 소리가 무척이나 고마웠었는데….

사실, 어려운 형편에도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과일을 준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먼 길을 오는 사람에게 부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오고 가며 길거리에 버리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지요. 그래, 가벼운 마음으로 오십사 하는 거였습니다.

부모님 걱정이 앞섭니다. 시끌벅적해야 명절 맛 나는데 또 얼마나 허전해 하실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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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과라도 보냅니다.

“명절에 부모 찾지 않은 자식은 자식도 아니여!”

올 추석, 부모님 앞에서 또 오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명절에 부모 찾지 않은 자식은 자식도 아니여!” 그러면 부모님은 옆에서 거드실 겁니다.

“욕하지 마라. 추석이 짧아 오가는 시간, 얼마나 낭비여! 다음에 오면 되지….”

그러면서도 귀는 대문 쪽으로 향해 있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행여나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이럴 때면 괜스레 화가 났었습니다. 그리고 전화통을 부여잡았었지요.

“이럴 줄 뻔히 알면서 안 오다니…. 그리 살지 말세!” 오금을 박고 말았지요. 그러면 부모님은 또 거들고 나섰지요.

“아이 왜 그러냐? 다 사정이 있어 그런 걸. 저도 얼마나 오고 싶었겠냐? 그 심정을 알아야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차 몰고 왔어!”

간혹 못 온다 했다가 온 적도 있었지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밤중에 ‘에이 가자’하고 그냥 차 몰고 왔어!”

그땐, 그 소리가 어찌 그리 고맙고 예쁘던지. 어렵고 바쁘다 보니 형제 간 얼굴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올 추석에도 “그냥 차 몰고 왔어”하는 소리 들으면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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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라도 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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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추석 풍경’
[아버지의 자화상 32]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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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런 방앗간이 있더군요.

얘들아!

아빠, 오랫만에 편지 쓰지?
이번에는 아빠의 '추석에 대한 추억'이란다.
아빠가 자랄 때, 추석만큼은 늘 풍성했단다.
사과ㆍ배ㆍ감 등 과일이 익어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들판에선 곡식 추수하느라 정신없고,
귀뚜라미 노래 소리도 가득했지.

옛 추석 때, 아이들은 운동화며, 옷을 새로 얻어 입고 꽃단장을 했지. 동요 가사처럼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했었단다.

그 맛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 지금이야 넉넉해져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 옷과 신발 사기가 힘들었지. (니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난 줄이나 알아? ㅎㅎ) 또,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송편’이지. 너희도 할아버지 댁에 가서 고모랑, 언니랑 빚어봤으니 빚는 방법은 알겠지?

그럼 지금부터 아빠가 찾은 방앗간 이야기와 이에 얽힌 옛 이야기 해 줄게? (으으~, 우리 아빠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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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쌀을 방앗간에서 찧으면서 만들기가 시작돼. 지금이야, 시장에서 송편을 사, 제사상에 올리지만, 예전에는 조상에게 바칠 제사 음식을 사서 올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그래 올망졸망 앉아 손으로 직접 빚었단다. 물론 여자들 차지였지. ㅋㅋ.

어제(10일) 오후, 방아 찧는 추석 풍경 잡으려고 여수시 소라면 덕양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를 찾았단다.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댄 모습까지. 어쩜 그리 아빠 기억 속의 방앗간이 여태껏 남았는지 신기하고 반가웠지. 이곳은 올해 초, 발견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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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지붕.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댔습니다.

양철판을 덧댄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덩그러니….

그런데, 방아 찧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구나.(‘정미소’인데, 그냥 '방앗간'이라 할게) ‘참새와 방앗간’이라고, 옛날에는 방앗간 주위에 낱알 한 톨이라도 먹어볼까, 틈새를 엿보던 참새가 많았단다. 그래 '참새와 방앗간'이라 하지.

지금, 방앗간은 있는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더구나. 조금 실망했지. 사진 찍을 앵글을 미리 생각했었거든. 대신 고양이가 참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 뭐야?

주위에 묻고서 40여년 된 방앗간 주인장 심정섭(75)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1968년에 인수해 3년 만에 새 건물을 올렸던 게 지금의 방앗간이라 더구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어.

“왠 고양이가 저렇게 많아요?”
“참새가 사라지니 쥐가 들끓어. 쌀 좀 먹어보겠다고 정미소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가만 놔둘 수가 있어야지. 천적인 고양이를 이용할 밖에….”

고양이가 족히 20여 마리는 넘겠더구나. 너희들이 고양이들을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그렇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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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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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늘어져 있습니다.

쌀밥은 어른들 차지…아버지가 남기신 하얀 쌀밥

“옛날이야 방앗간에 줄을 나래비로 섰지. 서로 먼저 쌀을 찧으려는 마음 굴뚝같은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어? 행여 세치기라도 할까, 눈을 부라리고 지켰지.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지금은 파리만 날려.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무서운 거여!”

그냥 쉽게 떡집에서 사면 그만인 것을, 줄까지 길게 서서 쌀을 빻는 것 상상이 가니? 너희들도 세치기 하는 사람 보면 괜히 뿔나잖아. 세치기하는 사람 정말 밉지? 아빠도 방앗간에 몇 차례 줄 섰던 기억이 나.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내내 보리밥만 먹었단다. 밥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쫓아 가마솥 뚜껑을 열면, 보리밥 한쪽에 허연 쌀밥이 얹어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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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리밥. 이젠 건강식이 되었지요.

그래, 가마솥에 들어 있는 뜨거운 쌀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몰래 손으로 집어 입에서 호호 불고 먹기도 했어. 한쪽에 있던 쌀밥은 언제나 아버지와 할머니 몫이었지. 어머니가 어른들 쌀밥을 먼저 뜨고, 나머지는 쌀과 보리를 섞어 우리들에게 줬지. 이것도 감지덕지하고 먹었어.(그런데 니들은…. 케케먹은 아빠?)

다른 때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건데, 밥상에서는 아주 천천히 먹었지. 혹시 아버지와 할머니가 쌀밥 남기면 먹으려고. 이걸 눈치 채신 아버지는 밥을 드시다가 수저를 슬며시 놓으셨지. 이게 아버지의 진한 마음 아닐까? 그러면 쌀밥을 서로 먹으려고 울고불고 난리 났지.(뭐라고? 언제 적 이야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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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머리에 내린 서리는 쌀밥 먹는 신호탄!

어쨌든 추석 때는 추수한 쌀을 찧어 새 쌀을 조상님께 받쳤지. 방앗간에서 쌀 찧을 때, 처음에는 그 집 가장이 쌀 들어가는 걸 지켜봤지. 그러면 아버지 얼굴이며,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것처럼 쌀 가루가 내려앉았지.

그게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어. 그런 후, 허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이게 아빠가 느끼는 ‘가을의 풍요로움’이야.

쌀 찧는 비용은 얼마였냐고? 심정섭 할아버지 말을 그대로 옮길게.

“정미소가 한참 잘나가던 7ㆍ80년대에는 추수 후 나락을 84㎏ 쌀로 찧어준 대가로 작은되 고붕으로 3되를 받았어. 1되는 지금 돈으로 40㎏ 쌀 한 가마니 정도 가치야. 그게 6~7가마나 됐지. 그걸 팔아 7남매 입히고 가르치고도 남았지. 지금은 고작해야 쌀 5대를 받는데 찧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어. 사먹으니 쌀 찧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

옛날에는 40㎏가 한 가마니였는데, 요즘은 무겁다고 양을 줄여 보통 20㎏를 한가마니로 친단다. 쌀 한가마니에 대충 4~5만원 하니까, 쌀 다섯 되면 얼만지 계산해봐.

그만큼 쌀값이 똥값 된 거지. 고생은 죽어라고 하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짓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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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시작 부분.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6ㆍ70년대 호황기 때에는 외국에서 구호 쌀이 들어오면 밤새도록 서너 달 동안 쌀을 찧어야 했어. 그때 방앗간은 주로 동네 유지들이 하는 업이었지. 빽 있는 권력층도 많이 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그래도 밤새도록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 날 때가 좋았는데…”

“왜, 어떻게 권력층이 그럴 수 있냐고?” 욕심 때문이겠지! 자세한 건 10월 10일 이후, 가을 추수 완전히 끝나면 도정한다니까, 그때 같이 방앗간에 가서 할아버지께 직접 들어보자.

얘들아!

좀 딱딱하지. 그래도 신기한 구석이 있지? 그런 세상도 있었다니 하고 말이야. 알게 많은 세상이라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단다.

우리 이번 추석에 달구경하며 토끼랑 놀자? 아빠 이야기는 여기서 끄~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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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껍질과 쌀로 나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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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olocook (비바리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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