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몽당연필에 대한 추억

연필 깎다 피나는 손가락을 쪽쪽 빨면…
[아버지의 자화상 31] 몽당연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볼펜에 끼워 쓰던 몽당연필의 추억이 아련합니다.

소풍 보물찾기에서 연필을 찾아, 혹은 운동회 때 달리기 상품으로 받은 연필을 아끼고 아껴 쓰다가 손에 쥐어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버리기가 너무 아쉬워 애 태우던 때가 있었지요.

연필이 닮아지도록 쓰다가 작아지면 아직 쓸만한 누이의 볼펜을 몰래 꺼내 꼭 다리를 떼어내고 연필을 대신 꽂아 사용했지요. 새 연필이 아닌 몽당연필일 뿐인데도 마치 큰 연필이 있는 듯 든든했지요.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을 공책에 옮길 때에는 몽당연필 흑심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가며 꼼꼼히 글을 옮겨 적곤 했지요. 이 때, 선생님의 “글씨 예쁘게 썼네!” 칭찬 한 마디면 입이 귀에 걸렸지요.

칼로 깎기 힘들만큼 몽당연필이 작아져도 깎아 쓰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요. 더 이상 깎기 힘들어 버려야 했을 땐, 서운해 하며 미적미적 버리면서도 묘한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곤 했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필 깎다 칼에 배여 피나는 손가락을 쪽쪽 빨면…

연필 깎을 때는 또 어땠습니까?

몽당연필을 돌려가며 예쁘게 깎는 기술을 선보일 때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지요. 깎은 연필의 흑심 가루를 정성껏 벗겨낼 때의 기분은 또 어떻고요. 그리고 깍은 연필 가루는 입 바람으로 후~훅 불어 날려버렸지요.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기분이었지요.

연필 깎다 손가락을 배어 피가 나면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쪽쪽 빨았지요. 손톱에 때가 낀 상태인데도 왠지 달콤했지요. 간혹, 어른들이 이 모습을 볼 때면 더러운 손가락 빨지 마라며 “저놈이 또…”하기도 했지요.

요즘은 연필 깎는 기계가 있어 편리하긴 합니다. 연필을 넣어 둘둘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뚝딱뚝딱 깔끔하게 깎여 나오니까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연필 깎는 재미를 기계에 빼앗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때론 깨끗하게 깎인 연필 가루들이 허공으로 날리지 못하고 정형의 기계 틀 속에 갇힌 모습에서 기계화 된 아이들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몽당연필에서 휘어지는 연필로 변신?

“아빠, 이런 연필도 있어요. 신기하죠?”

딸,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몽당연필에 대한 추억이 아련한 제게 연필 자랑을 합니다.

“아빠, 보세요. 연필이 이렇게 마음대로 휘어져요. 글도 얼마나 잘 써지는데요.”

정말 연필이 눈앞에서 마음대로 휘어집니다. <해리포터>에서 혼자 마음대로 움직이며 기사를 써 내려가던 ‘리타 스키터’의 펜 생각이 납니다.

아이의 말에 신기함과 이런 걸 가졌다는 자랑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부러지지 않는 고무연필이라니. 이걸 기술의 승리라 해야 할까, 아이디어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디어가 반짝여야 겨우 호기심 자극

사실 말이지 요즘 연필은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못해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상품이라야 겨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구매 욕구를 일으킬 뿐입니다.

부모 세대들이 학창시절, 몽당연필에도 감사하며 생활하던 때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변한다 하더라도 글쓰기 도구인 연필의 본래 기능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무엇이든 본래 기능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타고 난 본래의 소질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타고난 소질을 찾아 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역할일 것입니다.

연필이 몽당연필에서 휘어지는 아이디어 상품으로까지 진화한 것처럼 자녀 교육에도 소질 개발을 위한 다양한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몽당연필을 소중히 여겼던 부모 세대의 마음과 추억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키워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단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내의 ‘과거 남자’와 스치다!

남편이란 이유로 아내의 추억 뺏을 수 있나?
[알콩달콩 부부이야기 22] 아내의 남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억의 봉숭아. 꽃과 벌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산행이 제격입니다. 하여, 아내와 오롯한 산행 길에 올랐습니다. 초입에서 한 눈 팔던 중 마주오던 부부와 엇갈렸습니다. 다가가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네요.”
“그래? 어, 내가 왜 못 봤지? 인사는 나눴어?”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적으로 서로 움찔하고 모른 척 피했어요.”

엇갈린 부부 중 남편은 아내의 ‘과거 남자’였습니다. 잠시 다른 일에 몰두하는 사이 스친 것입니다. 저와 마주쳤다면 인사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내의 남자는 서로 피한 것입니다. 인사도 나누고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나 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하면 될 텐데 왜 그게 안 되죠? 별것도 아닌데….”
“내 말이. 서로 편히 지냅사 이야기도 할 겸, 내가 한 번 만나볼까?”
“어디, 그러기만 해봐요. 잉!”

아내는 펄쩍 뛰며 ‘잉’자에 힘주어 말합니다. 아내와 아내의 남자는 결혼 허락을 요청했으나 나이 차이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결혼을 못했습니다. 인연이 아녔던 셈이지요.

‘쾌감’은 암컷을 차지한 수컷의 여유!

“당신은 언제 어떻게 이 도시에 오게 됐어?”
“말했잖아요. 그 사람을 만나 오게 됐다고. 그래서 당신과 결혼한 거라고….”
“그럼, ○○○씨가 우리 인연 맺어준 중매쟁이네?”

아마, 결혼한 남자들은 대개 아내의 과거 남자들을 보면 ‘지금 나와 사는데…’하고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을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을 차지한 수컷의 여유 같은 거죠. 살다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씨는 어떻게 만났어?”
“같은 직장에서요. 그때 그는 다른 여잘 사귀다 헤어진 상태였고, 저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선배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죠….”

저도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냉정히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도 질투 나지 않은지?’ 혹은 ‘마음 넓은 척 하고 있진 않은지?’ 결론은 ‘무덤덤’입니다. 아내의 삶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일 겝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꽃은 벌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단지 남편이란 이유로 아내의 추억 뺏을 수 있나?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주위를 살피면 꼭 그가 날 보고 있었죠. 서랍에는 편지와 쪽지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 있었구요….”

이야기하는 아내의 표정에서 즐거웠던 추억 속으로 푹 빠져 듦을 읽습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본다는 것도 즐거움이죠. 몰랐던 아내의 풋풋했던 20대 초반의 추억을 단지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뺏을 수 있나요? 과거ㆍ현재ㆍ미래가 다 아내의 삶이죠!

“그런데 왜 당신의 여자 이야기는 안 해요. 해봐요?”
“○○○씨 부부 보기 좋던데. 부부가 함께 산행도 다니고….”
“에이. ○○○ 지나갈 때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닭살부부 평상시 손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줬음 좋았을 걸. ‘우리 이렇게 알콩달콩 산다?’ 하고. 아이 참!”

아내는 아쉽나 봅니다. 그러기도 하겠지요. 아내는 자신의 과거 남자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입을 닫고 있습니다. 나누고 싶지 않은 추억도 있다는 겁니다. 그럴 권리가 있다는 거죠.

이런 이야기의 바탕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겠지요. 오솔길 산책은 이렇게 서로를 공유하게 합니다. 이런 산행 좋지 않나요? 이게 자연인 게죠.

“그 남자와 결혼 허락은 떨어졌어요!”

애걔걔, 이게 다냐구요? 왜, 남편의 여자 이야기는 없냐구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잖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내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글을 쓴 후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아내의 삶이 녹아 있으니 그게 맞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정말 올릴 거냐. 그러기만 해봐요!”라며 길길이 뛰더군요. 그러나 이 글은, “내 관점에서 쓴 내 글이다”며 양해를 구했죠. 결국 아내는 몇 군데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첫째, “아내의 과거 남자였던 그의 사생활 부분은 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도리인 것 같아 일부 삭제했습니다.

둘째, “교회 선배 부분도 빼달라. 한 사람으로 가야지, 주제를 흐리게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 두 줄 서술에서 짧게 줄였습니다.

셋째, “아내와 아내의 남자에게 결혼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건 잘못됐다.”는 겁니다. 결혼 허락은 내려졌으나 그 후 헤어졌다는 거죠. 저의 오해일 수 있으나 이는 새로운 사실입니다.

바로 이걸, 아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글을 수정하는 중에도 아내는 “나누고 싶지 않은 추억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말하겠지요.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할 때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막걸리 주전자는 왜 그리 찌그러졌을까?

“막걸리가 왜 이리 싱겁다냐?”
[아버지의 자화상 5] 막걸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왠지,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부지’라 부르면 구수함이 느껴집니다.

언젠가 한 지인은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아부지’로 불러라 했다.”더군요. 그 후 “어린 아들이 아부지하고 부르면, 주위 사람들은 콩알만한 녀석이 ‘아빠’라 안 부르고, ‘아부지’한다며 신기한 얼굴로 쳐다본다.”고 하더군요.

왜 아부지로 불러라 했을까? 그는 “아버지보다 아부지가 구수한 맛이 나서 그랬다.”합니다. 그래, 그의 아들에게 “아부지라 부르는 것 보다 아빠가 좋지 않아?”했더니 “아뇨. 아부지가 훨씬 좋아요!”합니다. 부전자전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 때였습니다. 아들이 다가와 “아빠”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 하고 지긋이 부르는 거였습니다. 그게 싫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적잖이 당황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바뀐 탓이겠지요.

막걸리를 야금야금 마셔 앙증맞게 술 취한 아이

어찌됐건, 구수한 아버지를 회상하면 막걸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막걸리와 관련된 추억의 한 자락에는 앙증맞게 술 취한 아이가 자리합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술ㆍ담배를 팔지 못하게 해 이런 심부름 자체가 없어졌지만, 우리가 자랄 때 막걸리 심부름은 응당 아이들 몫이었지요.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나 가게에서 외상술을 받아 들고 오던 아이. 집에 가던 중 몰래 막걸리 주전자 주댕이를 입에 넣고 한 모금 마시던 아이. 목구멍을 술술 넘어가던 막걸리의 달짝지근한 맛에 한 모금 한 모금 야금야금 마시던 아이.

이로 인해 어느 새 단풍처럼 빨갛게 물든 코끝. 그리고 발그레한 볼. 자기도 모르게 혀 꼬부라진 말을 하던 아이. 아부지들은 이런 아이를 보면서도 “허허, 이놈~”하고 웃고 말았지요.

간혹 어린 심부름꾼이 집으로 가면서 홀짝홀짝 마신 탓에 막걸리 양이 줄면 지레 겁을 집어먹었지요. 하여, 물로 채워 양을 맞춘 ‘물 반 막걸리 반’인 주전자를 내려놓았지요. 그래도 아부지들은 “막걸리가 왜 이리 싱겁다냐?”하시며 모르는 척 단숨에 들이키곤 하셨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 주전자는 ‘정겨움의 표식’

왜 그리 막걸리 주전자는 다들 그렇게 찌그러졌는지…. 분명 처음에는 반듯한 주전자였을 텐데 하나같이 찌그러진 아부지의 손 때 묻은 양은 주전자들. 예전에는 이런 주전자가 정겨움의 표식이었지요.

간혹 아부지들이 막걸리 심부름 길에 과자 값을 얹어주면, 길 가다 동전 주은 것처럼 횡재한 기분으로, 한걸음에 술도가로 달려갔던 기억. 좋은 기분에 찰랑이는 주전자를 총총걸음으로 급히 들고 오다, 줄줄 샌 막걸리로 인해 양이 줄어 머쓱했지요.

또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막걸리로 인해 코가 삐뚤어진 아부지를 보며 “나는 크면 술 절대 안 묵어야지” 다짐했지요. 그러다 손을 집어넣거나 침을 넣는 심술을 부려도 아부지들은 “왜 이리 막걸리가 달다냐?” 했었지요.
                                            
이런 기억들은 훗날 아부지를 그리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옛날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다니던 꼬마들은 어느 새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막걸리를 보면 아부지를 떠올리는 공통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공동의 추억은 무엇이 있을까?

때때로 우리와 비교해 ‘현재 커가는 아이들은 어떤 공동의 추억이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무엇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릴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물론 개개인이 따로따로 갖는 아버지와의 추억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에겐 딱히 꼬집을만한 공동의 추억은 없을 듯합니다. 굳이 꼽으라면 2002 월드컵 정도랄까요.

그러나 이보다는 컴퓨터 하는 아이. 죽어라 공부하는 아이. 학원가는 아이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도 모자라 외국으로 유학 가는 아이도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하여, 우리 자녀들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될 만한 ‘공동의 아버지 상’이 몇 개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더 늦기 전에 세대 간의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따라 어째 아이들이 가엽게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위를 뚤고 자라는 소나무처럼 인생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필요할 것인데...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2,618
  • 69 57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