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산중에 있을 때에는 섬돌 앞에 놓인 하얀 고무신을 볼 때면 마음이 찡할 때가 있었다. 파랗게 머리를 깍은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외로움이었다.
다음날 늦은 오후 그는 변장을 하고 서점으로 향했다. 친일인명사전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곳으로 갈려면 지하철을 타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와 승객 대기선에서 전동차를 기다렸다.
퇴근시간이긴 했지만 유달리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니?”
“오늘 한일전 축구하는 날이잖아요.”
오래전부터 축구 한일전이 뜨거운 감자가 아님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열기를 느껴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저마다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듯 했다.
그도 사람들 틈에 섞여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승리!”
이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였다. 이렇게 축구공 하나에 뜨거운 가슴을 쏟는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작은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국가는 분명히 못 박고 있었다.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둔 단체나 개인에게 연금형식으로 돈을 지급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국위선양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면 중국 조선족으로 남아있는 독립투사의 후손들에게 조국이 주노라며 떨어진 양말 쪼가리 하나 준 적이 있었던가.
올림픽에 나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싸워 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그들에게 정부는 과연 무얼 했었던가.
나랏돈이 많아서 그럴 역량이 생겼으면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일을 한 사람들을 챙기고 끌어안아야 하는 것 또한 국가가 할 일이었다. 국위선양과 독립운동,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는 어린아이들도 뻔히 아는 문제였다.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던 당사자가 이미 없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독립투사를 둔 가족들이 겪었을 아픔 또한 당사자에 뒤지지 않을 고통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남재 형은 자신의 고모님에게서 들은 조부님에 관한 일화를 동해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조부,긴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일제의 앞잡이들과 밀정들은 밤만 되면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 새벽이 될 때까지 소리를 질러댔다.
“백마해를 죽여라!”
“백마해를 잡아라!”
그는 남재 형의 조부였다.
가족들은 밤새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불로 덮어 씌워 그 소리를 못 듣게 했다. 혹시라도 누가 들이닥칠까 봐 문고리에 숟가락을 서너 개씩 꽂아두고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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