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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17세에 결혼해야 했던 서글픈 사연
과거나 지금이나 부부가 변치 않아야 할 게 있다!

 

  

선남선녀가 사랑으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한 출발점이 결혼식입니다. 어른이 되는 신고식인 셈이지요.

1980~90년대에는 결혼 연령대가 주로 20대였습니다. 이유는 여자들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수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2000년에 들어 30대로 늦춰지고 있습니다. 의학 발달이 한 원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삶의 자세 변화

“결혼 빨리하면 개고생. 그런데 뭐 하러 빨리 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를 넘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가정보다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 변화 탓입니다.

둘째, 경제 사정 변화

“기반 잡고 결혼해야지 없으면 둘 다 힘들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 사랑만 가지고 결혼하기 쉽지 않습니다. 안락한 삶을 위해 탄탄한 직장과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 결혼하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결혼식에서 경제력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겁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이전에 결혼 연령대는 어찌 될까?  

 


이들 노 부부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올해로 85세 84세이신 곽씨 부부와 84세 80세이신 임씨 부부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결혼식 주례자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고 외치던 머리 색깔이 파뿌리로 변한 부부였습니다.(염색을 해 티가 덜 났지만)

"
두 분, 언제 결혼하셨어요?"
"결혼? 나는 열일곱, 남편은 열여덟 살 때."

"와~, 오래 되셨네요. 그럼 같이 사신지가 몇 년 되신 거죠?"
"
그러고 보니 67년이나 되었네. 오래 살았지…."

"어머니는 몇 살 때 결혼하셨어요?"

"내가 스물 하나, 남편은 스물다섯이었어. 결혼이 많이 늦었지."

"
어머님 아버님은 부부로 몇 년을 같이 사신 거죠?"
"몰라, 안 세 봤어. 가만 있자 몇 년 되었더라~. 올해로 59년 됐네."

이들 노 부부에 따르면 “60년대 이전에는 결혼식을 늦어도 20대 초반에 했다”고 합니다. 이 보다 어린 경우도 있었다던데 “어떤 이는 첫날밤도 모르는 철모르던 13, 4세에 부모들에 의해 결혼했다”더군요.

"
옛날에는 엄청 일찍 결혼 했네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여기에 자네들이 모르는 사연이 있어. 자네들도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살아."

부모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그토록 빨리 결혼해야 했던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우리가 결혼할 땐 일제 시대였어. 그때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은 징용이나 군대에 끌려가야 했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팔려가야 했지. 그러니 부모 마음이 어쨌겠어? 그래서 부모들이 자식을 서둘러 결혼시켰지. 이 때문에 결혼식 당일 신랑신부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조기 결혼 풍습이 나라 잃은 설움 때문이라니 기막혔습니다. 일제 강점기는 부모 세대에게 이런 아픔까지 안겨 주었습니다. 게다가 신랑신부가 결혼 식 날 처음으로 얼굴을 대하다니…. 이게 요즘 같으면 있을 법한 일입니까?

 


부모세대에 비하면 지금 자녀들은 편하게 결혼합니다. 그런만큼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지요.

노 부부는 더욱 충격적인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왜 10대에 결혼한 줄 알아? 태평양 전쟁 와중에 징용이나 군대, 위안부로 끌려가면 죽으니까 죽기 전에 결혼해 후세라도 이어라고 부모들이 서둘러 결혼시킨 거야. 자네들이 이런 서글픈 마음을 어찌 알겠어?”

우리들의 부모 세대의 부부는 사랑 타령은 고사하고 ‘종족 번식’이라는 절대 절명의 자연 본능에 순응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지금과 과거 결혼 연령대는 차이가 많습니다. 이 만큼이나 부부의 모습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모 세대 부부들이 아픔을 가슴에 묻고 ‘정(情)’으로 살았다면 지금 세대는 ‘자기’와 ‘경제력(돈)’으로 사는 경향입니다.

그래섭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부부가 변치 않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그건 ‘사랑’이겠지요.

하여, 반목하기보다 서로 마음껏 원 없이 가슴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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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는 관심, 우리정부는 철저히 외면”
평화의 섬 제주 여행서 찾은 평화박물관


평화박물관의 일본군 지하 갱도는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아픔이 남아 있다.
평화의 섬 제주.

평화박물관 일제 지하 요새 모형.

제주에는 고려시대 삼별초 항쟁의 최후 보루로, 조선시대 귀양지로, 일제 강점기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한 일본군 진지로, 해방 후 4ㆍ3항쟁과 6ㆍ25까지 피로 얼룩진 아픈 역사가 있다.

평화에 대한 제주인의 갈망은 과거 아픈 역사를 오롯이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제주인의 평화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 부르는 데는 많은 노력이 스며 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가 자기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다가 여기에 와서 우리를 이해하고 간다.”

제주시 한경면 가마오름에서 평화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영근(56) 관장의 설명이다. 평화박물관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대가 주둔했던 지하 요새다. 이곳은 이영근 관장이 강제 동원됐던 땅굴 현장을 복원 나라 잃은 설움과 고통을 후세에게 전하고 화합의 장이 되길 바라고 세운 평화의 전당이다.


가마오름 정상에서  평화 기원 풍선을 날리려는 이영근 관장과 관광객들.

그러나 관련 단체나 정부의 외면 속에 오롯이 한 개인에 의해 세워진 외곬 현장이다.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는 와중에도 정부는 비참했던 우리네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일 기미조차 없다.

이영근 관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역사와 평화 교육을 하는 곳을 왜 국가가 하지 않고 개인이 발굴해 운영 하느냐?며 의아해 한다.”고 전한다. 북한이 만든 땅굴을 역사 현장으로 알리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일 양국의 반응 또한 사뭇 대조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영근 관장.


지하 요새 입구.

지하 요새의 등잔.

“일본 정부는 관심, 우리 정부는 철저히 외면”

“일본 정부도 관심을 나타내는데 우리 정부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이영근 관장의 탄식어린 울림이다. 하지만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A4용지 1장에 평화박물관 내에 추모탑을 세워 달라는 내용 등을 써서 일본 정부에 보냈더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나 몰라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테마 관광지로 조성된 인근 낙천리 의자마을에는 왔는데 평화박물관은 둘러보지도 않고 갔다. 이는 우리 정부의 역사의식 정도를 말한다.”

이처럼 평화박물관은 정부가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선조들은 왜 나라를 빼앗겨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지 반성하고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인지를 외면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영상관에서 당시의 영상을 보는 관광객들.
관광객이 남긴 염원들.

관광객들이 평화 염원을 적고 있다.

가마오름 땅굴은 일제가 이른바 ‘결7호 작전’에 의해 1945년 3월 제주도에 제58군사령부를 창설, 제주 전역에서 연합군에 항거해 최후의 일전에 대비해 구축된 진지 중 최대 규모다. 총 길이 약 2천m, 출구만 33개며, 17개의 통로가 미로형태로 이어져 있다.

평화박물관 영상관에는 당시의 고통을 겪었던 분들의 증언과 그 시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또 전시관에는 전쟁에 사용했던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전쟁의 결과는 무엇이며, 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을 생각하게 했다.


한 개인에 의해 복원된 지하 요새.

일본군 사령관실.

강제동원된 한국인.

평화 기원.

평화 염원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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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indmark.tistory.com BlogIcon 혜 천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오래만에 등잔을 봅니다.
    아마 우리세대 까지만 보았을겁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0.01.18 09:31 신고

[사진] 너무나 닮은 꼴, 두 나라 ‘풍경’

저런 건 좀 안 닮았으면 좋을 것을…
여수와 일본 나가사키의 산꼭대기 아파트 모습


동남아를 강점했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도를 두고서도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꼬나보고 있는 일본. 굳이 말이 필요 없는 가까우면서도 먼 두 나라, 한국과 일본.

재수 없게스리, 도시의 좋지 않은 모습까지 닮아 있다.
이런 것 좀 안 배우면 어디 덧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 나가사키현의 사이카이시 오오시마 군도(群島)에는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캔 석탄을 군수물자로 대기 위해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지어 사람들을 거주시켰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월이 지난 지금,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도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지어 사람들의 주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 했을까? 일본과 너무나 닮아 있다.
여수 구도심 옆, 고소동 산꼭대기에 한신 아파트가 들어섰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놀라는 게 있다고 한다.
너무나 닮아있는 '도시 풍경'이라 한다.

“뒷골목까지도 그렇게 닮아 있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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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방문한 일본 나가사키는 여수와 똑같은 도시건축물을 갖고 있었다.
도심, 산 꼭대기에 지어진 아파트.

일본 아파트 색깔이 칙칙하다는 사실 이외에는 너무나 닮았다.
정말, 못된 것은 빨리 배운다더니 정말이지 못된 것을 배운 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수의 건축허가 시점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으로 바뀌려던 막판.
여수시도 몇 차례 철거 비용 등을 따져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으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쇼 켄고 나가사키시 건축주택부장은,
산 꼭대기에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 씁쓰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시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 철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법과 조례에서 저런 건물을 설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하는데 아직 규제할 근거가 없다.”

“돈이라면 무작정 달려드는 기업이 문제다.
기업들도 공익을 생각하고 사업을 펼쳐야 한다.
철거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는 철거돼야 할 건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와 이야기 중 하마터면
“여수에도 이와 똑 닮은 아파트가 있다.”고 말할 뻔했다.

국내에선 뭐라 할망정 외국에서,
그것도 일본에서 자기 나라를 비하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 이 한신아파트는 건축 전문가는 물론
관광 전문가들에 의해 여기저기 흉물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지역민도 무척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저기에 건축허가 내준 놈이 누구지? 쳐 죽일 놈…”하고.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최가 확정된 마당이다.
세계적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박람회 개최 전에 철거가 마땅하다.

이래저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수 구도심에서 본 장군도와 돌산대교

이순신 장군은 이 바다를 보며 임진왜란을 진압했다.

여수 고소동 꼭대기에 자리한 한신아파트에 살았던 김모씨는,

“이런 곳에 아파트를 지었다, 욕하지만 살아보면 그게 아니다.
장군도와 돌산대교가 바라보이는
여수항의 수채화 같은 경치가 그만이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괜스레 부아가 치민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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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phiako.tistory.com BlogIcon 초하(初夏)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작품을 만들려 찍은 사진인 것처럼, 참 신기하고 대단하게 보입니다.
    덕분에 좋은 감상과 더불어 마음 삭이며 돌아섭니다.
    멋진 8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2008.07.31 23: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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