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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나름, 노점상이라 깔보지 마라

“초등생들이 불매운동으로 이 자리를 지켜줬지요!”
길거리 노점상 닭 꼬지 아저씨 ‘김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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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점 앞에는 사람들이 항상 기다린다.

“학생, 시험 언제 봐?”

뜬금없다. 길거리 노점상이 닭 꼬지 팔다 말고 ‘시험 언제 보냐?’니. 손님에게 말 붙이는 것으로 보기에 이해 범위를 벗어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데 왜 시험기간을 물어봐요?”
“학생들 시험기간에는 닭 꼬치 파는 시간을 늘리려고. 그러려면 미리미리 알아둬야 하거든.”

“주 고객인 학생들이 시험 준비하면서 맛있는 간식 먹고 열심히 공부해라”는 설명이다. 나름,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이곳 영업은 보통 오후 2시부터 밤 10시. 하지만 시험기간에는 11시, 방학 때는 9시 등 약간의 변화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노점상은 말 그대로 ‘대박’이다. 밖에 나가는 아빠에게 서너 살 쯤 되는 앳된 목소리로 베란다에서 “아빠, 닭 꼬지 사오세요!” 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정도다. 손님도 어른에서 아이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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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맛을 낸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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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맛있다고요.

월 순수입 400~500만원…“와우, 대단한대”

꼬지 먹으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 먹을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재료가 떨어져 일찍 철수하는 때가 많다. 또 이곳은 수ㆍ목, 이틀간 좌판을 벌이기에 손님들이 더 안달이다. 월ㆍ화, 토ㆍ일요일은 다른 곳에서 장사한다. 금요일은 쉬는 날.

“하루 매출 30~60만원. 월 매출 900~1200만원. 월 순수입 400~500만원.”

야! 입이 떡 벌어진다. 신의 직장 수준은 아니지만, 웬만한 샐러리맨 보다 훨씬 났다. 가게를 차려 벌었다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갈 일. 그러나 사회에서 아래(?)로 보는 노점상 얘기라면 달라진다. “와우, 대단한데!”

혹, “이렇게 많이 벌다니” 하며 “세금이 얼만데….” 배 아파 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천대(?)시 당하는 보상으로 여기면 이해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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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빈 씨.

내 일을 한다는 기쁨에서 시작한 노점상

김장빈(34). 도무지 힘든 일은 안하려는 판에, 그가 길거리 노점상으로 나선 건 사년 전. 더더구나 서른에 노점상을 택했다. 예전 농업기계 정비 10년, 중소기업 3년의 기간도 있었다. 불황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둘째 형 식당에서 2년간 일하기도 했다.

형의 식당은 홈런이었지만 자신에게 남는 게 없었다. 남들 눈이 문제가 아니었다. 고심 끝에 밑천 없고, 배움 짧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노점상을 택했다. 무엇이든 “내 일을 한다”는 기쁨이 있었다. 차량과 시설 등에 따른 초기자본 11,000만원을 융통해 석 달 만에 갚았다.

지난 1월, 노점을 순천에서 여수로 옮겼다. 방학이라 고전했다. 개학과 더불어 입소문이 나면서 나아졌다. 그러던 중 인근 상가에서 “장사가 안된다”며 태클을 걸어왔다. 밀리면 끝이다.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초등학생들이 상가에서 닭 꼬지 못 팔게 한다고 저희끼리 불매운동을 했대요. 입소문으로 닭 꼬지 아저씨 못 오게 한 상가 가지 말라고. 동참한 아이들이 늘어 상가 매출이 줄었고, 상가에서 원인 파악을 했더니, ‘맛있는 불 닭 못 먹게, 불쌍한 아저씨 못 오게 막는다’는 것 때문임을 알았다나요. 손님 덕에 장사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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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익어가는 닭 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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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내는 소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는 만큼 돌아온다!

말솜씨도 닭 꼬지만큼이나 맛깔 난다. 닭 꼬지 사러 온 아주머니, 아이들도 재미있다는 듯 귀를 쫑긋하고 있다. 손님들,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취재하세요?”란 말도 건넨다. “저 사진 나오는 거예요?” 묻기도 한다. “저 꼭 내주세요!” 요청하는 학생도 있다.

“다른 곳 텃새는 어때요?”
“장사는 목이 중요해요. 조금만 옮겨도 잘 안되는 곳이 있어요. 그런 목은 꼭 차지해야 돼요. 해꼬지를 당해도 폭력은 절대 안돼요. 그러면 거기는 포기해야 하죠. 말로 해도 안되면 행동으로 옮기죠. 물건도 갖다 놓고, 차도 주차해 놓고 버티죠. 누가 끈질기게 버티냐 하는 싸움이에요.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하는 만큼 돌아와요!”

이야기 중 양념이 섞인다. “우리 학생 무슨 맛으로 달라 그랬지? 아저씨가 잊었네?” “순한 맛이요.” 닭 꼬지를 굽다가 타는 곳은 가위로 잘라낸 후 소스를 바른다. 기다리는 아이들 침을 꼴딱꼴딱 삼킨다. 지나가던 차가 멈추더니 한 사람이 이쪽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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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려요?

장사? 편견에서 벗어나야. 원하는 사람은 같이…

“장사 비결이 있을 텐데?”
“자기하기 나름이죠. 많이 배우러 다녔어요. 닭 재료로 허벅지만 쓰고, 양념과 소스는 많이 하면 뻣뻣해 땡기는 맛이 없어져, 뭐든 적당이가 중요하죠. 굽는 것도 온도, 시간, 열을 잘 맞춰야 해요. 안 그러면 뻑뻑하죠. 14개 사먹으면 하나는 덤으로 줘요. 그리고 마음가짐, 옷차림, 손님 대하는 태도, 말솜씨 등 모든 게 비결이죠. 대충하면 안돼요. 손님들은 금방 알거든요. 뜨거운 불로 굽는다고 손님 앞에서 땀을 흘려서도 안돼요.”

워매~. 순수익을 듣고 벌어졌던 입이 또 떡 벌어진다. 노점상이라고 우습게 본 것이다. 아주머니, “그냥 먹어도 좋지만, 이건 양파, 마늘을 얹어 상추에 싸먹으면 딱이에요.”하며, 꼬지 맛있게 먹는 비결을 전수한다.

“길거리 음식은 더운 여름에는 안되고, 추운 겨울에 잘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장사를 할 수 있다. 꼭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 하랬더니, 편견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는 쉬는 날이다. 푹 쉬었으면 싶다. 그러나 닭고기 준비하랴, 소스와 양념 만들랴 바쁠 것이다. 그의 쉬는 날까지 취재했으면 하는 마음 굴뚝같은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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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타고 가다 내려서는 먹는 비법을 가르쳐 준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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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 NO, 돈이 다? 아니다! 그럼,

텃새에게 신뢰와 믿음 얻은 탁동석 씨
[꽃섬, 하화도 6] 텃새와 철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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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왜 달개비일까?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섬이라고 빗겨갈 순 없다. 오랫동안 섬에서 둥지를 틀었던 텃새들도 떠나는 판이다. 이런 마당에 ‘철새’가 날아들어 둥지를 틀다니….

그 현장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 ‘아래 꽃섬’ 하화도(下花島). 한 때 40여 가구 100여명의 텃새가 살았다. 지금은 24가구 30여명의 텃새만 남았다. 남은 텃새들의 정착 기간은 60년 이상. 노쇠한 텃새들만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남은 걸까?

철새화한 텃새 2세들은 어미 텃새의 둥지를 간혹 살핀다. 텃새 3세의 울음소리가 끊긴지는 20년이 넘었다. 이로 인해 둥지는 적막과 고요 속에 묻혀 있다. 간혹 외로운 어미 텃새의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트릴 뿐.

이런 하화도에 철새가 날아든 것이다. 막무가내로 들어온 철새는 아니다. 텃새가 물어온 철새다. 이 철새들은 왜 섬으로 날아들었을까? 그 이유를 짚어보자. 두 번째로 <집 지으러 온 텃새화 된 ‘철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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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에 집 지으러 온 탁동석 씨.

# 2. 집 지으러 와 텃새화 된 ‘철새’

탁동석(53) 씨. 그는 지난 해 하화도와 인연을 맺었다. 자영업을 하는 그는 3급 장애인. 객지에서 일로 만난 텃새의 집에 놀러왔다가 밭ㆍ집터 등 2373㎡(718평)의 땅을 소개 받은 게 계기였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땅만 사면 집을 짓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법은 그게 아니었다. 원주민이 아니면 집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집을 짓기 위한 절차가 필요했다. 밭농사를 지어야 했다. 콩을 심었다. 그런데 웬걸, 콩보다 비료 값이 더 든다. 우스운 일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니….”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농사를 지으며 농지취득 자격조건인 농지원부에 이름도 올렸다. 이제 막 섬에 둥지를 튼 그는 바다 사람의 ‘텃세’를 이겨내기 위해 텃새들과 친해져야 했다. 또 집 짓고 살기 위해서는 텃새들과 친숙해지는 과정이 더 필요했다.

우선 마을 해안 정비 등에 필요한 포크레인을 옮겨와 마을에서 사용토록 했다. 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당에 물이라도 뿌리고 싶지만 꾹 참았다. 하화도는 물 사정이 나은 편이라 하지만 물이 귀한 섬에서 함부로 물을 뿌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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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새에게 신뢰와 믿음 얻은 탁동석 씨

그는 철새의 토착화 과정에 대해 “주민들은 행동을 보고 가식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철새가 텃새에게 신뢰와 믿음을 얻을 때까지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철새의 노력들이 통했을까? 노력 중에 텃새들이 집 지을 때까지 거주할 곳을 알선했다. 또 농작물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면 막걸리를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를 섞기도 했다. 다른 땅도 사주기를 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텃새들의 텃세 고비를 넘기고 있다.

탁동석 씨는 꽃섬에 둥지를 틀며 배운 게 있다. “인생은 사람마다 연결된 인연의 끈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계산적인 차가운 사람과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은 사람은 인연의 끈이 금방 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 끈끈한 만남의 지속을 위해 “털털하고, 메마르지 않고 인정 많은,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게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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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새들이 가져다 준 농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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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일을 찾아온 텃새화 된 ‘철새’

절망에서 희망과 행복 찾은 김태수 씨
[꽃섬, 하화도 5] 텃새와 철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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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뱃일로 적은 돈벌이로 사람이 떠나가는 섬. 그런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섬이라고 빗겨갈 순 없다. 오랫동안 섬에서 둥지를 틀었던 텃새들도 떠나는 판이다. 이런 마당에 ‘철새’가 날아들어 둥지를 틀다니….

그 현장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 ‘아래 꽃섬’ 하화도(下花島). 한 때 40여 가구 100여명의 텃새가 살았다. 지금은 24가구 30여명의 텃새만 남았다. 남은 텃새들의 정착 기간은 60년 이상. 노쇠한 텃새들만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남은 걸까?

철새화한 텃새 2세들은 어미 텃새의 둥지를 간혹 살핀다. 텃새 3세의 울음소리가 끊긴지는 20년이 넘었다. 이로 인해 둥지는 적막과 고요 속에 묻혀 있다. 간혹 외로운 어미 텃새의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트릴 뿐.

이런 하화도에 철새가 날아든 것이다. 막무가내로 들어온 철새는 아니다. 텃새가 물어온 철새다. 이 철새들은 왜 섬으로 날아들었을까? 그 이유를 짚어보자. 첫 번째로 <바다 일을 찾아 날아든 텃새화 된 ‘철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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껓섬을 찾아 들어온 김태수 씨.

# 1. 바다 일을 찾아온 텃새화 된 ‘철새’

김태수(72) 씨. 그가 둥지를 튼 건 2005년. 내리막길을 걷던 사업을 정리하고 빚 1억7천만 원을 청산한 게 계기였다. 마땅한 일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하화도의 텃새가 바다 일을 권했다.

마침 자녀 결혼 비용 마련에 애태우던 어부에게 빌려줬던 15,00만원을 현물인 배로 대신 받았다. 통발 허가가 난 배여서 바다 일을 할 수 있었다. 바다 일을 권했던 텃새의 알선으로 둥지까지 마련했다.

텃새의 권유가 없었다면 바닷가 ‘텃세’로 인해 어장 일을 못할 수도 있었다. 가족을 육지에 남겨둔 채 혼자 일거리를 찾아 들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배는 혼자 움직일 수 없었다. 2인 1조로 일할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비용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때마침 일손을 찾는 텃새가 있었다. 행운이었다. 그와 동업에 나섰다. <힘든 고기잡이 보다 더 힘든 건 ‘기름 값’ 기사 참조 http://blog.daum.net/limhyunc/1112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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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런히 손을 놀리는 김태수 씨.

절망에서 희망과 행복 찾은 김태수 씨

이렇게 철새는 “나이 들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 살 수 있는” 안정적인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육지에서 노인당을 나가더라도 가욋돈이 필요한데 섬에서는 공기 좋지, 환경 좋지, 움직여 건강 좋지, 돈 쓸 곳 없지 일석사조(一夕四鳥)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철새 김태수 씨의 섬 예찬론이다. 육지생활에서 찌들고 지쳐 절망했던 그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섬에서 찾게 되었다. 덤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여유까지 누리고 있다. 그리고 삶의 철학도 생겼다.

“과거에 잘사는 것은 다 필요 없다. 현재에 잘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김태수 씨는 이것을 알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돌아, 결국 ‘아래 꽃섬’에 날아들어 둥지를 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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