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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연인? 박경리 선생 앞에 서보니
통영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 둘러보기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말입니다.

아내는 박경리 선생 묘소 옆의 정자에 걸린 현판을 보고, “저 문구 그대로 글을 써 집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다”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철학자 같은 소릴 하대요.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게 서럽다는 생각을 뒤집는 말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 글귀를 가슴에 안고 살면 좋겠다.”

 

 

 

 

 

아내와 지난 주말 통영으로 1박 2일 부부 여행을 하였습니다. 통영에서에서 처음으로 들렀던 곳은 ‘박경리 기념관’과 ‘박경리 공원’이었지요.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박경리 선생은 제가 대학 다닐 때 가슴 속 연인으로 삼았던 분입니다.

그녀가 떠나고 없는 지금, 그녀의 문학관과 묘소를 찾는 것이 한 때 연인으로 여겼던 마음속 사랑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그녀의 시 한 편 감상하지요.

 

                   눈먼 말
                                                 박경리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 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왔네

 

이랬던 그녀가 지금은 문학 속 작품으로 남아 많은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연과 생명의 존엄 작가, 혹은 <토지>의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의 근원이라면,
생명의 하나인 인간도 자연입니다.
그러니 자연과 자연이 합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섭리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자리 잡은 박경리 공원에는 시비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꽃들이 피어 그녀의 운치를 더해 주대요.

기똥차게 기분 좋았던 건 그녀가 몸을 누인 묘소였습니다. 겉치레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간 모습이 ‘역시 박경리 선생’이란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조촐한 묘소가 마음을 잡아 끌더군요.

 

그녀의 묘소 옆에 피었던 괭이밥이 눈길을 끌더군요.

 

묘소에서 바라보는 풍광 또한 운치가 철철 넘쳤지요.
바다와 마을을 약간 비껴서 바라보는 관조자의 모습이 그녀다움을 더욱 빛냈지요.

 

 그래선지, 아내는 한 때 남편의 마음 속 연인이었던 박경리 선생에게 찬사를 쏟아냈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 박경리 <마지막 산문> 중에서 -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역경을 이겨내고, 그녀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박경리 선생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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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남 통영 동피랑에는 어린왕자의 꿈이 스며 있었다.

“통영 동피랑에서 벽화를 그릴 거예요. 림이 낡아 새로 그린대요. 별 일 없으면 구경 한번 오세요.”

지난 봄, 지인은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듯 말했다.

“와, 벽화도 그리세요. 부러워요. 꿈과 희망을 주렁주렁 달아주세요. 가긴 쉽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았었다. 그렇지만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다. 솔거였다. 

벽화에 이끌렸을까? 환쟁이에게 끌렸을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어느 덧 홀로 경남 통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그쪽을 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의 모습마저 그림이었다.

골목골목에는 꿈이 그려져 있었다.

풍경 자체가 그림이었다.

동피랑 명물인 구판장.


재래식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동피랑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묻고 있었다. 꼭 가고야 말겠다는, 지인이 그린 벽화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찬 목소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앞장서 나를 이끌었다. 알고 보니 바로 턱 밑이었다. 이런 걸 보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걸까?

동피랑은 언덕빼기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관광객이 이 언덕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희희낙락거렸다. 물론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어떤 벽화를 그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의아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볼품없는 골목길. 주름살을 가득 안은 주민. 그렇지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소박한 모습에서 웬일인지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장은 공>을 떠올렸다. 이들은 난장이일까? 거인일까?

동피랑은 통영의 새로운 볼거리였다.

 강구항에서 본 동피랑은 언덕배기 자체였다.

동피랑에는 꿈이 있었다.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동피랑 골목에는 지인 일행이 그린 그림 수놓아져 있었다. 꽃게, 오징어와 복어 등 물고기와 갈매기 등 새, 어린왕자와 그의 상징인 뱀과 야자수, 코끼리 등도 있었다. 또 어릴 적 추억이 물씬 생각나는 연과 숨바꼭질 장면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솔거가 통일신라시대 황룡사에 그렸다는 벽화 ‘노송도(老松圖)’. 여기에는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어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전설이 녹아 있다. 그만큼 실제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때 아니게 솔거 벽화를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동피랑은 사람이 떠나던 산동네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언덕배기로 탈바꿈한 사실 때문이다.

어쩜, 솔거가 벽에 그린 소나무는 새들에게 또 다른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랬다. 동피랑의 벽화는 우울하고 쓸쓸한 산동네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는 세상이었다.

 우리 각자도 꿈이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동피랑은 자체가 꿈이었다.



동피랑은 사람들이 떠나가던 곳에서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통영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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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도의 그윽한 아름다움
여행길에서 대하는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승당 내의 충무사 가는 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작가 이제하의 소설입니다. 이 제목이 좋더군요. 홀로 떠난 여행자의 외로움을 아름답게 표현한 느낌이 들어서지요. 또 묘한 영상미까지 전해지는 듯해서요.

이렇게 홀로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마산, 거제를 거쳐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갔지요.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등 가고 싶은 섬들이 늘어섰더군요.

경남 통영 한산도.

한산도까지는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철부선으로 20여분 걸립니다.

철부선에서 본 통영.

한산도 가던 길에 만난 거북 등대.

한산도 제승당 가는 길.


제승당 입구.

어딜 가야 할까? 시인 이용한 씨가 책 <물고기 여인숙>에서 권했던 곳은 ‘사량도’가 끌렸습니다. 김천령 님에게 전화했습니다. 받지 않더군요.

시간 상 배를 타고 한산도로 향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놈을 쳐부수며 “한산도 달 밝은 밤에~”를 읊조렸던 기억 때문입니다. 객선에 올라 한산도로 가던 중, 김천령 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예쁘기로는 꽃이 핀 ‘화도’다더군요. 에고, 에고~.

 한산도 선착장.


 제승당 주위에는 멋진 소나무가 즐비했습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도의 그윽한 아름다움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철부선으로 20분 만에 도착한 한산도. 섬이 커 걸어서 전체를 둘러보기엔 무리라더군요.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남짓 걸리더군요.

참고로, 한산도는 저탄소 녹색성장 탐방 프로그램이 마련돼 자전거 일주가 가능한 곳입니다. 또 망산 탐방로는 3시간여가 걸립니다.

해안에는 통영 특산물로 유명한 ‘굴’ 양식장이 즐비하더군요. 해안선도 예쁘더군요. 다도해 명성에 걸맞게 점점이 섬과 풍경은 그윽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역시, 한려해상국립공원다웠습니다.

한산도 굴 양식장.

 제승당.


제승당 가는 길.

여행길에서 대하는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

통영 한산도 인근 바다는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무찔렀던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한산대첩은 1592년 7월8일과 10일에 충무공이 이끌던 조선 수군과 왜장 와키자카 수군을 크게 무찔렀던 자리지요.

충무공은 학익진을 펴 거북선과 총통으로 왜선 47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북진하던 왜군의 보급로가 거의 차단되어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충청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지요.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사당 충무사.

 충무공 영정.

제승당에서 본 해안 풍경.

제승당으로 향했습니다. 제승당은 총 1,491일 분량의 난중일기 중 1,029일의 일기가 여기에서 쓰여 졌고,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던 충무공의 얼이 남아있는 곳이지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충무공의 얼도 매력 만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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