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료 먹는 미꾸라지와 금붕어, 개구리의 합창

철학자 질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이 사는 법 ‘해학’

 

 

 

 

제주도 우도 금강사 경내의 관세음보살상 밑에 연못엔...

금강사 대웅전 옆 용왕님 전 밑 연못에는...

연이 꽃이 되었습니다!

금붕어가 꼬리를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존재가치였지요...

 

 

 

어떻게 살면 재미있게 잘 사는 걸까?

사는 날까지 이걸 알면...

 

해답은 각자의 몫...

 

 

 

“스님, 용왕님 발아래 연못에 금붕어를 풀었네요?”


“예. 용왕님 앞에서 헤엄도 쳐야….”

“고거, 재밌는 발상입니다.”

 

 

용왕님과 어울리려면 바다 속 물고기가 있어야겠지요. 그러나 뭍이니 만큼 금붕어로 대신해 상황을 연출한 셈입니다. ‘용왕님 외로워 마세요!’란 제주도 우도 금강사 주지 덕해 스님의 배려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금붕어가 연못 속 연잎 틈새로 잠깐 보였다 바로 사라집니다. 꼬리 혹은 머리만 보였다가도 금새 보이지 않습니다. 요 녀석들, 몸을 숨긴 채 좀처럼 제대로 보여주질 않습니다. 손님이 왔거늘….

 

 

“처사님, 미꾸라지도 풀었어요.”


“미꾸라지는 보이지 않네요. 미꾸라지는 뭣 땜에 풀었어요?”

“기다려 보세요. 먹이를 주면 금방 나타나지요.”

 

 

먹이로 구슬리는 지혜를 터득한 게지요. 하기야 먹이가 삶의 가장 기본이지요. 어느 철학자의 질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처럼. 덕해 스님, 먹이를 가지러 갑니다. 본래 강아지 사료인데, 금붕어와 미꾸라지 먹이로 주고 있답니다. 먹이는 하루에 한 번 준다나.

 

 

먹이는 먼저 금붕어가 먹습니다. 그리고 미꾸라지가 모이더군요. 연못 속에는 먹이를 적당히 먹고, 다른 개체에게 양보하는​ 자연 속 <상생의 도>가 스며 있었습니다. 이처럼 미물들도 함께 살고자 하건만, 하물며 인간의 욕심이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모기 유충 등이 생겨 모기가 많잖아요.

그걸 미꾸라지가 잡아먹어 모기가 별로 없대요.”

 

 

그저 운치인 줄 알았는데, 미꾸라지와 스님이 상생하는 이유더군요. 이날 처음 사료 먹는 미꾸라지를 보았답니다. 용왕님의 놀이터 연못 속에 사는 미꾸라지는 분명 살기 위해 먹는 부류였습니다.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이행하고 있으니까.

 

 

덕해 스님의 운치가 어디 이뿐일까. 금강사 절집 안팎으로 군데군데 해학이 넘칩니다. 고고한 사슴 한 마리. 고무신을 앞에 둔 아이상.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상. 게다가 금방이라고 입 벌려 노래 부를 것 같은 개구리 상까지. 많은 상상력을 부릅니다.

 

 

그는 속세에 있으되 신선처럼 사는 것 같습니다. 천상, 스님이라는….

 

 

꽃으로 피었습니다! 

연못을 노닐다가... 

 사료를 만났습니다.

어느 정도 먹은 다음 자리를 양보하는 금붕어들. 

금붕어가 비켜 준 자리, 미꾸라지가 슬슬 나옵니다. 

입질을 하고... 

 본격적으로 먹고 있습니다.

 미꾸라지 참 많더군요.

 사료가 불어야 잘 떼어진다네요.

 물에 분 사료를 떼어먹는 미꾸라지들.

이제야 잘 떼어진다는...   

 아 배부르다...

 미꾸라지 물러나자 다시 금붕어가 나타났습니다. 양보와 상생의 미덕입니다!

유유히 노닐고... 

 스님의 해학...

절집을 지키고... 

우도를 지켰다! 

 헉, 꽃사슴까지...

고무신을 앞에 둔 아이상.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상. 

물은 만물의 근원이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곧 깨달음... 

 덕해 스님 절집 마당을 쓸다 말고 허리를 펴셨다!

스님은 이렇게 연꽃이 되셨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산에 해지면 자넨들 지고 갈래? 이고 갈래?
[여수 맛집] 돔바리 회무침 - 부일식당

 

 

 

 

 

 

 

 

 

“우리 막걸리 한 잔 허까?”

 

 

이렇게 지인과 의기투합해 간 곳은 전남 여수시 문수동에 자리한 ‘부일식당’.

허름한 선술집 자체로 기분 좋았습니다.

 

 

“안주는 뭐로 허까?”


“여기 단골인 성님이 알아서 시키세요.”

 

 

앗~~~. 앉아서 살피는데, 아주 멋드러진 문구가 보였습니다.

삶의 운치가 덕지덕지 묻어난 데다, 삶의 맛까지 얹혔습니다.

 

 

 

     보게 자네!

 

 

 

  내말 들어 볼래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고
  내외도 이부자리 안에 내외지

 

 

  야무지게 산들 뾰족할 것 없고
  덤덤하게 살아도 밑질 것 없다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아라!

 

 

  니 주머니 든든하면 돔바리에
  날 막걸리 한 잔 받아주고

 

 

  내 돈이 있으면
  돔바리에 막걸리 한 잔 도 사주고
  너요 내요 그럴게 뭐고!

 

 

  거물거물 서산에 해지면
  자넨들 지고 갈래? 이고 갈래?

 

 

  우리 부일식당에서 돔바리에
  막걸리 한 잔 하게나!

 

 

 

좋은 술 좋은 자리 - 부일식당에서

 

 

삶의 맛을 아는 도인의 글처럼 생을 관조하는 맛이 뚝뚝 묻어났습니다.

이런 글귀를 보고, 막걸리 맛이 안날 리가 있나요.

막걸리가 입에 쩌~억 쩍, 달라붙었습니다.

 

 

 

 

 

 

 

한 번 가고 끝나면 삶에 무슨 재미.

다음에 지인과 또 갔지요

 

 

“성님, 돔바리 회 함 드실래요?”


“그런 것도 있었남? 거 궁금한데….”


“궁금하면 지는 것. 먹어보고 말하삼.”

 

 

돔바리 생물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회 무침으로 나온 돔바리만 있었지요.

그리고 우리네 인생이 살살 흘러 나왔습니다. 정까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음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창원 성불사 신도들과가을 단풍 산행에서 배운 것

 

 

 

 

 

 

 

 

 

 

“차가 왜 이리 막히지?”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더이다.

‘단풍’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더이다.

도로가 짜증 날 정도이더이다.

 

짜증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이 아니더이다.

단풍 구경. 이는 잠시 자연을 잊고 지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더이다.

 

 

“단풍 보러 갈까?”

 

 

단풍 구경은 정해진 시간 속에 잠시의 움직임.

이 시간 요긴하게 쓰는 게 최선이더이다.

 

산 중에서 익어가는 감이 여유를 주더이다.

이렇게  낙남정맥 중 경남 창원과 함안을 아우른 여항산 단풍 나들이를 갔더이다.

 

 

여항산에 퍼질러 앉으려는 단풍이 나그네에게 세 가지 마음 준비를 요구하더이다.

창원 성불사 신도들 착착 마음 준비를 하더이다.

 

산행 길 입구에서의 단체사진이 그것이더이다.

사진 찍을 때의 우왕좌왕과 긴장, 그리고 올바른 몸가짐은 단풍에 요구에 부응하는 몸짓이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는?

 

 

첫째, 자연에 귀의할 마음가짐이더이다.

마음이 열려야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더이다.

 

둘째, 자연을 보는 눈이더이다.

자기 방식대로 감상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보는 무위자연을 요구하더이다.

 

셋째, 자신을 되돌아보라 하더이다.

지나 온 과거를 잊지 말고, 과거에서  배움을 구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영위하라 하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 방법에 따라 산을 올랐더이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되더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름에 있어 ‘헉헉’거림은 고단한 육신이 내뱉는 뱃고동 소리로 들리더이다.

항구에 도착을 알리는 굵은 저음의 뱃고동 소리는 마음이 열렸음을 의미하더이다.

 

 

 

 

 

 

 

 

마음이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스님 : “‘불이(不二)’는 뭔고?”
나그네 : “제 아호(雅號)입니다.”

 

스님 :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무이(無二)도 있는데 왜 부리(不二)로 했을꼬?”
나그네 : “무리(無二)보다 부리(不二)가 좀 더 깊음이 있는 것 같아서요.”

 

스님 : “둘이 아니지만 하나란 의미도 아니야.”
나그네 : “그래도 하나지요.”

 

스님 : “…?”
나그네 : “…!”

 

 

 

 

 

 

 

 

산에 오르자 운해가 피었더이다.

경치가 감탄을 자아내더이다.

 

마음이 열리니 자연을 보는 눈이 정말 다르더이다.

지하세계와 인간계, 천상계 구분이 생기더이다.

세상을 이 삼계로 나누자 구름이 걸린 산봉우리가 산 중의 섬처럼 보이더이다.

 

 

바다 위의 섬이나 운해 위의 섬이나 무에 다를까마는.

섬과 산봉우리는 본디 하나였더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귀다툼에 몰두하는 바람에 이를 잊고 있었더이다.

천상계와 인간계, 지하세계가 하나일진대 그걸 지나치고 있었더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피안은 나그네에게 삶의 지혜를 안겨 주더이다.

 

그제야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가져 온 음식들을 공터에서 펼쳤더이다.

저 마다 솜씨를 발휘한 음식을 공양했더이다.

배려와 나눔의 장터이더이다.

 

맛있는 공양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나눠 주신 진리의 법문으로 씹히더이다.

그 씹힘이 어찌나 달달하던지 놀랍더이다.

 

 

 

“보증 때문에 재산 차압당하고 쫄딱 망해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술집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어떤 사람은 이런 일 할 것 같지 않은데 왜 이 일 하냐고 묻기도 했고요.

그 고충을 어찌 말로 다할까. 아이 셋 대학 보내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살만해요. 힘들 때 스님이 중심을 많이 잡아주셨어요.”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의 얼굴에 점차 웃음꽃이 피더이다.

웃음꽃은 홍조로 변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그 모습이 자연 단풍보다 더 예쁘더이다. 이 어이 보살이 아니리오!

 

 

 

 

 

 

 

“사진 찍는 표정이 왜 그래요. 내 남편 보듬는다 생각 말고, 마음에 그리던 정든 님 보듬는다 생각하세요.”

 

 

그제야 여인네들 입과 얼굴에서 “호호호~”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부부,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꼬.

 

그렇지만 현실은 정든 님 어디가고, 웬수만 남았을까.

이래서 산에 오르는 길은 수행 길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스님, 뭐하세요.”
“니는 보믄 모르나?”

 

 

봐도 보이지 않는 게 중생의 길. 그래서 스님을 따르는 것.

단풍 구경 온 중생들이 버린 마음 속 쓰레기를 줍고 계시더이다.

 

쯔쯔쯔쯔~, 가련한 중생의 길은 언제나 끝날꼬.

 

 

 

 

 

 

 

스님, 내려오던 길에 자작 시조 한 수 읊더이다.

웃음이 배시시 묻은 얼굴에서 승무의 춤사위처럼 나오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단풍을 뚝뚝 물들이는 청음의 워낭소리로 들리더이다.

 

 

 

       단 풍


                                  청강스님

 

가을 산 단풍 빛이 몹시도 아름다워
오르는 사람마다 탄성이 잦다마는
아소서, 저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해학이 덕지덕지 묻어나더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

스님에겐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생에겐 가당찮은 깨달음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어디 죽비 없을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뜨거운 거 먹으며 ‘아~ 시원타’, 왜 그럴까? ‘해학’

[여수 맛집] 돌산읍 평사리 모장마을-참옻닭정

 

 

 

옻닭 삼계탕입니다.

 

 

힘없고 무더운 여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을 나는 지혜로 몸보신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여름 몸보신 음식으로 손꼽히는 건 삼계탕, 보신탕, 낙지 등 다양합니다.

자기 체질에 맞는 게 제일이지요.

 

 

“옻닭 좋아하시는가?”
“좋지요….”

 

“2시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늦지 않나?”
“괜찮아요. 알았어요.”

 

 

‘옻닭 삼계탕’ 먹자는 지인의 제안이었습니다.

두말 않고 ‘콜’했습니다.

 

 

 어서 먹자...

참옻을 넣어 국물이 노르스름합니다.

 

 

그렇잖아도 고기도 먹지 않는 아내가 “삼계탕 못해줘 미안하다”더군요.

스스로 찾아 먹기로 했는데 기회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여수 봉산동에 자리한 옻닭 삼계탕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바뀌었습니다.

드라이브 겸, 여유로운 도심 외곽으로 빠지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모장마을 <참옻닭정>입니다.

‘참옻닭정’은 참옻과 닭, 그리고 정자를 합성한 이름입니다.

 

이곳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본래는 간판 없이 출발했습니다.

그러던 게 간판이 생겼더라고요. 간판 찾기가 ‘숨은 그림 찾기’ 같습니다.

 

 

이열치열은 역설의 해학입니다.

 

 

여수에서 돌산대교와 무술목을 지나 평사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푸른 바다와 점점이 섬, 예쁜 구름이 어울려 운치를 자아내는 풍경입니다.

음식점을 찾다가 가다가 이상해 한 마디 했습니다.

 

 

“어~, 교수님. 음식점 지나지 않았나요?”
“그랬나? 나도 헷갈려.”

 

 

차를 돌리려는데, 아직 지나치지 않았더군요.

토박이인데도 간혹 헤맵니다.

 

저녁노을 감상으로 유명한 곳이라 예쁜 별장 등이 많이 생겼습니다.

음식점은 모장 수퍼와 모장마을 이정표 못 미처 있습니다.

 

 

음식점 첨옻닭정입니다. 가정집입니다.

음식점 입구입니다.   

평사 해안길은 해넘이 드라이브코스입니다.

 

 

늦은 점심인데도 손님들이 있더군요.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중 색깔 있는 물이 나왔습니다.

이곳 별미인 옻차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특히 몸에 좋다는 참옻을 다려 우린 차입니다.

은은하고 묘한 맛입니다.

 

 

옻닭 한상 차림입니다. 

옻물차입니다.

 

 

옻은 알레르기 있는 분은 피해야 합니다.

이거 장난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옻이 타지 않게 요리한다더군요.

이게 기술이랍니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엄나무 넣은 ‘엄닭 삼계탕’을 권합니다.

 

 

맛있겠당~^^ 

 

 

밑반찬으로 마늘장아찌, 고추, 양파, 돌산갓김치, 배추김치, 소금, 된장, 무 물김치, 무장아찌 등이 나왔습니다.

 

사실, 삼계탕은 고추와 양파만 있으면 OK입니다.

돌산 식으로 투박하게 담은 물김치가 맛있습니다.

 

 

주 메뉴가 나왔습니다. 옻 삼계탕을 먹기 전 준비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끈따끈한 옻닭 삼계탕 뚝배기 그릇에 얼굴을 바짝 대고, 옻 향기를 맡습니다.

이는 양식을 먹을 때 주 메뉴에 앞서 스프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밑반찬 

물김치. 

돌산에서 먹는 돌산갓김치입니다.

 

 

“아~, 시원타~~~.”

 

 

지인이 옻닭의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마시고 하는 넉살입니다.

뜨거운 걸 먹으며 ‘시원하다’는 건 우리네 역설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목욕탕 뜨거운 탕속에서 내뱉는 한 마디,

 

“어~, 시원타~~”

 

와 같은 이치지요.

 

우리 선조들은 이열치열의 운치를 어느 민족보다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선조들에게 역설은 곧 ‘해학’인 셈입니다.

 

 

찹쌀의 유혹...

 

 

토실토실한 닭 한 마리를 후다닥 해치우니,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분입니다만 이건 고기 먹은 후의 포만감입니다.

 

고기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야채는 천천히 씹어 잘 넘기는데….

 

어쨌든 자기 몸에 맞는 보양식도 현명한 여름나기의 한 방법입니다.

 

 

옻닭 삼계탕은 또다른 유혹입니당~^^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도 안 돼. 양말에 뭐 그런 게 다 있어!”
“미치고 환장하겠네. 나만 바보 되는구먼.”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와 양말을 신을 때…

 

 

 

 

양말은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신으면 그만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가끔 멀쩡한 사람을 바보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건 쪽수 노름입니다. 일전에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등산을 한 후에도 여전히 서로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던 중, 차에서 한 지인이 등산화를 벗고 발을 쭉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터진 한 마디가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거 오른쪽에 신는 양말인데, 왼쪽에 신었네? 잘못 신었어.”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냥 발에 쏙 넣기만 하면 되는 양말을 잘못 신었다니, 농담이거니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양말에 오른쪽 왼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껏 마음 내키는 대로 신어왔던 양말이 아니던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네, 싶었습니다.

 

 

 

 

“말도 안 돼. 양말에 뭐 그런 게 다 있어!”

 

 

지인은 계속 “양말을 잘못 신었다”며 지천이었습니다.

일행들도 관심을 보이며 귀를 쫑긋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자기 등산화를 벗더니 신었던 양말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오른쪽 발에 신는 양말에는 'R'이, 왼쪽 발에 신는 양말은 'L'이라고 표시돼 있잖아요. 그걸 아직 몰랐어요?”

 

 

‘엥?’ 하면서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저만 처음 듣는 말인 줄 알았더니, 다른 지인들도 “말도 안 돼. 양말에 뭐 그런 게 다 있어!”라며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엄청 억울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옛날에 서울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문 없는 문이 어디 있냐? 고 우겼다더니 꼭 그 짝이네.”

 

 

양말을 잘못 신었던 당사자로 지목된 지인이 “그런가?”라며,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반신반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 해학으로 반격의 고삐를 죄었습니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나만 바보 되는구먼.”

 

 

아뿔싸, 양말을 내 보였는데 오른쪽 왼쪽이 씌여 있었습니다. 저도 잘못 신은 겁니다.

 

 

“라이트(Right) - 왼쪽, 레프트(Left) - 오른쪽. ‘R’이 왼쪽이지 오른쪽이냐? 너는 영어를 통 모르는구만.”

 

 

모두들 영어를 반대로 해석한 그의 돌직구성 말에 빵 터졌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모르는 사람으로 지목된 그는 가슴을 치며 억울해 했습니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나만 바보 되는구먼.”

 

 

일행이 배꼽 잡는 사이, 저도 양말을 내밀었습니다.

제 양말도 'R'과 'L'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뿔싸, 저도 양말을 바꿔 신었습니다.

무심코 양말을 내밀었다가 무식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양말 잘못 신은 지인의 기지가 발휘되었습니다.

 

 

“저것 봐. 라이트(Right) - 왼쪽, 레프트(Left) - 오른쪽 맞지? 우리는 양말을 맞게 신었고, 너가 양말을 잘못 신은 거야.”

 

 

셋 중에 둘이 양말을 틀리게 신었으니, 그게 맞다는 억지 논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대세도 대세라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진실의 오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의 지동설과 비교하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

 

 

요즘은 인공위성 사진 등으로 지구 모양이 둥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는 편평한 원반 혹은 사각형으로 보는 게 대세였습니다.

 

이에 맞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는 둥글다’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새로운 지동설을 주장했으나 묻혔습니다.

 

그러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옹호하다가 로마 교황청 종교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유죄 선고 후, 갈릴레이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Eppur si muove)”

 

 

재밌는 건, “1633년 6월 22일 갈릴레이가 했다는 이 말은 정확한 근거가 없으면서도 사실처럼 전해져 오는 말이다”고 합니다.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와 양말을 신을 때…

 

오른쪽 왼쪽 구분이 있는 기능성 양말을 모르고 무심코 신었는데 잘못 신었더군요.

 

 

갈릴레이처럼 주위의 억압(?)으로 바보로 몰린 지인은 최근 입는 행태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요즘은 기능성 의류가 대세다. 양말도 마찬가지다. 등산 할 때 발에 차는 땀을 흡수하고 발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강조되고 있다.”

 

 

다들 양말을 신어봤을 테니 아실 겁니다.

양말도 오른쪽과 왼쪽이 다릅니다.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와 양말을 신을 때 왼쪽에 신었던 양말을 오른쪽에 신었을 경우 반대쪽이 툭 튀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차분하게 바꿔 신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냥 신고 맙니다.

 

바보로 몰린 지인은 타박을 받으면서도 “요즘 등산 양말은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 오른쪽(R)과 왼쪽(L)을 구분한다”고 설명하더군요.

 

이로 보면 참 살기 편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없는 사람들이 문명을 즐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능성 양말의 따뜻함처럼 훈훈한 연말 되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모산재가 던진 저질 체력에 대한 자연의 계시
아리랑 고개 넘듯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 길

 

 

길. 그 의미는 무엇일까?

 

 

길….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내는 살면서 "남자들은 철이 없다니깐…"이란 말을 넘어 간혹 이렇게 확인했다.

"당신이 철없을 걸 알고 아버님께서 이름에 '철'자를 붙였나 봐요. '현철'이라고…."

그러니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철든 사람'을 의미한다. 어느 새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할 세월 앞에서 더욱 더 진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난 주말, 경남 합천이 초청하고 경남도민일보의 갱상도문화공동체가 주관한 1박2일 블로거 팸 투어가 있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모산재였다.

모산재를 오르내리는 '산행 길'은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람이 되어라'고.

 


모산재가 던진 저질 체력에 대한 자연의 계시

 

경남 합천 모산재 산행 길 초입의 안내판이 해학스러웠다. 

모산재 산행길은 가파름의 연속이었다. 

돌 중간중간 가파름을 잇는 계단은 자연과의 교감 통로였다.

 

 

지난 주말,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 중이었던 제 16호 태풍 산바 전야의 하늘은 찌푸렸다.

 

하지만 모산재로 오르는 초입 등산로는 귀여웠다.

나무로 만든 길 안내판이 해학적이었다.

 

게다가 등산객의 목마름을 짧은 순간에 해소시켜 줄 포장마차까지 있어 운치까지 넘쳤다.



"모산재 오르는 길 장난 아닙니다."


안내인은 겁을 잔뜩 주었다.

역시나 길은 시작부터 밧줄이 매달린 돌로 넘쳐났다.

가파른 계단까지 있었다. 자연스레 헉헉 댔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 한 저질 체력이 원인이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하라는 자연의 계시이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 넘든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로운 길

 

여느 산행길처럼 편안한 길도 있었다. 

 절벽을 대신해 오른 계단은 저질 체력을 꺼침없이 질타했다.

산행길 건너편에서 본 절벽 사이의 계단 길은 멋스러웠다.

 

 

산행 길은 흙길과 돌길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로 인해 지루함이 줄었다. 그 길은 뜻하지 않게 자신감을 선사했다.

 

그러자 모산재가 새롭게 보였다.

나무도 다양했다. 야생화도 피었다. 어느 새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모산재 산행 길은 힘든 것 같으면서도 아리랑 고개 넘든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로운 길 같아요."

 


앞서가던 일행의 모산재 길에 대한 평이었다.

듣고 나니 덩달아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위는 앉아 쉴 의자가 되었다.

바람은 쌓인 마음을 수다로 비워 낼 친구가 되었다.

땀은 자연과 하나 되는 도구였다.

 

모산재 산행 길은 세파에 찌든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스승이었다. 산행 길은 이런 맛….

 

모산재는 암벽 자체가 길이 되기도 했다.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황토 길이 운치를 더했다. 

우린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 그런 나에게 섬은 궁극의 여행지였다!”
[책] 어느 섬 여행자의 표류기『물고기 여인숙』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고기 여인숙의 구성물.

『물고기 여인숙』

적어도 내개 여인숙은 하루살이(?) 인생들이 모여드는, 그러나 훈훈함이 있는 삶의 보금자리이다. 그래선지 책 제목에서부터 풋풋한 삶의 냄새가 잔뜩 묻어났다.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시인 이용한. 낙도오지 여행을 즐기는 만큼 그의 책 『물고기 여인숙』(랑거스)은 정겨웠다.

하여, 반가웠다. 부러웠다. 시샘도 났다. 그런 만큼 여행갈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호동의 1박 2일이 우리나라 여행지 곳곳을 유명 관광지로 거듭나게 한다면 이용한의 『물고기 여인숙』은 섬에게 끈끈한 생명력을 안겨 주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섬과 섬 사람들, 섬의 풍경에 잔잔한 생동감이 있었다.


 본문에 포함된 당집이 마치 그의 물고기 여인숙처럼 여겨졌다.

이용한의 책 <물고기 여인숙> 표지.

『물고기 여인숙』에서 잠자는 이는 누구?

『물고기 여인숙』은 4개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 파트 <나를 위로하며 걷다>에서는 청산도, 조도, 관매도, 욕지도, 사량도, 거문도, 사도, 금일도, 석모도, 볼음도 등 섬을 통해 우리네 삶을 관조하고 있다.

둘째 파트 <멀고 또 멀다>는 가거도, 하태도, 만재도, 홍도, 외연도, 어청도, 여서도, 두미도 등 외딴 섬 낙도오지의 삶을 조명했다.

셋째 파트 <그 섬엔 문화가 흐른다>에서는 위도의 띠뱃놀이, 연평도 풍어제, 증도 소금, 임자도의 새우 파시, 흑산도의 검은 바다 등 섬 문화를 엿보고 있다. 또 도초도 초분, 보길도의 윤선도 흔적과 풍경, 낙월도에 산재했던 다양한 문화, 송이도 앉은 초분, 교동도 토지신 등을 그렸다.

넷째 파트 <잠시 바람이 머물다 간다>에서는 자맥질의 추자도, 제주 최북단 섬 횡간도, 숨비소리 우도, 느낌표의 마라도, 느릿느릿 시간 여행 울릉도, 가만히 불러본다 독도 등을 소개하며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와 함께 천천히 걷고 싶은 섬길, 나만의 섬 일출 일몰 명소, 섬에서 즐기는 낭만 해수욕장, TV도 반한 우리 섬 등 즐길거리를 덧붙였다. 게다가 각 섬 지도와 찾아가는 방법을 덧붙여 여행의 편리함을 제공했다.


해학이 담긴 사진.

섬의 삶은 곧 우리네 삶이었다.

“… 그런 나에게 섬은 궁극의 여행지였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하필 섬이냐고.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남들이 마다하는 오지나 두메를 무던히도 떠돌아 다녔다. 방랑자로 살아온 것도 어언 1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 나에게 섬은 궁극의 여행지였다.”

이심전심일까? 내가 섬을 떠돌아다니는 이유도 바로 이거였다. 섬은 지친 몸과 마음을 안아주었다. 섬이 팔을 벌리지 않아도 그냥 푹 안기는 모양새라 좋았다. 섬의 매력은 또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다. 가기도 어렵고, 먹고 자는 것도 불편한 게 섬 아니냐고. 오히려 그런 점이 섬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 섬에 떨어진 이상, 그곳의 불편과 단절을 즐길 필요가 있다. 고유한 섬만의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거닐어 보는 것이다.”

섬을 마음으로 느끼는 이용한의 『물고기 여인숙』에 녹아 있는 감성을 보면 그는 타고 난 시인임에 분명하다. 그의 책은 나의 섬 여행 시 이생진 시집과 함께 길동무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섬에 흐르는 문화는 어떤 게 있을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드레 김, 김봉남.



“찍지 마요~.”하던 앙드레 김 패션쇼 회상하며
다른 세상에서도 패션의 꿈을 꾸는 새 되길…


‘앙드레 김’.

언젠가 그의 본명이 ‘김봉남’인 걸 알게 됐다. 럭셔리하고 우아한 ‘앙드레’에 익숙한 우리에게 ‘봉남’은 너무 촌스럽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웃었다. 하지만 이마저 해학이었다.

그가 저세상으로 훨훨 날아 떠난 지금, 이런 해학마저 부럽고 아쉽다.

그를 만난 건, 2008년 12월이었다. 그러니까 2012여수세계박람회 성공유치 기념으로 치러진 여수 패션쇼장에서였다. 촌놈인 내가 그 유명한 앙드레 김을 이런 때 아니면 어찌 만났으랴!


2년 전, 보았던 '앙드레 김' 패션 쇼 장.

'앙드레 김'은 많은 여성들에게 꿈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찍지 마요~. 지금 감기에 걸려 꼴이 엉망이에요~.”

앙드레 김 패션쇼장은 북새통이었다. 그의 명성에 걸맞았다고 할까. 이런 패션쇼에서 디자이너를 만나지 못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었다.

그는 패션 쇼 장 앞에 있었다.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색 옷을 입고,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추운 겨울 날씨 탓인지 손수건으로 코를 연신 닦고 있었다. 촌놈인 난, 무턱대고 사진기를 들이댔다. 그가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찍지 마요~. 지금 감기에 걸려 꼴이 엉망이에요~. 이럴 땐 사진 안 찍는 게 예의예요~.”

말투에 특유의 억양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렇게 난, 그에게 예의를 한 수 배웠었다. 하여, 콧물 닦는 앙드레 김의 사진은 다 지웠었다.


'앙드레 김' 패션 쇼 장의 한 특징은 안개였다.

이 포즈는 '앙드레 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피날레 무대에 올라온 '앙드레 김'

 많은 사람들이 '앙드레 김'의 꿈을 입었다.

다른 세상에서도 패션의 꿈을 꾸는 한 마리 새 되길…

패쇼 쇼 장에서 그에게 현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떤 주제의 패션 쇼 인가요?”
“2012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축하하는 자리에요~. 그냥 즐겨 주세요~.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엉망이에요~. 여기서 그만~.”

그에게도 병이 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에게 옷의 날개를 만들어 날게 하는 청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가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다.

앙드레 김 아니 김봉남, 그가 또 다른 세상에서도 패션의 꿈을 꾸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마음껏 훨훨 날기를 바랄 뿐….


'앙드레 김'의 패션 세계는 나비의 날개짓이었다.

피날래를 장식하는 '앙드레 김'

'앙드레 김' 아니 '김봉남'이 떠난 지금, 럭셔리와 엘레강스는 우리들의 유산이 되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랜만에 만난 정겹고 훈훈한 드라마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아버지의 자화상 42] 추억 속의 아버지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된장 같은 추억 속의 드라마를 본 듯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가 그러했다.

부모 노릇, 자식 노릇 하기 쉽지 않다.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내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가에 따라 주제의 경중이 달라지겠지만, 무겁고도 가벼운 주제기도 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웃고 또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정감과 훈훈한 추억이 샘솟는 드라마였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21일,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첫 방송에서 경숙이가 집 식구 건사를 외면하고, 기생집에서 노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아버지는 이랬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내는 지밖에 모르는 아부지 필요 없어예.”

유년의 초상이었다. 여기에는 6ㆍ25와 1950년대만큼 모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우리네 아버지ㆍ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유년에 대한 추억은 찐빵과 씨름, 나물 캐기에 녹아나 있었다.

모질게도 가난했던 시절, 나물 캐며 모은 돈으로 우람한 체격의 친구에게 찐빵을 먹여가며, 씨름시합에서 쌀 한가마니를 타려는 배부름에 대한 갈망. 찐빵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꼴딱꼴딱 침을 넘기는 풍경.

배터지게 혼자 찐빵을 독차지한 후 나선 씨름판에서 결국 똥을 싼 친구. 이로 인해 씨름을 망친 아이들의 분통과 놀림. 부유한 친구의 과자 유혹과 거드름에 맛서는 주먹질과 매타작. 부잣집에서 허기진 배 채우기를 희망했지만 어그러진 꿈.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소중한 물품들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 과거에 대한 향수였다.

해학적 드라마에서 그릴 아버지를 기대하다

드라마 제작진이 밝혔듯 “흥겨우면서도 눈물 나고, 눈물 나면서도 웃음 짓게 하는 뽕짝 같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모든 아픔을 아우르는 혈육의 정과 사랑을 모두가 되새길 수 있는”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너흰 저런 시절을 모르지?”하며 애타게(?) 그 시절을 설명하기도 했다. 녀석들도 삐식삐식 웃음을 질질 흘렸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고 말았다. 요즘 아버지들이 겪는 무능(?)처럼. 그것은 터진 6ㆍ25 전쟁이 나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전쟁에서 남자는 죽지만 여자들은 안 죽는다. 피난은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가는기라.”

이런 해학적 아버지를 대하며 6ㆍ25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그리기 됐다. 4부작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그릴 우리들의 아버지와 삶이 기대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로코롬 요상시런 이름을 갖게 됐을꺼나~ 잉?

“왜 하필 나가 똥 눌 때 잽힜당가~아?”
[초보자의 야생화 따라잡기 11] 며느리밑씻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뭣이다냐?”, “뭔 이런 이름이 있다냐?” 면서도 웃음이 절로 터집니다. 허나, 민망하긴 합니다. 원인은 ‘며느리 밑씻개’란 야생화 때문입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요로코롬 요상시런 이름을 갖게 됐을꺼나~ 잉? 그 유래를 쫓아보죠.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독한 ‘시어머니’ 때문이라 하고, 얄궂은 ‘시아버지’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여자에게 있어 ‘시’자(字)는 예나 지금이나 그만큼 어렵나 봅니다. 이놈의 세상, 이런 건 왜 이리 안 바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 나름대로 ‘각색’한 전설 한 번 들어 보실라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밭두렁에 엉덩이를 까고 안자 볼일을 보아꺼따~!

“세월은 바야흐로, 종이가 무척이나 귀했던 시절이어떠언~, 거시어떠언~, 것이었따~!!!”

옌날~옌날, 어느 산꼴 마을에 메느리를 모질게도 구박허는 징허게 독헌 씨어무니가 있었드랬거따. 뭐시냐, 어느 무더운 여름, 씨엄씨가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김을 매고 있는디. 아 글쎄, 이놈의 며느리가 때가 돼도 세참을 가져오기는커녕,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시어따. (이따 주거따~~! 얼씨구~)

시엄씨, 무담시 화가 나고, 괘씸키도 허고 하야, 잠시 그늘에서 한숨을 돌리는디. 어쩌끄나! 갑짜기 뒤가 마려오는 거시어따~. 사방을 둘러봐도 똥간은 업꼬 허니, 급헌 터라 에라~이! 모르거따. 거름도 돼고 허니, 밭두렁에 엉덩이를 까고 안자 볼일을 보아꺼따.

“아이구, 엄니~. 나 살리소 허고…”

볼일을 마친 씨엄씨, 똥구멍은 따까야 것는디, 따끌 끼 업는기라. 에라~이! 모르거따, 여페 이떤 호박 닢에 손을 뻗어 뜨던는디. 어째, 이거 영 개운치가 안혀. 그래도 헐쑤수업시, 똥꾸멍을 훔쳤는디. 오매오매~ 아픈 거. 시엄씨, 뽕꾸멍을 딱따가, 아이구 엄니~ 나 살리소 허고, 엉덩이를 치켜들어 힘을 한 번 떠~억 주어꺼따.

뭔 노무 호박 니피 요로코롬 아프당가? 허고, 자기 똥 따끈, 호박 니플 쳐다 본께로, 호박 닙 말고, 다른 잔까시가 있는 거라. 요, 요상한 풀은 또 뭐시다냐 허고, 똥 무든 풀을 짜~아 짝 찌져 뿔고, 혼자말로 씨부렁거리는디, “이노무 이파리는 며늘 년 똥 눌 때나 걸리지, 왜 하필 나가 똥 눌 때 잽힜당가~아?”

하야, 이담부텀 요거싀 이름이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다는구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민의 애환이 담긴 해학적인 ‘며느리밑씻개’

또 이와는 약간 다른, 시집살이가 괴롭던 며느리와 시아버지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지요. 이건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듯 며느리 밑씻개는 구박받는 며느리의 서러운 심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맛깔스런 전설은 책상물림 양반님네들과는 거리가 먼, 아주 서민적인 애환이 담겨 있지요. 감칠 난 맛에 배시시 웃음 흘릴 정도로 해학적이기도 하구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런 이름은 서민들이 지었을 겁니다.

각설하고, 며느리밑씻개는 줄기에 날카롭고 연한 가시가 있습니다. 산에서 나무에 긁힌 상처는 대개 며느리밑씻개와 청미래덩쿨(일명 맹감)과 관련 있다 보면 무난할 것입니다.
 
며느리의 고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종류로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밥풀’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같이 비교하여 쓰면 좋은데 아직 사진 찍을 기회가 닿지 않았습니다. 다음번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집살이를 견딘 며느리의 고고함이 서린 며느리밑씻개 ‘꽃’

각설하고, 우리네 산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며느리밑씻개 꽃은 7~8월에 피어 지금 한창입니다. 하얀색과 어우러진 연분홍은 옛날 며느리들의 고생을 떠올릴 만치 가녀리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옛날, 어른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얘야,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며 “누가 뭐라 해도 입을 딱 봉하는 벙어리 3년, 들어도 못들은 척하는 귀머거리 3년, 봐도 못 본 체하는 봉사 3년”을 이르시며 그러면 “좋은 며느리가 된다.”고 했다지요.

그래선지, 며느리밑씻개 꽃을 보면 그 어려웠던 시집살이를 견뎌낸 며느리의 고고하고 정갈한 마음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그래서 더 예쁘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이런 것도 알아두면 좋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12,912
  • 50 83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