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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속 바닷가 마을, ‘조금새끼’를 아시나요?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시인 읽기]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이런 시(詩) 처음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등 부부 섹스를 밝히다니.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섹스 준비 상황까지 그리다니. 부부, 사랑 나눌 테니 조용하라고 직접 경고하다니...


 

 


불합리한 유년의 기억. 남이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다는 누이. 여인이었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누이….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문학의 전당, 9천원)>를 펼쳤습니다. 가슴 먹먹했습니다. 그동안 섬에 다니는 이유는 ‘징허디, 징헌’ 우리네 삶 속으로 쑥 들어가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다소 긴 산문 형식의 임호상의 시 ‘조금새끼로 운다’에 섬사람들의 가슴 아린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임호상의 시는 꾸깃꾸깃 꼬불쳐뒀던 두 가지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유년의 기억이 특별합니다.




 

 



#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방 내줬으니 내일부터 엄마랑 같이 지내야 한다.”


 

 


유년의 기억.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는 하루 전에 통보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미치고 팔딱 뛸 일. 당시엔 ‘그런가 보다’였지요. 집이 부족해 방만 있으면 세 줬던 시절이었으니...


 

 


제 방을 차지했던 사람은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선 배’ 선원이었습니다. 스물 언저리 총각이었던 그는 화장,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수북한 하얀 쌀밥, 갈치, 과자 등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건넨 덕분이었지요. 그건 뱃사람들이 보름 여 동안 바다 위에서 먹을 식량 등을 준비하는 ‘시꼬미’였습니다.


 

 


먹을 것에 넘어 갔을까. 형 하고 따랐습니다. 그는 고주망태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산 세월은 4년 남짓. 이후 어머니를 통해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는 ‘쫑포’(여수시 종화동)에 산다 했습니다. 대학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왔다가 술집서 우연히 그를 만났지요. 고주망태 상황에서 그의 집으로 갔던 기억….


 

 


훗날, 그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조금’이란 걸 알았지요. 결국, 그가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은 갈치조림을 잘했습니다.




 

 


#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쌀 좀 갖다 주고 와라.”


 

 


어머니는 어려운 중에도 한사코 심부름 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왜 쌀 빌려 달라 안하지?” 궁금해 하며. 저요? 그냥 싫었습니다. 당시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 이게 어머니가 사람 챙기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 걸 알았습니다. 존경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네에 아버지 없는 집이 네 집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집을 지목했습니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다른 집은 자식 넷. 이 집은 다섯이었습니다.


 

 


그들 어머니는 발품으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늘 보리밥이었습니다. 이도 없어서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부러 찾는 구수한 보리밥이건만….

 

 



당연히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들 집에는 아버지가 없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이 있었지요. ‘호로 새끼’. 애비 없는 새끼란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호로 새끼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바른 몸가짐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데도 죽어라 가르쳤습니다. 강한 생활력으로 버텼지요. 그리고 직업 선택에 불문율이 따랐습니다.


 

 


“너희들은 배타지 마라.”


 

 




임호상 시인입니다.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조금새끼로 운다


                                                            임 호상



  중선 배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조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초여드레, 스무이틀 간만의 차가 없는 조금이면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들 돌아오는 날. 조금이 되면 어머니 마음도 분주하다. 뜸을 들이는 무쇠솥처럼 이미 뜨거워져 있다. 바다에서 몇 바지게씩 고기를 져다 나르는 날이면 앞마당에 호야불 켠다. 당신의 마당에도 불이 켜진다. 보름을 바다에 있다 보면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어머니 마음도 만선이다. 뜨거워진 당신은 선착장 계선주에 이미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랬다. 조금이 돼야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때, 갯내음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조금새끼



  서방 들어오는 날 속옷을 널어 방해하지 말라는 수줍은 경고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어머니의 빨랫줄에 속옷과 함께 널린 고등어 세 마리, 누구 것인지 알 사람 다 안다. 호루라기 불면 들어오라 했는데 어머니의 호루라기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한 조금새끼들은 정박한 배처럼 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어머니는 보름을 기다려 하루를 살지만 조금새끼는 한 달에 두 번 문밖에서 하루를 산다.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홀로 남는 어머니도 참 많았다. 아버지 한 분에 어머니 둘, 조금새끼 십 남매 그때는 다 그랬다. 한 그물 속에서 그렇게 섞여 살았다고 누이는 막걸리초에 지나온 세월을 버무린다.



  어쩌면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어머니는 모두 다 작은 각시 아닌가.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청상과부 작은어머니가 아버지를 차지하고 어머니는 살을 대지도 못했다. 한 달에 이틀뿐인데 그 이틀도 어머니는 멍청이 세월로 살았다. 조금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바다에는 소리 내지 못하는 파도가 쳤다.



  남의 뱃속에서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내색 못해 큰어머니가 엄마가 되는 먹먹한 유년을 살았다. 두 분 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낡은 풍경처럼 서로를 인정해주며 그렇게 섞여 살았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며 조금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육자백이, 먼 바다를 향해 청솔개비 두드리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막걸리초처럼 속으로 삭히며 핏줄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을 절여 아버지의 입맛을 달래는, 아버지의 하루를 훔치는 어머니의 막걸리초가 되었다.



  어머니의 바다는 속 깊은 먼 바다, 겉으로 파도가 쳐도 깊은 속을 다 알 수가 없다. 날이 새면 어김없이 바다로 가는 아버지를 묶어놓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샌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밤새 하현달로 떠 있는 밤, 이번 조금 아버지 돌아오시면 당신의 아랫목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을까. 평생 바다를 보고 살아온 아버지도 어머니도 40년 배를 탔다던 정씨 아저씨도 바다가 무섭다는 말에 술잔에서 파도가 쳤다.



  문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파도 소리 자꾸만 자꾸만 어머니의 가슴을 쳤다.





바다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뭍에서 욕정의 밤에 나눈 사랑 씨앗 ‘조금새끼’



 

 


‘조금새끼’, 뭔가 했습니다. ‘조금(潮―)’은 조수 간만의 차가 없는,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를 말합니다. 매달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이 해당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알지요. ‘조금’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어부들에겐 꿀 같은 휴식기라는 걸. 이 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못한 것을 뭍에서 푸는 욕정의 밤을 맞이합니다.


 

 


모든 원인은 ‘바다’였습니다. 떠나는 아버지를 부여잡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한 바다. 남편을 잡아먹은 바다. 어머니를 청상과부로 만든 바다. 덕분에 배다른 새끼까지 거둬야 하는 삶의 바다. 어머니에게 바다는 원한 가득한 기다림의 바다였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생명의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임호상 시인에게 시 ‘조금새끼로 운다’를 어떻게 썼는지 물었습니다.

 

 



“다들 직접 경험한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는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시를 읽는 내내,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밖에도 ‘실직’, ‘징함네’, ‘야근’, ‘그냥’, ‘분만 대기실에서’, ‘오동도’, ‘목욕탕에서’, ‘똥빨’, ‘세월’, ‘모기’, ‘여수의 노래’, ‘섬’, ‘당신’ 등 개념 있고, 지역사랑 이 깃든 주옥같은 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임호상 시인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살랐습니다.

 

 


꿈, 모든 이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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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7

 

 

이 땅의 무수한 친일인사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잃고도 반성을 할 줄 모르니 또 잃을 수밖에”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과 앞으로 하게 될 일은 형이나 스승님과의 일과는 별개라 생각했다. 물론 시작은 그곳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초월한 상태였다.

 

 

 두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형성되지 않았을 가치관이긴 했지만 그는 이런 만남을 가지게 한 것이 운명이었으며 그 운명은 자신으로 하여금 이 같은 일을 하라는 임무이자 사명감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땅의 무수한 친일인사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내가 또는 내 아비가 친일을 하였으니 그 일을 사죄한다는 말 한 마디 한 적이 있었던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상황이 그러하였으니…….”

 

 

 말도 안 되는 궤변만 늘어놓기 일쑤였고 경제에 기여하였으니 애국자 운운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일 수 있었다. 모두가 점잔을 빼고 그들의 술수에 침묵했다. 그냥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여겼다. 따지는 사람이 없으니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했으니 미래의 일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이치였다.

 

 

  “잃고도 반성을 할 줄 모르니 또 잃을 수밖에 없는…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 나를 훗날에 누구 한 사람쯤은 기억 해 주는 사람이 있을 테지.”

 

 

 조회장의 얼굴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뒤에는 벽에 걸린 아이의 사진이 떠올랐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그러고 보면 조선일이란 이름도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인 것 같았다.

 

 

  “설마…….”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밤이 제법 깊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었지만 그 이름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자세를 고쳐 잡고 스승님께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조동해란 이름에 관해서였다. 자신이 남재 형의 손에 이끌려 산으로 올 때부터 가지고 온 이름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름을 기억 하지 못한 것을 스승님께서 지어주신 것인지에 관해서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성 여사가 문을 두드렸다. 첫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습관이 밴 비상도가 상의를 벗고 있다가 그녀의 방문에 급히 겉옷을 걸쳤다.

 

 

  “쉰 명을 때려눕힌 스님 몸도 구경을 하고… 영광인데요.”
  “나이 탓인지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 삼십년은 당할 사람이 없겠는데요.”
  “그런데 이른 아침에 어쩐 일로?”


  “스님께서 갑갑해 하실 것 같아 바람도 쐬고 아침밥을 잘하는 식당에서 식사도 할 겸 해서요.”

 

 

 차가 서울을 벗어나 바닷길을 달리고 있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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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2013.11.17 20:31 신고

[장편소설] 비상도 1-12

 

 알았다는 것인가? 모르겠다는 것인가?

 “너 같은 놈을 보니 선생님들의 고충을 알겠어.”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가 다가서서 차문을 두드렸다.

 

 

  “왜요?”

 

 

 창문을 내린 젊은이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내가 손으로 불빛을 가리는 게 보였을 텐데…….”

 

 

 그냥 지나치고도 남을 일을 그의 마음속에 든 분노가 그를 멈추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불빛으로 남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달리는 차도 아니고 정차를 했으면 전조등은 껐어야지. 더구나 앞에서 사람이 강한 불빛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어.”


  “참 재수 없으려니…….”

 

 

 젊은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을 올렸다. 다시 비상도가 문을 두드렸다.

 

 

  “아니, 왜요?”


  “알았다는 것인가? 모르겠다는 것인가?”

 

  “내 차 가지고 내 맘대로 하겠다는 데 참 기가 막혀서…….”


  “자신의 몸도 자기 뜻대로 하기 어렵거늘 네 것이라고 마음대로 한다? 그럼 내 손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왜요, 한 대 치시게요?”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어른들이 혀를 찼다.

 

 

  “참, 어른에게 하는 말버릇하고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다가는 몰매 맞는 세상이 아닌가?”


  “맞아. 젊은 놈이 상전이지. 눈 귀 막고 입 꿰매고 있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해.”

 

 

 차에서 내린 젊은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체 건들거리며 슬슬 웃기까지 했다.

 

 

  “너 같은 놈을 보니 선생님들의 고충을 알겠어. 체벌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야. 방금 네 놈이 나더러 치겠느냐고 물었지. 물론 그럴 생각이야. 네놈은 두 대를 맞아야겠어. 한 대는 네놈에게 내리는 벌이고 또 한 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너의 부모가 맞아야 할 매인 것이야.”

 

 

 말을 마친 비상도가 손을 뻗어 그의 열결과 수삼리를 가볍게 눌렀다. 열결은 손목 바로 위의 급소였고 수삼리는 팔꿈치와 손목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다. 당장 숨이 넘어갈만한 치명적인 곳은 아니었으나 무거운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자리였다.

 

 

  “헉!”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두 팔을 길게 늘어뜨렸다.

 

 

  “병원에 가도 맞았다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할 게야. 한 사나흘 운전대를 놓고 생각해 봐. 내가 네 놈에게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라는 교훈을 준 것이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버스 정류소를 네 정거장 가량 걸었을 때 한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나이트클럽 앞이었다. 술에 취한 쉰 줄의 남자 세 사람이 출입을 막는 그곳의 종업원들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왜 못 들어간다는 거야?”


  “글쎄, 아저씨들은 안 된다니까요.”

 

  “이유가 뭐야?”


  “주제를 아셔야지, 물 흐린단 말이에요.”


  “그놈의 물 얼마나 맑은지 나도 구경이나 좀 하자.”

 

 

 실랑이가 거친 몸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때 주먹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청년들이 큰 체구를 흔들어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뭔 일이야!?”


  “형님, 어서 오십시오. 글쎄 이 아저씨들이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는지라…….”


  “그래?”

 

 

 그들은 종업원더러 비켜나라는 손짓을 하고는 아저씨들 앞으로 튀어나온 배를 들이댔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그냥 가시죠.”


  “왜들 이러는 거야. 누군 들어가고 누군 안 되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아저씨들도 술이 되긴 한 모양이었다.

 

 

  “법으로 미성년자 출입금지가 있는가 하면 여기는 아저씨들 출입금지란 말입니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들으실까?”

 

 

 막무가내로 들어가겠다는 그들을 주먹들이 힘으로 밀어붙였다. 한참 밀려난 그들은 그제 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지 슬슬 꽁무니를 뺐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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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9

 

 

 “누굴 만나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서 떠나셨어.”
 “형, 내가 형을 처음 만난 것도 가을이었지 아마?”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황석영의 <장길산>, 홍명희의 <임꺽정>, 김홍신의 <인간시장> 등을 이은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시골 들녘은 죽은 사람도 일어나 움직인다는 가을걷이로 한창이었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여기저기서 끼니를 챙기는 모습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게?”

 

 

 가끔 아는 마을 사람들이 인사를 건넬 때도 있었으나 그는 답례만 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용화가 일러준 데로 시장 통을 접어들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피리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형이 틀림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쉰의 나이가 넘었지만 비상도는 그를 단숨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할머니 몇 분과 꼬마들 대여섯 명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고 앞에 놓인 깡통에는 동전 몇 푼이 놓여 있었다.

 

 

 비상도는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형의 등 뒤로 낙조가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내렸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 흘렀고 피리소리가 끊어졌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그가 주섬주섬 몇 안 되는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다.

 

 

  “형!”

 

 

 순간 그의 하나뿐인 눈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남재 형.”

 

 

 그의 양미간이 좁아지며 얼굴전체의 근육이 반응을 보였다.

 

 

  “동해?”
  “그래요. 형!”

 

 

 그가 더듬거리며 하나 뿐인 손을 내밀었다. 의지가 약해질 데로 약해진 초췌한 모습이었다. 가죽만 남은 그의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곳은 그가 떠나기 전에 거처했던 방이었다. 비상도가 형을 만나러 가기 전에 용화에게 불을 지피고 청소를 해 놓으라고 했던 것은 형을 위한 배려였다.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형, 잘 보여?”

 

 

  “아니,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그럼 한쪽 눈마저 안 보인다는 거야?”

 

 

  “아주 희미하게…. 곧 그 마저도 완전하게 잃게 되겠지.”
  “가끔 스님께서 형 방에 들러 형이 불던 피리를 만지곤 했어.”

 

 

  “스님께선?”
  “누굴 만나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서 떠나셨어.”

 

 

 형은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스님 목소리나 들었으면…….”
  “형이 왔다는 소문을 들으시면 한걸음에 달려오실 것 같은데…….”

 

 

 그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동해야, 술을 마시고 싶다.”
  “그래요, 형.”

 

 

 언젠가 스님께 드리려고 사놓은 술로 용화가 상을 차렸다.

 

 

  “형, 내가 형을 처음 만난 것도 가을이었지 아마?”
  “그랬을 거야. 가을이 대문간에 있던 감나무에서 목 쉰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형, 이제 여기서 나와 함께 살아. 여기 용화에게 글도 좀 가르쳐주고…….”

 

 

 용화가 큰절을 올렸지만 그는 엉뚱한 말을 하였다.

 

 

  “슬픔이 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극한 분노가 도가 될 수 있는 것일까?”
  “…….”

 

 

 술을 연거푸 몇 잔 마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동해야, 안다는 것이 뭔 줄 아니?”
  “글쎄…….”
  “달팽이 눈 같은 것이지. 새의 부리에 물려가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마는 겁쟁이 같은 것…….”

 

 

 다시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른 형이 다음 말을 쏟았다.

 

 

  “자다가도 등이 가려워 손을 뻗으려 했어. 바보같이 손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말이야. 완전한 몸을 갖춘 나를 꿈에서라도 경험하고 싶었지만 그런데 나타나는 꿈이 뭔고 하면 우습게도 남은 한쪽 팔마저 잘려나가는 꿈이었어.”

 

 

 형은 술 한 병을 금세 비웠다.

 

 

  “동생,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아니지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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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7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놈을 찾지 못하면 잃는 것이 너무 많으니라.”

 

 

 

 동해는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그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무예에 타고난 천부적인 소질이 크게 한몫했다.

 

 

 비상권법은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물론 사람을 단숨에 절명시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격은 인체에 두루 흩어져 있는 급소를 노려 상대를 일시에 무력화 시키는데 있었다.

 

 

 흔히 혈(穴) 또는 경혈(經穴)이라고 하는 곳으로 인체에는 700여 곳이 넘는 급소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론 공격 대상이 되는 곳은 70여 곳이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스님은 동해를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 나무들이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
  “자작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오늘부터 이 나무 네 그루를 네가 죽이 거라.”

 

  “네?”
  “너의 열 손가락과 두 발로 이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기 전까지 모두 죽여야 하느니라.”

 

 

 아름드리나무이기도 했지만 한창 물이 오를 데로 오른 질기기로 소문난 나무였다.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나는 진백목(秦白木)으로 하였느니라.”

 

 

 진백목은 흔히 물푸레나무라고도 하는 것으로 나무가 질기고 단단하여 옛날에는 도리깨를 만들어 썼으며 지금도 야구방망이와 스키를 만들어 쓰는 주재료였다.

 

 동해가 나무 네 그루를 죽였을 쯤에는 그의 몸놀림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눈을 뜨고 가만히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찰나에 급소 두서너 군데를 찍어 눌렀고 그 힘은 손가락 끝으로 생나무를 찔러 구멍을 내는 무서운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문(文) 없는 무(武)는 생각 없는 승냥이와 같으니라.”

 

 

 스님의 이 말씀은 동해를 꾸준히 책상머리에 앉게 만들었다. 이제는 남재 형에 관한 일도 그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스님께서 외출 하시는 날이 부쩍 잦아지던 어느 날 수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형 방문 앞에 스님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방안에서 피리소리가 들렸다. 형의 피리를 스님께서 불고 계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스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너라.”

 

 

 요즘 들어 스님 방에서 술병이 보이는 날이 잦았다. 오늘도 스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남재를 찾아야 한다. 그놈을 찾지 못하면 잃는 것이 너무 많으니라.”

 

 

 순간 동해는 방망이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껏 그를 잊고 있었던 송구함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까지도 형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형의 고모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지키지 못한 자책이기도 했지만 독립투사의 손자를 그렇게 놓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섭섭함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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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 상 도 1-2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것이냐? 길이 사람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냐?”

 

 

 동해는 영문을 몰라 밖에서 한참 동안이나 서성거렸고 간간히 터져 나오는 스님의 울음 섞인 말소리가 문틈을 새어나왔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동해를 불렀다.

 

 

  “급히 나와 갈 곳이 있으니 채비 하거라.”

 

 

 스님의 표정으로 보아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으나 물을 수도 없는 분위기라 대충 짐을 챙겨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스님의 걸음이 여느 때보다 서두르시는 것 같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무거운 정적을 깨고 스님께서 물었다.

 

 

  “네가 방금 걸어온 길이 좁더냐? 넓더냐?”

 

 

 감히 무어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동해가 입을 닫았고 스님은 자신의 물음에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답을 놓았다.

 

 

  “혼자 걷기는 적당하지만 두 사람이 걷기에는 비좁을 것이야. 마음속에 든 사람을 잊어야 하느니, 그것이 운명이라면 잊어야 하느니.”

 

 

 들녘은 추수를 앞 둔 시점이라 농부들의 바쁜 손길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계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

 

 무겁던 마음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말문을 닫고 있던 산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을 보니 비록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동해는 괜히 신이 나 평소에는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했다.

 

 

  “스님께서는 왜 출가를 하셨습니까?”


  “나는 스님이 아니니라.”

 

  “예?”


  “다만 스님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니라.”

 

 

 동해가 남재 형에게 어렴풋이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해가 스님을 따라 들어간 곳은 국군수도통합병원이었다. 그때까지도 스님께서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 함구하셨고 그는 병원의 간판을 보고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해는 계속해서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남재가… 남재가 중상을 입었다는구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며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얀 종잇장처럼 텅 비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께서 병실의 문을 열 때에야 겨우 벽을 짚고 일어서기는 했으나 차마 형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애써 고개를 돌리며 두서너 걸음을 옮겼을 때 독백 하는듯한 스님의 말씀이 낮게 깔렸다.

 

 

  “남재가 지뢰를 밟았다니…….”

 

 

 모든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 몸속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한 줄기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님 등 뒤에 숨어 겨우 감은 눈을 떴을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형의 모습이 무섭게 다가왔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것도 모자라 팔과 다리가 결박당한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누워 있는 형의 몸에서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말은커녕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스님께서도 하염없이 벽만 바라보고 서 계셨다.

 

 여간해서 시장음식을 사 오시지 않던 스님께서 남재 형이 군대를 가기 며칠 전 양념통닭 한 마리를 사 오셨다.

 

 그때 형이 넉살을 부렸다.

 

 

  “스님, 제가 제대하고 나올 때까지 이곳에 계셔야 합니다.”

 

 

 모처럼 스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대꾸를 했다.

 

 

  “그럼 나더러 여기에 꼼짝 않고 있으란 말이냐?”


  “그게 아니라……”


  “좋은 숲을 만들면 길조가 날아들기 마련이니라.”

 

 

 그 날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모양새로 돌아오다니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동해는 형의 몸에 손을 얹었다.

 

 

  “형……형!”

 

 

 차가운 감촉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님의 미발표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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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집 지어드리는 아들의 숨은 사연
장남ㆍ차남, 남자ㆍ여자 구분이 어디 있을까?

 

 

 

 

지인이 어머니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 짓고 있다.”

 

 

막걸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해서일까. 오랜 만에 만난 지인, 뜬금없는 말을 건넸습니다.

 

집이 없으면 모를까, 본인 소유의 건물과 아파트가 있는 그가, 집을 또 지을 리 만무했습니다. 필시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지난 해 4월에 형님 상을 당했습니다. 형님은 갑작스럽게 쓰러진 후, 급하게 손을 쓰긴 했지만 무의미하게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신분이 상승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던 한 집의 차남에서 한 집안의 장손으로. 장손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조선시대로 치면 이건 엄청난 출세(?)였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엄했습니다. 사업하던 형이 쓰러지자 사방에서 빚 독촉이 빗발쳤습니다. 선산과 밭 이외에도 어머니께서 사시던, 태를 묻고 자랐던 집마저 날아갈 돌발 변수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형님이 남긴 빚은 상황을 꼬이게 했습니다.

 

 

겨우 선산과 밭 등은 지켰으나 집은 건질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다행이 이모가 임시방편으로 집을 대신 구입해 준 덕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는 모면했습니다. 형편 풀리면 다시 그 집을 되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

 

 

 

 

 

어머니께 집 지어드리는 아들의 숨은 사연

 

 

“피붙이가 무섭다더니, 이모가 이럴 줄 몰랐어. 남보다 더해.”

 

 

지난 해 말, 지인이 장탄식 했습니다. 그가 힘들게 토해낸 사연인 즉, 사정이 나아져 이모에게 집을 다시 사려는데 믿었던 이모가 시세보다 배를 요구한다며 한숨을 푹! 푹! 쉬었습니다. 이모에게 통사정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하여, 이종사촌에게까지 하소연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다 돈 밖에 모른다며 씩씩거렸습니다. 세상이 너무 무섭다면서. 그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세상이 무서울까? 돈이 무서운 게지. 문제는 이뿐 아니었습니다. 이모는 마침내 최후통첩을 내렸습니다.

 

 

“돈을 더 얹어서 집을 사던지, 아니면 다른 데 팔 테니, 알아서 해라.”

 

 

겨우 겨우 이모를 달래 위기는 넘겼으나, 문제는 당장에 챙겨야 할 돈이었습니다. 부담이었습니다. 결국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이 남에게 넘어가는 꼴은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우여곡절을 넘긴 그가 한탄했습니다.

 

 

 

 

장남ㆍ차남, 남자ㆍ여자 구분이 어디 있을까?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는 지인입니다.

 

 

“서울 사람은 피붙이고 뭐고 없는 거냐? 돈 앞에서는 피붙이가 남보다 더하다.”

 

 

서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돈 앞에서는 부모고, 자식이고 다 필요 없는 냉정한 현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천륜을 거스르는 소식 앞에 ‘어쩌다 요지경이 되었을까?’라며 비탄하던 심정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만한 세상이니까.

 

 

“모든 문제의 출발은 자신이요, 그 해결책 또한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 사람에 흔들리고, 돈에 흔들리는 마련. 그래서 정체성을 강조하는 거 아닐까. 결론은 남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는 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요.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쓰러져 가던 집을 헐고 홀어머니의 새집을 짓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집은 오는 3월에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는 졸지에 맡게 된 장손이자, 장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외동이 많은 현실에서 장남과 차남, 남자와 여자 구분이 어디 있을까 마는.

 

 

어쨌거나 그들 부부가 기특합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옆에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잘했다. 장하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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