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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속 바닷가 마을, ‘조금새끼’를 아시나요?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시인 읽기]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이런 시(詩) 처음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등 부부 섹스를 밝히다니.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섹스 준비 상황까지 그리다니. 부부, 사랑 나눌 테니 조용하라고 직접 경고하다니...


 

 


불합리한 유년의 기억. 남이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다는 누이. 여인이었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누이….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문학의 전당, 9천원)>를 펼쳤습니다. 가슴 먹먹했습니다. 그동안 섬에 다니는 이유는 ‘징허디, 징헌’ 우리네 삶 속으로 쑥 들어가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다소 긴 산문 형식의 임호상의 시 ‘조금새끼로 운다’에 섬사람들의 가슴 아린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임호상의 시는 꾸깃꾸깃 꼬불쳐뒀던 두 가지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유년의 기억이 특별합니다.




 

 



#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방 내줬으니 내일부터 엄마랑 같이 지내야 한다.”


 

 


유년의 기억.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는 하루 전에 통보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미치고 팔딱 뛸 일. 당시엔 ‘그런가 보다’였지요. 집이 부족해 방만 있으면 세 줬던 시절이었으니...


 

 


제 방을 차지했던 사람은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선 배’ 선원이었습니다. 스물 언저리 총각이었던 그는 화장,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수북한 하얀 쌀밥, 갈치, 과자 등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건넨 덕분이었지요. 그건 뱃사람들이 보름 여 동안 바다 위에서 먹을 식량 등을 준비하는 ‘시꼬미’였습니다.


 

 


먹을 것에 넘어 갔을까. 형 하고 따랐습니다. 그는 고주망태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산 세월은 4년 남짓. 이후 어머니를 통해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는 ‘쫑포’(여수시 종화동)에 산다 했습니다. 대학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왔다가 술집서 우연히 그를 만났지요. 고주망태 상황에서 그의 집으로 갔던 기억….


 

 


훗날, 그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조금’이란 걸 알았지요. 결국, 그가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은 갈치조림을 잘했습니다.




 

 


#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쌀 좀 갖다 주고 와라.”


 

 


어머니는 어려운 중에도 한사코 심부름 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왜 쌀 빌려 달라 안하지?” 궁금해 하며. 저요? 그냥 싫었습니다. 당시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 이게 어머니가 사람 챙기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 걸 알았습니다. 존경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네에 아버지 없는 집이 네 집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집을 지목했습니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다른 집은 자식 넷. 이 집은 다섯이었습니다.


 

 


그들 어머니는 발품으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늘 보리밥이었습니다. 이도 없어서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부러 찾는 구수한 보리밥이건만….

 

 



당연히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들 집에는 아버지가 없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이 있었지요. ‘호로 새끼’. 애비 없는 새끼란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호로 새끼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바른 몸가짐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데도 죽어라 가르쳤습니다. 강한 생활력으로 버텼지요. 그리고 직업 선택에 불문율이 따랐습니다.


 

 


“너희들은 배타지 마라.”


 

 




임호상 시인입니다.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조금새끼로 운다


                                                            임 호상



  중선 배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조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초여드레, 스무이틀 간만의 차가 없는 조금이면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들 돌아오는 날. 조금이 되면 어머니 마음도 분주하다. 뜸을 들이는 무쇠솥처럼 이미 뜨거워져 있다. 바다에서 몇 바지게씩 고기를 져다 나르는 날이면 앞마당에 호야불 켠다. 당신의 마당에도 불이 켜진다. 보름을 바다에 있다 보면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어머니 마음도 만선이다. 뜨거워진 당신은 선착장 계선주에 이미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랬다. 조금이 돼야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때, 갯내음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조금새끼



  서방 들어오는 날 속옷을 널어 방해하지 말라는 수줍은 경고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어머니의 빨랫줄에 속옷과 함께 널린 고등어 세 마리, 누구 것인지 알 사람 다 안다. 호루라기 불면 들어오라 했는데 어머니의 호루라기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한 조금새끼들은 정박한 배처럼 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어머니는 보름을 기다려 하루를 살지만 조금새끼는 한 달에 두 번 문밖에서 하루를 산다.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홀로 남는 어머니도 참 많았다. 아버지 한 분에 어머니 둘, 조금새끼 십 남매 그때는 다 그랬다. 한 그물 속에서 그렇게 섞여 살았다고 누이는 막걸리초에 지나온 세월을 버무린다.



  어쩌면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어머니는 모두 다 작은 각시 아닌가.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청상과부 작은어머니가 아버지를 차지하고 어머니는 살을 대지도 못했다. 한 달에 이틀뿐인데 그 이틀도 어머니는 멍청이 세월로 살았다. 조금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바다에는 소리 내지 못하는 파도가 쳤다.



  남의 뱃속에서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내색 못해 큰어머니가 엄마가 되는 먹먹한 유년을 살았다. 두 분 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낡은 풍경처럼 서로를 인정해주며 그렇게 섞여 살았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며 조금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육자백이, 먼 바다를 향해 청솔개비 두드리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막걸리초처럼 속으로 삭히며 핏줄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을 절여 아버지의 입맛을 달래는, 아버지의 하루를 훔치는 어머니의 막걸리초가 되었다.



  어머니의 바다는 속 깊은 먼 바다, 겉으로 파도가 쳐도 깊은 속을 다 알 수가 없다. 날이 새면 어김없이 바다로 가는 아버지를 묶어놓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샌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밤새 하현달로 떠 있는 밤, 이번 조금 아버지 돌아오시면 당신의 아랫목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을까. 평생 바다를 보고 살아온 아버지도 어머니도 40년 배를 탔다던 정씨 아저씨도 바다가 무섭다는 말에 술잔에서 파도가 쳤다.



  문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파도 소리 자꾸만 자꾸만 어머니의 가슴을 쳤다.





바다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뭍에서 욕정의 밤에 나눈 사랑 씨앗 ‘조금새끼’



 

 


‘조금새끼’, 뭔가 했습니다. ‘조금(潮―)’은 조수 간만의 차가 없는,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를 말합니다. 매달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이 해당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알지요. ‘조금’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어부들에겐 꿀 같은 휴식기라는 걸. 이 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못한 것을 뭍에서 푸는 욕정의 밤을 맞이합니다.


 

 


모든 원인은 ‘바다’였습니다. 떠나는 아버지를 부여잡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한 바다. 남편을 잡아먹은 바다. 어머니를 청상과부로 만든 바다. 덕분에 배다른 새끼까지 거둬야 하는 삶의 바다. 어머니에게 바다는 원한 가득한 기다림의 바다였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생명의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임호상 시인에게 시 ‘조금새끼로 운다’를 어떻게 썼는지 물었습니다.

 

 



“다들 직접 경험한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는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시를 읽는 내내,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밖에도 ‘실직’, ‘징함네’, ‘야근’, ‘그냥’, ‘분만 대기실에서’, ‘오동도’, ‘목욕탕에서’, ‘똥빨’, ‘세월’, ‘모기’, ‘여수의 노래’, ‘섬’, ‘당신’ 등 개념 있고, 지역사랑 이 깃든 주옥같은 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임호상 시인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살랐습니다.

 

 


꿈, 모든 이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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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신과 체면이 주가 된 돌잔치 아쉬워 

 

 

경제가 어렵습니다.
하여,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게 현명한 세상살입니다.

그런데도 민폐는 다양한 곳에 갖가지 방법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복잡한 세상살이라고 하나 봅니다.

지난 주말, 지인의 집에서 열린 첫 외손주 돌잔치에 갔습니다.
정식 초대는 아니었습니다. 가족끼리 지낸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축하하는 분들도 오겠지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족끼리 지내더군요.
말은 가족끼리 한다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초대하는 게 일상인데 이걸 깬 거였습니다.
헌데, 가족끼리 지내는 모습이 어째 더 적응 안 되더군요.

돌잔치 음식도 외할머니가 직접 준비하고 차렸더군요.
보통 돌잔치는 뷔페나 행사장 등을 빌려 음식을 주문하는 등 외부 눈을 의식한 모습인데 그걸 뒤집은 거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돌잔치 문화를 살펴보지요.
제가 직접 경험한 민폐 돌잔치와 바람직한 돌잔치의 비교입니다.


# 1. 민폐 돌잔치 유형

문자로 돌잔치 초대를 받았습니다.
행사 장소는 뷔페식당이었습니다.

손님을 맞는 주인은 첫 생일을 맞은 아이가 아닌 엄마였습니다.
가슴을 드러낸 푹 파인 옷차림에 화장까지 멋들어지게(?)한 모습.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방명록과 부조함까지.
결혼 축하도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돌이랍시고 또 친지, 직장 동료를 모으는 상황이 썩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돈 내고 찝찝하게 밥 먹은 꼴이었습니다.


# 2. 바람직한 돌잔치 유형

돌잔치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식당에 갔더니 바글바글. 그야말로 많은 사람이 오셨더군요.

축의금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혼식 올린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돌잔치 명목으로 부조 받는 게 민망하다면서.

다만, 아이가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기를 바란다는 거였습니다.
대신 그동안 고맙게 대해준 모든 이들에게 이 기회를 통해 대접하고 싶은 차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참 예뻐 보이더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산 기분 좋은 밥상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지난 주말에 갔던 돌잔치는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모습이었습니다.
참석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 여동생, 남동생, 이모, 그리고 저희 부부까지 9명이었습니다. 너무 조촐했습니다.
사진도 디카로 가족이 직접 찍더군요.
 

세상에 태어나 첫 생일을 맞은 아이를 앉혀 밥을 먹이고,
무엇을 집게 하는 등 시선은 온통 아이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심지어 외할아버지까지 재롱(?)을 피우더군요.

주인공은 완전 아이 혼자였습니다.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고스란히 아이가 받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불을 피워 돼지 목살, 소고기, 소시지, 새우 등을 굽고 밥에 고추, 된장, 김치, 샴페인이 차려졌습니다.
요걸 보니 정말 사람 사는 세상처럼 느껴지더군요.

옛날 돌잔치는 가난하고 목숨이 귀해 모든 사람이 장수와 행복을 빌며 음식을 나눠먹는 미풍양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신과 체면이 주가 되어 화려하고 폼 나는 이벤트로 변했습니다.
게다가 마음을 얻기보다 돈을 얻기 위한 민폐로 돌변했습니다.
미풍양속이 왜 미풍양속인지 곰곰이 따져 볼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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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도 조문 왔는데 봤어?” 아쉬웠다!
자살률 세계 1위 대처 방법 꼭 찾기를…


“추석 연휴에 뭐하지?”

최장 9일간의 추석 연휴는 내게 6일간의 연휴를 부여했다. 그래 기대가 많았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다. 친구 딸이 죽었단다.”

벗에게 연락이 왔다. 이렇게 내 연휴는 저 세상으로 함께 날아갔다. 추석 전날 갑작스레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추석 당일 오후 또 부고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을 잃은 친구를 생각하니 연휴고 뭐고 없었다. 급하게 처가에 다녀온 후 친구들과 어울려 상경 길에 올랐다.

“이재오도 조문 왔는데 봤어?” 아쉬웠다!

상경 길 내내  막힌 도로보다 못 다 핀 꽃 한 송이의 죽음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 입장에서 못 볼 짓이었다. 빈소는 한산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는 전갈이었다.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밀려 4일장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2박 3일 동안 장례식장 빈소를 딸 친구들과 아버지 친구인 우리가 지켜야 했다.  

“이재오도 조문 왔는데 봤어?”

잠시 비운 틈을 타 특임장관인 이재오 의원이 다녀갔다고 한다.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내심 그의 조문을 기대했었는데…. 건의할 것도, 따질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이런저런 소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투신자살한 딸 친구가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에게 쓴 편지를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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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살률 세계 1위 대처 방법 찾기를…

To. ○○

안녕 ○○아, 나 ○○이야...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어.. 너무 뜻밖이라..
참, 너한테 잘못한 게 많아. 너두 다 알지? 근데, 뒤늦게 이제 와서 착한
사람처럼 다 미안하다고 말하긴 너무 늦었다, 그치..?
난 참 이기적이었어.. 너를 외면했으니까.
솔직히 그래서 지금도 무섭고 두려워.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우습지?
나 오늘 새벽에 너 소식 듣고 정말 많이 놀랐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연예인처럼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이었나 봐..
00아. 정말 너한테 관심가지고 많이 챙겨주고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내가 잘못했던 것들 가는 길에 욕해도 좋으니까 다 용서해줘...
우리 모두 너가 좋은 길로 가길 빌게.

다음 생에선 꼭 모두에게 사랑받는 귀한 사람이 될 거야 넌...
잘가, ○○아….

From. ○○


죽기로 작정한 이를 어찌 막으랴. 하지만 학생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방법은 강구돼야 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자살률 세계 1위. 불명예에 대한 대처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 아니,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알아서 살라는 건지….

그래서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이재오 장관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학생들의 죽음을 막을 방법을 꼭 찾아 달라고….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활짝 펴는 날이 오길 바라는 게 정상적인 사회일 게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리고 쓰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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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광지 내에 버젓이 묘지가 있는 이유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 조촐한 가족묘 아쉬워


롯데와 한화그룹 가족묘 도굴에 이어 태광그룹 창업자 묘까지 도굴한 기사가 떴습니다.  거액을 노려 대기업 가족묘를 도굴했다는데, 씁쓸합니다. 짐승만도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겠습니다.

이로 인해 떠오르는 장묘 문화가 있습니다. ‘산담’입니다. 산담은 산소의 ‘산’과 산을 둘러친 ‘담’의 합성어로 삶과 죽음의 경계인 돌담입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장묘 문화입니다.

산담 구조는 간단합니다. 봉분과 비석으로 이뤄진 다른 지역 무덤과 달리, 봉문 주위로 사각 혹은 원형으로 담을 쌓아올린 것입니다. 이는 “짐승의 침입을 막고, 산불이 났을 때 불을 차단하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대기업 가족묘 도굴 소식을 접하니, 제주의 산담처럼 짐승(도굴꾼)을 막기 위한 돌담을 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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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가운데에 자리한 산담.


제주 관광지 내에 버젓이 묘지가 있는 이유

제주를 다니면 자연스레 밭과 오름, 산 등지에서 묘를 보게 됩니다. 유심히 보니 개인 소유의 관광지 내에서도 심심찮게 산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개인 땅에, 그것도 관광지 내에 버젓이 묘지가 있을까?

제주 토박이 양경만 씨는 “제주에서 묘 자리가 한 번 서면 연고가 있든 없던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관습이 있다”면서 “예외가 있긴 한데 관공서에서 개발할 때 이장(移葬) 공고 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이장 하는 것 뿐이다”고 설명하더군요.

육지 같으면 분묘 물권이 없으면 바로 이장 조치하거나, 보상 후 옮길 텐데 제주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관광지 내에 있는 묘지가 이해되더군요. 이렇듯 시설물을 설치 시, 묘를 비껴 구조물을 설치하는 아량에서 제주다운 여유와 넉넉한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살아서는 모진 삶이었지만 죽은 후에는 편히 살기를 바라는 제주 사람 마음에서 섬 공동체의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철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관광지 내에 자리잡은 산담을 그대로 두고 시설물을 설치했습니다.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 조촐한 가족묘 아쉬워

묘 자리 보는 지관에 대해 양경만 씨는 “마을별로 있던 지관은 세습이었는데 요즘 이를 물려받을 후손이 어디 있냐?”면서 “연로하신 지관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대신할지 걱정이다”고 하더군요. 육지나 섬이나 발복을 찾는 건 마찬가지나 봅니다.

그나저나 제주 장묘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밭과 오름 등에 산담을 두룬 무덤이 조성되면서 토지 잠식 등이 사회문제가 됨에 따라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하는 추세입니다.

 “제주지역 화장률이 2004년 30%를 돌파한 후 2007년 41%, 2008년 43% 등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추세이고 수목장도 관심 받는 시대에 위세를 자랑하는 묘는 사라져야겠습니다. 생각건대, 대기업 가족묘도 조촐하게 조성됐다면 아마 도굴꾼 표적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검소한 매장 문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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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njine.kr/story BlogIcon 뽀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제주에는 넉넉하고 후한 문화가있군요.. 도굴꾼들.. 정말 어찌그런나쁜일은하는지..에휴..
    알수가 없네요..

    2010.01.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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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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