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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대신 선택한 붕어빵에 후회하고
[아버지의 자화상 39] 붕어빵

“얘들이 붕어빵이네요.”

이런 소릴 들을 때면 흐뭇합니다.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제가 봐도 영락없는 붕어빵일 때가 있습니다. 잠시 과거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학교 다니는 낭만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물론 하교 때의 낭만 또한 마찬가집니다. 왜냐면 지금은 대기하던 학원 차가 아이들이 나오기 무섭게 실어 나르기 때문이죠. 게다가 학교가 가까워 걸을 만하면 금방 집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붕어빵 먹고 먼 길 걸어갈까? 차 타고 갈까?

학창시절, 하교 때의 낭만 중 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붕어빵입니다. 이 붕어빵에는 흐뭇하면서도 아린 추억이 스며 있어섭니다. 특히 주말이면 더했지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어김없이 서 있는 붕어빵 가게. 그 앞을 지날 때, 흔들리는 마음…. 붕어빵의 유혹은 이런 것이었지요.

주머니에 든 돈을 만지작거리며 붕어빵을 사먹고 먼 길을 걸어갈 것인지? 아님 그냥 버스 타고 갈 것인지? 하는 거였습니다.

“얘들아! 우리 걸어갈까?”

100원에 열 개였던 붕어빵 사면 1개를 덤으로 주었지요. 붕어빵을 쥐고 야금야금 먹으며 가는 맛은 걸어가는 고충을 뛰어 넘었지요. 붕어빵 먹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바싹 구워진 꼬리부터 베어 물기도 하고, 머리부터 씹다가도 때론 배부터 먹기도 했습니다. 이때 터져 나오는 앙꼬의 뜨거움도 날름거리는 혀를 이길 수는 없었지요. 냉큼 혀로 감아 목구멍을 넘어가는 앙꼬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던 차를 보면, 붕어빵 먹은 후회 엄습하고…

붕어빵에 동조하는 친구가 있는 날은 괜찮았지요. 먼 길을 동행하는 벗이 있었기에. 그러나 혼자서 1㎞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날에는 금방 후회막급이었지요. 붕어빵이 몇 조금 못가서 바닥나고 말았으니까.

특히나 추위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갯길을 올라야 하는 날의 후회는 더했지요. 버스 타고 지나던 친구들이 손 흔들며 혀를 낼름거리면 ‘왜 붕어빵을 사 먹었지?’ 죽을 맛이었지요.

세월이 흐른 지금, 이렇게 추억을 그릴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일 것입니다. 누가 붕어빵 아니랄까봐 아이들은 붕어빵을 좋아합니다. 간혹 이런 전화가 올 정돕니다.

“아빠 붕어빵 좀 사오세요.”

세월이 흘러 10개에 100원하던 붕어빵은 3개에 1000원으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건네주며 옛날이야기를 전하면 “아빠는….” 합니다. 저도 아버지께 ‘케케 먹은 소리 그만하길…’ 바랄 때가 있었지요.

이런 붕어빵 아니길 바라는 건 제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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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583896   수정/삭제   댓글쓰기

    ㅈㅎㅈㄷ

    2012.01.15 14:33
  2. 8583896   수정/삭제   댓글쓰기

    ㅈㅎㅈㄷ

    2012.01.15 14:36

“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아버지의 자화상 2] 부모님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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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묵묵히 자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내게 아이들은 ‘아빠는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또 일 나가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다고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단다’ 하고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럴 때 아버지가 내 자리를 대신했다.”

양기원 씨는 일로 바쁜 자신의 빈자리를 그의 아버지가 대신했다 합니다. 묵묵히 자기를 지켜주셨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또 묵묵히 손자를 지켜주셨다 합니다.

양 씨는 줄곧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아빠가 뭐라 나무라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시니 좋았다.”며 “덕분에 자신도 ‘욱’하는 성질이 고쳐졌다” 합니다.

이렇듯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일 것입니다. 지혜보다 더 나은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삶의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하니까요. ‘지식보다 지혜’가 우선이란 걸 알면서도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핑계로 배울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우매한 일이겠지요.

“다시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언젠가 들었던 아버지의 넋두리입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너희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게 세월이 훌쩍 가버렸구나.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시 너희들을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가 당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님, 알콩달콩 사는 정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는 뜻일까요?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넋두리가 못내 가슴에 걸립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기란, 아니 부모님과 함께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에 대해 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맞습니다. 막내이기 이전에 자식인 저도 아직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는데 그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부자지간이 같이 앉아 있어도 구박(?)이 심한데 그 속을 어찌 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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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간은 구도자의 길일까요?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짐이라니요.

핑계 하나 대야겠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따로따로 동거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벌써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 우리 두 부부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다가 혼자되면 그때 같이 살란다.”

짐이라니요…. 어찌 보면 부모 자식 간의 현명 합의요, 결정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처사요, 결정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상생인 것 같으나, 상생이 아니라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제일 먼저 느낄 때는 ‘돌아가신 후’라 하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이도 살아봐야 알겠지요.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경험해서 느낄 때는 이미 늦다. 경험하기 전에 한 발짝 앞서 느껴야 한다.”

“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이제야 아버지의 가르침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설까, 아버지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다하지 못한 효도를 후회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었죠?

“불효자는 웁니다!”

자식 된 도리? 세월 지나면 알겠지요.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의해 큰 아이들은 뭔가 다른 것이. 때론 불편했더라도, 그것은 훗날 때론 의지가 되고, 때론 큰 힘이 될 것임을….

잠시라도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식은 늦은 후회로 가슴에 응어리진다 하니 응어리를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겠지요?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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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그랬듯 자식도 어깨에 짊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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