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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똑같은데 기왕이면, 이런 ‘하루’ 보내시길…

 

 

 

감 떨어지길 기다려야 할까, 여러분 생각은?

 

 

 

지인의 말,

 

어느 집 입구에
이렇게 써 있다고 합니다.

 


" 화내도 하루"
" 웃어도 하루"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데"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
부정 대신에 긍정!
절망 대신에 희망!

 

라고요.

 

 

와~, 어떤 도인일까, 궁금했습니다.

 

뒤에 이걸 보신 스님 왈,

 

 

“맞는 소리네”

 

 

라며 몇 자 더 넣었습니다.

 

 

돈 대신에 가난!
가난 대신에 만족!

 

 

가난과 만족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난에 호응할까?

 

스님이 추가한 ‘가난’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

 

는 의미가 포함된 ‘가난’이었습니다.

 

이런 <가난>에 만족하자는 의미는 괜찮지요.

 

 

하루, 이왕이면 웃고 보내는 게 좋겠죠?


오늘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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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끈 놓지 않으려는 가슴저린 절규
아내 향한 남편의 마지막 사랑 메시지

 

 

한 평생 부부로 살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없을 때 오는 허전함을 그 어디에 비할까?

“각시가 배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어.”

지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퇴원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지인의 아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지난 주 서울로 옮겨야 했다.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절친했던 터라 더 바짝 긴장했다.

사실, 지인 아내는 몇 해 전 이미 한 차례 삶의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
지인은 마지막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여행에 나서기도 했었다.

게다가 KAIST 대학원 졸업 후 유학 가겠다는 딸에게,

“어렵게 공부하기보다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이다”

며 유학을 만류했을 정도였다. 행복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지인 아내는 전문의 진찰 후 입원과 MRI를 찍은 후 CT를 예약한 상태였다.
이때 잠시 집에 내려 온 지인은 건강이 좋은 편이라 아무 일 없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길 청했다.


CT 검사 결과는 그제 나왔다. 연락이 없었다. 결과가 어떠한지 문자를 넣었다. 묵묵부답.
그러다 어제 아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삼성병원 결과 바람직하지 않아 서울대병원 진료 5월23일 오전 예약했음.”

 

최악의 상황을 뺀, 조심스런 문자 메시지였다. 지인과 통화했다.

“형수님은 좀 어떠세요?”
“지금 주사 맞고 있어. 여기선 수술이 어렵다네. 그래서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진찰 다시 한 번 받으려고. 우리 각시 꼭 살려야지. 아내에게 빚진 거 다 갚아야 하는데….”

전화 속, 지인 목소리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통화 후 지인에게서 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완주의 ○○한의원 자세히 조사해 주게. 항암치료와 병행했음 하네.”

 

기대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남편의 애절한 절규였다.
부부로 살며 아내에게 못 한 부분을 기어이 하고 말겠다는,
결의에 찬 한 남자의 마지막 사랑의 메시지로 읽혔다.

아이들에게 이런 사정 말했더니,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할게요.”라며 “아빠가 힘이 되어 주세요!”라고 한다.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 평소 부부 간 잘하고 사는 게 최선일 터~.

삶이 힘들지라도 희망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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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8:14

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남 통영 동피랑에는 어린왕자의 꿈이 스며 있었다.

“통영 동피랑에서 벽화를 그릴 거예요. 림이 낡아 새로 그린대요. 별 일 없으면 구경 한번 오세요.”

지난 봄, 지인은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듯 말했다.

“와, 벽화도 그리세요. 부러워요. 꿈과 희망을 주렁주렁 달아주세요. 가긴 쉽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았었다. 그렇지만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다. 솔거였다. 

벽화에 이끌렸을까? 환쟁이에게 끌렸을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어느 덧 홀로 경남 통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그쪽을 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의 모습마저 그림이었다.

골목골목에는 꿈이 그려져 있었다.

풍경 자체가 그림이었다.

동피랑 명물인 구판장.


재래식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동피랑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묻고 있었다. 꼭 가고야 말겠다는, 지인이 그린 벽화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찬 목소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앞장서 나를 이끌었다. 알고 보니 바로 턱 밑이었다. 이런 걸 보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걸까?

동피랑은 언덕빼기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관광객이 이 언덕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희희낙락거렸다. 물론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어떤 벽화를 그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의아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볼품없는 골목길. 주름살을 가득 안은 주민. 그렇지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소박한 모습에서 웬일인지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장은 공>을 떠올렸다. 이들은 난장이일까? 거인일까?

동피랑은 통영의 새로운 볼거리였다.

 강구항에서 본 동피랑은 언덕배기 자체였다.

동피랑에는 꿈이 있었다.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동피랑 골목에는 지인 일행이 그린 그림 수놓아져 있었다. 꽃게, 오징어와 복어 등 물고기와 갈매기 등 새, 어린왕자와 그의 상징인 뱀과 야자수, 코끼리 등도 있었다. 또 어릴 적 추억이 물씬 생각나는 연과 숨바꼭질 장면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솔거가 통일신라시대 황룡사에 그렸다는 벽화 ‘노송도(老松圖)’. 여기에는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어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전설이 녹아 있다. 그만큼 실제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때 아니게 솔거 벽화를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동피랑은 사람이 떠나던 산동네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언덕배기로 탈바꿈한 사실 때문이다.

어쩜, 솔거가 벽에 그린 소나무는 새들에게 또 다른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랬다. 동피랑의 벽화는 우울하고 쓸쓸한 산동네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는 세상이었다.

 우리 각자도 꿈이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동피랑은 자체가 꿈이었다.



동피랑은 사람들이 떠나가던 곳에서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통영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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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걸 해 기쁘다!”
[여수 맛집] 중화요리전문점 ‘라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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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소스를 만드는 모습.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인순이의 <거위의 꿈> 가사 일부다. 그렇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은 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소중히 키워야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녹록하지 않다. 어렵고 힘든 생활보다 편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자신이 지닌 재능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높은 자리에 앉길 원하는 부모에 의해 휘둘리는 경향이다. 이 같은 세태를 뒤로 하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 나선 한 젊은이를 소개한다.

자꾸 손이 저절로 가는 그런 맛의 팔보채.

자장면에는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이가 들어가자 따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좋아졌다. 

중화요리전문점 ‘라이라이’ 차별화로 승부

가족과 함께 ‘라이라이’에 들어섰다. 여수시 학동 거북선공원 옆에 자리한 중화요리 전문점 ‘라이라이’. 내부는 온돌식 마루였다. 물이 나왔다. 물 색깔이 예뻤다. 차별화를 위해 몸에 좋은 메밀을 엽차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중식집과 차별화한 건 이뿐 아니었다. 배달이 없었고, 이에 따라 플라스틱 그릇을 없앴다.

중식당 대표 메뉴인 자장면과 짬뽕, 팔보채를 시켰다. 이어 단무지, 김치, 소금에 볶은 땅콩, 매생이국 등 밑반찬이 나왔다. 매생이국이 특이했다. 음식에는 중 요리 특유의 느끼함이 없어 담백했다. 맛집으로 소개해도 낯부끄럽지 않을 만큼 당당한 맛이었다. 그렇지만 젊은 주인장은 이렇게 겸손해했다.

“제가 만든 요리 맛은 아직 부족합니다. 스승이 만든 요리는 제가 먹어봐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습니다. 저도 깊은 맛을 내기까지 더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아마, 깊은 맛은 세월이 만들어 낼 게다. 그는 “내 가게를 준비하다가 느낀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거였다.”“이제 가게를 냈으니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가시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드는 길 밖에 없음을 안다.”며 각오를 다졌다.

술꾼들의 해장으로 제격인 짬뽕. 

면발도 쫄깃쫄깃했다. 


싱싱함이 살아 있는 팔보채.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돼 기쁘다!”

잠시 한 사례를 보자. 서울 강남 대치동에 총각이 운영하는 ‘총각네 야채가게’가 있다. 이곳은 항상 신선한 최상의 물건을 구비, 손님에게 웃음과 믿음을 선사했다. 이는 대박이었다. 대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 기존 장사와 차별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총각네 야채가게’ 주인은 자신의 재능이 장사임을 알았고, 좋은 제품 고르는 법 등을 차근차근 배워갔다. 제품도 자신이 직접 선별해 장사꾼들의 농간을 차단했다. 이영석 사장의 장인 정신, 성공 사례는 <총각네 야채가게> 책으로 발간돼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라이라이의 이모저모.

자장면을 먹느라 정신없는 아이.


깔끔한 밑반찬. 노란 색의 메밀차와 매생이국이 색다름이었다.

‘라이라이’ 주인은 이제 겨우 25세 청년 박철우 씨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요리사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요리를 배웠고,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했다. 우리나라와 호주 등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로 실전 요리를 익혔다.

군 제대 후 서울 유명 중식당에서 서빙, 전표, 면판, 칼판, 화덕, 식사장, 칼판장 등을 거쳐 조리장까지 오르며 맛을 알아갔다. 한식, 양식, 일식 등을 제치고 중식을 선택한 건 불 앞에서 느끼는 희열 즐거움 때문이었다.

3년여의 배움을 뒤로하고 <라이라이>를 개업한 건 지난 10월 1일. 그러니까 한 달 보름 정도 지났다. 자신이 벌어 모은 3천만 원과 부모님께 융통한 2천만 원 등 5천만 원으로 어엿한 사장이 된 것이다. 그에게 가게를 열게 된 느낌을 물었다.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돼 기쁘다.”

젊은 청년 목소리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자의 즐거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일 게다.

모쪼록 ‘처음처럼~’이란 말을 잊지 않고 ‘라이라이’를 운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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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군대 가는 이유는 의무 다하기 위함
정치인과 연예인에 대한 형벌의 차이 ‘섬뜩’

‘신의 아들’ 문제로 시끄럽다.

한 때 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부모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의 아들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은 국무총리 후보자 김황식 현 감사원장과 MC몽이다.

이들이 똑같이 지탄 대상이란 점에서 일단 환영이다. 그렇지만 짚어야 할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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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마이뉴스.

남자들이 군대 가는 이유는 신성한 의무를 받아들인 때문

MC몽. 그는 멀쩡한 생니를 뽑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제 편집되거나 출연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국민적 반발을 감수할 수 없어서다. MC몽은 군 입대를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무총리 지명자 김황식 내정자는 설왕설래 중에도 아직까지 건재하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남아 있긴 하다. 그렇지만 김황식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언론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1970년과 1971년 2차례에 걸쳐 재신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1972년 양쪽 눈의 심한 시력 차이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법관 임용 당시 신체검사에서 좌 0.2, 우 0.1, 교정시력 좌우 모두 0.5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의혹을 받고 있다.

참 대단하다. 생니를 뽑는 것과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가 군대를 피하는 수단이 될 줄이야. 그렇다면 군대에 갔던 수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런 치졸한 군 면제 방법을 몰라서 군대에 갔을까?

아니다. 단지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밖에 없는 자신 앞에 놓인 국가의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에 대한 형벌의 차이 ‘섬뜩’

김황식 내정자와 MC몽이 비난받는 이유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MC몽은 잘 나가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 했다. 그러나 김황식 내정자는 하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보면 군대에 가지 않은 정치인과 연예인에 대한 형벌은 섬뜩하리만치 다른 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존경받아야 정치인이 가장 더러운 직업군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일 게다. 정치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나 고동이나 정치를 하려고 애쓰고 나서나 보다.

그래서다. 더 이상 이런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국가가 되기 위해 연예인과 정치인을 불문하고 국민 모두에게 똑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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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서 일출을 기다리다, 김영랑이 되다
나가사키 오가며 본 태평양 일출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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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태평양의 시발점. 이곳에서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꿈꿨다!

태평양 일출을 보며 지리산 천왕봉 해돋이를 꿈꿨다. 어쩌면 이상향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 아닐까?

그 전초전 격으로 천왕봉 오르기에 앞서, 제주 앞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태평양 일출을 맛보았다. 뒤늦게 가족과 함께 세운 목표 중 하나.

‘지리산 둘레 길을 거쳐 천왕봉 오르기’

올해 가족의 꿈은 지난 주 <남자의 자격>에서 선보였던 지리산 종주와 김국진과 윤형빈이 섰던 그곳에 서서 천왕봉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아내는 처녀시절 지리산 종주를 몇 차례 했단다. 감격스런 천왕봉 일출도 보았단다. 그 감격으로 여태껏 열심히 산단다. 아이들이 가슴에 꼭 지녀야 할 감흥이란다. 그래 올 목표를 천왕봉 오르기로 했었다.

몇 박 며칠이 될지 모르겠다. 2박 3일 내지 3박 4일이 유력하다. 단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단번에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꿈이 너무 큰가?

범선으로 나가사키에 오가며 본 태평양 일출

사실, 태평양 일출은 본적이 있었다. 몇 해 전인가, 범선으로 여수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무념무상의 망망대해에서 해돋이를 보았었다. 감격적이었다. 그런데 1월 초, 결행했던 제주 여행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제주 중문 마린파크 내에서 ‘바다 위 별장’이라 불리는 요트를 타고 즐긴 태평양 해돋이. 태평양 일출은 어쩌면 천왕봉 해돋이를 보기 전 ‘맛보기’ 같은 것이었다. 그래 설까, 마냥 좋았다.

겨울, 싸늘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찾은 제주 앞바다는 태평양의 시발점이었다. 그러기에 태평양 한 가운데로 나서는 꿈을 갖는데 제격이었다. 하여, 제주 사람들이 이어도(?)를 꿈꾸는 지도 모를 일이다.

요트 샹그릴라 갑판에 서서 수평선 너머로 숨죽이고 있던 해를 기다렸다. 이곳에서 보는 해돋이도 지리산 천왕봉 해맞이처럼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겔까? 해는 좀처럼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쌓은 덕이 없는 걸까, 자위했다.


일본을 오가며 범선에서 본 태평양 해돋이.


범선에서 본 해돋이도 자연의 위대함이었다.

태평양 일출을 보며 천왕봉 해돋이를 꿈꾸다

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김영랑이 되어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곱씹고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심정으로 간절히 해를 기다렸다. 바램이 통했을까? 외마디 감격스런 외침이 있었다.

“해다. 해가 뜬다!”

용수철처럼 뛰쳐나갔다. ‘새악시 볼’처럼 태양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위대함이 탄성을 뿜어내는 순간이었다. 요트위에서 대하는 해돋이 체험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제주에서 해돋이를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난, 지리산 둘레 길과 천왕봉 해돋이를 꿈꿨다.


제주는 태평양의 시발점. 이곳 해돋이는 태평양의 해돋이다.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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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게 살던 제주인을 달랜 돌하르방
돌하르방이 만들어지고 세워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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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만들기.

돌하르방은 제주 상징물 중 하나입니다.

벅수머리 등으로도 불렸던 돌하르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세워졌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제주 돌하르방공원에 전시된 고용완 님의 그림과, 강바다 님의 글을 사진으로 옮긴 것입니다.

돌하르방이 고달프고 힘들었던 제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새워졌다고 하니 다소 생소합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이 오늘날 여행의 로망지로 꼽히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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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에 보기 힘든 따뜻한 마음에 ‘감동’

컬투 정찬우의 진솔한 고백과 정주리의 눈물이 개그맨의 어려움과 따뜻한 마음을 엿보게 했다.

컬투 정찬우는 어제 방영된 강호동 이승기의 ‘강심장’에 출연, “개그맨들은 대중에게 웃음을 주지만 막노동, 대리운전 등 아르바이트로 생활고를 이겨낸다.”면서 “코미디언들의 애환이나 고민, 시선을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는 심정을 밝혔다.

정찬우는 “컬투는 원래 공연만 하고자 했는데 오갈 데 없는 후배들이 모이다 보니 소속사가 차려졌다”며 “그들의 운명과 길이 어느덧 우리 일이 돼버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후배 개그맨 코너가 대박 났을 때 뒤에서 눈물 흘린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후배들한테 마냥 잘 해 줄 수도 없고, 너무 많은 인원이 있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회사 문을 닫으면 그 친구들이 갈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이해를 바랬다.

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기를 얻기까지 피나는 노력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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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정주리(사진 SBS)

냉정한 연예계에 보기 힘든 따뜻한 마음에 ‘감동’

정찬우는 개그프로에서 안타까운 것에 대해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것들이 개그에서는 조심해야 하는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웃음을 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넓은 눈으로 개그를 봐줄 것을 당부했다.

정찬우는 함께 출연한 후배 개그맨 정주리에 대해 “정주리도 예전엔 우리 소속사였고 정말 착한 아이였다”고 소개했다. 정주리도 구조조정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정주리는 그저 프로그램 맛을 살려주는 양념으로 알았는데 뒤에는 눈물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정주리는 “솔직히 저도 부끄러움이 많아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 못한다”면서 “오빠들한테도 대놓고 칭찬 한 번 받아본 적 없는데, 대기실에서 ‘잘 하고 있다’고 말해줘 너무 감사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정찬우의 담백한 이야기와 정주리의 눈물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였다. 희망을 안고 눈물의 빵을 먹어 본 배고팠던 자들의 끈끈한 동지애(?)였다. 이는 냉정하고 힘들다는 연예계에서 보기 힘든 배려하고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정주리의 감초 같은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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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주리...아주 정이 가는 친구더군요.
    아마도 내년 개그계를 이어갈 재목이 아닌가...하는 생각..

    2009.12.16 14:57 신고
  2.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정주리 정이가는 친구 입니다 ^^

    2009.12.16 18:33 신고

“젊은 날 군대 생활, 잊기에는 아까운 추억”
[인터뷰] 악랄가츠 - 책 출판과 독자 반응


‘내 글을 책으로 엮을 수 있을까?’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어떤 반응일까?’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희망’일 것입니다. 막연히 시작한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희망도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이라 여깁니다.

이런 꿈을 이룬 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블로그에 연재했던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에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를 펴낸 저자 황현 씨에게 블로그 연재와 책 출판 뒷이야기, 독자 반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블로거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라면서 황현 씨와 인터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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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저자 황현 씨.

“젊은 날 군대 생활, 잊기에는 아까운 추억”

- 군대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잊혀져가는 군 시절 추억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젊은 날 2년여 시간을 전우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보냈습니다. 때로는 죽을 만큼 힘들었고, 외로웠지만 그냥 기억 저편으로 잊기에는 너무 아까운 추억이잖아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작성해나가다 보니, 많은 분들에게 관심과 공감을 받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같이 생활했던 부대원 중 가장 생각나는 이는 누구죠?
“본문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윤 이병이랍니다. 저랑은 3개월 차, 후임이었는데 함께 생활하면서 고참이란 이유로 맨날 시키고, 괴롭힌 거 같습니다. 그래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잘 따라주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가끔은 텐트 속에서 그와 먹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나가서 꼭 먹자고 했던 지난 겨울 밤이 생각나곤 하네요.”

- 책으로 펴내기까지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소개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블로그에 올린 글을 정식으로 출판하려고 하니, 여러 제약이 많더라고요. 특히 사진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이용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금 제 블로그를 대표하는 프로필 사진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발견하게 되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해왔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았고, 출처를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용했데, 어느 날 비밀댓글이 달려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글을 보시는 구독자셨는데, 프로필 사진 원제작자이셨습니다. 과제물로 그린 그림인데, 인터넷에 유포되었고, 우연찮게 제가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다행히 흔쾌히 사용하라고 허락해주셔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프로필 사진 원작자도 흔쾌히 사용을 허락하고...

독자 평, “아쉽지만 블로그와 또 다른 느낌”

- 책으로 내면서 원하는 바가 있었나요?
“처음 출판 제의 받았을 때만 하여도, 자신이 없었고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인터넷을 쉽게 접할 수 없는 군인들이 보다 쉽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 동생이 근무하는 부대에 책을 보냈는데, 동생 후임이 제 블로그에 방문하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참 뿌듯했습니다.”

- 쓰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텐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블로그나 책에서는 유쾌하고 발랄한 에피소드 위주로 작성하였습니다. 평소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제가 구태여 안 좋은 추억까지 작성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안 좋은 추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훨씬 많았기에, 기왕이면 읽으시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책을 읽은 독자들 반응은 어땠어요?
“다양했습니다. 기존 블로그 연재 글을 보신 독자 분들은, ‘블로그에서의 기발한 사진과 말투를 많이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책만의 또 다른 느낌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책을 구입하신 주변인들도 호기심 삼아 읽어보신다고 하는데, 한번 잡으면 쉽사리 놓지 않으신다고 하시네요. 다행히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군부대 반응이 궁금하군요?
“제가 민간인이라 군부대의 반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댓글을 보면, 현역 간부들이 많이 보시더라고요.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휴학생으로 값진 경험,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터

- 가족과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요?
“항상 말썽만 부리던 아들이 책을 낸다고 하니 무척 기뻐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과 무협지만 끼고 살아서 많이 혼내시기도 하였는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신기해하셨습니다. 특히, 동생은 현재 육군에서 군복무 중이라서 그런지 더욱 좋아하였습니다. 저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믿기 어렵다며 웃으셨습니다. 하긴 저 또한, 지금도 많이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 앞으로 계획을 들려줄 수 있나요?
“올 한 해 블로그를 운영하며 참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사회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제가 책을 발간하였고, TV, 라디오에 출연, 다양한 행사에 초청받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휴학생 신분이라 다시 학업에 매진하여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사진의 매력에도 푹 빠져있답니다. 앞으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욕심을 내보자면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물론 블로그도 꾸준히 운영해나갈 거예요”

- 하고 싶은 말은?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저를 응원해주신 구독자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뛰어난 글재주도 없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던 저를 과분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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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가츠님 인터뷰를 여기서 보게될 줄이야 ^^;
    완전 인기인이네요~ ㅎㅎㅎ

    2009.12.13 03:19 신고

“머릿속으로 그 때 생각을 하니 우습지.”
블로거 악랄가츠, ‘군대 이야기’로 일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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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의 추천사.

우리네 세상살이에는 해도 해도 끊이지 않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공통점은 지겨워하면서도 한쪽 귀로 쫑긋하고 듣는다는 점이다. 남자에겐 군대, 여자에겐 출산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중 하나인 지긋지긋한(?) 군대 이야기가 최근 책으로 나왔다. 지난 해 다음 아고라가 ‘미네르바’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면, 올해에는 블로그에 연재된 ‘군대 이야기’가 6개월간 4백만 네티즌을 열광시킬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 저자 황현 씨로부터 책을 받고 머뭇거리던 사이, 딸아이는 “아빠 이 책 재밌겠는데요. 제가 먼저 읽으면 안돼요?”라고 운을 뗐다. ‘초등 5학년인 딸이 읽어도 무방할까?’ 잠시 망설였다. 책을 살폈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이 쓴 추천사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심하고, 자의식에 가득 찼으며, 겁쟁이이기도 했고, 첫사랑의 실연에 상처받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청년이 군대에서 겪는 좌충우돌 체험기는 많은 청년들에게 공감을 자아냈고, 많은 여성들에게 웃음과 호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읽는 걸 허락했다. 황현이 쓴 군대 이야기는 이병시대, 일병시대, 상병시대, 병장시대 등의 차례로 책으로 변신해 있었다. 뒤늦게 책을 들었다.

“머릿속으로 그 때 생각을 하고 읽으니 우습지.”

“크크크큭, 하하하하~”
“아빠, 무슨 책을 보는데 그렇게 웃어요.”

엎드려 책을 읽는 아빠 등에 올라 탄 딸애도 덩달아 키득거리며 물었다.

“너 읽은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야.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재밌어서.”
“나 때문에 웃는 거 아니었네요. 어디 읽는데 그렇게 웃어요?”

딸아이 먼저 읽은 테를 낸다. 책을 주제로 아이와 이런 대화 나누는 자체가 즐거웠다.

“신병훈련 끝나고, 자대 배치 받은 후, 구보에서 낙오한 대목에서 고참들에게 욕먹는 장면이야. ‘고지하나 넘는데 기절이나 하고, 엄살은 존내 심하고. 그 XX색히. 갈아마셔버릴 뻔했잖아.’ 이 대목이 우스워서.”
“어, 이 대목은 웃을 데가 아닌데, 우스워요?”

“아빠는 군대 갔다 왔잖아. 머릿속으로 그 때 생각을 하고 읽으니 우습지.”
“저는 이해 안가는 대목인데, 아빠는 했던 거라 잘 아시겠군요.”

군대 이야기를 읽으니 새로웠다.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 27개월 썩었던(?) 군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서로 다른 곳에서 군대 생활을 마쳤지만 그가 나였고, 내가 그였다.

황현의 군대 이야기, 따듯한 호기심 유발

“고생스럽고 힘들기만 할 것 같은 군대 이야기를 그는 유쾌하고 발랄하게 풀어썼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서 독자들은 병영의 뒤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런 사건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웃음과 박수와 따뜻한 공감을 보냈습니다.”

김명곤 전 장관의 말처럼, 황현의 <군대 이야기>는 지긋하고 따분한 젊은 청춘의 군대생활을 따뜻하고 애정 어린 호기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또한 피 끓는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야하고, 갈 수밖에 없는 남북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했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김광석의 <이등병 편지>가 군대 가는 이들의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노래라면, 황현의 <군대 이야기>는 입대하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지침서 아닐까, 싶었다.

아니, 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이에겐 추억을, 군대에 있는 이에겐 희망을, 군대에 가야할 이에겐 용기를, 군대에 소중한 사람을 보낸 이에겐 위안을” 주는 필독서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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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저,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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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소비 위축, 고금리-이자 부담만 가중

한 자영업자, 폐업 대신 희망에 승부수 ‘글쎄?’
이자부담 월 80에서 100만원으로 20만원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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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봤어요? 하루 매출액 제로. 손님이 한 사람도 없을 때도 있죠. 그럴 땐 씁쓸하죠. 옷 장사는 표정 관리가 생명인데도 도무지 표정관리가 안돼요.”

애써 쓴웃음이다. 쓴웃음마저 없다면 다음 수순은 뻔하다. ‘폐업’ 뿐. 그러나 그는 폐업 대신 메이커를 바꿨다. ‘몰락’ 대신 다시 한 번 ‘희망’에 승부수를 건 것.

통계청이 발표한 올 상반기 자영업자는 594만5000명. 지난해에 비해 72,000명이 감소했다. “자영업자는 5년 만에 6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종업원 없이 혼자 또는 가족끼리 경영하는 미니 자영업자의 몰락이 두드러졌다.”는 전언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들의 실상은 어떨까? 확인이 필요하다. 26일 오후, 여수시 학동 상가를 찾았다. 행인들이 뜸하다. 고가 의류에서부터 중저가 의류대리점까지 다양하다. 홍보에 열 올리는 업체를 제외하다 보니 생소한 제품 대리점이 눈에 띈다.

빚내 시작한 의류업, 오히려 5천만원 까먹어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하며 반긴다. 뭐라 해야 할지, 망설인다. 그렇다고 손님으로 가장할 순 없는 일. 흔쾌히 승낙한다. 이럴 때 ‘심봤다!’ 외쳐도 괜찮겠지? 남녀 캐주얼 및 골프웨어를 판매하는 20평 A 대리점. 이은미(42) 씨와 마주 앉는다.

“장사는 좀 되나요?”
“옷 장사는 봄ㆍ여름은 잘 안되고, 가을ㆍ겨울 벌어 한해 버텨요. 보다시피 파리 날리잖아요. 본사에서도 쉬엄쉬엄하다가 가을에 본격적으로 하라 그래요. 올림픽 때문에 10일간 매상 자체가 없었어요.”

장사꾼은 “남는 게 없다. 밑진다!”라는데 시작부터 너무 솔직하다. 옷 장사 2년차라 하니 안심이다. 올림픽 10일 간이나 매상이 없었다니…. 매상 장부까지 보여준다. 쓰린 속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매상 없는 날 마음은 어때요?”
“그걸 말로 해야 아나요…. 항상 이러겠어요? 희망을 가져야죠.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이예요. 경험도 없으면서 지난 해 3월 덥석 대리점을 인수해 1년간 돈 까먹고, 올 5월부터 브랜드를 바꿔 그나마 좀 나아진 거예요. 10년 넘게 넣었던 아이들 교육보험이랑, 연금 등을 깨니 4000 되데요. 제 인건비까지 하면 5000만원은 홀라당 까먹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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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씨. 힘든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고금리에 이자만 20만원 늘어, 원금상환은 꿈도 못 꿔

두어 시간 만에 남자 손님 한 명이 들어온다. 10만원대 남성복과 여성복을 취급하는 이곳에서 “내일 행사에 매고 갈 넥타이 하나 골라 달라”는 주문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수수하고 좀 튀는” 걸로 요청한다. 손님이 구입한 넥타이 가격은 15,000원.

“대리점 인수 비용은 어떻게 충당했나요?”
“다 빚이죠, 뭐. 창업대출 4000, 아파트 담보대출 3600, 마이너스 통장 3000, 친척 2000 등 1억2천600만원을 빌려 시작했어요. 대출 조건도 얼마나 까다로운데요. 가게가 6000에 월 80, 본사비용 2500, 인테리어 4000 등 총 1억2천6백만원 들었어요. 4월에 브랜드 바꾸고 인테리어 손 좀 보느라 창업대출을 또 1000 받았어요. 비싼 인생 공부하는 거죠.”

이은미 씨는 여기까지 올 때까지 “각시 자존심 살려야겠다던 남편 동의가 힘이 됐다”고 한다. 남편 월급으로 생활 할 땐 적지만 저축하며 살았는데 좀 벌어 보겠다고 나서 빚만 치인 꼴이다. 지방이라 현시가로 8500만원인 32평 아파트가 위안이다.

“이자 부담은 어느 정도나요?”
“지난 해 창업대출 4천만원 이자가 5.3%, 올해 받은 창업대출 1000은 6.2%로 올랐대요. 그것도 보증료 50만원을 떼고 주더라고요. 또 아파트 담보대출 7%, 마이너스 통장 12%, 친척에게 빌린 돈 8% 그래요. 지난해에는 월 이자가 8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0만원 나가죠. 원금상환은 꿈도 못 꿔요. 원금을 까야 남는 건데…. 물가가 올라 사람들이 주머니를 꽉 움켜잡고 있으니 장사가 돼나요? 이걸 하려는 사람도 없고.”

‘고물가ㆍ고금리ㆍ자산 가치 하락’이란 경제 3중고를 확인한다. 경제 3중고는 서민과 중산층의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결국 경기 침체 악순환이 염려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26일 발표한 ‘올해 3분기 소비자태도조사’에서 “전분기와 비교해 10.1포인트 하락한 37.7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폐업은 이자부담 때문, 창업 시 ‘목’을 잘 골라야

“이런 가게들이 문 닫는 이유는 뭐죠?”
“버티고 버티다 이자를 못 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제 경우 창업대출 이자는 양반이에요. 마이너스 통장 이자가 부담인 거죠. 앞에 있는 가게도 일하는 사람을 내보냈어요. 적자가 누적된 거죠. 혼자서 까딱까딱 장사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지난해 그랬어요. 지난 5월, 30만원대에서 10만원대 의류로 안 바꿨으면 문 닫았을 거예요. 중산층도 어렵다보니 가격대를 한 단계 내려 사는 경향이거든요.”

고금리는 서민에게 이자 부담만 지워줄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권이 금리를 올렸음에도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질소득이 감소해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등이 예금할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은미 씨는 새롭게 의류가게를 하려는 사람에게 “경험 없는 사람은 달려들면 안 된다. 하려면 의류매장에서 경험을 쌓아 철저한 시장조사 후 제대로 된 ‘목’을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쫄딱 망하기 쉽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너나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근근이 버티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불안은 사회 전체로 퍼질 공산이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재점검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특정 계층을 위한 경제정책이 아닌 빈익빈 부익부 현상 극복까지를 고려한 경제정책이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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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만에 온 손님, 넥타이를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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