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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소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7.31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자비의 배!”

누가 할머니래? 우리는 이래 뵈도 ‘흰머리 소녀’

스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흰머리 소녀․소년이라 부르는 이유

 

 

 

 

차 속에는 자연의 이치가 스며 있습니다.

 

차를 즐기시는 스님은...

 

 

 

머리가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찾을 곳이 있으면 좋습니다. 혼자만의  비밀스런 아지트(공간)가 있다면 금상첨화. 찾는 사람이 적고, 조용하며, 공기와 물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다행이 제게도 힐링 처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금강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절집에 기거하는 즐거움은 대략 세 가지. 첫째, 스님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 둘째, 새벽 예불을 드리며 몸과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자신도 모르게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덕해 스님과 차 앞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 말문을 여시기만 하면 어느 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대화의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이유는 진정성과 해박함 및 부드러움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마애삼존불>처럼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시면 깜빡 죽습니다.

 

 

“흰머리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참 재밌어요.”

 

 

이야기 도중,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튀어 나왔습니다. 귀를 의심하면서도 쫑긋했습니다.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호기심이 잔뜩 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찾았지? 참 멋스럽다, 싶었지요. 대충 ‘할머니’로 해석하는 게 맞을 듯했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란 말이 흥미롭네요. 흰머리 소녀는 누굴 말하나요?”
“….”

 

덕해 스님의 웃음은 자애입니다.

 

 

 

스님은 웃으실 뿐 침묵하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안 가르쳐 줘. 궁금해 죽겠지? 알아 맞춰 봐.”

 

라시며 약도 올릴 만합니다. 이마저 없는 걸 보면 선문답을 하자는 건지…. 생각할 시간을 주시려는 건지…. 이미, 본인이 생각하는 흰머리 소녀의 근원으로 들어가신 건지…. 침묵을 깨고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흰머리 소녀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할머니를 말합니다. ‘흰머리’와 ‘소녀’를 합친 합성어지요. 제가 만들었는데 말을 쓰면 쓸수록 맛깔스러워 계속 쓰게 돼요. 중독성이 있지요. 흰머리 소녀란 말 괜찮죠?”

 

 

듣고 보니 ‘할머니’란 단어보다 ‘흰머리 소녀’가 더 운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사람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결국 사라지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긴 자연의 이치를 뉘라서 피할 소냐!

 

 

“흰머리 소녀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몇 년 전, 서울서 지하철을 탔어.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할머니들이 단체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대. 생김새와 옷차림을 보니 부잣집 사모님부터 소시민까지 다양한 계층임에도 거리낌 없이 어울려 수다를 떨더라고.

 

각자 성향과 경제력을 떠나 체면조차 벗어던지고 마냥 즐겁게 떠드는 걸 보니 꼭 초등학교 동창 같더라고. 중ㆍ고등학교 동창들은 체면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떠들지 못하거든. 할머니들이 격의 없이 수다 떠는 게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재잘거림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나이를 상징하는 흰머리에 해맑은 소녀를 갖다 붙인 거야.”

 

 

딱, 손뼉 쳤습니다. 세심한 관찰력도 관찰력이지만 할머니들의 수다에서 싱그러운 소녀들의 재잘거림을 발견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스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대단한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니까 덕해 스님이 '흰머리 소녀'란 단어를 찾아낸 건 구도자로써 인간에게 갖는 사랑이었던 셈입니다. 천상 스님인, 스님의 맑고 고운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비의 마음은 배움이었습니다.

 

 

덕해 스님이 또 다른 수행 삼아 하시는 서예...

 

 

 

뜨겁던 차가 식어갑니다. 달빛은 점점 깊어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는 스님께서 쓰신 붓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솜씨가 있는지, 필체에 힘이 서려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반가울 뿐이었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자비의 배.”

 

 

이 글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르침이었습니다. 만법은 본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경계를 초월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 열반으로 가는 자비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었지요. 인간 삶은 고통의 연속. 이를 이겨내고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수행이 있는 것…. 생각을 접고,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반응? 다 늙어빠진 할머니들에게 소녀라고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어? 좋아 하지. 할아버지들이 은근 시샘하는 거 있지. 그래 할아버지들은 덤으로 ‘흰머리 소년’이라고 불러.”

 

 

흰머리 소녀와 흰머리 소년. 참 듣기 좋습니다. 이렇게 부른지 3년여가 됐다나요. 하여튼 단어에 의미가 붙으니 더욱 빛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줄여 말하는 게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야간 자율학습을 ‘야자’로 부르는 것처럼 축약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하여, 흰머리 소녀를 ‘흰소’로 부르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걱정도 팔자라고요? 하긴, 깨달음의 상징인 ‘소’도 괜찮을 듯싶네요. 단지 말 속에 스며있는 의미를 알면 그만.

 

달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달님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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