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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도 흰 머리가 났네. 흰머리가 많네!”
“서빙 하는 날 앉아서 고기 사 먹을 수 없잖아.”
“전혀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십만 원이 입금됐더라.”
추석 풍경과 아르바이트에 나선 딸, 부모 마음은?

 

 

 

 

아이들이 있어 분위기 삽니다.

 

 

 

추석 전날, 부모님 댁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큰누나와 작은 누나 식구들까지 함께 모였습니다. 목사인 형은 미리 다녀간 관계로 공석. 누나 손자들까지 합류해 북적대니 명절답습니다. 덩달아 웃음꽃과 울음꽃이 피어납니다. 역시 아이들이 있어야 제 맛입니다.

 

 

바뀔 때도 되었건만 명절 모습은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여자들은 부침개, 나물, 생선 찜 등을 만드느라 정신없습니다. 남자들은 거실 TV 앞에 앉아 과일 등을 먹는 그림. 언제나 대하는 이러한 명절 모습, 남자로써 싫은데도 어찌 할 수 없는 노릇. 반란을 꿈꾸지만 찻잔 속일 뿐. 팔십 중반의 어머니께선 한쪽에서 배추김치 담을 준비에 한창입니다.

 

 

“어머니, 김치 제가 담을 게요.”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오십이 넘은 아들을 보시며 “그래라. 우리 아들이 담은 김치 한번 묵어보자!”하십니다. 그러면서 “배추를 꽉 짜 물 빼고 살살 버무리면 된다”고 훈수하십니다. 말 그대로 이미 준비된 파 등 야채와 갈아 놓은 고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어머니가 다 해놓은 걸 손 안대고 코 푼 격이지요.

 

 

“우리 아들도 흰 머리가 났네. 어~ 흰머리가 많네.”

 

 

놀라움에 찬 목소리. 세월무상, 인생무상을 느끼셨던 걸까. 어머니께서 김치 버무리던 아들 머리를 무심코 바라 보셨나 봅니다. 그러다 발견한 아들의 흰머리가 어색하나 봅니다.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 흰머리 많이 뽑았지요. 물론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당 얼마인가를 받았지요. 요것도 쏠쏠한 효도 아르바이트였지요.

 

 

 

 

 

“저 7시까지 알바 가야 돼요.”

 

 

명절 음식 준비를 돕던 고등학교 2학년 딸, 밥 일찍 먹고 아르바이트가야 한다고 선전포고합니다. 예상대로 반발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큰고모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더니 그러더군요.

 

 

“고등학생이 공부안하고 알바 한다고?”

 

 

“토요일에만 아르바이트 한다”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제정신 아니’란 표정 역력합니다. 사실 딸이 고깃집 아르바이트에 나선지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일하다가 어제부터 토요일만 하기로 했답니다. 왜냐면 디자이너가 꿈인 딸이 주 5일 미술학원에 다녀야 하기에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딸에 의하면 주인이 일 잘한다고 잡았답니다. 학원비도 보탤 겸 시간 쪼개 일하기로 했답니다. 기특합니다만, 지켜보는 아버지 입장에선 애가 탑니다. 그래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고난도 헤쳐 나갈 힘이 있어야 하기에 묵묵히 지켜보는 중입니다. 딸이 아르바이트에 나서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두 달 전 상황입니다.

 

 

딸 : “치킨 집 홀 알바하면 안됨까? 깔깔~”
아내 : “최저 임금 줌?”


딸 : “ㅇㅇ 주는뎅. 밥도 줌!!! 제발.”
아내 : “안돼. 그럴 시간 있으면 책을 읽어서 마음의 양식을 채우렴 ㅋ”

 

 

 

 

 

어째야 할까? 아내 의견이 맞습니다. 하지만 험난한 세상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화초처럼 키우는 것보다 잡초처럼 자라는 게 낫다는 주의로 경험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그 중 살면서 편의점, 음식점,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해봐야 삶의 쓴맛, 단맛을 맛볼 수 있다 여겼습니다. 흔쾌히 그랬지요.

 

 

“하고픔 해라!”

 

 

한 마디로 정리되었습니다. 지난 8월 말, 뒤늦게 자리를 구한 딸의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말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며, 임금은 시간 당 6천원. 손님 있을 때와 없을 때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형태였습니다. 88만 원 세대의 고달픈 삶은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애교를 피우며 다가왔습니다.

 

 

“아빠. 나 수요일에 빨리 끝나는데, 시간 나?”
“우리 딸이 시간 내라면 없어도 일부러라도 내야지. 왜?”


“나 알바 집 서빙 하느라 고기 맛을 아직 못 봤어. 어떤 맛인지 먹고 싶어.”
“그랬구나. 아빠랑 삼겹살 데이트 하자.”

 

 

2주 전, 딸과의 고기 데이트는 다른 때와 달랐습니다. 앉아서 서빙 받는 게 적응 안 돼 어색하다대요. 주방 이모 등에게 인사도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 또한 안절부절. 딸에게 “오늘은 알바생이 아니고 손님이니 어색해 말라”며 당당함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주방 이모 등 식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오길 당부했습니다. 그 후부터 편하게 앉더군요.

 

 

 

- 딸, 알바는 할만 해?
“엉. 계속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아파. 저번에 끝날 시간이 다 됐는데, 단체 손님이 와서 3시에 끝났어. 그런 게 짜증 나.”

 

 

- 힘들었겠구나. 서빙은 몇 명이 해?
“세 명. 한 명은 대학생 언니고, 한 명은 나랑 동갑이야.”

 

 

- 동갑? 네 친구들도 알바 많이들 하나 봐?
“엉, 많아. 일하기 편한 편의점이 제일 많고, 다음이 음식점이야.”

 

 

- 알바는 어떻게 구했어?
“친구한테 소개받았어.”

 

 

- 일은 잘해?
“대학생 언니랑 같이 서빙하면 편해. 언니가 일을 잘하거든. 그 언니가 나보고 서빙 잘한데.”

 

 

- 알바는 언제까지 할 거야?
“9월 한 달만 할래. 앞으로 미술 학원 다니면서 공부까지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아.”

 

 

- 알바 한 달만 한다고 말했어?
“아직. 오늘 가서 말하려고. 알바생 빨리 구해야 하잖아. 고기 먹기 전에 말할까, 다 먹고 나서 말할까? 그게 제일 고민이야.”

 

 

- 나올 때 말하는 게 좋겠는데. 어쩌다 고기 맛을 아직 못 봤을까?
“돈 받고 파는 걸 그냥 공자로 주겠어. 그렇다고 서빙 하는 날 앉아서 고기 사 먹을 수 없잖아. 그래서 아빠랑 고기 먹자 한 거야.”

 

 

 

 

 

그 후, 지인과 딸이 일하는 곳에 들렀습니다.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기에. 딸과 아는 척 않기로 하고, 눈빛만 교환키로 했습니다. 조용히 지켜 본 딸은 쭈뼛쭈뼛했습니다.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다고 하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당당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전혀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십만 원이 입금됐더라. 누굴까?”

 

 

추석 연휴 첫날, 은행에 들렀던 아내가 의아해했습니다. 알고 보니, 딸이 8월에 이틀 일했던 임금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26일, 20여명의 식구들이 둘러 앉아 저녁 밥 먹는 중, 후다닥 밥을 먹은 딸이 일어났습니다. 아내까지 덩달아 일어났습니다. 알바 장소에 데려다 준다나. 나갔다 온 아내는 나눠 줄 음식을 싸느라 바빴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가족들이 흩어졌습니다. 저희도 길을 나섰습니다.

 

 

“여보, 우리 딸 알바 하는 곳으로 지나가게. 딸 데려다 줄 때는 세 테이블 있었는데, 손님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네.”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명절 전날 손님이 없을 듯한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손님이 바글바글.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 마디 날렸습니다.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손님이 많아 우리 딸 고생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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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은 자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 사람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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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은 이 여객선으로 가능하다.

6일, 저렴하게 떠나는 3박4일 여행. ‘DBS 크루즈 블라디보스톡 2010 winter’ 에 나섰다.

배 안에서 40여 시간은 크루즈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것은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홍대 거리에서 곱창 전문점 ‘라비린토스’를 경영하는 이종석(31) 씨. 그는 “외식업은 성공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다.”“외식업은 자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외식업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다음은 이종석 씨와 나눈 2차 인터뷰.

크루즈에서 만난 이종석 씨.

크루즈 풍경

곱창을 선택한 이유, “좋은 재료를 받을 수 있어서”

- 많은 음식 중 굳이 곱창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을 음식을 고른 게 곱창이었다. 음식점은 좋은 재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게 관건이다. 이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곱창은 다른 먹거리에 비해 좋은 재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집중 공략하는 주된 손님은 어떤 층인가?
“곱창을 좋아하는 젊은 여자 손님을 목표로 했다. 여기에 데이트 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밝은 맛집 분위기와 이벤트를 연출한다. 지금은 여자 손님과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와인과 위스키 동호회 등 다양하다.”

- 2호점 계획은 있는가?
“회의 중이다. 체인점보다는 직영점으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2호점을 내더라도 1호점과 똑같이 곱창집을 내고 싶진 않다. 왜냐면 살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다. 지금 고려중인 게 캐주얼 레스토랑 등의 양식 외식업이다.”

- 언제까지 외식업에 종사할 것인가?
“3년 정도 지나면 1년에 3~4개월은 무급 휴식을 가질 계획이다. 배당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후훗~) 최종목표는 1년에 반년만 일하고, 나머지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야 더 활기차지 않을까? 외식업 10년이 되면 그만할 생각이다.”

배의 침실.

침실은 사정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외식업은 자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 가게를 두고 크루즈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일 이외에도 자기가 즐기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주의다. 동업자들 모두 여행, 음식, 자동차, 가정생활 등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가게를 빠지고 취미 생활을 할 때는 다른 동업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이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역할은 아르바이트생이 대신하고 있다.”

- 같은 88만원 세대라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알 텐데, 그들의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
“아르바이트생 시급은 보통 4~5천 원 선이다. 우리는 이것보다 높은 5천, 7천, 1만 원 등 다른 곳보다 높다. 이렇게 시급이 다른 건, 아르바이트생이 ‘다트 게임’에 참여해 시급을 선택하게 한다. 그래야 일하는 재미가 더 있지 않을까?” 

- 기부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음식점은 음식 쓰레기에 많이 신경을 쓴다. 손님들이 잔반 없이 깨끗하게 먹으면 얼마씩 기부한다. 이때 손님 이름으로 기부하면 좋은데, 절차가 너무 복잡해 가게 이름으로 기부한다. 기부 등은 트위터에 올려 손님과 공유한다.”

- 음식점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외식업은 성공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다. 외식업은 자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식업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좋은 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리고 외식업은 동네식당 운영과 다르다. 또 음식 맛으로만 승부하는 식당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회계분야도 배워야 하고, 다양하게 알아야 할 게 많다.”

역시 젊은이들의 생각은 신선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맡은 역할에 충실한 이종석 씨가 부러웠다. 여하튼 처음 만난 이종석씨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단체 여행객은 이 공간을 이용하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연인이나 부부를 위한 2인 침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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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걸 해 기쁘다!”
[여수 맛집] 중화요리전문점 ‘라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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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소스를 만드는 모습.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인순이의 <거위의 꿈> 가사 일부다. 그렇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은 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소중히 키워야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녹록하지 않다. 어렵고 힘든 생활보다 편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자신이 지닌 재능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높은 자리에 앉길 원하는 부모에 의해 휘둘리는 경향이다. 이 같은 세태를 뒤로 하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 나선 한 젊은이를 소개한다.

자꾸 손이 저절로 가는 그런 맛의 팔보채.

자장면에는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이가 들어가자 따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좋아졌다. 

중화요리전문점 ‘라이라이’ 차별화로 승부

가족과 함께 ‘라이라이’에 들어섰다. 여수시 학동 거북선공원 옆에 자리한 중화요리 전문점 ‘라이라이’. 내부는 온돌식 마루였다. 물이 나왔다. 물 색깔이 예뻤다. 차별화를 위해 몸에 좋은 메밀을 엽차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중식집과 차별화한 건 이뿐 아니었다. 배달이 없었고, 이에 따라 플라스틱 그릇을 없앴다.

중식당 대표 메뉴인 자장면과 짬뽕, 팔보채를 시켰다. 이어 단무지, 김치, 소금에 볶은 땅콩, 매생이국 등 밑반찬이 나왔다. 매생이국이 특이했다. 음식에는 중 요리 특유의 느끼함이 없어 담백했다. 맛집으로 소개해도 낯부끄럽지 않을 만큼 당당한 맛이었다. 그렇지만 젊은 주인장은 이렇게 겸손해했다.

“제가 만든 요리 맛은 아직 부족합니다. 스승이 만든 요리는 제가 먹어봐도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습니다. 저도 깊은 맛을 내기까지 더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아마, 깊은 맛은 세월이 만들어 낼 게다. 그는 “내 가게를 준비하다가 느낀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거였다.”“이제 가게를 냈으니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가시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드는 길 밖에 없음을 안다.”며 각오를 다졌다.

술꾼들의 해장으로 제격인 짬뽕. 

면발도 쫄깃쫄깃했다. 


싱싱함이 살아 있는 팔보채.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돼 기쁘다!”

잠시 한 사례를 보자. 서울 강남 대치동에 총각이 운영하는 ‘총각네 야채가게’가 있다. 이곳은 항상 신선한 최상의 물건을 구비, 손님에게 웃음과 믿음을 선사했다. 이는 대박이었다. 대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 기존 장사와 차별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총각네 야채가게’ 주인은 자신의 재능이 장사임을 알았고, 좋은 제품 고르는 법 등을 차근차근 배워갔다. 제품도 자신이 직접 선별해 장사꾼들의 농간을 차단했다. 이영석 사장의 장인 정신, 성공 사례는 <총각네 야채가게> 책으로 발간돼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라이라이의 이모저모.

자장면을 먹느라 정신없는 아이.


깔끔한 밑반찬. 노란 색의 메밀차와 매생이국이 색다름이었다.

‘라이라이’ 주인은 이제 겨우 25세 청년 박철우 씨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요리사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요리를 배웠고,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했다. 우리나라와 호주 등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로 실전 요리를 익혔다.

군 제대 후 서울 유명 중식당에서 서빙, 전표, 면판, 칼판, 화덕, 식사장, 칼판장 등을 거쳐 조리장까지 오르며 맛을 알아갔다. 한식, 양식, 일식 등을 제치고 중식을 선택한 건 불 앞에서 느끼는 희열 즐거움 때문이었다.

3년여의 배움을 뒤로하고 <라이라이>를 개업한 건 지난 10월 1일. 그러니까 한 달 보름 정도 지났다. 자신이 벌어 모은 3천만 원과 부모님께 융통한 2천만 원 등 5천만 원으로 어엿한 사장이 된 것이다. 그에게 가게를 열게 된 느낌을 물었다.

“내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돼 기쁘다.”

젊은 청년 목소리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자의 즐거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일 게다.

모쪼록 ‘처음처럼~’이란 말을 잊지 않고 ‘라이라이’를 운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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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과 돈이면 통하는 세상. 그게 없어졌을까?”
88만원 세대를 향한 불쾌한 면접이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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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기업에 있는 사람 알아?”

어제, 지인은 전화에서 다짜고짜 아는지를 물었다. 안다고 하자 희색을 하며 물었다.

“친 조칸데 취직 부탁 좀 하려고. 취직 시험에 합격하고, 최종면접만 남았어. 면접이 어렵다던데 어떻게 손쓸 방법 없냐?”

다들 손을 쓰는데 손 놓고 있다간 혼자만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취직의 나쁜 관행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까지 이게 통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기업은 손 써봤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가 반발했다. 

“빽과 돈이면 통하는 세상. 아무리 변했다고 그게 없어졌을까?”

뒤 배경과 돈 없는 설움을 누가 모를까. 그에게 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수천만 원이 드는 불공정 취업에서 공정 취업으로 개선

그동안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입주한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취직하기 위해 사람이 몰렸다. 대우 좋고 연봉 센 기업들이라 대졸자도 고졸자로 취업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지만 지원자가 넘쳐 좁은 취직 관문을 뚫기란 쉽지 않았다.

비공개 채용에서 연줄을 통해 수천만 원의 뒷돈을 대는 일이 허다했다. 취업을 빌미로 수십억 원을 받은 사람이 해외 도피 길에 오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일부 지역 인사들도 관련되어 곤혹을 치르곤 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선 취업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 인사채용 시스템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또 힘없고, 돈 없는 사람도 대기업에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렇게 공정 취업의 길을 확보했다. 신입사원 채용은 전문기업에 맡기고 줄을 대는 사람에겐 불이익이 따르도록 했다. 공개채용을 통해서만 취직이 가능토록 했다. 이후 지역 기업에서 취업을 미끼로 한 사기 등이 점차 사라졌다.

면접관의 88만원 세대 향한 불쾌한 면접 사라지길 

지인과 통화 후 ○○기업에 다니는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돈거래 여부 등에 대해 확인했다.

“뒷돈 거래가 없어 쉽게 입사할 수 있었다. 면접은 3차까지로 인성과 체력, 술자리 자세 등 특별한 방법이 동원됐다.”

기우일까,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었다. 88만원 세대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의 막말 모욕 면접 등 불쾌한 태도가 원성을 사고 있어서다.

“잡 코리아가 올 들어 입사면접 경험이 있는 남녀 구직자 1,012명을 대상으로 면접 시 불쾌했던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75.1%가 ‘면접 시 면접관의 태도로 불쾌했던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무튼, 면접 시 인격 모독 행위 등은 사라지길 바란다. 모쪼록 좁은 취업 전선의 틈바구니에서 구직자들이 합격 통지서를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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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iybfafa.tistory.com BlogIcon 해피아름드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유명환 장관의 딸이 뉴스거라네요...ㅠㅠ
    이 세상이 20년 회귀네여..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요^^

    2010.09.03 09:38 신고
    • 은아   수정/삭제

      블로그 잘 보고 갑니다....^^재미있는 동영상 자료 많은곳. 연예인 방송 노출 사고 등등.. 화제의 연예인[H양] [K양] 동영상 풀버전.짤리기 전에 보셈.아직 못보신 분들은 여기서 보셈 http://ki.xam.kr

      2012.05.07 07:50

88만원 세대, 대학 졸업과 ‘빚’의 맞교환
대학학자금 대출 금리, 연 1% 대로 낮춰야
대학등록금 1천만원 시대, 이젠 청산해야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대학에 다녀도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대학 4년간 4천여만 원 이상의 거금이 들어가지만 결국 백수만 양성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대학은 비싼 등록금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2004∼2009년 국내 4년제 대학 등록금 인상률’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은 742만원으로 5년 전 577만원에 비해 28.6%, 165만원이 인상됐다. 또 국ㆍ공립대는 5년 전 290만원에서 419만원으로 44.5%, 129만원이 올랐다.

서민 물가 잡겠다던 정부 의지와는 달리 오히려 대학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이다. 그러니 학생을 위한 나라일까? 대학을 위한 나라일까? 의문이 생긴다.

최근 딸이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 합격한 정동현(가명, 50)씨는 등록금으로 500여만 원을 챙겨야 했다. 또 아들이 지방 국립대학에 합격한 김정희(가명, 45)씨는 여기저기서 빌려 250만원을 납부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뱉은 말이 대조적이었다.

“돈 없으면 새끼들 대학에도 못 보낸다니까.”
“돈 덜 들이고 횡재한 듯이 거저 국립대학에 보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사립대와 국립대 차이만큼이나 말의 파고가 컸다. 하지만 이들 말은 어감만 다를 뿐 속뜻은 다 같이 ‘힘들다’였다. 빌린 돈 갚기도 막막하다는 것. 최수영(가명, 40)씨 경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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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여연대.

배움의 대가, 빛 1천여만 원…아직 350여만 원 남아

직장에 다니는 최수영 씨는 2004년 광주 소재 사립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등록금은 250여만 원. 첫 등록금은 있던 돈을 모아 납부했다. 이후 3학기는 직장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 학자금 대출을 운 좋게 받았다.

대출조건은 2년 거치 4년 균등분할상환, 이자는 연 1%였다. 이렇게 2004년부터 2005년에 받은 대출금액은 600여만 원 중 현재 남은 금액은 150여만 원이다.

최 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 소재 사립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입학금은 450여만 원. 그녀가 지방에서 서울까지 학교 다니기가 너무 불편했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여, 대학원 1학년 2학기 때 휴학했다.

이때 받은 근로자 학자금 대출 조건은 2년 거치 2년 균등분할상환, 이자는 1%였다. 대출금은 350여만 원 중 일부는 갚고 2백여만 원이 잔액으로 남았다.

일반 학자금 대출 금리, 연 1% 대로 낮춰야

배움의 대가는 최수영 씨에게 총 1천여만 원의 빚을 남겼다. 아직까지 350여만 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이도 좋은 조건으로 학자금을 대출 받은 경우다.

고찬형(가명, 61) 씨는 “아이 셋을 학자금 대출로 보내야 했다.”며 “부모로서 야속하게 대출금은 너희들이 직접 벌어 갚아라 했다.”고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이 교육비가 무섭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금융권에 다니는 장인수(가명, 44) 씨는 “은행의 일반 학자금 대출 이자는 3%~7%다.”면서 “이자가 비싸다.”고 전했다. 일반학자금 대출 이자도 근로자 학자금 대출과 같이 1%대로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렇듯 등록금 연 1천만 원 시대, 취업이 어려워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20대가 대학 졸업 후 갚아야 할 학자금을 떠올리면 사회가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빚쟁이로 전락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던 정치권은 오리발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에서 내걸었던 문구가 떠오른다.

“등록금, 정녕 죽어야 내리겠습니까!”

정치권이 즐겨 쓰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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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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